생생후기
페루,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운 3주
Peru Children VI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주가 조금 넘었다. 페루 여행을 계획하고 무리한 일정을 잡았었다. 일정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곳이 남미라더니 정말 그랬다. 좋은 일 나쁜 일 할 것 없이 수도 없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나빴다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일들이 내 성장의 자양분이 됨을 알기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2주가 넘는 페루여행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물론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 즈음하여 3주정도 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재충전을 하자. 이게 나의 워크캠프 신청의 숨은 목적이었다.
1월 4일 새벽, 페루 아야쿠초에 도착했다. 피곤했기에 새벽에 도착했음에도 숙소를 잡아 짧게나마 잠을 잤다. 오늘부터 봉사활동이 시작인데 컨디션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9시 약속장소에 도착하였으나 동양인 한 명뿐,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으레 몇 마디를 주고 받았다. 이럴수가, 한국인이다. 반가웠다. 겨울에 하는 워크캠프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많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1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둘 뿐이었다. 어찌하나, 어찌하나. 누군가가 다가왔고, 자신을 워크캠프 코디네이터라고 소개했다. 얘기를 해 본 즉, 워크캠프 참가자는 총 6명이며 2명은 며칠 전에 도착하여 봉사자 숙소에 묵고 있으며 다른 2명은 다음날 온다고 했다. 옳다구나. 그럼 그렇지 두 명 이서 봉사활동을 하진 않겠지 싶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봉사자숙소는 열악했다. 찬물 사용은 당연했으며 벽과 천장은 마감처리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은 유년기와 군대시절을 통해 이미 몸에 익은 터였다. 수세식 화장실이 있나 확인했다. 있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었다. 다른 봉사자 두 명은 모두 여자로 벨기에인, 일본인 이었다. 한 명은 이미 동일한 봉사활동 유 경험자였다.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이러저러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다음 날 다른 두 명의 봉사자가 왔지만 그들은 현지 참가비 210유로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며 수 시간 고민을 하다 결국 봉사활동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비쌌다. 참가비 만으로도 두 차례에 걸쳐 80만원 가량을 냈다. 그들은 이에 수긍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처음으로 아이들을 보았다. 남자아이만 있는 고아원, 당연히 투박하고 거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아이들을 보는 20여일 내내 작은 다툼, 우는 아이가 끊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아이들은 순수했고, 봉사자들을 잘 따랐다. 아이들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들은 터라 이 아이, 저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과 어울렸다. 조금 특별한 아이도 있었다. 주위 아이들보다 조금 발달이 늦은 아이, 과히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아이, 모두와 어울렸다. 사실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왕성한 어린 남자아이들과 어울린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곳은 페루, 고도가 2000m가 넘는 곳이다. 한 번은 소규모 체육대회를 가졌었다. 운동장 두세 바퀴를 도는 달리기 시합이 벌어졌고, 봉사자도 자연히 참가했다. 한 바퀴를 채 돌지 못했지만 내 심장과 폐는 이미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다른 봉사자들과도 확인한 결과, 그들도 동일한 신체의 한계를 경험했다. 아이들과 뒷산을 등반한 적도 있었다. 4살의 남자아이가 가장 어린 아이였는데 그 아이에게 등산은 아직 무리였다. 나와 한국인 봉사자가 돌아가며 아이를 업어가며 올라갔다. 2000m가 넘는 고도에서. 높은 고도에서 체력이 넘치는 현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기. 내 체력으로 이에 무리 없이 부응하기란 너무 힘든 일이었다.
힘든 일만 있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힘든 일이 먼저 생각났을 뿐이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한 아이가 수첩에 작은 메모를 써서 나에게 주었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나는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다른 봉사자가 해석해 주기를, ‘너의 스페인어는 매우 훌륭해, 고마워요.’ 짧은 글귀였다. 나는 아직도 그 글귀를 내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떠나던 날, 14살의 다소 나이가 적지 않은 편이었던 아이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장난을 아주 좋아해 거의 매일같이 장난을 치며 놀았던 아이였다. 평소 같으면 다른 어린 아이들이 우리에게 매달리면 좋아라 하며 같이 장난을 쳤을 테지만, 그 날은 장난을 치던 다른 어린 아이를 말렸다. 그리고 그는 인사를 하고 대문이 닫히던 그 순간, 그 틈 사이로도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미 내 눈시울도 붉어질 대로 붉어져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은 항상 힘이 들지만, 이러한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을까, 참가동기가 순수하지 않았던 나 또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를 위한 봉사활동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이 곳 URPI고아원에는 다른 수 많은 봉사자들이 다녀간다. 대부분은 2~3주의 짧은 일정이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은 이 곳에 머물며 아이와 어울린다. 사진도 찍고, 같이 게임도 하고, 주말엔 근교로 여행을 다닌다. 누구를 위한 봉사활동일까. 아이를 위함일까 자기 자신을 위함일까.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봉사활동이나 타인에게 주는 도움으로 얻는 만족감이 가장 고차원적인 만족감으로 이 또한 결국 자기만족이라고. 하지만 분명 아이들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정이 들고 헤어지고, 봉사활동은 선의를 가진 이들, 적어도 악의는 없는 이들이 모여 이루어 지는 것이라 한다면, 그러한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은 굳이 나쁜 것이라 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또한 좋은 경험이리라 믿는다. 나의 페이스북에 온 URPI의 아이에게서 온 메시지가 그러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1월 4일 새벽, 페루 아야쿠초에 도착했다. 피곤했기에 새벽에 도착했음에도 숙소를 잡아 짧게나마 잠을 잤다. 오늘부터 봉사활동이 시작인데 컨디션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9시 약속장소에 도착하였으나 동양인 한 명뿐,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으레 몇 마디를 주고 받았다. 이럴수가, 한국인이다. 반가웠다. 겨울에 하는 워크캠프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많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1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둘 뿐이었다. 어찌하나, 어찌하나. 누군가가 다가왔고, 자신을 워크캠프 코디네이터라고 소개했다. 얘기를 해 본 즉, 워크캠프 참가자는 총 6명이며 2명은 며칠 전에 도착하여 봉사자 숙소에 묵고 있으며 다른 2명은 다음날 온다고 했다. 옳다구나. 그럼 그렇지 두 명 이서 봉사활동을 하진 않겠지 싶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봉사자숙소는 열악했다. 찬물 사용은 당연했으며 벽과 천장은 마감처리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은 유년기와 군대시절을 통해 이미 몸에 익은 터였다. 수세식 화장실이 있나 확인했다. 있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었다. 다른 봉사자 두 명은 모두 여자로 벨기에인, 일본인 이었다. 한 명은 이미 동일한 봉사활동 유 경험자였다.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이러저러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다음 날 다른 두 명의 봉사자가 왔지만 그들은 현지 참가비 210유로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며 수 시간 고민을 하다 결국 봉사활동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비쌌다. 참가비 만으로도 두 차례에 걸쳐 80만원 가량을 냈다. 그들은 이에 수긍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처음으로 아이들을 보았다. 남자아이만 있는 고아원, 당연히 투박하고 거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아이들을 보는 20여일 내내 작은 다툼, 우는 아이가 끊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아이들은 순수했고, 봉사자들을 잘 따랐다. 아이들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들은 터라 이 아이, 저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과 어울렸다. 조금 특별한 아이도 있었다. 주위 아이들보다 조금 발달이 늦은 아이, 과히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아이, 모두와 어울렸다. 사실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왕성한 어린 남자아이들과 어울린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곳은 페루, 고도가 2000m가 넘는 곳이다. 한 번은 소규모 체육대회를 가졌었다. 운동장 두세 바퀴를 도는 달리기 시합이 벌어졌고, 봉사자도 자연히 참가했다. 한 바퀴를 채 돌지 못했지만 내 심장과 폐는 이미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다른 봉사자들과도 확인한 결과, 그들도 동일한 신체의 한계를 경험했다. 아이들과 뒷산을 등반한 적도 있었다. 4살의 남자아이가 가장 어린 아이였는데 그 아이에게 등산은 아직 무리였다. 나와 한국인 봉사자가 돌아가며 아이를 업어가며 올라갔다. 2000m가 넘는 고도에서. 높은 고도에서 체력이 넘치는 현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기. 내 체력으로 이에 무리 없이 부응하기란 너무 힘든 일이었다.
힘든 일만 있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힘든 일이 먼저 생각났을 뿐이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한 아이가 수첩에 작은 메모를 써서 나에게 주었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나는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다른 봉사자가 해석해 주기를, ‘너의 스페인어는 매우 훌륭해, 고마워요.’ 짧은 글귀였다. 나는 아직도 그 글귀를 내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떠나던 날, 14살의 다소 나이가 적지 않은 편이었던 아이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장난을 아주 좋아해 거의 매일같이 장난을 치며 놀았던 아이였다. 평소 같으면 다른 어린 아이들이 우리에게 매달리면 좋아라 하며 같이 장난을 쳤을 테지만, 그 날은 장난을 치던 다른 어린 아이를 말렸다. 그리고 그는 인사를 하고 대문이 닫히던 그 순간, 그 틈 사이로도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미 내 눈시울도 붉어질 대로 붉어져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은 항상 힘이 들지만, 이러한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을까, 참가동기가 순수하지 않았던 나 또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를 위한 봉사활동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이 곳 URPI고아원에는 다른 수 많은 봉사자들이 다녀간다. 대부분은 2~3주의 짧은 일정이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은 이 곳에 머물며 아이와 어울린다. 사진도 찍고, 같이 게임도 하고, 주말엔 근교로 여행을 다닌다. 누구를 위한 봉사활동일까. 아이를 위함일까 자기 자신을 위함일까.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봉사활동이나 타인에게 주는 도움으로 얻는 만족감이 가장 고차원적인 만족감으로 이 또한 결국 자기만족이라고. 하지만 분명 아이들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정이 들고 헤어지고, 봉사활동은 선의를 가진 이들, 적어도 악의는 없는 이들이 모여 이루어 지는 것이라 한다면, 그러한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은 굳이 나쁜 것이라 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또한 좋은 경험이리라 믿는다. 나의 페이스북에 온 URPI의 아이에게서 온 메시지가 그러하다고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