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프랑스, 두려움 대신 설렘
WIMEREU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가기전의 짧은 유럽여행으로 어느정도 유럽에 대해서 알게 되고 한국을 떠나기전의 두려움은 많이 사라진 뒤라 그런지 프랑스로의 3주간 워크캠프가 그다지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솔직히 가기 전의 많은 보고서를 읽고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는 많이 달랐으나 그 역시도 내게는 무척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 항공료는 한달반전쯤인가 발표가 나자마자 두번이나 경유하는 곳으로 해서 130만원 정도에 스칸디나비아항공을 끊을 수 있었고, 물론 직항도 좋겠지만 2번경유하면서 스탑오버도 공짜로 할 수 있고 그 김에 다른 나라 구경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몸이 힘들더라도 경유해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간단히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를 돌고 다시 워크캠프 장소인 프랑스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 wimereux역으로 갔더니 리더인 marie가 마중나와 있었고 몇 명의 워캠 참가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눈뒤 마을 사람들의 차를 타고 둘, 셋 씩 찢어져서 워캠 장소인 캠핑장소로 떠났다. 장소에 가보니 몇 명은 이미 와 있었고, 첫날에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우리가 지낼지에 대해서 얘기를 하며 간단한 친목도모 게임을 했다. 터키2, 스페인1, 체코1, 한국인2, 러시아2, 우크라이나2, 프랑스2(리더둘), 나중에 합류한 프랑스1 까지 총 13명이였다. 솔직히 13명이 늘 다같이 함께이지는 못하였다. 처음부터 늘 불만과 말이 많았던 우크라이나 커플 둘은 늘 언제나 둘이 붙어 있길 바랬고, 러시아여자 두명도 굉장히 이기적이여서 남들 생각을 거의 하지않았다. 가기 전에 보고서들을 보면 늘 러시아아이들이 굉장히 이기적이란 말이 많았는데 역시나 사실이었다. 그래서 거의 3주 내내 스페인,터키2, 체코, 한국인 나와 한국인동생 이렇게 거의 다녔고, 나중에는 리더커플과 우크라이나커플이 싸우게 되었고 급기야 워크캠프가 다 끝나기도 전에 러시아 아이들은 인사도 없이 떠나고야 말았다. 특히나 우크라이나 친구 중 한명이 영어 선생님이여서 영어를 굉장히 잘해 다른 친구들이 아무래도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물론 남아있던 터키친구 두 명은 굉장히 젠틀한 의대 친구들이였고, 스페인 여자친구도 굉장히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친구였다. 체코친구는 조금 특이했지만 착했고, 리더커플도 괜찮았고, 나중에 들어온 프랑스 어린 친구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일 부분은 보수공사라해서 그 지역에 예전 문물들을 발견하기 위해 돌을 나르고 땅을 파서 워터탱크를 발견하고, 캐논을 발견하는 정말 하루에 5시간이상씩 고된 일의 연속이였다. 워캠에 몇번씩 참가했다던 친구들도 이렇게 힘든일은 처음이였다고 무척 힘들어했고, 날씨마저도 전혀 여름 날씨가 아닌 매일 지속되던 비바람으로 인해 그곳에서 결국 겨울 옷들을 잔뜩 샀던 기억이 난다. 비바람으로 인해 캠핑장에서 텐트안에서 자던 우리는 늘 추위에 떨어야 했고 텐트가 날라갈 까봐 늘 걱정스러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역시도 다 추억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바다 근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기 일주일전부터 날씨가 풀려서 그때야 바다에 가서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13명이 함께 모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마음이 되기까지가 힘든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여서 프랑스에 유명한 티비 방송에도 나왔고, 그 지역 신문이며, 전국적인 신문에도 사진과 함께 소개가 되어서 굉장히 뜻깊은 일이였다.
비록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친구들과는 그다지 친해지지 못했지만 터키친구들이나 스페인친구, 체코친구와는 우정을 돈독히 하여 아직도 페이스북으로 가끔씩 연락을 하고 있다. 비행기에서 정말 우연찮게 프랑스 남부쪽에서 워캠을 하고 온 두 친구를 보았는데 그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마을주민들도 친절했고, 텐트가 아닌 학교를 빌려 생활하고 부엌도 있었고 우리와는 정말 정 반대의 워캠이였다. 그 당시에는 그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럽고 내가 운이 없다 생각하였으나 두달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힘들었던 때가 추억이 되어 너무나도 그립다. 힘들수록 더 기억에 남는다고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다.
먼저 , 항공료는 한달반전쯤인가 발표가 나자마자 두번이나 경유하는 곳으로 해서 130만원 정도에 스칸디나비아항공을 끊을 수 있었고, 물론 직항도 좋겠지만 2번경유하면서 스탑오버도 공짜로 할 수 있고 그 김에 다른 나라 구경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몸이 힘들더라도 경유해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간단히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를 돌고 다시 워크캠프 장소인 프랑스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 wimereux역으로 갔더니 리더인 marie가 마중나와 있었고 몇 명의 워캠 참가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눈뒤 마을 사람들의 차를 타고 둘, 셋 씩 찢어져서 워캠 장소인 캠핑장소로 떠났다. 장소에 가보니 몇 명은 이미 와 있었고, 첫날에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우리가 지낼지에 대해서 얘기를 하며 간단한 친목도모 게임을 했다. 터키2, 스페인1, 체코1, 한국인2, 러시아2, 우크라이나2, 프랑스2(리더둘), 나중에 합류한 프랑스1 까지 총 13명이였다. 솔직히 13명이 늘 다같이 함께이지는 못하였다. 처음부터 늘 불만과 말이 많았던 우크라이나 커플 둘은 늘 언제나 둘이 붙어 있길 바랬고, 러시아여자 두명도 굉장히 이기적이여서 남들 생각을 거의 하지않았다. 가기 전에 보고서들을 보면 늘 러시아아이들이 굉장히 이기적이란 말이 많았는데 역시나 사실이었다. 그래서 거의 3주 내내 스페인,터키2, 체코, 한국인 나와 한국인동생 이렇게 거의 다녔고, 나중에는 리더커플과 우크라이나커플이 싸우게 되었고 급기야 워크캠프가 다 끝나기도 전에 러시아 아이들은 인사도 없이 떠나고야 말았다. 특히나 우크라이나 친구 중 한명이 영어 선생님이여서 영어를 굉장히 잘해 다른 친구들이 아무래도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물론 남아있던 터키친구 두 명은 굉장히 젠틀한 의대 친구들이였고, 스페인 여자친구도 굉장히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친구였다. 체코친구는 조금 특이했지만 착했고, 리더커플도 괜찮았고, 나중에 들어온 프랑스 어린 친구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일 부분은 보수공사라해서 그 지역에 예전 문물들을 발견하기 위해 돌을 나르고 땅을 파서 워터탱크를 발견하고, 캐논을 발견하는 정말 하루에 5시간이상씩 고된 일의 연속이였다. 워캠에 몇번씩 참가했다던 친구들도 이렇게 힘든일은 처음이였다고 무척 힘들어했고, 날씨마저도 전혀 여름 날씨가 아닌 매일 지속되던 비바람으로 인해 그곳에서 결국 겨울 옷들을 잔뜩 샀던 기억이 난다. 비바람으로 인해 캠핑장에서 텐트안에서 자던 우리는 늘 추위에 떨어야 했고 텐트가 날라갈 까봐 늘 걱정스러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역시도 다 추억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바다 근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기 일주일전부터 날씨가 풀려서 그때야 바다에 가서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13명이 함께 모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마음이 되기까지가 힘든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여서 프랑스에 유명한 티비 방송에도 나왔고, 그 지역 신문이며, 전국적인 신문에도 사진과 함께 소개가 되어서 굉장히 뜻깊은 일이였다.
비록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친구들과는 그다지 친해지지 못했지만 터키친구들이나 스페인친구, 체코친구와는 우정을 돈독히 하여 아직도 페이스북으로 가끔씩 연락을 하고 있다. 비행기에서 정말 우연찮게 프랑스 남부쪽에서 워캠을 하고 온 두 친구를 보았는데 그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마을주민들도 친절했고, 텐트가 아닌 학교를 빌려 생활하고 부엌도 있었고 우리와는 정말 정 반대의 워캠이였다. 그 당시에는 그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럽고 내가 운이 없다 생각하였으나 두달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힘들었던 때가 추억이 되어 너무나도 그립다. 힘들수록 더 기억에 남는다고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