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마지막 여름방학, 낯선 곳에서 나를 찾다

작성자 이민재
프랑스 CONC 159 · RENO 2012. 08 NEUFCHATEL EN BRAY

NEUFCHATEL EN BRA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지원할 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시간이 될 때 마다 국내봉사활동을 하였지만 해외 봉사활동이란 자체도 내게 솔깃하게 다가왔고 다문화를 교류한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고 유럽에서 새로운 환경에서 여태껏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언어실력도 늘리고 내가 결정한 일에 책임을 지며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 위한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한구석에 자리했다. 그로 인해 나 자신에게 지쳐갈 때 쯤 힘을 불어 넣고 나의 자립심을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4학년이고 대학교 방학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른 친구들은 한창 마지막 방학 시즌을 이용해서 공부를 하거나
인턴직을 하거나 하는 등등 취업을 위해 한창 스펙쌓기에 여념할텐데
내가 워크캠프로 여름방학을 송두리째 써버리게 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래서 워크캠프 하기 전에 다녀온 친구들과 부모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다녀온 친구들 중에 권하면 권했지 절대
시간낭비는 아니라고 했다. 그 만큼 값지고 멋진 경험이었다고 나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모두 응원 해주었다.
나는 해외경험이 전무하다. 비행기를 타본 건 제주도 갈 때 뿐이었고
영어공부도 국내에서 가끔 미드를 보거나 외국인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등에 만족했다. 그런 나에게 유럽이라는 곳은 정말 환상의 세계와 다름없었다.
그런 곳을 간다니.. 꿈에 부풀어있었다. 항공권을 발급한 이후로 부터는 학교 다니면서 조금씩 짬날 때 여행준비를 했고 처음 하는 여행준비와 워크캠프를 위한 영어공부와 학업병행에 머리 속이 복잡하고 힘들긴 했지만 마음만큼은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워크캠프 국가가 확정이 되고 날짜가 나오고 인포짓이 발송됬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인포짓과 낯선 지역이름 역이름에 당황하고 막연한 설레임을 뒤로한
불안함이 엄습했다. 내가 과연 미팅포인트까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가서 국제 미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워크캠프 전에 유럽 곳곳을 혼자 여행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교통수단 이용 방법과 복잡했던 지리 등에 조금씩 익숙해지게 되었고, 미팅포인트에 찾아가는 날은 역무원이 다행히 영어를 알아 들을 수 있어서 이것저것 묻고 무리 없이 찾아 갈 수 있었다. 역에 다다를 때쯤 내 나이 또래쯤 되어보이는 여자 두 명이 미팅포인트 역에 도달할 때까지 쉴 새 없이 영어로 수다를 떨었다. 나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조용히 둘의 대화를 엿듣다가 역에 다다를 때쯤에 먼저 인사하였고 그렇게 우리의 첫인사가 시작되었다. 워크캠프 오기 전에 동양인은 나뿐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까만눈에 까만 머리였다. 괜히 동질감에 너무 기뻣다. 처음 만난 그 친구들은 한명은 타이완에서 한명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타이완에서 온 언니는 타이완에서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이는 30살 독일에서 온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독일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학생이었다. 큰 배낭에 서로 처음만난 것 같은 인사치레하며 이야기 하는 두 여인들의 대화에 단번에 알아챘지만 바로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두 친구들의 대화가 정말 수준급이었다는 것이다.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빨라서 귀기울이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첫인사,, 첫만남 그리고 수다...정말 걱정 많이 했는데 그래도 같은 워크캠프라는 멤버라는 동질감에 어떻게 지원하게 됬고 왜 지원하게 되었는지 서로의 나라는 어디인지 등등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역에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남녀 두 커플 그리고 스페인에서 온 한 소녀
러시아에서 온 사촌지간의 남자 둘 그리고 프랑스 친구들 터키에서 온 친구사이인 두 여자
한명 튀는 남자 한명이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였다. 두만이 카마라라고..
이 친구는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데 스페인어와 불어를 하여서
둘이서는 이야기를 바로 할 수 없었고 프랑스친구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중에는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익히고 바디랭기지 스타일을 익숙해지면서
눈빛만 바도 통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서로 언어소통이 불가능했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친해지려고 했던 친구 중 하나이다. 그리고 정시간에 기차를 못타서 뒤늦게 합류한 러시아 여자 한명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온 영국출신 자기를 피카츄라고 소개하는 노란금발의 남자애 첫날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과 베이스캠프 뉴프샤텔을 이곳저곳 돌면서
3주동안 우리가 지낼 곳과 사람들의 익숙해 지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우리가 일하게 될 곳은 뉴프샤텔이라는 마을에 샤텔이라는 건물을 짓는 일이였다.
나중에 우리는 벽돌을 갉아내고 시멘트를 섞고 담장에 시멘트를 바르고 못에 망치질을 해서 시멘트를 긁어내고 짐을 나르고 하는 등에 전형적인 건물짓는 일을 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일에 처음에는 망치에 손가락도 하루에 3~4시간 작업이지만
힘들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일하는 요령도 생기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끝나는 기간동안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매일 일을 하고 주말에는 쉬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주중 일을 끝나고 난 후에는 근처에 유명한 관광지도 가고 야외수영장도가고
에트르타와 디에프와 같은 멋진 해변도 워크캠프친구들과 함께 갔다.
짬날 때 마을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워커분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기도 하고
마을잔치가 열릴 때는 마을 댄스도 함께추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다.
또 쉬는날에는 친구들과 자전거여행을 가기도 하고
낚시도 하고 양궁도 하고 악기도 배우고 유럽이란 곳은 정말 자유로웠다.
아 그리고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서로의 언어를 배우려고 했던 시간은
정말 알찼던것 같다. 그러다보니 공부도 공부지만 사고도 상상력도 풍부해지겟구나
이런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음식도 정말 잘해먹었다. 하루에 두명씩 쿠킹팀을 정해서 매일매일 메뉴도 달라지고 각 나라별의 음식을 모두 맛보았다. 있는 동안 이 음식 저음식 맛보느라 엄청나게 살이 불어나는 지도 모르고 그냥 그 순간을 즐겼던 것 같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매일 장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의 식량을 풍족했지만
가끔 한국음식이 생각날 때 고추장과 라면 그리고 김과 햇반을 꺼내서 먹기도 하였다.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면 매워서 못먹을 줄 알았는데 라면은 눈 깜빡할 사이에 국물을 비우고 김은 스시로 많이 먹어봤다면서 정말 좋아했다. 김을 이용한 김밥과 한국음식에 대해서 많이 설명해주었다.
워크캠프에 가기 전에 반크로부터 한국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많이 받았는데
도움이 정말 많이 되었다.
비빔밥과 불고기등등 한국요리를 알리고 최근 독도문제로 심각해졌는데 독도를 역사적으로 한국 땅이라는 근거를 충분하게 이해 시킬 수 있었다.
많이 친구들이 응원해주고 함께 도와주었다.
각 나라의 문화도 사상도 인종도 다르기에 더욱 이해하려고 하고 배려하고 친해지려고 했던 친구들이 아직도 눈에 아련하다. 정말 착한 친구들이지만 많은 멤버들이 함께했기에 그 중에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
우리 멤버중 무려 2명이나 워크캠프 기간 중 기간을 마치지 않고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됬다.
한명은 친해졌던 친구 중 하나였는데 아프리카의 민족을 무슬림이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음식문제와 racism이라고 인종차별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서 무슬림이라는 종교는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파티 때 술을 한껏 들이키더니 하루종일 술주정을 해서 모든 멤버들이 잠도 못자고 그렇게 두만이와 워크캠프 멤버중 한명인 프랑스인 마틸드의 말싸움이 시작됬고 그 날 이후 두만이는 가버렸다...
또 한명은 테크니컬 리더였는데 그룹리더와 마음이 안맞고 그룹중 멤버한명과 싸우고 술을 마시더니.. 또한 나가버렸다.
두만이와 알렉스가 베이스캠프를 떠난 이유와 그 동안의 멤버와의 마찰부분을 이야기 하자면 정말 길고도 복잡하지만 요약하자면 많은 멤버가 한마음을 가지고 공동체를 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싶은 것 그리고 자기시간을 갖는 것에 매우 제약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나 또한 내 시간을 많이 갖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이었다.
때론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함께 값진 일을 해나간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두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그러다 보니 서로를 더욱 이해하려고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정이 쌓이고 친분을 나누었던 것 같다.
스페인 친구들 정말 말이 빨랐다. 스페인어가 워낙 길고 빨라서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막상 오래들으니 나중에는 정겨워지고 나도 모르게 홀라 에스토이비엔 이러면서
안부를 물었다. 도로시오는 예쁘고 참한 친구였는데 나중에는 뉴프샤텔에서
정말 똑같이 생긴 남자와 커플을 맺었다.
프랑스 친구들이 많아서 나중에는 프랑스친구들끼리 불어로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럴 때 조금 힘들었다.
하루는 독일에 놀러갔는데 히틀러와 정치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해서 불어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나도 정치관련분야에 대해서 알고 싶고 영어로 이야기 해달라고 했지만 수다에 심취한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고 영어로는 이야기하는 것이 잦아졌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프랑스친구들이 가장 도움을 많이 주었다.
아무래도 프랑스이다보니 프랑스어 해석능력이 많이 필요로했는데
프랑스친구가 친절하게 통역도 해주고 프랑스어도 많이 알려주었다.
그 중 마리안느라는 친구는 매일 먹을 것도 많이 나누어주고 기타도 알려주고
앞으로의 자기 꿈의 대한 생각이 깊은 친구였다. 가장 깊은 대화를 많이 했던 친구이기도 하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또한 프랑스인 커플이였던 그룹리더 프랑소와와 마틸드와는 가끔 마찰을 빗어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로인해 더욱 친해질 수 있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커플이었다. 아무래도 커플이니깐 나는 더욱 소외감을 느끼고 힘든 부분이 있었다..
타이완에서 온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잘통했다.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많은 부분이 다른 유럽국가의 친구들보다는 더욱 서로를 잘 이해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고 알고 있던 부분도 많았다.
평소 중국어에 관심이 많아서 더욱 올리비아를 만나게 되어서 기뻣다.
여기는 보통 3개국어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독일 친구인 시모나는 4개국어에 능통했다.
기차에서 처음 만나서 내가 겁먹고 먼저 말걸지 못했던 친구가 이친구다. 정말 똑똑한 친구
그리고 한국인 혼자라고 정말 잘 다독거려주었던 러시아친구 소피안느와
내가 공부할 때마다 영어책에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걸어주던 레오
그리고 항상 마이디어라고 하면서 먹을것도 챙겨주고 힘들 때 와서 도와주려고 해주었던
사진을 정말 좋아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안나
그리고 항상 유쾌하게 파티때 정열의 춤을 추어주었던 터키의 두친구들
일라이와 무스데~ 잊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피카츄 이친구도 어린친구가 무려 4개국어를 했다.
나의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어주었던 피카츄! 스페인어와 불어를 영어로 알려주었고
더불어 러시아어도 알려주었다. 그런데 난 스페인어도 아직 섭렵못햇는데
포르투갈어를 알려주려고 했다 ...정말 후덜덜하던 녀석이었다. 피카츄!!
혼자했던 여행도 정말 뿌듯하고 나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었던 잊을 수 없는 시간이지만
파리에서의 혼자 여행을 하면서 야경을 봤던 그 때와 뉴프샤텔에서 밤에 근처 숲에가서 큰 망안경으로 별을 바라보면서 모두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은 정말 사뭇 다를 것이다. 근처 마을파티에서 함께 프랑스식 춤을 추었던 기억
함께 여행을 하면서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보냈던 시간들
예뻣던 그 장소,, 그 추억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