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꿈에 그리던 워크캠프, 드디어 현실로

작성자 이정우
프랑스 CONC 228 · RENO 2012. 07 ST. ambroix

ST AMBROI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작년 2학기 개강을 하고나서 학교에 갔을 때 워크캠프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외에 나가 봉사도 하고 봉사활동 앞*뒤로 여행을 다녀왔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 나도 내년에 참여하고 싶다. 내년에 내가 3학년인데 참가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2012년 4월 열심히 치과에서 실습을 하고 있던 때에 학교 홈페이지에 국제워크캠프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지사항을 읽고 안 되더라도 신청은 해봐야겠단 생각에 이렇게 저렇게 서류를 준비해 신청을 했다. 그리고 치과에서 실습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참가자로 선발됐다는 문자가 왔고 그날은 실습을 하는 내내 들떠있던 것 같다.
종강을 하고 7월 4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출국하기 전에 계획도 꼼꼼히 짜두었고 중간 중간에 사용할 기차표나 저가항공 비행기 표 예매를 모두 완료한 상태였기 때문에 걱정보다는 잘 될 거란 자신감이 더 컸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워크캠프지로 가는 기차를 눈앞에서 놓쳐버리고 말았다. 열심히 달려갔지만 파리의 기차역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사람도 너무 많았다. 순간 ‘아 어떡하지..처음부터 이런 일이…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금방 정신을 차리고 표 사는 곳으로 달려갔다. 호들갑을 떨며 기차를 놓쳤고 st amb개ix란 마을에 가야하는데 다음 기차를 타고 싶다고 하니 역무원 아저씨가 오늘 기차들은 하나도 자리가 없다는 충격적인 답을 주었다. 역무원 아저씨에게 어떻게든 오늘안으로 st ambroix에 도착만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하였더니 내가 너무 절박해보였는지 역무원 아저씨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키보드 자판을 이렇게 저렇게 두들겨보더니 기차표 4장을 내게 건네주었다. 어떻게든 가고 싶다니까 방법을 찾긴 찾았는데 6번의 환승을 해야만 한다고..무려 6번이라니....아저씨도 설명을 하시다가 이 상황이 웃겼는지 웃음을 흘리셨다.
내가 참가하게 된 캠프 CONC228 st ambroix 는 프랑스 남부 nimes에서 가까운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초고속기차를 이용하고 작은 기차로 환승을 해도 6시간이 걸리는 곳이었지만 초고속기차를 놓친 나는 무려 11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가야만 했다. 처음에는 드넓은 해바라기 밭도 보고 푸른 하늘도 보며 경치를 즐겼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환승을 하며 ‘프랑스 땅이 참 넓구나’란 생각과 프랑스의 모든 종류의 기차를 타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캠프지로 향하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2명의 여학생이 급하게 기차에 캐리어를 끌고 들어와서 내게 프랑스어로 쏼라쏼라 질문을 했지만 프랑스어를 모르는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영어로 이 기차가 생땅브와에 가는거냐고 물었는데 그 때만 해도 나는 st ambroix를 프랑스어로 어떻게 읽는지 몰랐기에 아마 맞을거야 라고 얼버무렸다. 기차가 출발하고 그 소녀들은 잠시 이야기를 하다 내게 다가와서 워크캠프에 참가하는지 물어봤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본인들도 그 캠프에 참가한다며 말을 걸어와 서로 얼마나 힘들게 캠프에 온 길인지를 자랑하듯 늘어놨다. st ambroix역은 우리나라 간이역보다도 작아 기차역 같지 않아보였다. 기차에서 내리자 다른 한국인 참가자 오빠와 프랑스인 애덤이 마중을 나와있었다. 캠프지에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은 ‘아! 정말 텐트잖아!!’였다. 사람들이 인포싯에 텐트라고는 나와있었지만 텐트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은터라 설마하며 갔는데 우리는 정말 텐트에서 생활을 했다. 마을에서 공동체회관을 빌려줘서 정원에다가 텐트를 치고 화장실과 부엌, 서재는 회관 안에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게 어색하고 서로들 서먹서먹했지만 하루가 지나자 점차 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체코에서 온 친구와 대만에서 온 친구와 함께 가장 큰 텐트를 함께 썼는데 그래서 훨씬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둘쨋날 우리가 일할 곳을 구경하러 갔다. 이 마을에 높은 언덕에는 십자군 시기에 세워진 성당이 있는데 우리는 그 성당으로 가는 길을 고친다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언덕이라기보다는 성벽과 성 같았다. 실제로 워크캠프 기간 내내 우리는 그곳을 tower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그냥 흙으로 덮여져 있는 땅을 파내서 평평하게 만들고 돌을 겹겹이 세워 길을 만드는 유럽식 전통방식<carade>를 활용해 성당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의욕이 넘쳤던 우리들은 중간에 계단을 만들어 보행자들이 걷기 쉽게 만들고 길에 문양도 넣자고 계획을 짜고 도면을 그려내었고 힘들었지만 처음 그렸던 도면대로 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우리 캠프에는 캠프리더 사라, 기술리더 에밀리를 포함해 6명의 프랑스인과 2명의 한국인, 체코에서 온 카트카, 대만에서 온 오필리아, 터키에서 온 발칸, 에킨, 아슬르까지 총 13명의 캠퍼들이 있었지만 1주일 만에 에킨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애덤을 &#51922;아내고 12명이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에 일어나 7시에 밥을 먹고 씻은 후 8시까지 일하는 장소에 도착해 일을 시작했고 주말에는 쉬거나 놀러 다녔다. st ambroix는 일 년 중 5~6월에만 비가 많이 오고 그 외에는 정말 구름 한점 없이 파란하늘을 자랑하는 뜨거운 날씨를 자랑하는 동네인데다가 한창 더운 7월인 터라 30도 아래로 내려간 날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 8시부터 오후1시까지 일을 하면서 중간에 휴식시간과 간식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4시간씩 일을 했다. 너무 더운 날씨라 10분일하고 5분씩 쉬면서 돌아가면서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길을 만들 때 사용할 둥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생긴 여러 가지 색의 돌을 강가에서 찾고 일하는 곳까지 옮기는 일이였다. 차가 성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직접 옮겨야만 했다.
식사는 매주 토요일 제비뽑기를 해 하루에 2명씩 배정되도록 해서 식사당번은 일을 가지 않고 캠프리더인 사라와 함께 식사와 청소, 장보기, 설거지를 했다. 아침에는 매일 빵과 시리얼을 먹어서 접시와 음식들을 꺼내두기만 하면 됐고 점심 저녁은 메뉴를 고민하고 준비했는데 사라의 특기가 파스타이고 재료도 많아 하루에 한번 꼴로 파스타를 먹었던 것 같다. 2주째부터는 다들 고국의 음식이 그리웠는지 식사당번이 되면 각국의 음식을 준비해 모두에게 선보였다. 나는 카레와 호박전, 매작과를 만들었는데 매작과가 정말 인기가 좋고 모두들 배우고 싶어해서 기분이 좋고 뿌듯했던 것 같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나 식재료는 마을의 마켓이나 시장을 이용했는데 적십자사와 연계하여 운영하는 체리티샵에서 파스타면과 요플레를 사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해 돈을 아낀 덕에 주말에는 카누도 타고 다리와 구 교황청으로 유명한 아비뇽여행도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음에 워크캠프는 2주면 충분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알아가고 그들의 문화와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게 된 후에는 평화롭고 기분좋은 휴가를 3주간 지낸다는 것에 행복했다. 마지막 날에는 CARADE가 완성된 것을 기념해 그동안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을 모셔 행사도 하고 다같이 저녁식사도 하면서 쇼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워크캠프에 와서 많이 늘어난 제기실력을 선보였다. 한국에서는 별로 못하는 실력이지만 박수와 환호성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야경도 볼 겸 성으로 올라가자고 하길래 핸드폰 후레쉬에 의존해 성을 올라갔다. 성에 올라가 교회 앞 잔디밭에 다같이 앉아 다들 말없이 마을을 바라보았다. 3주간 시간을 보낸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묵직해오면서 이 광경을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흙길에 드디어 우리가 길을 만들어냈다고 소리도 지르고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아슬르가 모두 누워보라기에 CARADE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하늘에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워낙에 공기가 좋은 시골이라 그런지 별이 너무 잘보여 북두칠성까지 한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시끄럽게 떠들던 우리들은 CARADE에 눕자 다들 말없이 20분간 누워있었다. 다들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아마 3주간 이 마을에서 지내던 추억들이 아닐까? 그리고 캠프의 마지막날 27일, 모두에게 나눠주려고 준비한 선물을 각자 텐트 옆에 두고 먼저 떠나는 친구들과 나오는데 모두들 일어나 배웅을 해줬다. 우리가 탄 버스가 마을을 떠나려하자 몇몇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는데 그 모습에 나도 찡해져 눈물이 났다.
사실 워크캠프는 일도 리더도 구성원도 복불복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중에 복을 골라 마음 따뜻하고 성실하고 매너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과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고 같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언젠가 st amb개ix에 다시 찾아가 내가 땀 흘려 완성한 CARADE도 보고 싶고 페이스북상에서가 아닌 실제로 그 친구들을 다시 꼭 만나고 싶다. 실제로 워크캠프가 끝난 뒤 오필리아와 터키 친구들과 파리여행을 함께했고 프라하에 여행을 갔을 때는 카트카가 휴가 중 하루를 할애하여 프라하에 잘 안 알려진 명소들을 구경시켜주었다. 이 친구들에게도 말했듯이 만약 그들이 한국에 오게 되면 구석구석 한국구경을 시켜주고 싶다. 사실 떠나기 전에는 워크캠프보다 유렵여행을 간다는 것이 더 의미가 컸지만 지금 와서는 여행보다는 워크캠프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도전하고 싶은 마음, 소중한 친구들, 추억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 번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