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환상과 야성이 공존하는 곳
Botanic Garden in Reykjavík (5:9)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참가에 결심하게 된 것은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에 제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환상때문이었습니다. 락 밴드 Sigur ros의 팬이기도 한 저는 현지에서 촬영된 그 그룹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본 후부터 아이슬란드에 가는 것을 오랜 꿈으로 간직해 왔습니다. 개최국에 대한 흥미 때문에 결정하게 된 아이슬란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연의 위압감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멋지고 야성적인 곳이었습니다. 레이캬비크 도시 자체는 무척 상업화되어 있었고, 관광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보면 매우 편리하고 다양하게, 어떻게 보면 너무 장사속처럼 활성화되어 있어서 실망하긴 했습니다만, 워크캠프 전후로 여행하며 둘러보았던 아이슬란드의 구석구석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여름에 여행했는데, 아이슬란드 현지인에 의하면 7월과 8월이 가장 방문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합니다. 겨울은 대신 무척 해가 짧고 사방이 컴컴한 암흑에 혹독한 추위로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아이슬란드의 설원에 환상을 가지고 있던 저였지만, ‘얼음의 나라’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서 만끽한 따사로운 햇살과 좋은 날씨는 그 아이러니 덕분인지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제가 참가했던 캠프 숙소 바로 앞에 있었던 레이캬비크 시립 수영장을 자주 이용했는데, 강렬한 햇살 덕분에 (아이슬란드에서 제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하늘이 굉장히 낮다는 것입니다. 위쪽 극지방과 가까워서인지 하늘이 낮았고 그것 때문인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햇빛도 강한 것 같았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머무른 3주동안 제 피부색은 극히 까맣게 변했습니다.) 피부가 온통 태닝되었습니다. 얼음의 나라에서 태닝이라니!
제가 참가한 캠프는 SEEDS라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것이었는데, 소규모의 단체로 저는 그 단체의 창립자인 OSCA를 직접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너무 솔직하게 쓰면 국제워크캠프 기구에서 검열을 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SEEDS라는 단체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우선 몇 안되는 봉사자들이 전혀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굉장히 적은 임금을 받고 많은 시간 동안 터무니 없는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것을 보았고, 제가 참가하는 숙소가 그러한 장기 봉사자들도 함께 머무르는 숙소였는데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나친 업무와 형편없는 대우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을 여러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돌아온 것은 없었지만 –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비쌌다는 정도? 일단 SEEDS의 활동 참가비는 무척 비쌌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보통인 줄 알았는데, 같이 참여했던 다른 봉사자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자신들도 이렇게 비싼 워크캠프는 처음 겪어 본다며, 러시아 친구는 자기가 예전에 참여했던 독일 워크캠프에서는 오히려 활동비가 지원되어 돈을 받아가며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활동 틈틈이 쉬는 시간에 떠나는 투어도 실제 경비보다 비싼 요금을 내고 이용해야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레이캬비크에서 가까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GOLDEN CIRCLE이라는 관광 코스가 있는데, 여기를 방문했을 때 저는 그냥 SEEDS가 가지고 있는 봉고차에 다른 참가자들과 탑승하여 명소를 둘러본 것이 다입니다. 즉 SEEDS가 이를 위해 사용한 실제 경비는 서너시간동안 움직인 주행 거리만큼의 기름값 뿐이며, 우리를 위해 차를 몰아 준,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SEEDS가 요구하면 아이슬란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쉬지 않고 14시간동안 운전해야 하는 드라이버는 차를 몬 댓가를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200유로가 넘는 활동비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에서 우리가 먹었던 음식은 언제나 아이슬란드의 가장 싼 슈퍼에서 가장 저렴한 싸구려 식재료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싸구려였던지 어떤 소세지는 그것만 먹으면 모두 배탈이 나곤 했지요. – 장기 봉사자들의 진심어린 불평과 OSCA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면서, 이러한 불만이 단체 운영에 안 좋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윤만 추구하는 SEEDS 운영 때문에 상처를 받은 장기 봉사자들이 중간에 참여를 그만두고 떠나는 일도 잦다고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적은 것은 모두 국제워크캠프기구와는 상관 없는, 아이슬란드의 SEEDS라는 단체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실 이 단체의 활동안내서를 읽었을 때는 무척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어디보다도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가진 아이슬란드에서 진심으로 열정을 가지고 봉사하는 좋은 단체인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비합리적이고 돈을 밝히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 실망이 컸기에 이렇게 길게 적게 되었습니다.
SEEDS라는 단체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마치고, 제가 참가했던 캠프는 레이캬비크 시에 있는 시립 공원인 BOTANICAL GARDEN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 송이라도 꽃을 심을 수 있길 기대했지만 결국 끝까지 꽃은 심지 않더군요. 저희가 참가하기 바로 앞 전 캠프에서 이미 꽃들을 다 심어 버려서, 저희는 2주 동안 잡초를 뽑고 죽은 풀을 갈퀴로 긁어내거나, 강한 바람에 – 여름에도 바람은 상당히 강합니다. 앞에 날씨가 좋았다고 썼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두 긴 팔 옷을 몇 겹씩 겹쳐입고 모자와 방풍이 되는 바지 등을 착용해야 합니다. 아이슬란드 현지인들은 반팔이나 민소매, 짧은 하의를 걸치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타고난 체질/적응 결과인 듯 싶고, 아주 날씨가 좋고 화창할 때에도 우리는 언제나 등산복 밑으로 옷을 몇 겹씩 껴입은 상태였습니다 – 꽃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바람을 막아주는 고리를 걸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유익한 일이었지만, 하루 7시간 매일같이 잡초만 뽑는 일은 사실 썩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갑자기 밭일을 하는 바람에 놀란 몸이 조금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졌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잡초 뽑기도 지루했지만 나중에는 나름 흥미를 가지고 즐겨가면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원 일 gardening이라는 것은 그런 잡일의 끊임없는 연속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격동적이고 고되고 대신 정말 보람찬 일을 하고 싶으신 분은 botanical garden 말고 seeds의 다른 프로그램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몇개월씩 머무르며 캠프의 리더 역할을 맡는 장기 봉사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멀리 떨어져 정말로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깡촌 벽지에서 벌어지는 워크캠프일 수록 더 재미있다고 합니다. 저는 도시에 머무르고 싶어서 레이캬비크를 골랐고, 평소 제 체력에 자신이 없었던 만큼 너무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기에 botanical garden을 골랐습니다. 즉 제가 원한 바에 맞는 캠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작업을 계속하면서 조금은 다른 캠프에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작업이 단조로웠을 뿐, 나머지 사항은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정원에서 일하는 정직원들은 모두 더할나위 없이 상냥하고 친절했으며, 정이 넘쳤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북한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인구가 30만 정도밖에 되지 않고 군대가 없는 이 나라에서 남북한의 대치 상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던 듯 합니다. 제가 남동생이 곧 군대에 가며 모든 남자들은 1년 10개월의 병역 의무를 진다고 설명해주면 모두들 깜짝 놀라며 충격과 흥미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국 이야기를 많이 해 주면서 같이 작업하다 친해진 아주머니 nana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제 어머니 뻘이셨는데도 굉장히 소녀 같고 다정하신 분이셨습니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이미 6개월이나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nana 아주머니가 마치 엄마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마지막 업무를 마치고 헤어지는 날 포옹을 한 다음 한국에서 엽서를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아직도 보내지 못했네요. 같은 캠프에 참여하시는 분이 있다면, 나나 아주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주세요. 
우리에게는 그토록이나 멀고 먼 이름 아이슬란드에서 2주동안 참여했던 seeds의 워크캠프는 뭐랄까, 솔직히 어마어마하게 감동적이거나 보람차진 않았지만, 그대로도 충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인생에서 아마 두번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으로 간직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멀다는 이유로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두려워 말고 떠나시라고 얘기드리고 싶네요. 레이캬비크에서 먼 곳으로 떠날 수록 정말 어마어마한, 상상도 못할 정도의 자연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저도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떠나고 싶네요. 여전히 저에게 아이슬란드는 환상과 매혹의 나라입니다. 여러분도 분명히 실망하지 않으실거에요.
제가 참가한 캠프는 SEEDS라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것이었는데, 소규모의 단체로 저는 그 단체의 창립자인 OSCA를 직접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너무 솔직하게 쓰면 국제워크캠프 기구에서 검열을 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SEEDS라는 단체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우선 몇 안되는 봉사자들이 전혀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굉장히 적은 임금을 받고 많은 시간 동안 터무니 없는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것을 보았고, 제가 참가하는 숙소가 그러한 장기 봉사자들도 함께 머무르는 숙소였는데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나친 업무와 형편없는 대우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을 여러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돌아온 것은 없었지만 –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비쌌다는 정도? 일단 SEEDS의 활동 참가비는 무척 비쌌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보통인 줄 알았는데, 같이 참여했던 다른 봉사자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자신들도 이렇게 비싼 워크캠프는 처음 겪어 본다며, 러시아 친구는 자기가 예전에 참여했던 독일 워크캠프에서는 오히려 활동비가 지원되어 돈을 받아가며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활동 틈틈이 쉬는 시간에 떠나는 투어도 실제 경비보다 비싼 요금을 내고 이용해야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레이캬비크에서 가까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GOLDEN CIRCLE이라는 관광 코스가 있는데, 여기를 방문했을 때 저는 그냥 SEEDS가 가지고 있는 봉고차에 다른 참가자들과 탑승하여 명소를 둘러본 것이 다입니다. 즉 SEEDS가 이를 위해 사용한 실제 경비는 서너시간동안 움직인 주행 거리만큼의 기름값 뿐이며, 우리를 위해 차를 몰아 준,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SEEDS가 요구하면 아이슬란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쉬지 않고 14시간동안 운전해야 하는 드라이버는 차를 몬 댓가를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200유로가 넘는 활동비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에서 우리가 먹었던 음식은 언제나 아이슬란드의 가장 싼 슈퍼에서 가장 저렴한 싸구려 식재료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싸구려였던지 어떤 소세지는 그것만 먹으면 모두 배탈이 나곤 했지요. – 장기 봉사자들의 진심어린 불평과 OSCA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면서, 이러한 불만이 단체 운영에 안 좋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윤만 추구하는 SEEDS 운영 때문에 상처를 받은 장기 봉사자들이 중간에 참여를 그만두고 떠나는 일도 잦다고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적은 것은 모두 국제워크캠프기구와는 상관 없는, 아이슬란드의 SEEDS라는 단체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실 이 단체의 활동안내서를 읽었을 때는 무척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어디보다도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가진 아이슬란드에서 진심으로 열정을 가지고 봉사하는 좋은 단체인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비합리적이고 돈을 밝히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 실망이 컸기에 이렇게 길게 적게 되었습니다.
SEEDS라는 단체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마치고, 제가 참가했던 캠프는 레이캬비크 시에 있는 시립 공원인 BOTANICAL GARDEN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 송이라도 꽃을 심을 수 있길 기대했지만 결국 끝까지 꽃은 심지 않더군요. 저희가 참가하기 바로 앞 전 캠프에서 이미 꽃들을 다 심어 버려서, 저희는 2주 동안 잡초를 뽑고 죽은 풀을 갈퀴로 긁어내거나, 강한 바람에 – 여름에도 바람은 상당히 강합니다. 앞에 날씨가 좋았다고 썼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두 긴 팔 옷을 몇 겹씩 겹쳐입고 모자와 방풍이 되는 바지 등을 착용해야 합니다. 아이슬란드 현지인들은 반팔이나 민소매, 짧은 하의를 걸치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타고난 체질/적응 결과인 듯 싶고, 아주 날씨가 좋고 화창할 때에도 우리는 언제나 등산복 밑으로 옷을 몇 겹씩 껴입은 상태였습니다 – 꽃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바람을 막아주는 고리를 걸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유익한 일이었지만, 하루 7시간 매일같이 잡초만 뽑는 일은 사실 썩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갑자기 밭일을 하는 바람에 놀란 몸이 조금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졌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잡초 뽑기도 지루했지만 나중에는 나름 흥미를 가지고 즐겨가면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원 일 gardening이라는 것은 그런 잡일의 끊임없는 연속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격동적이고 고되고 대신 정말 보람찬 일을 하고 싶으신 분은 botanical garden 말고 seeds의 다른 프로그램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몇개월씩 머무르며 캠프의 리더 역할을 맡는 장기 봉사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멀리 떨어져 정말로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깡촌 벽지에서 벌어지는 워크캠프일 수록 더 재미있다고 합니다. 저는 도시에 머무르고 싶어서 레이캬비크를 골랐고, 평소 제 체력에 자신이 없었던 만큼 너무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기에 botanical garden을 골랐습니다. 즉 제가 원한 바에 맞는 캠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작업을 계속하면서 조금은 다른 캠프에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작업이 단조로웠을 뿐, 나머지 사항은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정원에서 일하는 정직원들은 모두 더할나위 없이 상냥하고 친절했으며, 정이 넘쳤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북한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인구가 30만 정도밖에 되지 않고 군대가 없는 이 나라에서 남북한의 대치 상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던 듯 합니다. 제가 남동생이 곧 군대에 가며 모든 남자들은 1년 10개월의 병역 의무를 진다고 설명해주면 모두들 깜짝 놀라며 충격과 흥미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국 이야기를 많이 해 주면서 같이 작업하다 친해진 아주머니 nana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제 어머니 뻘이셨는데도 굉장히 소녀 같고 다정하신 분이셨습니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이미 6개월이나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nana 아주머니가 마치 엄마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마지막 업무를 마치고 헤어지는 날 포옹을 한 다음 한국에서 엽서를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아직도 보내지 못했네요. 같은 캠프에 참여하시는 분이 있다면, 나나 아주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주세요. 
우리에게는 그토록이나 멀고 먼 이름 아이슬란드에서 2주동안 참여했던 seeds의 워크캠프는 뭐랄까, 솔직히 어마어마하게 감동적이거나 보람차진 않았지만, 그대로도 충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인생에서 아마 두번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으로 간직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멀다는 이유로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두려워 말고 떠나시라고 얘기드리고 싶네요. 레이캬비크에서 먼 곳으로 떠날 수록 정말 어마어마한, 상상도 못할 정도의 자연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저도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떠나고 싶네요. 여전히 저에게 아이슬란드는 환상과 매혹의 나라입니다. 여러분도 분명히 실망하지 않으실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