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꿈결 같았던 2주
Medieval Iceland Festiva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아이슬란드’라는 이름만 들어도 신비로운 나라, 대자연과 화산, 바이킹의 나라! 겨울에는 오로라와 아름다운 은하수를 느낄 수 있고 여름에는 백야 현상으로 해가지지 않는 나라.
다른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도 많았지만 워크캠프의 기회가 아니면 아이슬란드는 정말 평생에 한번 가기 힘들 것 같았고, 바이킹 지역 축제를 준비하는 봉사활동도 정말 매력적으로 보여 지원했고. 아이슬란드로의 합격 통지서를 받고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교통편은 사실 조금 힘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슬란드로 바로 가는 항공이 없기 때문에 런던을 들러서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에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해서 친구가 많았기 때문에 워크캠프 전에 2주 동안 런던에 머물며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휴식을 즐기고 아이슬란드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 런던에서만난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 미지의 대륙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밤 12시에 도착하는 비행편이라서 잔뜩 걱정했지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매우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우 친절하고 안전한 도시, 아름다운 자연, 자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처럼 밝은 신기한 날씨. 런던과 달리 구름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아 아이슬란드구나’ 하는 생각에 설레었다.
인포싯에 나와 있던 정보를 따라 SEEDS 건물을 찾아갔다. 열쇠를 찾으며 허둥거리는데 여행객차림의 스페인 남자아이들 무리가 ‘Hey, Are you going to Seeds??'라고 물으며 먼저 말을 건네 왔다. 밝은 분위기의 Seeds 호스텔 속에는 유럽 각지에서 다양한 성격의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있었다. 생각과 달리 아시아인이 한명도 없어서 놀랬다. 주로 유럽 국가 아이들이 유럽을 떠나 모험적인 곳으로 떠나고 싶어서 아이슬란드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들은 저 멀리 15시간 걸리는 한국에서 날아온 나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매우 수다스러운 사회자 역할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페인아이의 주도아래 돌아가면서 취미, 혈액형, 꿈은 무엇인지까지 말하며 아이슬란드의 해가지지 않았던 첫날밤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 medieval festival work camp일원은 차로 6시간 걸리는 아이슬란드의 북쪽아쿠레이리로 떠났다. 매우 성격 좋은 운전기사 덕분에 6시간 내내 지루하지 않았고 중간 중간 아이슬란드의 명물인 화산 구경도 하며 캠프장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머문곳은 아쿠레이리의 작은 학교였다. 학교시설중 지하의 미술교실에 매트리스 6개를 가져다 놓고 공동 침실로 쓰고, 학교의 급식소를 주방으로 쓰게 되었다.
워크캠프 멤버는 스페인 여자아이 크리스티나,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던 이탈리아 대학생 페드리코, 수줍음이 많았던 프랑스 남자아이 올리비아, 벨기에 여자 킴, 벨라루시아 대학생 올리아 그리고 나 6명이였다.
처음엔 서로 서먹서먹했지만. 도착하자마자 학교의 수영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를 시작하자마자 급격히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따듯한 아이슬란드 수영장에서 화산을 바라보며 물위를 둥둥 떠다니니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우리가 할 일은 아이슬란드 바이킹 지역축제를 준비하는 것 이였다. 손으로 직접 중세 집을 만들고 나무로 기둥을 박고 헛간을 만들고, 짚으로 천막을 치고... 정말 중세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야 했다. 처음엔 우와 내손으로 직접 집을 만들고 밧줄로 묶는 게 재미있었지만 나중에는 체력적으로 조금 지쳤다. 원래 8명으로 계획되었던 캠프 멤버가 인원 미달로 6명이서 진행하였고 꽤 무거운 나무도 많이 날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로 싫은 일을 미루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하며 협동심 있게 차근차근 완성했기 때문에 더욱 뿌듯했던 것 같다. 특히 키가 거의 2미터 가까이 되는 이탈리안 페드리코가 기둥을 지지하고 밧줄을 묶을 때 참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나는 체구가 작고 키도 작아서 그런지 캠프 멤버들이 괜찮냐고 물어보고 신경써주어서 세심한 배려에 정말 감동받았다.
막연히 서양 아이들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점심은 간단히 샌드위치로 때우고 저녁은 각자 돌아가면서 식사 당번을 했는데 많은 아이들이 유일한 아시안인 나의 요리를 기대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쌀과 한국 반찬을 구할 여건이 어려워서 한국에서 사갔던 호떡믹스로 호떡을 구워주고 Korean hot cake 이라고 했더니 호떡 고명을 찍어서 먹으며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불고기 소스와 닭불고기 소스도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
돌아가면서 각국의 진짜 가정식을 체험하고 나라에 따른 음식 먹는 방법의 차이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캠프 중반쯤 접어들었을 때 바이킹 축제가 마침내 시작되고, 우리도 바이킹 현지인 의상을 받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중세옷과 신발을 신고 바이킹축제를 즐기고 참여할 수 있었다.
중세시대에 가죽 만드는 것도 지켜보고 활쏘기도 해보고, 아이슬란드 꼬마들과 전통 축구 놀이도 했다.
또 가장 놀라웠던 것 상어 고기였다. 상어고기와 보드카를 함께 파는데 술은 안 먹고 상어고기만 맛봤다가 고약한 비린내에 고생하기도 하고, 중세 사람들이 먹던 나무뿌리도 먹어보았다.
정말 오감으로 살아있는 아이슬란드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했다.
축제를 마치고 캠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다같이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친구가 운전을 하고 당일치기로 아이슬란드 북부의 유명화산과 폭포, 블루라군 온천을 즐기는 코스로 잡았다. 정말 아이슬란드의 엄청난 자연 풍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전에 스위스에 갔을 때 ‘정말 자연풍경으로 이 이상으로 감명 받긴 힘들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아이슬란드는 부글부글 끓고있고 꿈틀거리며 용솟음치는, 살아있는 생명의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연풍경을 혼자가 아닌 2주동안 동거동락한 외국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워크캠프는 내 20대 대학생활에 한 획을 더 그은 도전과 체험의 활동이었다. 외국친구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진한 정을 나누고, 함께 봉사하고, 아이슬란드라는 아름다운 곳을 느끼고, 여행하고.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하고 따스해지는 소중한 기억으로 평생 남을 것 이다.
다른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도 많았지만 워크캠프의 기회가 아니면 아이슬란드는 정말 평생에 한번 가기 힘들 것 같았고, 바이킹 지역 축제를 준비하는 봉사활동도 정말 매력적으로 보여 지원했고. 아이슬란드로의 합격 통지서를 받고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교통편은 사실 조금 힘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슬란드로 바로 가는 항공이 없기 때문에 런던을 들러서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에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해서 친구가 많았기 때문에 워크캠프 전에 2주 동안 런던에 머물며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휴식을 즐기고 아이슬란드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 런던에서만난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 미지의 대륙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밤 12시에 도착하는 비행편이라서 잔뜩 걱정했지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매우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우 친절하고 안전한 도시, 아름다운 자연, 자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처럼 밝은 신기한 날씨. 런던과 달리 구름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아 아이슬란드구나’ 하는 생각에 설레었다.
인포싯에 나와 있던 정보를 따라 SEEDS 건물을 찾아갔다. 열쇠를 찾으며 허둥거리는데 여행객차림의 스페인 남자아이들 무리가 ‘Hey, Are you going to Seeds??'라고 물으며 먼저 말을 건네 왔다. 밝은 분위기의 Seeds 호스텔 속에는 유럽 각지에서 다양한 성격의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있었다. 생각과 달리 아시아인이 한명도 없어서 놀랬다. 주로 유럽 국가 아이들이 유럽을 떠나 모험적인 곳으로 떠나고 싶어서 아이슬란드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들은 저 멀리 15시간 걸리는 한국에서 날아온 나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매우 수다스러운 사회자 역할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페인아이의 주도아래 돌아가면서 취미, 혈액형, 꿈은 무엇인지까지 말하며 아이슬란드의 해가지지 않았던 첫날밤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 medieval festival work camp일원은 차로 6시간 걸리는 아이슬란드의 북쪽아쿠레이리로 떠났다. 매우 성격 좋은 운전기사 덕분에 6시간 내내 지루하지 않았고 중간 중간 아이슬란드의 명물인 화산 구경도 하며 캠프장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머문곳은 아쿠레이리의 작은 학교였다. 학교시설중 지하의 미술교실에 매트리스 6개를 가져다 놓고 공동 침실로 쓰고, 학교의 급식소를 주방으로 쓰게 되었다.
워크캠프 멤버는 스페인 여자아이 크리스티나,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던 이탈리아 대학생 페드리코, 수줍음이 많았던 프랑스 남자아이 올리비아, 벨기에 여자 킴, 벨라루시아 대학생 올리아 그리고 나 6명이였다.
처음엔 서로 서먹서먹했지만. 도착하자마자 학교의 수영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를 시작하자마자 급격히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따듯한 아이슬란드 수영장에서 화산을 바라보며 물위를 둥둥 떠다니니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우리가 할 일은 아이슬란드 바이킹 지역축제를 준비하는 것 이였다. 손으로 직접 중세 집을 만들고 나무로 기둥을 박고 헛간을 만들고, 짚으로 천막을 치고... 정말 중세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야 했다. 처음엔 우와 내손으로 직접 집을 만들고 밧줄로 묶는 게 재미있었지만 나중에는 체력적으로 조금 지쳤다. 원래 8명으로 계획되었던 캠프 멤버가 인원 미달로 6명이서 진행하였고 꽤 무거운 나무도 많이 날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로 싫은 일을 미루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하며 협동심 있게 차근차근 완성했기 때문에 더욱 뿌듯했던 것 같다. 특히 키가 거의 2미터 가까이 되는 이탈리안 페드리코가 기둥을 지지하고 밧줄을 묶을 때 참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나는 체구가 작고 키도 작아서 그런지 캠프 멤버들이 괜찮냐고 물어보고 신경써주어서 세심한 배려에 정말 감동받았다.
막연히 서양 아이들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점심은 간단히 샌드위치로 때우고 저녁은 각자 돌아가면서 식사 당번을 했는데 많은 아이들이 유일한 아시안인 나의 요리를 기대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쌀과 한국 반찬을 구할 여건이 어려워서 한국에서 사갔던 호떡믹스로 호떡을 구워주고 Korean hot cake 이라고 했더니 호떡 고명을 찍어서 먹으며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불고기 소스와 닭불고기 소스도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
돌아가면서 각국의 진짜 가정식을 체험하고 나라에 따른 음식 먹는 방법의 차이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캠프 중반쯤 접어들었을 때 바이킹 축제가 마침내 시작되고, 우리도 바이킹 현지인 의상을 받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중세옷과 신발을 신고 바이킹축제를 즐기고 참여할 수 있었다.
중세시대에 가죽 만드는 것도 지켜보고 활쏘기도 해보고, 아이슬란드 꼬마들과 전통 축구 놀이도 했다.
또 가장 놀라웠던 것 상어 고기였다. 상어고기와 보드카를 함께 파는데 술은 안 먹고 상어고기만 맛봤다가 고약한 비린내에 고생하기도 하고, 중세 사람들이 먹던 나무뿌리도 먹어보았다.
정말 오감으로 살아있는 아이슬란드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했다.
축제를 마치고 캠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다같이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친구가 운전을 하고 당일치기로 아이슬란드 북부의 유명화산과 폭포, 블루라군 온천을 즐기는 코스로 잡았다. 정말 아이슬란드의 엄청난 자연 풍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전에 스위스에 갔을 때 ‘정말 자연풍경으로 이 이상으로 감명 받긴 힘들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아이슬란드는 부글부글 끓고있고 꿈틀거리며 용솟음치는, 살아있는 생명의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연풍경을 혼자가 아닌 2주동안 동거동락한 외국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워크캠프는 내 20대 대학생활에 한 획을 더 그은 도전과 체험의 활동이었다. 외국친구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진한 정을 나누고, 함께 봉사하고, 아이슬란드라는 아름다운 곳을 느끼고, 여행하고.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하고 따스해지는 소중한 기억으로 평생 남을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