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네시아, 낯선 밤과 설렘의 시작

작성자 이다비
인도네시아 DJ-55 · CONS/KIDS 2012. 01 인도네시아 Sulursari

KOPENG PROJEC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인도네시안으로 2주 동안 살기

나에게 첫 해외경험을 가져다 준 국제 워크캠프. 무슨 일이던지 처음은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크고 설레기 마련이다. 나의 워크캠프 또한 그랬다. 이곳 저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많지만 내가 경험해본 일이 아니었기에 항공권 구입부터 짐을 꾸리는 것까지 나 혼자의 몫이었다. 그렇게 한달 간 생각하지도 않았었던 인도네시아에 대해 여러 책을 읽으며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 준비 시작에 우연히 네이버 워크캠프 카페를 통해 같은 캠프에 참가하게 된 친구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비행기를 예약했고 서로 챙겨주며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그 뒤 우리는 김포공항에서 만났다. 아침 10시에 출발하여 새벽 1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또 다른 캠퍼 한 명을 만나게 되어 셋이 되었다. 반가움도 잠시, 낯선 사람들 속에서 헤매다 결국 예약한 숙소에 가지 못하고 첫날 밤을 공항에서 지새웠다. 다음날 우리는 미팅포인트에 가기 위해 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스마랑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Dejavato 오피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모든 참가자들을 만났고 함께 캠프 장소로 이동하였다.
밝았던 하늘이 어두워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밤이 되어서야 그곳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물 집의 아저씨, 아줌마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 때 나의 인사말은 ‘저는 외동딸인데 갑자기 가족이 많아져서 너무 좋고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였다. 처음 도착하여 집을 구경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깨끗해서 우리들은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벽에 붙어 기어 다니는 수많은 도마뱀과 휴지걸이가 존재하지 않는 화장실을 보고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를 체험하는 것도 내가 목표한 것이었기에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그 다음주부터 우리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 우리가 가르치기로 했던 과목은 영어, 수학, 과학이었으나 영어와 Art로 과목을 변경하고 두 팀으로 나누어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하였다. 처음 가서 소개하던 날 아이들은 우리를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의 일정은 아침 9~12시 까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2~5시 까지는 학교에 자전거 주차장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더듬더듬 거리며 설명을 하기 일쑤였고 영어 잘하는 캠퍼에게 의지하여 수업을 했는데도 아이들은 항상 우리들을 반겨주었고 너무나 잘 따라주었다.
거의 시작하는 날부터 매일 한 명씩 번갈아가며 아파서 다들 힘들었고 하루 세끼 밥을 해먹기 위해 매일 아침 장을 봐야 했고, 매일 밤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회의하며 재료를 만들고, 준비된 일정을 따라가기 바빴고, 동네 사람들의 관심에 자유시간을 없애며 이 집, 저 집 다니느라 힘들었고, 낮이나 밤이나 모기와 더위에 힘들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배려와 이해 속에서 무사히 캠프를 마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이별하던 날,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작은 공연을 하고 악수를 나누며 작별하였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우리는 그 아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후회, 아쉬움, 슬픔, 기쁨이 뒤섞인 그런 눈물이었다. 집에서는 가족들과의 작별을 위해 우리나라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었다. 인도네시아 재료로 한국 음식을 하려니 영 맛이 좋지 않았지만 다들 맛있게 먹어주셨다.
이제 우리집이 되어버린 그곳의 아저씨, 아주머니는 외동딸인 나의 엄마, 아빠만큼이나 우리를 챙겨주셨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셔서 준비해주신 차와 커피, 간식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캠프가 끝날 때쯤 우리는 알지 못했던 인도네시아어를 인사는 잘할 수 있을 만큼 배웠고, 오토바이도 곧 잘 얻어 타며, 먹어보지도 않았던 나시고랭(볶음밥)과 사떼아얌(닭꼬치)을 사랑하게 되었고, 무서워했던 도마뱀을 만질 수도 있고, 길에 돌아다니는 닭들을 쫓기도 하며, 절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던 화장실도 인도네시안 만큼 잘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자전거 주차장을 잘 이용하는지,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꼭 다시 가고 싶다. 나의 첫 워크캠프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