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베를린, 꿈꿔왔던 독일에서의 3주
DO YOUR PART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먼저 다녀온 친구들의 강력추천으로 관심을 갖게 된 워크캠프! 어렸을 때부터 대학생이 되면 꼭 유럽 배낭여행을 가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워크캠프는 이런 나에게 유럽 여행을 떠나는 김에 외국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있고, 그 나라의 문화도 직접 체험 해 볼 수 있으며, 봉사도 할 수 있는, 완전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것 이상의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내 전공이 독어독문인데 워크캠프의 다양한 주제 중 언어 관련 주제도 있어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Language와 관련되고, 독일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4년 내내 전공 시간에 말로만 들었던 독일의 문화, 문학, 언어… 그 모든 것을 독일에서 직접 3주간 생활하면서 경험해 볼 수 있다니! 설레는 한편으로 복수전공 때문에 독일어를 손 놓은지 꽤 오래되어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었다.
떠나기 전, 워크캠프를 떠나는 수많은 워크캠퍼들처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워크캠프에 참가했고 끝날 때쯤엔 또 다시 다른 수많은 워크캠퍼처럼 돌아오기 싫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와야만 했다. 정말 직접 경험해보면 느낄 수밖에 없는 후회 없는 선택이라는 확신~! “저도 당당히 느끼고 왔어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워캠 시작 전에 가족과 22일간 유럽여행을 했었는데, 로마에서 엄마와 헤어져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는 장기간 여행에 쌓인 피로에 로마의 끔찍한 더위에 지칠 때로 지친터라, 워크캠프고 뭐고 엄마랑 같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는 탔고, 베를린에 내렸고, 나는 워크캠프지를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워캠 친구들을 만나 첫 대면에서 걔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영어가 완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수록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대화 소재의 고갈이 나를 힘들게 했다. 팀원 중에 제발 한국인 한 명만 있기를 기도했다. 나의 영어구사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인 하나만 있으면 그래도 마음 붙이며 어떻게든 잘 묻어갈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다행히 간절히 원하던 한국인 한 명이 우리 캠프에 존재했다! 그래서 더욱 금방 그곳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친구 덕분에 처음 3-4일 정도 겪는 어색함을 쉽게 버텨낼 수 있었다.
외국 캠퍼들은 주로 20대 초반, 10대 후반 애들이 많이 온다고 다녀온 친구들에게 들어서 조금 걱정이 앞섰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물론 외국 애들이 동양인을 어리게 보는 것도 있고, 실제로 조금 어려보이게 생기긴 했지만 그건 생긴 것일 뿐 나이 차이 때문에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역시나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었다. 그래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남, 여 각각 1명씩 있었다. 2살 정도 많은 의사 출신의 세르비야 여자와 1살 많은 멕시코 남자! 그리고 우리나라는 존댓말이 있고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이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영어에는 존댓말과 호칭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영어로 이야기 하다보니 자연히 이름을 부르고 존칭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처음부터 눈여겨보던 찜콩해 놓은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저 애랑 친하게 지내야지! 했던... 결국 나는 그녀와 베스트 프렌드가 되는데 성공했다. 마리아는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표면상의 친구가 아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진짜 친한 외국 친구를 워크캠프를 통해 만들 수 있었다. 워크캠프가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이런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었을까? 외국인 앞에서만 서면 부끄러운 여자가 되는 내가, 조용한 사람이 되는 내가, 외국인 친구를 사귀다니!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사실 이런 성격 때문에 미국에 6개월간 지낸 적이 있는데,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물론 있는 동안 같이 어울린 인터내셔널 친구들은 있었지만 지금은 연락하지는 않는 표면상의 친구였다. 그래서 워크캠프에서 진정한 친구 하나를 만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정말 벅찬 감동이다. 그리고 정말 이 친구랑 헤어지고 한국으로 와서 후유증이 컸다. 그 친구와 다음에 또 다른 워크캠프에 꼭 같이 참가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워크캠프를 지금부터 매일 상상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중이다.
우리가 한 일은 우리나라 현충원 같은 개념의 묘지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일 자체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몸 쓰는 일이었다. 워낙 운동부족 상태라 열심히 일하고 난 다음에는 조금 피곤 하긴 했지만 자유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일을 하지 않았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일을 했다. 1주일은 랭귀지 스쿨에서 독일어를 배웠고 2주일은 봉사활동을 하는 커리큘럼이었다. 복수전공을 하느라 잊혀져 가는 독일어를 오랜만에 배우니 신나기도 하고,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 재미있었다. 일과시간이 끝나고 난 이후의 시간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에 이곳 저곳을 외국인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겼다. 독일은 4명이 모여서 철도를 이용하면 주말에 엄청 싼 표 값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일치기로 드레스덴과 포츠담을 다녀왔다. 조금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우리들만의 에피소드가 가득한 여행이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소감문은 이쯤에서 정리해야겠다. 나에게 10살 어린 동생이 있는데 앞으로 5년 후, 그 애가 대학생이 되면 첫 번째 여름방학에 꼭 워크캠프를 떠나보내야지!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워크캠프! 정말 정말 강력추천 한다!!
떠나기 전, 워크캠프를 떠나는 수많은 워크캠퍼들처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워크캠프에 참가했고 끝날 때쯤엔 또 다시 다른 수많은 워크캠퍼처럼 돌아오기 싫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와야만 했다. 정말 직접 경험해보면 느낄 수밖에 없는 후회 없는 선택이라는 확신~! “저도 당당히 느끼고 왔어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워캠 시작 전에 가족과 22일간 유럽여행을 했었는데, 로마에서 엄마와 헤어져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는 장기간 여행에 쌓인 피로에 로마의 끔찍한 더위에 지칠 때로 지친터라, 워크캠프고 뭐고 엄마랑 같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는 탔고, 베를린에 내렸고, 나는 워크캠프지를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워캠 친구들을 만나 첫 대면에서 걔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영어가 완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수록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대화 소재의 고갈이 나를 힘들게 했다. 팀원 중에 제발 한국인 한 명만 있기를 기도했다. 나의 영어구사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인 하나만 있으면 그래도 마음 붙이며 어떻게든 잘 묻어갈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다행히 간절히 원하던 한국인 한 명이 우리 캠프에 존재했다! 그래서 더욱 금방 그곳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친구 덕분에 처음 3-4일 정도 겪는 어색함을 쉽게 버텨낼 수 있었다.
외국 캠퍼들은 주로 20대 초반, 10대 후반 애들이 많이 온다고 다녀온 친구들에게 들어서 조금 걱정이 앞섰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물론 외국 애들이 동양인을 어리게 보는 것도 있고, 실제로 조금 어려보이게 생기긴 했지만 그건 생긴 것일 뿐 나이 차이 때문에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역시나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었다. 그래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남, 여 각각 1명씩 있었다. 2살 정도 많은 의사 출신의 세르비야 여자와 1살 많은 멕시코 남자! 그리고 우리나라는 존댓말이 있고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이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영어에는 존댓말과 호칭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영어로 이야기 하다보니 자연히 이름을 부르고 존칭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처음부터 눈여겨보던 찜콩해 놓은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저 애랑 친하게 지내야지! 했던... 결국 나는 그녀와 베스트 프렌드가 되는데 성공했다. 마리아는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표면상의 친구가 아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진짜 친한 외국 친구를 워크캠프를 통해 만들 수 있었다. 워크캠프가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이런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었을까? 외국인 앞에서만 서면 부끄러운 여자가 되는 내가, 조용한 사람이 되는 내가, 외국인 친구를 사귀다니!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사실 이런 성격 때문에 미국에 6개월간 지낸 적이 있는데,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물론 있는 동안 같이 어울린 인터내셔널 친구들은 있었지만 지금은 연락하지는 않는 표면상의 친구였다. 그래서 워크캠프에서 진정한 친구 하나를 만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정말 벅찬 감동이다. 그리고 정말 이 친구랑 헤어지고 한국으로 와서 후유증이 컸다. 그 친구와 다음에 또 다른 워크캠프에 꼭 같이 참가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워크캠프를 지금부터 매일 상상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중이다.
우리가 한 일은 우리나라 현충원 같은 개념의 묘지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일 자체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몸 쓰는 일이었다. 워낙 운동부족 상태라 열심히 일하고 난 다음에는 조금 피곤 하긴 했지만 자유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일을 하지 않았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일을 했다. 1주일은 랭귀지 스쿨에서 독일어를 배웠고 2주일은 봉사활동을 하는 커리큘럼이었다. 복수전공을 하느라 잊혀져 가는 독일어를 오랜만에 배우니 신나기도 하고,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 재미있었다. 일과시간이 끝나고 난 이후의 시간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에 이곳 저곳을 외국인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겼다. 독일은 4명이 모여서 철도를 이용하면 주말에 엄청 싼 표 값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일치기로 드레스덴과 포츠담을 다녀왔다. 조금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우리들만의 에피소드가 가득한 여행이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소감문은 이쯤에서 정리해야겠다. 나에게 10살 어린 동생이 있는데 앞으로 5년 후, 그 애가 대학생이 되면 첫 번째 여름방학에 꼭 워크캠프를 떠나보내야지!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워크캠프! 정말 정말 강력추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