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홀로 떠난 독일, 잊지 못할 3주

작성자 조예진
독일 IJGD 2119 · TRI-NATIONAL 2012. 07 - 2012. 08 Heilgengrabe

GIVE MEDIEVAL WALLS A NEW LIF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가기 위해 신청을 하고, 정확한 참가지가 결정되었을 때의 설렘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처음에 독일이 아닌 이탈리아를 신청했었지만 탈락이 되어 참가지 결정이 되기 전까지의 그 불안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참가지가 결정된 후 떠나기 전날까지 나는 워크캠프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얻어서 차질없이 준비해 나갔다. 사전 워크캠프에 참여한 것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계기였다.
보호자나 친구와 동반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타국에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겪게 될 것이다.
독일로 출국을 해서 나는 처음에 친구를 만났다. 운이 좋게 친구가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워크캠프 시작 전에는 친구와 함께 지내며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친구와 지내면서도 워크캠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항상 걱정을 많이 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면 별일 없을꺼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혼자서 캠프지까지 찾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이 존재했다. 아니나 다를까 캠프지를 가는 도중에 마지막 한정거장을 남겨두고 기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다왔다는 안도감에 마음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한정거장을 지나쳐 내려 많이 당황했지만 길을 따라 다시 되돌아가면 길이 나올꺼라고 차분하게 생각하며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캠프지까지 걸어가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고생을 했지만 결국엔 잘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인지 캠프지에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을 했고, 독일인 리더 2명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이기 때문에 너무 어색한 나머지 나는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숙소를 소개시켜줬는데 숙소는 크고 깨끗해서 너무 좋았다. 워캠에 가면 좋은 숙소에 머무르는 것은 기대하지 말라고 해서 정말 기대를 하고 오지 않았는데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그 뒤로 캠프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캠프는 꽤나 특이한 캠프였다. 독일, 프랑스, 한국 이렇게 3개국에서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캠프였다. 그래서 리더2명과 독일인1명 한국인4명 프랑스인1명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들이 청소년이었다. 자신의 나이를 소개하는데 16,17살이라고 소개해 처음에는 너무 깜짝 놀랐다. 아직은 나이가 어린 청소년들이지만 너무나 의젓하고 독립적이었다. 같은 또래의 우리나라 청소년들과는 거리가 멀어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이런 기회를 많이 맞이하여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이 굉장히 어른스러워 동생이라기보다는 또래 친구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사실 처음에 워크캠프에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또래의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서 처음엔 참가자들이 또래 친구가 아닌 동생이라 실망을 많이 했었다. 내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캠프에 참여하는 동안 오히려 생각이나 고민을 하지 않았었다. 일을 하면서나 혹은 밤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눠왔지만 한국에서 매일 하던 취직 걱정, 미래 걱정은 한번도 한적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항상 차고 있던 무거운 족쇄에서 풀려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단 3주 동안 이었지만 그런 고민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게 내 심신에 이렇게 자유로운 영향을 줄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과 생활하며 배운 것은 정말로 많았다. 평소에 나는 독립적인 성격이 아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독립적이다 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용돈도 받고 있고, 부모님께 도움을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캠프에 참여한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정말 의존적인 길을 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으며,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이 아이들은 벌써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독립을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짜여져 있었고, 그 순간을 준비된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서양의 청소년들이 독립적이라는 것은 들어왔던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경험했을 때의 나의 마음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고 부끄러운 내 자신을 숨길 수도 없었다.
우리 캠프는 일이 굉장히 힘든 캠프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막노동에 수준에 가까운 일들을 했는데 이 힘든 일을 하면서도 거의 불평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아마 그들의 나이었다면 난 아마 하루도 안되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것 같다. 오히려 힘들어서 지쳐있는 나를 보며 위로해 주고, 나를 도와주겠다며 솔선수범하는 이들에 모습에 나는 항상 감탄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굉장히 힘든 일을 했는데 교회로 이루어져 있는 작은 마을 같은 공간에서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일은 정말로 고되고 힘들었다. 절대 기계를 쓰지 않기 때문에 뭐든지 우리의 손과 힘이 필요했었다. 3주가 지났을 때에는 팔에 근육이 단단하게 생길 정도였다. 삽질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는 삽질을 쉽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한국인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막노동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농담을 많이 했다.
일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의사표현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원래 성향이 모든 것을 다 말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선에서는 넘어가는 것이 한국인의 성향인데 외국 사람들 성향은 절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의사표현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요구한다.
사전 워크캠프에서도 소심하게 굴지 말고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라고 강조하셨는데 그때 당시에는 스쳐지나가는 말로 들었던 이 말이 나중에는 완벽한 의미로 다가왔다. 일이 너무 힘들었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냥 참고 묵묵히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였다. 이 일은 너무 힘드니 다른 사람과 바꿔달라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고 그래서 의견을 수용 받았다.
결국 한국인들도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일에 대한 로테이션을 얻게 되었다. 워크캠프를 가실 분들도 꼭 자신의 의견을 숨기지 말고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나를 포함해 한국인은 모두 4명이었는데 한국인 4명 모두 성격이 적극적인 편이라 캠프 내에서 인기가 많았다. 특히 한국인 오빠는 성격이 굉장히 유쾌했는데 캠프 내에서 최고로 인기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캠프가 끝난 후 워캠 친구들 집에 초대도 받아 즐겁게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나도 귀국일을 더 뒤로 미룰걸… 이라고 후회했다.
한국 음식도 인기가 정말로 좋았다. 특히 야채전이 인기가 많았는데 야채를 다지는게 힘이 들긴 했지만 참가자들이 너무 맛있다고 칭찬해주고 만드는 방법도 계속 물어봐 기분은 정말 좋았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 가끔은 가져간 고추장으로 떡볶이도 만들어 먹었는데, 맵다고 하면서도 맛있게 잘먹는 모습에 정말로 흐뭇했다.
참가자들이 평소에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한국의 위상이 이정도 라는 것을 실감하니 내가 한국인이라는게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그리고 k-pop이 정말로 인기가 많다는 것도 느꼈다. K-pop 노래에 정말 관심이 많았다.
한국으로 다들 여행을 오기로도 약속했다. 캠프의 참여자들이 대부분 아직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은 올 수 없지만, 성인이 되면 돈을 모아서 오기로 약속을 했다. 한국이 정말로 궁금하고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고, 한국인들도 한국에 오면 우리가 관광도 시켜주고 각자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기로 약속도 하였다. 캠프 참여자들도 다들 자신의 나라에 놀러 오면 관광도 시켜주고 숙소도 제공해주기로 약속하며 우리는 더욱 돈독해져 갔다.
일을 끝낸 오후부터는 자유시간인데 함께 모여서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곤 했다. 우리 캠프는 함께 생활하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함께 했다. 그래서 끼리끼리 친하기 보다는 다 함께 친하고 사이가 매우 좋았다. 아무래도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만나 생활하는 캠프였기 때문에 의견차이가 없을 수는 없었지만 한번도 큰 싸움이 일어났다거나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이유가 항상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그게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게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갔었는데 카메라가 인기가 정말 좋았다.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사진을 찍어서 한장씩 선물로 주니 정말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한국을 잊지 말라고 준비해간 선물도 챙겨줬는데 공교롭게도 한국인 4명이 모두 선물을 준비해와 한국에 관련된 선물을 많이 챙겨줄 수 있었다. 다들 너무 고마워 했고 한국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말해줘 우리도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주말에는 여행을 갔는데 사실 나는 여행에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했듯 우리 캠프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에 주말에 여행을 가면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너무 좋은 추억이긴 했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다음에 돌아온 새로운 주가 조금은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여행을 가면 서로의 의견이 달라 미묘한 기류도 형성이 되곤 하여서 나는 그닥 주말 여행을 반기는 편은 아니었다.
이렇게 3주가 흘러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지만 아직도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다. 매일매일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하고 있고, 우리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기로 약속도 했고, 꼭 다시 만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도 가지고 있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 같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생에서 정말로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정말 좋은 사람들을 소개 받았다.
비록 3주라는 시간이었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3년이라는 시간보다 더 큰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 같은 리더 타냐, 장난기 많은 리더 카를로스, k-pop을 사랑하는 프리아, 너무나 똑똑한 마리아, 찹쌀떡 같은 요요, 여장부 애나, 나의 사랑 아드리앤, 나의 천적 캔디드, 100차원 소녀 나딘, 장난꾸러니 루실, 모델 같은 클라리스, 인기만점 홍택오빠, 천사 같은 보배언니, 동갑 친구 연희 ……
항상 이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생각하며 나는 미소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추억을 한켠에 고이접어 내 젊은 시절의 소중한 재산으로 여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