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환상 그 이상의 경험
Myso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던 워크캠프가 끝난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참가경험담을 쓰려다보니 처음 워크캠프를 위해 인도로 가는 비행기에 탔을 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부터 곰곰히 생각해보게된다. 사실 처음에 인도를 워크캠프 참가지로 선택했을 때에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어서였다. 모든 걸 경험하고 귀국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도라는 나라는 사람들이 갖고있는 환상, 그 이상이었다.
인도에 도착한 것은 워크캠프 미팅날보다 하루 전이었다. 처음 인도에 도착했을 때는 사실 겁이났다. 비행기에서 내린시각이 12시가 다된 시각이었기 때문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었고, 호텔들도 대부분 셔터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당시에는 심리적 위축감이 커서인지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릭샤 왈라들 마저도 무섭게 느껴졌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를 잡고 하루 뱅갈로르 관광을한후 다음날에 드디어 미팅장소로 향했다.
나와 내 동행자가 미팅장소인 버스스탠드에 도착했을때는 아무도 없어서 어리둥절해 했는데 곧 현지리더 2명과 다른 한국인 참가자 1명이 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참가자들이 오지않아서 결국 우리 한국인 3명만 일단 워크캠프 장소로 향했다. 속으로는 내심 불안했다. 워크캠프를 참가한 이유 중에는 다른나라 친구들과 교류하기 위함도 있었는데 이렇게 한국인 3명이서만 일만하다 오는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뒤늦게 독일인 참가자들이 도착했고 다음날 비행기를 놓쳐서 일본인 친구 한명이 뒤늦게 도착했다.
워크캠프지를 처음 봤을 때는 사실 걱정이 됐다. 개인방과 최신식의 샤워시설, 뭐 이런걸 바란건 절대 아니었지만 정말 현지 시골집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여성참가자들은 침대 두대가 있는 방을 배정받아서 자는걱정은 한 시름 놓았지만 남성 참가자들은 지금은 아무도 쓰지않는 집 안에 대충 이불을 깔고 자야했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라면 짧은 시간도 아닌데 사전에 어떤 정보도 없이 저렇게 열악한 시설을 배정받다니… 더군다가 우리가 참가비로 낸 20만원과 현지에서도 따로 현지참가비로 낸 9500루피(한국돈으로 약20만원)에 비하면 너무 터무니 없는 준비성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국제워크캠프 기구가 더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곳도 그곳 주민들에게는 일반 가정집일 뿐이고 모든 환경이 그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세계 각국의 다른 문화를 지닌 참가자들에게는 사전에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첫날은 서로 식탁에 모여서 인도현지식으로 밥을 먹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갖다가 모두 자러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하러 향했다. 우리가 처음 일하러 간곳은 어느 작은 유치원이었다. 유치원이라고는 하나 그냥 작은 시멘트 건물 하나에 작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할 일은 사포로 기존의 지전분해진 페인트를 벗겨내고 새로 벽을 칠하는 일이었다. 첫날은 너무 힘들었다. 어떤일을 하게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가서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몸만 갔는데 사포로 페인트를 벗겨내는 동안 계속 페인트가루가 날렸기 때문이다. 마스크나 손수건을 지참했으면 더 좋았을거란 생각이들었다. 벽을 다 벗겨내고 다시 칠하는데에는 약 3일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다들 요령을 몰라 시간이 오래걸렸는데 마지막날 색을 칠할때는 다들 요령이 붙어서 일이 빨리 끝났다. 처음엔 과연 우리가 하는 일이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다 끝내고 완성작을보니 처음에봤던 유치원의 모습보다 훨씬 화사해져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또 우리가 한일은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기본적인것들을 가르쳐주고 함께 야외활동도 하고 교육용 벽화를 그려주는 등의 일이었다. 우리로서는 그리 긴 시간도 아니고 그리 힘든 육체적 노동도 했했던 것 아닌데 학교아이들과 선생님들께서 너무 고마워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어느 나라나 어린 아이들은 꿈으로 가득 차 있고 장난끼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 꿈에 비해 시설이 열악할 경우 제3자가 느끼기에는 뭉클한 마음이 든다. 물론 그들이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우리나라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설에 비하면 책걸상도 없고, 많이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 급식 같은 경우 국가적인 지원이 나오거나 아주 소량의 돈으로도 지급이 된다고 하니 나름 국가적으로도 많이 힘쓰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놓였다.
처음에는 2주라는 시간이 굉장히 길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워크캠프 막바지에 들어섰을때는 모두와 작별해야한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마을사람들과 정이 많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외국인이 그들을 방문하는게 흔치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곳마다 인사를 해주고 반갑게 대해주었다. 막상 헤어지려니 아마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것은 인도라는 나라를 다시 찾아야만 가능할거라는 생각 때문에 더 아쉬움이 컸던거 같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인도를 찾는다면 무리해서라도 이곳 벨쓰루, 내가 워크캠프했던 이곳은 꼭 다시 찾게될 것 같다
인도에 도착한 것은 워크캠프 미팅날보다 하루 전이었다. 처음 인도에 도착했을 때는 사실 겁이났다. 비행기에서 내린시각이 12시가 다된 시각이었기 때문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었고, 호텔들도 대부분 셔터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당시에는 심리적 위축감이 커서인지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릭샤 왈라들 마저도 무섭게 느껴졌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를 잡고 하루 뱅갈로르 관광을한후 다음날에 드디어 미팅장소로 향했다.
나와 내 동행자가 미팅장소인 버스스탠드에 도착했을때는 아무도 없어서 어리둥절해 했는데 곧 현지리더 2명과 다른 한국인 참가자 1명이 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참가자들이 오지않아서 결국 우리 한국인 3명만 일단 워크캠프 장소로 향했다. 속으로는 내심 불안했다. 워크캠프를 참가한 이유 중에는 다른나라 친구들과 교류하기 위함도 있었는데 이렇게 한국인 3명이서만 일만하다 오는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뒤늦게 독일인 참가자들이 도착했고 다음날 비행기를 놓쳐서 일본인 친구 한명이 뒤늦게 도착했다.
워크캠프지를 처음 봤을 때는 사실 걱정이 됐다. 개인방과 최신식의 샤워시설, 뭐 이런걸 바란건 절대 아니었지만 정말 현지 시골집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여성참가자들은 침대 두대가 있는 방을 배정받아서 자는걱정은 한 시름 놓았지만 남성 참가자들은 지금은 아무도 쓰지않는 집 안에 대충 이불을 깔고 자야했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라면 짧은 시간도 아닌데 사전에 어떤 정보도 없이 저렇게 열악한 시설을 배정받다니… 더군다가 우리가 참가비로 낸 20만원과 현지에서도 따로 현지참가비로 낸 9500루피(한국돈으로 약20만원)에 비하면 너무 터무니 없는 준비성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국제워크캠프 기구가 더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곳도 그곳 주민들에게는 일반 가정집일 뿐이고 모든 환경이 그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세계 각국의 다른 문화를 지닌 참가자들에게는 사전에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첫날은 서로 식탁에 모여서 인도현지식으로 밥을 먹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갖다가 모두 자러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하러 향했다. 우리가 처음 일하러 간곳은 어느 작은 유치원이었다. 유치원이라고는 하나 그냥 작은 시멘트 건물 하나에 작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할 일은 사포로 기존의 지전분해진 페인트를 벗겨내고 새로 벽을 칠하는 일이었다. 첫날은 너무 힘들었다. 어떤일을 하게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가서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몸만 갔는데 사포로 페인트를 벗겨내는 동안 계속 페인트가루가 날렸기 때문이다. 마스크나 손수건을 지참했으면 더 좋았을거란 생각이들었다. 벽을 다 벗겨내고 다시 칠하는데에는 약 3일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다들 요령을 몰라 시간이 오래걸렸는데 마지막날 색을 칠할때는 다들 요령이 붙어서 일이 빨리 끝났다. 처음엔 과연 우리가 하는 일이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다 끝내고 완성작을보니 처음에봤던 유치원의 모습보다 훨씬 화사해져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또 우리가 한일은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기본적인것들을 가르쳐주고 함께 야외활동도 하고 교육용 벽화를 그려주는 등의 일이었다. 우리로서는 그리 긴 시간도 아니고 그리 힘든 육체적 노동도 했했던 것 아닌데 학교아이들과 선생님들께서 너무 고마워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어느 나라나 어린 아이들은 꿈으로 가득 차 있고 장난끼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 꿈에 비해 시설이 열악할 경우 제3자가 느끼기에는 뭉클한 마음이 든다. 물론 그들이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우리나라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설에 비하면 책걸상도 없고, 많이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 급식 같은 경우 국가적인 지원이 나오거나 아주 소량의 돈으로도 지급이 된다고 하니 나름 국가적으로도 많이 힘쓰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놓였다.
처음에는 2주라는 시간이 굉장히 길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워크캠프 막바지에 들어섰을때는 모두와 작별해야한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마을사람들과 정이 많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외국인이 그들을 방문하는게 흔치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곳마다 인사를 해주고 반갑게 대해주었다. 막상 헤어지려니 아마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것은 인도라는 나라를 다시 찾아야만 가능할거라는 생각 때문에 더 아쉬움이 컸던거 같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인도를 찾는다면 무리해서라도 이곳 벨쓰루, 내가 워크캠프했던 이곳은 꼭 다시 찾게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