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마지막 유럽, 잊지 못할 Lemwerder
DEDICATION AND COMMITMENT TO THE WATE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독일 워크캠프는 나에게 있어 2번째 이자 마지막 워크캠프이다. 첫번째 워크캠프는 작년에 프랑스 Concordia 기관에서 주최하는 걸 했는데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 사실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돈도 돈이지만 지금 4학년이기 때문에 방학 때 공부를 하느냐, 아니면 워크캠프를 가느냐 결정가기 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워크캠프가 작년처럼 좋을지 몰랐기 떄문에..
그러나 마지막 대학생의 방학을 다시 한번 유럽에서 보내고 싶었다.
항공권을 구입하고.. 7월 25일 나리타, 코펜하겐, 뮌헨 총 2번 경유해서 드디어 독일에 도착했다. 뮌헨, 오스트리아, 프라하, 워크캠프 이렇게 루트를 짰다. 워크캠프 개최지역이 브레멘지역에 있었기 떄문이다.
프라하에서 브레맨까지는 약 8시간이 걸린것 같다. 이제 브레맨 중앙역에서 브레맨 어떤 역까지.. 그리고 페리를 타고 내려서 Lemwerder까지.. 다행히 중국인 친구들을 만나서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어별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인포싯에 찾아오는 방법은 너무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었고 한 20분 정도 헤맨것 같았다. 나중에 다른 친구들이랑 쉽게 찾아왔냐고 물어보니까 다들 힘들게 찾아왔다고 그랬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눴지만 처음 보았을 때 나쁜 친구들은 없었다. 다들 착한 친구들 뿐이었다
처음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소개랑 왜 여기 참여하게 되었는지 , 간단한 게임, 친해지기 등 을 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우리가 일할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순간 좌절했다.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탈 일이 거의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가 그리 보편화 되지 않아서 내 친구중에도 자전거를 못타는 친구들이 꾀 있다. 설마설마 했는데.. 다행히 나는 독일 오기 전에 한국에서 자전거를 연습했었다. 근데 자전거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다행히 리더가 보통 크기 사이즈의 자전거로 바꿔주었다. 나만 자전거를 잘 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마지막에 도착하곤 했다. 그래서 리더가 나한테 물어봤다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잘 안탔냐고.. 그래서 내가 그렇다고 하고 인포싯에 그런내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주된 일은 학교에 가서 동물 모형을 만드는 일을 했다. 8시에 가서 주로 12시 아니면 1시에 일을 끝냈다. 우리 인원은 총 18명이었다. 근데 사실 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18명이나 되는 인원이 동물 모형을 만들고.. 일은 제한되어 있는데 인원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몇 명 친구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몇 명 친구들은 이 일을 지루해 했고 나 또한 그랬다. 나도 일을 하고 싶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1주일 동안은 그렇게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페스티벌 준비를 돕기 위해 6명은 페스티벌로 가고 나머지는 학교에 남아 동물 모형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래도 일은 적고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1시에 일을 끝나면 점심을 먹고.. 그러면 약 2시 아니면 3시부터 자유시간이 계속 주어졌다. 근데 생각보다 자유시간이 많아서 많은 친구들이 지루해했다. 그래서 팀을 짜서 그 날 자유시간때 뭘 할지 결정하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참여는 자유이기 때문에 참여도가 낮았다.
주말에는 여행을 가고 아니면 평일에도 아주 가끔 놀러가곤 했다. 근데 친구들도 놀러가본 결과 너무 재미가 없었고 나는 여행을 하면다 같이 여행했으면 좋겠는데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성형이 강해서 다 같이 여행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딜 놀러가면 가지 않았는데 리더는 그걸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사실 처음 워크캠프가 너무너무 좋아서 한 1주일동안은 너무 만족하지 못했다. 사실 그건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내가 자꾸 비교하고 즐기려 하지 않은 마인드 때문에 1 주일 동안은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나는 이 워크캠프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갈등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갈등은 나는 아니고 다른 친구들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바로 리더들이었다. 리더들은 그저 착하기만 하고 리더십이 전혀 없었다. 2명의 리더들이 있었는데 특히 한 명은. 영어를 못알아들으면 얼굴 표정이 좀 변하고 시간 개념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놀러 갔을 때도 거의 바다 아니면 강가에 놀러갔는데 서양인들과 다르게 동양인들은 낯가림도 심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거의 즐기지 못하는데 왜 자꾸 바다에 가는지 한편으론 짜증났다. 이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느꼈다.
하지만 그 한명은 나랑 일본인 친구들이 거의 놀러가지 않고 항상 체육관에만 있으니까 어울릴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것 같다.
나는 일본인들이랑 많이 친해게 지냈다. 중국인 친구 2명도 있엇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랑 일본은 다르지만 비슷한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얘기도 더 잘 통했다.
우리는 인원이 많다 보니 끼리끼리 다니는 성향이 좀 강했지만 그래도 모두 너무너무 착한 친구들이였다. 성격이 모난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참 다양한 에피소드도 많다. 바베큐 먹으러 지역 주민들과 함께 했는데.. 그 때 나는 일본친구들과 뒤쪽에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국인 친구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였다.. 그 다음에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 터키.. 난 순간 노래하기가너무 겁이 났다. 한국인 동생이 있었는데 갑자기 날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날 찾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노래부르기 너무 싫어서 일본인 친구들이랑 막 뛰었던 기억, 자전거를 잘 못타서 자빠지고 항상 느리다고 했던 친구들..
너무 착하기만 하고 리더십이 없었지만 정말 좋았던 리더들 – 마틴, 필립, 한국어를 할 줄 알고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나를 언제나 챙겨줬던 조이스, 요리를 엄청 잘하고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 같았던 미라 , 나의 첫 번째 중국인 친구들 미쉘 , 케빈 , 이름이 같았던 따샤들.. 정말 너무너무 착하고 더 많이 얘기를 하고 싶은 피에릭, 성격이 너무너무 좋은 스페니쉬들 이안, 라켈 , 같이 다녔고 지금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 유, 타쿠마, 또 한명의 한국인 동생 영어도 잘하고 일본어도 잘했던 새별! 내가 불만을 토로하면 항상 그걸 들어주고 깨어있는 터키 친구 에젬 ! 그리고 항상 모든지 도와줄려고 하고 착했던 사킷, 울 .. 나에게 너무 소중한 친구들 !
내가 항상 사진찍을 때 “ 하나 둘 셋 ! “ 하면 친구들이 그걸 따라했던 거.. 호떡 믹스 가져가서 요리를 했는데 너무너무 맛있다고 했던 기억..
한국돈을 가져가서 나눠주자 너무 좋아했던 친구들..
마지막 하루 전 날 친구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는데 너무 고맙다고 한 거..
시간이 있다면 친구들이랑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사이 벌써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나는 엄청 울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하면 너무 슬프다. 왜냐하면 나는 이게 나에게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울지 말라고 했다.. 근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내가 일본인 친구한테 “ 마따네 ( 다시 만나자)” 라고 했다.
한국에 오니 뭔가 어색하다.. 항상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타쿠마랑 , 유, 조이스는 나에게 “ 너무 느려! “ “ 위험해! “ 라고 했는데.. 3주 동안 반복됬던 순간들이 지금은 추억으로 사라져 버렸다. 일찍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야 할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내 옆에는 항상 타쿠마, 유, 조이스가 있을 것 만 같은….
18명이 다 같이 모이긴 힘들어도 우리는 언젠가 서로 각자 만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대학생의 방학을 다시 한번 유럽에서 보내고 싶었다.
항공권을 구입하고.. 7월 25일 나리타, 코펜하겐, 뮌헨 총 2번 경유해서 드디어 독일에 도착했다. 뮌헨, 오스트리아, 프라하, 워크캠프 이렇게 루트를 짰다. 워크캠프 개최지역이 브레멘지역에 있었기 떄문이다.
프라하에서 브레맨까지는 약 8시간이 걸린것 같다. 이제 브레맨 중앙역에서 브레맨 어떤 역까지.. 그리고 페리를 타고 내려서 Lemwerder까지.. 다행히 중국인 친구들을 만나서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어별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인포싯에 찾아오는 방법은 너무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었고 한 20분 정도 헤맨것 같았다. 나중에 다른 친구들이랑 쉽게 찾아왔냐고 물어보니까 다들 힘들게 찾아왔다고 그랬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눴지만 처음 보았을 때 나쁜 친구들은 없었다. 다들 착한 친구들 뿐이었다
처음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소개랑 왜 여기 참여하게 되었는지 , 간단한 게임, 친해지기 등 을 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우리가 일할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순간 좌절했다.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탈 일이 거의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가 그리 보편화 되지 않아서 내 친구중에도 자전거를 못타는 친구들이 꾀 있다. 설마설마 했는데.. 다행히 나는 독일 오기 전에 한국에서 자전거를 연습했었다. 근데 자전거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다행히 리더가 보통 크기 사이즈의 자전거로 바꿔주었다. 나만 자전거를 잘 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마지막에 도착하곤 했다. 그래서 리더가 나한테 물어봤다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잘 안탔냐고.. 그래서 내가 그렇다고 하고 인포싯에 그런내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주된 일은 학교에 가서 동물 모형을 만드는 일을 했다. 8시에 가서 주로 12시 아니면 1시에 일을 끝냈다. 우리 인원은 총 18명이었다. 근데 사실 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18명이나 되는 인원이 동물 모형을 만들고.. 일은 제한되어 있는데 인원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몇 명 친구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몇 명 친구들은 이 일을 지루해 했고 나 또한 그랬다. 나도 일을 하고 싶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1주일 동안은 그렇게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페스티벌 준비를 돕기 위해 6명은 페스티벌로 가고 나머지는 학교에 남아 동물 모형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래도 일은 적고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1시에 일을 끝나면 점심을 먹고.. 그러면 약 2시 아니면 3시부터 자유시간이 계속 주어졌다. 근데 생각보다 자유시간이 많아서 많은 친구들이 지루해했다. 그래서 팀을 짜서 그 날 자유시간때 뭘 할지 결정하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참여는 자유이기 때문에 참여도가 낮았다.
주말에는 여행을 가고 아니면 평일에도 아주 가끔 놀러가곤 했다. 근데 친구들도 놀러가본 결과 너무 재미가 없었고 나는 여행을 하면다 같이 여행했으면 좋겠는데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성형이 강해서 다 같이 여행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딜 놀러가면 가지 않았는데 리더는 그걸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사실 처음 워크캠프가 너무너무 좋아서 한 1주일동안은 너무 만족하지 못했다. 사실 그건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내가 자꾸 비교하고 즐기려 하지 않은 마인드 때문에 1 주일 동안은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나는 이 워크캠프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갈등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갈등은 나는 아니고 다른 친구들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바로 리더들이었다. 리더들은 그저 착하기만 하고 리더십이 전혀 없었다. 2명의 리더들이 있었는데 특히 한 명은. 영어를 못알아들으면 얼굴 표정이 좀 변하고 시간 개념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놀러 갔을 때도 거의 바다 아니면 강가에 놀러갔는데 서양인들과 다르게 동양인들은 낯가림도 심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거의 즐기지 못하는데 왜 자꾸 바다에 가는지 한편으론 짜증났다. 이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느꼈다.
하지만 그 한명은 나랑 일본인 친구들이 거의 놀러가지 않고 항상 체육관에만 있으니까 어울릴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것 같다.
나는 일본인들이랑 많이 친해게 지냈다. 중국인 친구 2명도 있엇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랑 일본은 다르지만 비슷한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얘기도 더 잘 통했다.
우리는 인원이 많다 보니 끼리끼리 다니는 성향이 좀 강했지만 그래도 모두 너무너무 착한 친구들이였다. 성격이 모난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참 다양한 에피소드도 많다. 바베큐 먹으러 지역 주민들과 함께 했는데.. 그 때 나는 일본친구들과 뒤쪽에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국인 친구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였다.. 그 다음에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 터키.. 난 순간 노래하기가너무 겁이 났다. 한국인 동생이 있었는데 갑자기 날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날 찾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노래부르기 너무 싫어서 일본인 친구들이랑 막 뛰었던 기억, 자전거를 잘 못타서 자빠지고 항상 느리다고 했던 친구들..
너무 착하기만 하고 리더십이 없었지만 정말 좋았던 리더들 – 마틴, 필립, 한국어를 할 줄 알고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나를 언제나 챙겨줬던 조이스, 요리를 엄청 잘하고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 같았던 미라 , 나의 첫 번째 중국인 친구들 미쉘 , 케빈 , 이름이 같았던 따샤들.. 정말 너무너무 착하고 더 많이 얘기를 하고 싶은 피에릭, 성격이 너무너무 좋은 스페니쉬들 이안, 라켈 , 같이 다녔고 지금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 유, 타쿠마, 또 한명의 한국인 동생 영어도 잘하고 일본어도 잘했던 새별! 내가 불만을 토로하면 항상 그걸 들어주고 깨어있는 터키 친구 에젬 ! 그리고 항상 모든지 도와줄려고 하고 착했던 사킷, 울 .. 나에게 너무 소중한 친구들 !
내가 항상 사진찍을 때 “ 하나 둘 셋 ! “ 하면 친구들이 그걸 따라했던 거.. 호떡 믹스 가져가서 요리를 했는데 너무너무 맛있다고 했던 기억..
한국돈을 가져가서 나눠주자 너무 좋아했던 친구들..
마지막 하루 전 날 친구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는데 너무 고맙다고 한 거..
시간이 있다면 친구들이랑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사이 벌써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나는 엄청 울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하면 너무 슬프다. 왜냐하면 나는 이게 나에게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울지 말라고 했다.. 근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내가 일본인 친구한테 “ 마따네 ( 다시 만나자)” 라고 했다.
한국에 오니 뭔가 어색하다.. 항상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타쿠마랑 , 유, 조이스는 나에게 “ 너무 느려! “ “ 위험해! “ 라고 했는데.. 3주 동안 반복됬던 순간들이 지금은 추억으로 사라져 버렸다. 일찍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야 할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내 옆에는 항상 타쿠마, 유, 조이스가 있을 것 만 같은….
18명이 다 같이 모이긴 힘들어도 우리는 언젠가 서로 각자 만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