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낯선 시선 속 따뜻한 만남
Konark - Oriss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에게 워크캠프는 처음,이었다. 국제봉사활동의 첫 경험, 단기이지만 2주라는 기간동안 지속적 봉사를 한다는 것에서 첫 경험 이었다. 처음에 워크캠프 미팅포인트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는 생각보다 작은 캠프 규모에 실망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더 편한 것임을 알고는 감사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는 인도의 코나락에 다녀왔는데, 그곳은 정말 극소수의 외국인만이 방문하는 곳이었다. 선템플이라는 유네스코지정 세계 문화유산이 있다고 해도, 거의 외국인이 없었고 특히나 한국인은 거의 우리 캠프의 인원이 전부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 우리가 도착하고 길거리를 걷거나 우리끼리 대화를 하는 모습에서도 신기해하고 마치 연예인을 보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웠었다.
우리의 주 봉사지는 아스람 스쿨이었는데 이곳은 고아가 된 아이들이 반, 일반 가정아이들이 반 정도 구성 되어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구성원의 특성상 그 지역의 다른 학교들 보다 학교의 시설이나 형편이 매우 열악하다고 느껴지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의 한 클래스를 새로 페인트칠을 해주고, 벽화작업을 해주었다. 나의 경우는 사포 질을 하거나 페인트칠을 하는 것을 서 너번 해본 경험이 있어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유화작업을 하려 니스 칠을 하고 벽화를 섬세하게 작업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2주차에는 아픈 날도 생겼다. 하지만, 그 일을 완성시키고 나서의 뿌듯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정도였다. 아이들이 너무도 신기해 했고, 우리나라에서 남들이 보면, 저게 뭐야! 라는 말을 들을만한 그림이었는데도 너무도 좋아하는 선생님, 아이들의 모습에 너무도 감사했다.
또 다른 활동으로는 오후 클래스에서 교육을 했었다. 매일 다른 학년의 아이들에게 들어가서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그 아이들은 우리의 존재만으로 신기한지, 더욱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도 있었고, 너무도 수줍어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의 수업이 선생님들과 비교했을 때는 너무도 미숙하고, 소통의 문제도 존재했기 때문에 많은 우려를 했지만 아이들의 그 반응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클래스가 끝나면 아이들과 크리켓이나 발리볼도 함께 하고, 여자 아이들은 함께 앉아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여서 함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 굉장히 놀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재미있었다.
인도를 다녀와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사실 한국에서 나는 엄청난 부자도 엄청난 가난함에 살아가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뭐가 그리 가난한지, 무언가에 쫓기는 마음으로, 어느 것이 맘에 들지 않는 건지 불평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그 사람들의 공기, 느낌, 감정을 함께 공유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나는 충분히 너무도 감사한 사람이었고,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너무도 많이 가졌음에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또한, 여기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 숨쉬고 있고, 이렇게 타자를 치고 있지 않은가. 그 곳의 아이들은 컴퓨터를 본적도 없고, 카메라도 만져보지 못해 나의 핸드폰을 보며 신기해하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도 큰 복을 타고난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주변 많은 친구나 지인들에게 워크캠프를 추천한다. 다녀와서 달라진 모습이 눈에 보여서인지 그냥 외국에 잠깐 나갔다 온 것이 부러워서 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 하나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어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어떠한 연유이든지 추천을 한다. 확신하건데 그 어느 곳을 가든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축복이다.
나의 경우는 인도의 코나락에 다녀왔는데, 그곳은 정말 극소수의 외국인만이 방문하는 곳이었다. 선템플이라는 유네스코지정 세계 문화유산이 있다고 해도, 거의 외국인이 없었고 특히나 한국인은 거의 우리 캠프의 인원이 전부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 우리가 도착하고 길거리를 걷거나 우리끼리 대화를 하는 모습에서도 신기해하고 마치 연예인을 보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웠었다.
우리의 주 봉사지는 아스람 스쿨이었는데 이곳은 고아가 된 아이들이 반, 일반 가정아이들이 반 정도 구성 되어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구성원의 특성상 그 지역의 다른 학교들 보다 학교의 시설이나 형편이 매우 열악하다고 느껴지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의 한 클래스를 새로 페인트칠을 해주고, 벽화작업을 해주었다. 나의 경우는 사포 질을 하거나 페인트칠을 하는 것을 서 너번 해본 경험이 있어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유화작업을 하려 니스 칠을 하고 벽화를 섬세하게 작업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2주차에는 아픈 날도 생겼다. 하지만, 그 일을 완성시키고 나서의 뿌듯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정도였다. 아이들이 너무도 신기해 했고, 우리나라에서 남들이 보면, 저게 뭐야! 라는 말을 들을만한 그림이었는데도 너무도 좋아하는 선생님, 아이들의 모습에 너무도 감사했다.
또 다른 활동으로는 오후 클래스에서 교육을 했었다. 매일 다른 학년의 아이들에게 들어가서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그 아이들은 우리의 존재만으로 신기한지, 더욱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도 있었고, 너무도 수줍어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의 수업이 선생님들과 비교했을 때는 너무도 미숙하고, 소통의 문제도 존재했기 때문에 많은 우려를 했지만 아이들의 그 반응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클래스가 끝나면 아이들과 크리켓이나 발리볼도 함께 하고, 여자 아이들은 함께 앉아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여서 함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 굉장히 놀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재미있었다.
인도를 다녀와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사실 한국에서 나는 엄청난 부자도 엄청난 가난함에 살아가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뭐가 그리 가난한지, 무언가에 쫓기는 마음으로, 어느 것이 맘에 들지 않는 건지 불평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그 사람들의 공기, 느낌, 감정을 함께 공유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나는 충분히 너무도 감사한 사람이었고,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너무도 많이 가졌음에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또한, 여기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 숨쉬고 있고, 이렇게 타자를 치고 있지 않은가. 그 곳의 아이들은 컴퓨터를 본적도 없고, 카메라도 만져보지 못해 나의 핸드폰을 보며 신기해하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도 큰 복을 타고난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주변 많은 친구나 지인들에게 워크캠프를 추천한다. 다녀와서 달라진 모습이 눈에 보여서인지 그냥 외국에 잠깐 나갔다 온 것이 부러워서 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 하나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어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어떠한 연유이든지 추천을 한다. 확신하건데 그 어느 곳을 가든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