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에서 만난, 후회 없을 젊은 날
Kundapu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이번 워크캠프,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약 안 갔다면 평생을 후회했을지도 모르는’ 나의 젊은 날의 빛나는 시간이다..
작년 태국워크캠프를 참여하고 나서, 워크캠프에 재 참여 의사가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다국적인 아이들과 숙박과 봉사를 함께 하며 시간을 나눌 수 있어 좋았고,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나라의 문화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에는 개별적으로 인도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작년의 기억에 되살아나서 결국 인도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되었다.
-캠프로 가는 길-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인도’라는 나라의 첫인상이다. 인도에 도착한 첫날하고 바로 다음날, 나는 호텔 로비에서 울어버렸다. 피로와 두려움, 슬럼가의 이미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내가 떨어진 뭄바이는 인도전역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곳이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생활환경, 냄새 등이 종합적으로 나를 어택 했고, 나는 엄마와의 통화에서 그만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진지하게 워크캠프 참여에 대해 고민하였다. “내가 진짜, 이 나라에서 봉사하고 갈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나의 워크캠프 개최지역인 “KUNDAPURA”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쿤다푸라로 가는 길 역시 순탄치 않았지만(이것이 인도여행의 묘미!.....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여곡절끝에 캠프리더와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그 안도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첫인상은 다소 시크해보였던 유럽친구들과 한없이 밝은 미소로 맞이해주던 인도 캠프리더들, 디팍, 샤럇, 디니쉬의 얼굴이 떠오른다.
-캠프에서-
내가 참가하게 된 캠프의 내용과 목적은 “지역 학교 살리기” 쯤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2주간 머물렀던 ‘쿤다푸라’라는 지역은 남인도에서도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인데, 이 도시 안에서도 지역격차가 발생하여 작은 마을의 아이들이 더 큰 도시에 있는 학교로 떠나가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작은 마을에 있는 학교들은 학생이 줄어들고 떠나감에 따라 운영이 잘 되지 않고, 심지어는 몇 년 이내에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우리 캠프가 참가하게 된 학교들이 바로 그런 학교들이었다. .
우리 팀은 두 팀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의 학교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벽화를 그리는 일을 맡았다. 일은 상대적으로 고된 편이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그리는 행동을 좋아해서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유럽친구들, 인도친구들, 학교의 아이들(리한, 앙끼따, 로, 이샤..)가 하나가 되어 함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 그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봉사를 하지 않을 때는?-
일을 마치고는 자원봉사자 숙소에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주로 수다를 떨거나 기타를 치고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가끔은 인도 친구인 ‘수수마’네 집에 놀러 가서 현지인들의 생활환경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자유시간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유럽인들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차갑다”라는 원인 모를 편견을 깨뜨릴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들은 네덜란드에서 온 마가릿과 브릿, 프랑스에서 온 클레멘스, 이태리에서 온 프란체스코였다. 모두들 너무도 상냥하고 배려심이 깊고 유머러스했다.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노래를 부르던 시간은… 아마 다시 오지 못할 내 인생에 반짝이는 순간이다.
-돌이켜 보며-
이번 워크캠프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개인적인 성취측면에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비교적 낯가림을 하는 편이고 살가운 편이 아니라서 처음에 사람을 사귀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첫 해외여행이었던 지난 태국워크캠프 때에는, 외국인이라는 낯설음 때문에 먼저 다가 가서 말을 걸지 못했고, 상당히 수동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개인적으로 언어공부도 열심히 했던 이유도 있지만, ‘인도까지 왔는데, 외국인 친구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라는 패기를 가지고 먼저 말을 걸고, 유머도 걸고, 여러가지 시도를 했다. 그러다 보니 차차 낯선 환경과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어느새 편한 친구처럼 그들을 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추억’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인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 인도친구 수수마네 집에가서 사리를 입어보았던 추억, 클레멘스와 밤새 서양과 동양의 사고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던 추억, 나의 유머에 다같이 꺽꺽대고 웃었던 기억들… 내 인생에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순간의 찬란한 빛이다!
내 주변인들이 워크캠프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일단 가봐’라고 말할 것이다. 개별적인 여행과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2주라는 기간이지만 그토록 다양하지만 하나가 되어 서로 부대끼며 지내는 그 시간은 워캠이 아니라면 겪을 수 없는 빛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작년 태국워크캠프를 참여하고 나서, 워크캠프에 재 참여 의사가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다국적인 아이들과 숙박과 봉사를 함께 하며 시간을 나눌 수 있어 좋았고,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나라의 문화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에는 개별적으로 인도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작년의 기억에 되살아나서 결국 인도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되었다.
-캠프로 가는 길-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인도’라는 나라의 첫인상이다. 인도에 도착한 첫날하고 바로 다음날, 나는 호텔 로비에서 울어버렸다. 피로와 두려움, 슬럼가의 이미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내가 떨어진 뭄바이는 인도전역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곳이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생활환경, 냄새 등이 종합적으로 나를 어택 했고, 나는 엄마와의 통화에서 그만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진지하게 워크캠프 참여에 대해 고민하였다. “내가 진짜, 이 나라에서 봉사하고 갈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나의 워크캠프 개최지역인 “KUNDAPURA”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쿤다푸라로 가는 길 역시 순탄치 않았지만(이것이 인도여행의 묘미!.....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여곡절끝에 캠프리더와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그 안도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첫인상은 다소 시크해보였던 유럽친구들과 한없이 밝은 미소로 맞이해주던 인도 캠프리더들, 디팍, 샤럇, 디니쉬의 얼굴이 떠오른다.
-캠프에서-
내가 참가하게 된 캠프의 내용과 목적은 “지역 학교 살리기” 쯤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2주간 머물렀던 ‘쿤다푸라’라는 지역은 남인도에서도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인데, 이 도시 안에서도 지역격차가 발생하여 작은 마을의 아이들이 더 큰 도시에 있는 학교로 떠나가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작은 마을에 있는 학교들은 학생이 줄어들고 떠나감에 따라 운영이 잘 되지 않고, 심지어는 몇 년 이내에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우리 캠프가 참가하게 된 학교들이 바로 그런 학교들이었다. .
우리 팀은 두 팀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의 학교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벽화를 그리는 일을 맡았다. 일은 상대적으로 고된 편이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그리는 행동을 좋아해서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유럽친구들, 인도친구들, 학교의 아이들(리한, 앙끼따, 로, 이샤..)가 하나가 되어 함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 그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봉사를 하지 않을 때는?-
일을 마치고는 자원봉사자 숙소에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주로 수다를 떨거나 기타를 치고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가끔은 인도 친구인 ‘수수마’네 집에 놀러 가서 현지인들의 생활환경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자유시간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유럽인들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차갑다”라는 원인 모를 편견을 깨뜨릴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들은 네덜란드에서 온 마가릿과 브릿, 프랑스에서 온 클레멘스, 이태리에서 온 프란체스코였다. 모두들 너무도 상냥하고 배려심이 깊고 유머러스했다.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노래를 부르던 시간은… 아마 다시 오지 못할 내 인생에 반짝이는 순간이다.
-돌이켜 보며-
이번 워크캠프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개인적인 성취측면에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비교적 낯가림을 하는 편이고 살가운 편이 아니라서 처음에 사람을 사귀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첫 해외여행이었던 지난 태국워크캠프 때에는, 외국인이라는 낯설음 때문에 먼저 다가 가서 말을 걸지 못했고, 상당히 수동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개인적으로 언어공부도 열심히 했던 이유도 있지만, ‘인도까지 왔는데, 외국인 친구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라는 패기를 가지고 먼저 말을 걸고, 유머도 걸고, 여러가지 시도를 했다. 그러다 보니 차차 낯선 환경과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어느새 편한 친구처럼 그들을 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추억’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인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 인도친구 수수마네 집에가서 사리를 입어보았던 추억, 클레멘스와 밤새 서양과 동양의 사고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던 추억, 나의 유머에 다같이 꺽꺽대고 웃었던 기억들… 내 인생에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순간의 찬란한 빛이다!
내 주변인들이 워크캠프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일단 가봐’라고 말할 것이다. 개별적인 여행과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2주라는 기간이지만 그토록 다양하지만 하나가 되어 서로 부대끼며 지내는 그 시간은 워캠이 아니라면 겪을 수 없는 빛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