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꼬나락, 작지만 깊었던 우정
Konark - Oriss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인크레더블(incredible)한 인도, 저는 그 중 동쪽에 위치한 ‘꼬나락(Konark)’이라는 마을에서 2주 동안 워크캠프에 참가하였습니다. 출발 하기 전, 혼자 캠프를 찾아가야 한다는 점과 불안한 치안, 불편한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까라는 걱정 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참가자들과 색다른 생활을 해본다는 설렘 반을 안고 인도에 도착하였습니다.
델리국제공항-부바네슈와르-그리고 약 1시간 가량 택시를 타고 도착한 ‘꼬나락’. 저의 워크캠프장소는 작고 소박한 마을에 위치해 있었으며 캠프규모도 다른 장소의 대규모캠프와는 달리 6명이 함께하는 소규모캠프였습니다. 오기 전, 여러 국가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지만 함께 봉사를 하면서 저는 현지주민, 러시아, 일본에서 온 참가자들과 깊이 있는 우정을 쌓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프로젝트는 오전에는 학교 교실 페인팅, 오후에는 학생들과 문화교류였습니다. 한국에선책상에 앉아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하기만 하면 됐지만, 그 곳에선 다른사람들과 함께 ‘페인팅’이라는 큰 프로젝트가 있었기에 ‘협력’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페인트 칠을 하기 전 사포로 벽을 문지르고 워터베이스로 기초공사를 다지고, 교육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페인팅주제를 정하였으며 역할분담을 통해 시간 내 아름다운 교실 벽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참가자들 각자 가지고 있는 ‘미(美)’와 ‘교육’의 기준이 달랐으며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달랐기 때문에 의견을 통합할 때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회의를 할 때마다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으며 거듭되는 대화, 상대방의 성향에 따라 설득의 스킬까지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 가지는 ‘Meeting time’에서는 일과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낀점을 참가자들과 나누었으며 다음날을 위한 충고, 다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 미팅시간이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과 학교에서 교류하는 시간도 재미있지만 문화와 나이, 성별이 다른 참가자들과 생각을 주고 받는 시간이 진짜 ‘교류’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개발도상국의 단계에 있는 인도에서는 ‘봉사(Volunteer)’라는 개념이 정립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지주민들은 학교와 학생들을 돕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다라는 그 자체에 놀라워했으며 우리를 언제나 환영해주었습니다. 특히, 우리를 취재하러 온 각 방송사들, 구청장의 방문 등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더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 ‘봉사’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부분에 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2주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페인팅작업도 마쳤으며 아이들과 함께 문화교류의 시간도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힘겨웠던 점은 정이든 아이들에게 어떻게 헤어짐을 인사할까였습니다. 순수한 눈으로 언제 인도에 다시 방문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땐 어떻게 답변을 해야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진짜 영영 헤어지는 걸까 라는 마음에 눈물도 났지만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눈물은 감추며 꼭 2년 후에 다시 방문할께 라는 말을 남기며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의 워크캠프생활은 저에게 순수함이란 무엇인지, 내가 가진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등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작은 일들이었지만 나도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점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 희망, 자신감을 주었기에 저의 20대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델리국제공항-부바네슈와르-그리고 약 1시간 가량 택시를 타고 도착한 ‘꼬나락’. 저의 워크캠프장소는 작고 소박한 마을에 위치해 있었으며 캠프규모도 다른 장소의 대규모캠프와는 달리 6명이 함께하는 소규모캠프였습니다. 오기 전, 여러 국가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지만 함께 봉사를 하면서 저는 현지주민, 러시아, 일본에서 온 참가자들과 깊이 있는 우정을 쌓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프로젝트는 오전에는 학교 교실 페인팅, 오후에는 학생들과 문화교류였습니다. 한국에선책상에 앉아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하기만 하면 됐지만, 그 곳에선 다른사람들과 함께 ‘페인팅’이라는 큰 프로젝트가 있었기에 ‘협력’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페인트 칠을 하기 전 사포로 벽을 문지르고 워터베이스로 기초공사를 다지고, 교육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페인팅주제를 정하였으며 역할분담을 통해 시간 내 아름다운 교실 벽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참가자들 각자 가지고 있는 ‘미(美)’와 ‘교육’의 기준이 달랐으며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달랐기 때문에 의견을 통합할 때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회의를 할 때마다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으며 거듭되는 대화, 상대방의 성향에 따라 설득의 스킬까지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 가지는 ‘Meeting time’에서는 일과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낀점을 참가자들과 나누었으며 다음날을 위한 충고, 다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 미팅시간이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과 학교에서 교류하는 시간도 재미있지만 문화와 나이, 성별이 다른 참가자들과 생각을 주고 받는 시간이 진짜 ‘교류’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개발도상국의 단계에 있는 인도에서는 ‘봉사(Volunteer)’라는 개념이 정립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지주민들은 학교와 학생들을 돕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다라는 그 자체에 놀라워했으며 우리를 언제나 환영해주었습니다. 특히, 우리를 취재하러 온 각 방송사들, 구청장의 방문 등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더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 ‘봉사’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부분에 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2주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페인팅작업도 마쳤으며 아이들과 함께 문화교류의 시간도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힘겨웠던 점은 정이든 아이들에게 어떻게 헤어짐을 인사할까였습니다. 순수한 눈으로 언제 인도에 다시 방문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땐 어떻게 답변을 해야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진짜 영영 헤어지는 걸까 라는 마음에 눈물도 났지만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눈물은 감추며 꼭 2년 후에 다시 방문할께 라는 말을 남기며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의 워크캠프생활은 저에게 순수함이란 무엇인지, 내가 가진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등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작은 일들이었지만 나도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점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 희망, 자신감을 주었기에 저의 20대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