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베를린 근교, 설렘과 걱정 사이
GIVE MEDIEVAL WALLS A NEW LIF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베를린 근교라는 말만 듣고 인쇄한 지도에 의지해 워크캠프장소로 가는 길은 참 설레면서도 걱정이 됐다. 다른 문화권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3주씩이나 한 공간에서 함께 잘 생활할 수 있을지.. 기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게 도착해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드디어 내가 내릴 역에 도착했다. 정말 조그만, 역무원도, 변변찮은 역사도 없는 작은 간이역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내린 사람은 나를 포함해 총 4명. 큰 짐을 낑낑거리며 들고 내린 우리 넷은 서로를 보며 순간 워크캠프 참가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함께 캠프장소로 걷기 시작했다.
길을 헤매다가 도착한 곳에서는 이미 모두들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툰 영어로 인사를 건네고 리더들이 준비한 식사를 한 후 첫 날은 몇 명이나 모였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정신 없이 지나갔다. 이튿날이 되어 아침을 먹고 리더의 주도 하에 게임을 하면서 서로 이름을 익히고 모국의 게임을 알려주면서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한국 참가자들이 전부 대학생이었던 반면에 외국친구들은 대부분 미성년자였다. 알고 보니 우리 프로그램이 미성년자들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고등학생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셋째 날인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우리가 한 일은 오랜 역사를 지닌 수도원의 보수공사를 돕는 것이었다. 특별히 머리는 쓰지 않아도 되지만 난생처음 하는 막노동에 온몸의 근육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오전 10시부터 1시,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하루 총 5시간 일을 했다. 노동은 매일매일 달라졌는데 나무를 잘라 침대와 의자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하고 땅을 파고 벽을 허물거나 모래를 날라 건축 작업을 돕기도 했다. 수도원 보수공사라 그런지 대체로 힘쓰는 일이 많고 먼지가 굉장히 많은 작업환경이었는데도 모두들 열심히 일했다. 다만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해야하는지, 이것이 끝나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일을 하는 점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도 어린 친구들이 한 마디 불평불만도 없이 씩씩하게 삽질도 하고 모래도 나르며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니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역시 문화의 차이인지 의사표현도 확실하고 책임감과 독립심이 굉장해서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겠다고 해도 자기가 하겠다며 끝까지 거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첫 주는 정말 시간도 안가고 내가 이 일들을 삼주 동안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주에 우리가 새로 만든 길들과 침대, 의자, 벽돌담 등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음식은 항상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장소가 워낙 외진 곳이라 슈퍼마켓이 멀리 있어 우리가 쇼핑리스트를 적어놓으면 리더들이 일주일에 3번 장을 봐왔다. 먹고 싶은 것이나 필요한 요리재료를 적으면 가능한 예산범위 내에서는 사줬기 때문에 간식과 과일도 많았다. 식사는 2명씩 짝을 지어 하루씩 당번을 했다. 조는 자유롭게 정했고, 각자 하고 싶은 음식을 만들었다. 전통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스파게티나 피자 등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파스타와 비빔밥, 불고기를 했었다. 비빔밥은 고추장 때문에 조금 맵다는 평이 많았고 불고기는 다들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우리가 준비하려고 했던 음식들은 대부분 고기가 많이 들어가는데 채식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따로 메뉴를 생각해야 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채식주의자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음식을 준비해 가면 좋을 것 같다. 외국친구들도 각자 나라의 음식들을 준비하거나 간단하게 스프와 빵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특이한 점은 주 메뉴보다 디저트를 좀 더 신경 써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 입맛에 맞지 않아도 다들 거부감 없이 서로의 음식을 맛보고 칭찬해주는 분위기였다.
노동 외의 시간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도 보고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외국친구들과 자전거를 함께 타거나 거실에 모여 게임을 하기도 했고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놀라웠던 점은 내 생각보다 한국문화에 대해 그들이 훨씬 많이, 그리고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조차도 모르는 가수들의 노래를 알고 있거나 한국의 인기 있던 드라마, 배우들을 줄줄 나열하는 것을 보고 우리 문화가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그들의 문화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가서 조금 미안했다. 평소엔 관심이 없었어도 적어도 내가 참가하는 캠프에 오는 나라에 대해서는 일부러라도 좀 조사하고 공부하고 갔어야 하는데 내가 많이 부족했다.
주말에는 함께 근교로 여행을 갔다. 첫 주에는 슈베린, 둘째 주에는 베를린을 갔는데 교통비는 그룹머니로 충당하고 그곳에서 사용하는 식비, 쇼핑 등은 개별로 사용했다. 그런데 미성년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여행을 가서 자유시간이 없었고 자유시간을 줘도 최소 3명단위로 움직이라고 해서 조금 불편했다.
독일과 프랑스 참가자들은 모두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영어로 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데 한국 참가자들이 유난히 영어를 못해서 조금 애를 먹기도 했다. 가령 토의를 해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우리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알아듣더라도 내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 그냥 다수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려고 했는데 리더들은 그런 우리를 조금 답답해했던 것 같다. 문화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별로 원하지 않아도 다수가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 수긍하고 함께 하는 분위기인데 비해, 외국인들은 자기 주장이 확실하기 때문에 남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본인의 좋고 싫은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해주길 바란 것 같다.
비록 언어 때문에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3주 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참가자들이 한 명 한 명 떠나갈 때마다 굉장히 허전하고 아쉬웠다. 캠프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는 정말 마음 한 켠이 시큰해서 다들 눈물을 글썽이며 작별인사를 했을 정도로 많이 친해지고 정이 들었었다. 아마도 너무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말로는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다들 알기에 더 아쉽고 헤어지기 싫었던 것 같다.
캠프가 끝난 지 3주정도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나 그립고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며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집을 떠나 누군가와 함께 생활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는데, 심지어 낯선 나라에서 외국인과 함께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내겐 큰 모험과도 같았다. 그런데 캠프가 끝난 지금, 난 내 선택에 한 치의 후회도 없다. 몸은 고됐지만 난 다른 문화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나이와 국경, 성별, 인종을 넘어 친구가 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길을 헤매다가 도착한 곳에서는 이미 모두들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툰 영어로 인사를 건네고 리더들이 준비한 식사를 한 후 첫 날은 몇 명이나 모였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정신 없이 지나갔다. 이튿날이 되어 아침을 먹고 리더의 주도 하에 게임을 하면서 서로 이름을 익히고 모국의 게임을 알려주면서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한국 참가자들이 전부 대학생이었던 반면에 외국친구들은 대부분 미성년자였다. 알고 보니 우리 프로그램이 미성년자들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고등학생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셋째 날인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우리가 한 일은 오랜 역사를 지닌 수도원의 보수공사를 돕는 것이었다. 특별히 머리는 쓰지 않아도 되지만 난생처음 하는 막노동에 온몸의 근육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오전 10시부터 1시,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하루 총 5시간 일을 했다. 노동은 매일매일 달라졌는데 나무를 잘라 침대와 의자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하고 땅을 파고 벽을 허물거나 모래를 날라 건축 작업을 돕기도 했다. 수도원 보수공사라 그런지 대체로 힘쓰는 일이 많고 먼지가 굉장히 많은 작업환경이었는데도 모두들 열심히 일했다. 다만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해야하는지, 이것이 끝나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일을 하는 점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도 어린 친구들이 한 마디 불평불만도 없이 씩씩하게 삽질도 하고 모래도 나르며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니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역시 문화의 차이인지 의사표현도 확실하고 책임감과 독립심이 굉장해서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겠다고 해도 자기가 하겠다며 끝까지 거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첫 주는 정말 시간도 안가고 내가 이 일들을 삼주 동안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주에 우리가 새로 만든 길들과 침대, 의자, 벽돌담 등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음식은 항상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장소가 워낙 외진 곳이라 슈퍼마켓이 멀리 있어 우리가 쇼핑리스트를 적어놓으면 리더들이 일주일에 3번 장을 봐왔다. 먹고 싶은 것이나 필요한 요리재료를 적으면 가능한 예산범위 내에서는 사줬기 때문에 간식과 과일도 많았다. 식사는 2명씩 짝을 지어 하루씩 당번을 했다. 조는 자유롭게 정했고, 각자 하고 싶은 음식을 만들었다. 전통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스파게티나 피자 등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파스타와 비빔밥, 불고기를 했었다. 비빔밥은 고추장 때문에 조금 맵다는 평이 많았고 불고기는 다들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우리가 준비하려고 했던 음식들은 대부분 고기가 많이 들어가는데 채식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따로 메뉴를 생각해야 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채식주의자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음식을 준비해 가면 좋을 것 같다. 외국친구들도 각자 나라의 음식들을 준비하거나 간단하게 스프와 빵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특이한 점은 주 메뉴보다 디저트를 좀 더 신경 써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 입맛에 맞지 않아도 다들 거부감 없이 서로의 음식을 맛보고 칭찬해주는 분위기였다.
노동 외의 시간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도 보고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외국친구들과 자전거를 함께 타거나 거실에 모여 게임을 하기도 했고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놀라웠던 점은 내 생각보다 한국문화에 대해 그들이 훨씬 많이, 그리고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조차도 모르는 가수들의 노래를 알고 있거나 한국의 인기 있던 드라마, 배우들을 줄줄 나열하는 것을 보고 우리 문화가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그들의 문화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가서 조금 미안했다. 평소엔 관심이 없었어도 적어도 내가 참가하는 캠프에 오는 나라에 대해서는 일부러라도 좀 조사하고 공부하고 갔어야 하는데 내가 많이 부족했다.
주말에는 함께 근교로 여행을 갔다. 첫 주에는 슈베린, 둘째 주에는 베를린을 갔는데 교통비는 그룹머니로 충당하고 그곳에서 사용하는 식비, 쇼핑 등은 개별로 사용했다. 그런데 미성년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여행을 가서 자유시간이 없었고 자유시간을 줘도 최소 3명단위로 움직이라고 해서 조금 불편했다.
독일과 프랑스 참가자들은 모두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영어로 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데 한국 참가자들이 유난히 영어를 못해서 조금 애를 먹기도 했다. 가령 토의를 해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우리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알아듣더라도 내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 그냥 다수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려고 했는데 리더들은 그런 우리를 조금 답답해했던 것 같다. 문화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별로 원하지 않아도 다수가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 수긍하고 함께 하는 분위기인데 비해, 외국인들은 자기 주장이 확실하기 때문에 남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본인의 좋고 싫은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해주길 바란 것 같다.
비록 언어 때문에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3주 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참가자들이 한 명 한 명 떠나갈 때마다 굉장히 허전하고 아쉬웠다. 캠프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는 정말 마음 한 켠이 시큰해서 다들 눈물을 글썽이며 작별인사를 했을 정도로 많이 친해지고 정이 들었었다. 아마도 너무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말로는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다들 알기에 더 아쉽고 헤어지기 싫었던 것 같다.
캠프가 끝난 지 3주정도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나 그립고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며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집을 떠나 누군가와 함께 생활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는데, 심지어 낯선 나라에서 외국인과 함께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내겐 큰 모험과도 같았다. 그런데 캠프가 끝난 지금, 난 내 선택에 한 치의 후회도 없다. 몸은 고됐지만 난 다른 문화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나이와 국경, 성별, 인종을 넘어 친구가 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