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독일 잉골슈타트, 잊지 못할 3주 독일에서 만난 특별한

작성자 김정은
독일 IJGD 2322 · RENO 2012. 06 독일 잉골슈타트

A NEW EDUCATION CENTER FOR INGOLSTAD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4학년 1학기, 나에게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학기.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집으로 왔다. 어느 순간, 나의 대학생 시절을 학교-집-친구, 이렇게로만 얼룩지게 할 수 없었다. 그 날로 당장 나는 휴학을 결심했고, 휴학계를 제출하고, 유럽여행 간다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그 때 당시 내 친구는 학교를 휴학하고 유럽여행을 가기위해 돈을 모으고 있던 중이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인데, 계획을 들어보니 유럽여행과 워크캠프라는 것을 간다고 했다. 워크캠프가 무엇인지 들어보니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를 좋아하고 여행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것은 굉장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바로 워크캠프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가 하고싶은 분야를 검색했다. 친구와의 상의 끝에 1지망부터 3지망 까지를 고르고 신청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여행준비도 차차 했다. 기나긴 기다림의 끝에 워크캠프 참가 확정이 결정되었고 인포싯을 받았을 때의 그 설렘이란 말로 하기 어려웠다 !! 드디어 나는 독일 워크캠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워크캠프에 앞서 2~3주간은 친구와 이탈리아, 프랑스를 여행했고 다음에 독일로 이동해 워크캠프에 참여했다. 내가 참가한 곳은 독일 잉골슈타트! 아우디 본사가 있는 지역이었다. 아우디 본사가 있다는 말에 굉장히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를 생각했는데 막상 알아보니 소도시였다. 그렇게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뮌헨에서 잉골슈타트로 갔다. 원래 우리가 내려야 하는 곳은 잉골슈타트중앙역! 그런데 지도상으로는 잉골슈타트 북역이 더 가까웠다. 친구와 고민고민 하다가 더 가까운 잉골슈타트 북역에 내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버스도, 택시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물어물어 택시를 타고 비오는 토요일저녁에 IJGD 본부로 향했다.
본부에 들어서자 너네가 코리안이냐며 한 서양 남자애가 말을 걸었다. 따라오라는 곳으로 가니 여자애들 방이 나왔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들어서니 한 여자애가 간이 침대를 소개시켜 주고 다른 여자애들도 소개시켜줬다. 이탈리아에서 온 베로니카와 주지, 우크라이나에서 온 케이트와 , 일본에서 온 아이, 그리고 우리 둘! 그리고 벨기에에서 온 샤샤, 알제리에서 온 미두, 미루도, 메디, 멕시코에서 온 메모, 프레디코, 미국에서 온 팀, 우크라이나에서 온 아이들 두명!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고 베로니카와 주지가 준비한 파스타를 먹고, 이름외우기 게임, 식사당번 정하기, 담넘어가기 게임! 이런 것들을 하고 간단한 알콜과 함께 두근두근 첫날의 워캠의 밤은 저물어 갔다.
토요일에 도착해서 주말 이틀동안 약간의 적응과정을 거친 후 월요일! 우리는 작업현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원래 머물던 본부에서 자전거로 20분 정도 떨어진 어느 국립공원 근처였다. 작업현장으로 향한 우리는 파란 작업복, 빨간 작업모를 나눠받았다. 파란 작업복을 입고 빨간 작업모를 나눠쓰니 서로서로 마리오 같다며 낄낄 댔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처음 주어진 일은 우리가 리모델링 해야 하는 집 옆의 공터를 손질하고 천막을 설치하는 일! 일단 우리 모두는 협동해서 잡초를 제거하고 흙을 파내고 땅을 고른 후 천막을 설치했다. 우리는 이 천막의 용도가 뭘까 하며 우리가 여기서 자게 될 것이냐는 둥, 그러기엔 너무 작다는 둥,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한 독일인 아저씨와 프랑스인 아저씨가 오셨다. 그 두분은 이번 리모델링의 총 책임자라고 하시며 이건 우리가 점심먹을 때 쓰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이번 워크캠프에서 해야하는 일은 폐허를 다듬어서 이곳 지역 아이들의 교육센터로 거듭나게 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3주동안 과연 그 작업들을 다 끝마칠 수 있을 까 싶기도 했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그 두분이 그날 그날의 일을 배정해 주셨다.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내가 가장 처음 맡게 된 일은 우리가 앞으로 쓰게 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외국아이들이나 우리나라 아이들이나 화장실 청소하기가 싫은건 똑 같은 마음이었다. 처음엔 어디가 어딘지 여기가 화장실이 맞는지 구분도 안갔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깨끗한 화장실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첫 봉사날을 마무리 했다. 이 날 이후 우리의 일은 점점 힘들어져 갔다. 건물의 외벽을 부수어 그 자리에 큰 창을 만들기, 건물 내벽의 페인트 긁어내기, 건물안 바닥의 장판 긁어내기, 천장 뜯어내기, 건물의 골조만 남기고 없앨 수 있는 건 모조리 없앴다 !!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건물 밖에 비버의 집을 만들었다. 날씨는 뜨거웠고, 우리의 리모델링 의지도 강했다. 주중에는 낮에는 다함께 집을 고치고, 밤에는 티피안에서 음주가무를 즐겼다. 우리의 일은 주5일제 였다. 4일은 리모델링 현장에서 일을 하고 하루는 점심,저녁 준비, 우리가 머무르는 부엌 청소를 했다. 낮에 고된일을 즐기고 온 후에 밤에 즐기는 음주가무는 정말 꿀맛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국립공원근처 캠핑장에 있었다. 이곳은 와이파이도 안녕, 컴퓨터도 안녕인 곳이었다. 그야말로 숲 속 작은집이었는데, 밤이면 별들이 내 머리위로 쏟아지고, 반딧불이가 돌아다녔다. 처음에 외국인 친구들은 내 한국이름인 정은을 그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킴으로 부르곤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매번 성을 불러서 미안하다며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정잉~ 청응~ 졍힝~ 등등 다양한 발음으로 불렸지만 그 아이들이 어려운 내 이름을 부르려고 노력한다는 것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었다.
우리의 리모델링은 잉골슈타트 내에서 꽤 큰 행사였었는지, 신문사에서도 사진을 찍어가고 지역뉴스에서도 나와서 인터뷰를 해갔다. 며칠 후 우리는 신문과 방송에 나온 우리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월드스타라며 낄낄대고 웃었다.
마침 우리가 워크캠프 하는 기간은 유로2012가 열리는 시기였다. 유로2012경기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기차로 1시간 20분 거리인 뮌헨이나 잉골슈타트 시내의 펍에가서 축구를 봤다. 한국에 있을 때도 축구는 그닥 챙겨보지 않는 나였는데, 외국인 친구들과 맥주한잔하며 보는 축구는 정말 재미있었다. 우리는 주중에는 일을 했고 주말에는 다함께 자유시간을 즐겼다. 주말에 우리는 기차로 3시간 거리인 짤츠부르크에 다녀왔다. 피곤하긴했지만 다함께 다녀온 짤츠부르크는 너무나 이뻤다. 그리고 또 다른 주말엔 뮌헨에 다녀왔다. 날씨가 추워졌기 때문에 뮌헨에가서 우리는 긴 옷을 사고 페스트를 즐겼다. 그 날도 축구가 열리는 날이어서 다함께 축구하며 맥주마시며 즐겁게 놀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주말, 잉골슈타트는 아우디 본사가 있는 만큼 아우디팩토리엔 꼭 가줘야 한다며 아우디팩토리에 다녀왔다.
이렇게 멕시코, 알제리, 일본, 미국, 벨기에,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한국에서 모여든 15명의 아이들에게 점점 헤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헤어질 날이 다가오자, 애들은 한 명씩 각자 갈 길을 가게 되었다. 정해진 퇴소 날짜는 6월 30일 이었지만, 사정상 먼저 떠나는 아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3주동안 정이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일까 눈물과 함께 아쉬움을 안고 페이스북으로 연락하자며 잘 지내라고 인사했다.
그 후 우리는 페이스북에 우리만의 공간-IJGD2322 WORKCAMP IN INGOLSTADT-을 만들었고, 우리는 여전히 활발하게 자기 소식을 알리며 지내고 있다. 워크캠프로 인해 우리나라문화에 다시 돌아봤고, 그리고 다른나라의 문화에 대한 존중을 알게 되었다.
아참, 우리의 리모델링은 모두 다 끝마치진 못하였다. 워크캠프 리더는 내년에 또 오라고, ! 꼭 다시 만나자고 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이렇게 나의 23살 한여름의 낯선 8개국 아이들과의 3주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