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함피, 낯선 곳에서 찾은 익숙함

작성자 김미희
인도 FSL WC 511 · SOCI/HERI 2011. 12 인도 HAMPI

Hamp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 첫 만남, 첫 느낌, 첫 경험 –

긴 여행을 떠날 때 마다 참여한 워크캠프.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이다. 망설임 없이 이번 인도여행에서도 워크캠프에 참가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운 좋게도 가고 싶었던 도시에, 딱 좋은 날짜에 워크캠프가 있었다. 내가 참가한 지역은 인도의 함피이다. 함피는 인도 남서부 까르나따까 주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인도의 고대 서사시인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왕국이었으며, 몇 백년동안 힌두왕조의 수도로써 번성한 곳이었기 때문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지가 굉장히 많다. 많은 현지인들이 순례를 오는 신성한 도시이기도 하다. 마치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하달까.

함피에 도착하기 전 두 달간 북인도를 여행하고, 인도의 남쪽에 있는 섬 스리랑카로 넘어가 스리랑카를 여행한 후, 남인도의 첸나이로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다. 첸나이에서 함피로 바로 가는 기차가 없었기 때문에 뱅갈로르와 호스펫을 거쳐야 했다. 기차 안에서 모두 합쳐 스무시간 정도보낸 후, 안전하게 호스펫에 도착했다. 호스펫에 도착하자마자 오토릭샤꾼이 들러붙었다. 여기서 함피까지 80루피(한화 약1700원)로 갈수 있다며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버스정류장까지 조금만 걸어가면 5루피(한화 약125원)를 주고 갈 수 있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터라 고개를 옆으로 까딱 해 긍정의 사인을 보낸 후 오토릭샤에 올라탔다. 인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도의 매력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이동하는 도시마다 또 다른 나라에 온 듯 다른 분위기로 기분 좋은 낯설음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함피는 마을 전체가 기이한 돌들로 이루어져 마치 외계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곳이었다. 괴이한 돌들로 둘러 싸인 함피의 풍경은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보았던 광경과 비슷한 뭉클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의 미팅포인트는 은행 앞이었다. 출출한 배를 채우려 짜이 한잔을 마시며 몇 십 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몇 명의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지나갔던가. 덩치가 큰 인도남자가 “ 미희? “ 하고 말을 걸었다. 함피 워크캠프 매니저인 디니쉬였다. 그 옆에는 건우라는 남자애가 서있었다. 건우는 뭄바이에서 갓 도착해서인지 얼굴이 뽀송했다. 곧이어 자기 몸보다 더 큰 가방을 짊어진 윤미를 만나고, 금발의 뽀글머리를 한 독일인 스테피도 만나 2주 동안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될 비슈누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이탈리아에서 온 글로리아와 산드라가 먼저 와 있었다. 이탈리아 2명, 독일 1명, 한국 3명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인 샤시의 가족들과 매니저인 디니쉬. 2주 동안 함께 할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점심을 먹고 간단히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남인도 답게 바나나 잎을 접시 삼아 인도의 정식(?) 이라고 할 수 있는 탈리를 먹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디니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만약 계획했던 것이 성사되지 못해도 실망하거나 화내지 말라. 항상 Unexpected한 일이 일어날 것이야. This is INDIA! ” 라고 말하였다. 현지인 조차도 저렇게 말하다니. 역시 이것 또한 인도의 매력이다. Unexpected. 더욱 흥분되었다.

운이 좋게도 마침 우리가 처음으로 모인 날이 함피에서 큰 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저녁에 환영식을 하고 축제를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샤시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인도스타일로 환영식을 해주었다. 이마에 빨간 빈디를 찍고 목에 꽃을 걸어주었다. 세 번의 워크캠프 중 가장 최고의 환영식이었다. 그렇게 꽃목걸이를 하고 우리는 맨발로 축제를 갔다. 사원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신발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아예 벗고 가라는 것이었다. 눈 깜박할 새에 일행을 잃어버릴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꽃목걸이를 하고 축제를 가니 사람들이 우릴 보고 낄낄거리고 재밌어하며 악수를 청했다. 결혼할 때 그렇게 하고 돌아다니는 거라며. 졸지에 우리 모두 건우의 부인이 되었다. 그렇게 축제를 즐긴 후, 설렘으로 들 뜬 첫날밤이 지나가는 듯. 하였으나 나는 배탈이 나서 새벽 내내 한잠도 못자고 고생을 했다. 아침까지 설사를 하고 위에 남아있던 잉여물 들을 게워냈다. 두 달 동안 인도에서 지내면서 한 번도 이런 일 없이 오장육부가 건강히 움직였는데 물갈이라니. 함피에서 신고식을 톡톡히 치러냈다.

- 워크캠프에서의 WORK –

우리가 2주 동안 매일 하게 될 일은 두 가지였다. 오전에는 함피의 유적지를 보존,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 함피는 경주처럼 마을 곳곳에 신성한 사원들과 유적지들이 널려 있는데 관리가 부족하여 정글이 되어있었다. 함피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인 비루팍샤 사원 뒷길로 쭉 올라 가면 작은 사원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서 낫과 청소도구 등을 사용해 잡초를 제거하고, 호수에 떠있는 이끼를 제거하였다. 내 눈엔 부유물이 둥둥 떠 있는 똥물로 보이는데 인도사람들은 이마저도 신성한 물로 여겨 가끔 호수에 와서 손바닥에 물을 떠서 머리에 묻히고 입을 맞추기도 했다. 이끼를 제거하고 물을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낙천적인 인도인답게 디니쉬는 일하는 중간 중간 댄스타임을 선보이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장난을 치기도 했다. 지나가던 인도인들은 신기한 듯 우리가 일하는 내내 구경을 하고 몇 몇 동네 아이들은 따라와 도와주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와 같이 생활했던 샤시의 딸들은 영어로 수업을 하고, 학교 시설도 좋고, 교복도 예쁘고, 셔틀버스까지 운행하는 사립학교에 다녔는데 우리가 봉사활동을 했던 학교는 작은 운동장에 내 자취방 정도 되는 크기의 허름한 시멘트 건물하나만 덜렁 서있는 학교였다. 꾀죄죄한 교복을 입고 얼굴에 마른 콧물 자국을 묻힌 채 맨발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서른 명 정도 있었는데 교실엔 책걸상이 하나도 없고, 심지어 화장실도 없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아이들은 모두 공터 구석에서 일을 해결했다. 쉬는 시간 수업 시간의 정확한 경계도 없이 선생님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수업을 했다. 한마디로 후진 학교였다. 마치. 사진에서만 보던 전쟁 후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이 이런 곳에서 공부를 했겠다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밝고 희망차 보였다. 컴퓨터 게임과 학원 공부에 찌든 우리나라의 어린이보다 깨끗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체육, 영어시간을 나누어 체육시간에는 공놀이를 하거나 줄넘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고, 영어시간에는 노래를 배우고 단어 공부를 하였다. 아이들은 겨우 동물 이름이나, 인사 정도의 기본적인 단어만 영어로 쓸 줄 알았지만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은 우릴 좋아하고 우린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것만으로도 알찬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좋은 옷, 좋은 학용품 가지지 못했지만 우리들과 악수하고, 체육활동을 하고 영어단어 하나하나 깨알 같이 알아가는 그 순간순간에 더없이 행복해 하는.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마지막 날. 이탈리아에서 온 산드라와 글로리아는 여행 전 요가클래스에서 기부금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새 교복과 학용품 선물을 사다주었고 우리들은 학교에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벽화를 그렸다.

그리고 우리가 함피를 위해 일하는 것을 취재하기 위해 까르나따까 주의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몰려와 인터뷰를 하고 촬영을 해야 했다.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조차 이런 일을 하지 않는데 외국인이 와서 일을 한다며 모두들 감탄했다. 뉴스와 인터넷 신문, 유투브에 우리의 활동이 알려져 사람들은 우리에게 고마워 하고 관심을 보였다. 몇 몇 사람들은 길을 지나가다가도 “ 엇, 뉴스에서 너의 얼굴을 봤어! ” 라고 하며 악수를 청했다. 비록 2주밖에 되지 않는 일시적인 일이었지만 그저 관망하는 여행자가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참여하고 이해하며 도움을 준 이웃이 된 것 같아 굉장히 뿌듯했다. 항상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시각, 미각 경험 등의 감각적인 기억보다 인정이 가장 따뜻하고 오래 남는다는 걸 재차 깨닫는다. 드넓은 인도에서 함피 워크캠프에 참여했던 것은 아마도 여행 중 최고의 선택이자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