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고성, 6번의 도전 끝에 얻은 행복

작성자 강수진
프랑스 REMPART09 · CONS/ RENO 2012. 08 Chateau de Bissy-sur-fley, Brougogne

Château de Bissy-sur-Fle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시작 전

교환학생을 시작하기 전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던 나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워크캠프에 지원하기로 했다. 자원봉사이긴 하지만 활동범위가 다양하고 내가 원하는 지역을 선택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국적의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한 순간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지원 과정에서 다섯 번이나 떨어졌는데, 나를 통해 워크캠프를 알게 되어 나보다 늦게 지원하게 된 친구는 진작에 합격을 하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발생했다. 안되면 어쩔 수 없지, 싶었지만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될 때까지 해보자’하는 심정으로 지원했고 결국 여섯 번째 지원 끝에 간신히 참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합격하게 된 워크캠프. 무조건 합격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캠프에 대한 정보를 받아보니 걱정이 앞섰다. 내가 가게 된 캠프에서 하게 될 일은 프랑스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고성(古成)을 복원하는 것!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를 배웠던 나에게 프랑스라는 나라는 그다지 낯선 곳은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배우기만 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도 초행인데 무거운 짐을 들고 시골마을까지 찾아가야 한다니. 당시에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프랑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의 기차 시스템은 사람들의 이용 빈도가 높으니만큼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이용하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간 Brougogne 지방의 Chalon sur saone. 정확한 미팅 시간을 정해놓지 않은 탓에 도착하고 나서도 불안했는데 누군가 한국인이냐며 말을 걸었다. 워크캠프 후기에서 많이 읽었던 반가운 한국인 참가자와의 만남이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한국어 몇 마디에 바로 안심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예상도 하지 못하고 기차역 앞에서 하염없이 워크캠프 담당자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워크캠프에 참가하러 온 것이냐고 어눌한 영어로 묻는 무리가 다가왔다. Strasbroug에서 온 Pierr, Nante에서 온 Aurelien, Paris에서 온 Christelle. 프랑스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참가자를 기다리는 동안 Chalon sur saone을 구경했다. 마지막 참가자는 Grenoble에서 온 Berengere. 이렇게 모이고 보니 결국 우리 캠프에는 프랑스인과 한국인, 단 두 개의 국적자 밖에 없었다. 내가 예상했던 워크캠프와는 약간 다른 구성이었다. 나중에 일을 하다 보니 왜 이렇게 국적이 다양하기 힘든 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어리둥절했었다.

캠프로 가는 길, 전형적인 브루고뉴 지방의 풍경이라며 가장 큰언니 Berengere가 소개하는 마을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조용했다. 드넓게 펼쳐진 산지, 포도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그리고 교회와 성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제라늄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마을들의 모습에 잠시 취해있다가 와인가게에 들렀다. 이것 저것 시음도 해보고 브루고뉴의 대표적인 치즈빵도 먹고, 와인을 한 가득 차에 싣고 돌아오면서 이날 잠깐 스쳐갔던 모습들이 내가 앞으로 2주간 브루고뉴에 머물면서 체험하게 될 문화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우리가 만났던 Chalon sur saone에서도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Bissy sur fley의 고성. 한눈에 봐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과 내부. 워크캠프 참가하기 전에 받았던 인포시트에서 본 그대로였다. 성에서 주최했던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이곳을 관광유적지로 개발하려는 성주의 노력들이 곳곳에 보였는데, 우리가 앞으로 작업해야 할 일들도 앞으로의 관광객 유치와 마을의 유적 보존에 도움을 줄 만한 일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Bissy sur fley에서의 일상과 작업

여기서 2주를 어떻게 보내려나… 하는 걱정도 잠시,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잠자리에서 여행의 고단함을 풀었다. 아주 청결하지는 않아도 있을 건 다 있는 성에 곧 적응했다. 이왕 고생하러 온 건데 내 맘에 드는 것들만 찾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된 작업! 아침 9시부터 12시 30분까지 오전일을 하고 2시까지 점심시간, 다시 2시부터 5시까지 오후 일을 하고 나면 하루의 작업은 끝나게 된다. 우리가 했던 일은 쉽게 말하자면 돌담을 쌓는 것이었지만, 이게 말처럼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우리 캠프의 기술자인 Aurelien의 지시에 따라 우선은 허물어진 담 주변의 잡초들을 제거하고, 담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돌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작은 돌, 큰 돌, 넓적한 돌, 평평한 돌…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돌들을 비슷한 것들끼리 분류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다음 작업은 크고 안정적으로 넓은 돌들을 맨 아래층에 배치하고, 수평과 높이를 잘 맞춰서 예쁘게 쌓는 것이었다. 퍼즐을 맞추듯이 크기와 생김새를 잘 보고 거기에 맞는 돌들을 찾아 올려놓거나, 큰 돌들 사이사이를 작은 돌들로 채우고, 돌이 흔들리지 않도록 작은 돌로 무게중심을 맞춰주는 것들이 우리가 매일같이 한 일이었다. 돌들은 대체적으로 무겁고, 작은 돌들이 부족하면 큰 돌을 깨기도 했는데 이것 또한 힘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책상 앞에서만 앉아 힘 쓰는 일을 해보지 않았던 나에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때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남들이 일할 때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야 하던 때도 있었다. 기술자의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그가 프랑스어로 설명하면 다른 캠프 참가자들은 이해하고 바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나와 다른 한국인 참가자는 누군가 영어로 설명해 주기 전에 돌에 손을 대기도 어려웠다. 한번 지시가 내려지면 비슷한 일을 거의 매일 반복했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척하면 척’ 하는 수준에 이르긴 했지만, 작업 초반에는 어찌할 줄을 몰라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작업이 진행되어 가면서 완성되어가는 예쁜 돌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동안 고생했던 건 아무래도 좋고 그저 뿌듯함만 느껴졌다. 비록 큰 도움은 못되었을지 몰라도 내가 빠졌다면 저 만큼 하지 못 했을 거야,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겨나기도 했고.

매일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다 보면 몸이 힘든 건 물론이고 정신도 매우 힘들어진다. 일을 할 때 흥이라도 생기라고 한국 노래를 틀어놨던 적이 있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프랑스 친구들에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오히려 방해가 됐는지 꺼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이후로 일 할 때는 그저 묵묵히 일만 하게 되었고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 걸까, 하고 자책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소처럼 일만 하면 워크캠프가 아니다! 이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의 고단함을 잊게 해줄 즐거운 경험도 많이 할 수 있었는데, 사실 이 재미에 워크캠프를 하는구나 싶었다.

1. 지역주민들과의 만남
캠프의 시작과 마무리에서 이곳 주민들과 다 함께 모여 파티를 가졌다. 각자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을 나누고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편안한 분위기의 파티였는데 이런 파티 형식이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아 생소하면서도, 너무나 자유롭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캠프 참가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주민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사실 그때 먹었던 홈메이드 피자와 브루고뉴의 전통 음식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저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우리를 보고 신기해 하면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브루고뉴의 작은 마을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 다른 워크캠프 친구들과의 교류
캠프를 하면서 중간중간 다른 워크캠프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캠프 초반에는 Crusille 이라는 동네에서 포도밭의 창고를 짓는 작업을 하는 캠프 친구들을 만나러 갔는데, 비록 일은 조금 달라도 함께 고생하는 동지들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캠프에 한국인 참가자는 없었지만, 동양인이 흔치 않은 브루고뉴에서 같은 동양인인 중국 참가자를 만날 수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두 번째로 만났던 캠프 친구들은 직접 우리가 일하는 Bissy 성에 찾아왔다. 도서관에서 서가를 정리하는 일을 하는 캠프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캠프 초반에 허둥지둥 적응하느라 바빴던 우리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각 캠프가 가지고 있는 고충들을 나누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각자의 일터를 둘러보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 더 낫네?’ 라는 이상한 위안을 얻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3. 주변 소도시로의 견학+ 와인 탐방
워크캠프 활동을 하면서 주말같이 잠깐 짬이 나는 시간에 Cluny나 Beaune같은 소도시로 견학을 다닐 수 있었다. 우리가 다녀온 Cluny Abbey나 Beaune의 Hotel-dieu는 사실 혼자 여행하면 절대 갈 수 없을 것 같은, 생소하지만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유적지인데 두 소도시를 다니면서 선조들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그것의 소중하게 생각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유적지 말고도 와인으로 유명한 브루고뉴 지방답게 이동하는 곳곳에서 드넓게 펼쳐진 푸른 포도밭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넓은 포도밭만큼 우리 캠프에서는 와인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많았다. 사실 성을 떠나 차를 타고 소풍을 갈 기회만 생겼다 하면 한 박스씩(!) 와인을 사는 바람에 거의 매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와인을 마실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와인을 마실 기회가 많지 않았고, 마신다고 해도 달짝지근하고 가벼운 와인만 마셔봐서 그런지 처음 브루고뉴 와인을 마셨을 때는 그 깊고 진한 맛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Beaune에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내려다 보면서 점심 식사를 하고, 와인 박물관에 가서 와인을 제조하는 기구들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작은 와인가게에 들러서 TV에서만 보던 와인 저장고에 들어가 시음도 해보는 등 이 씁쓸하고 붉은 와인에 담긴 프랑스 사람들의 자부심과 열정을 느끼게 되면서 그 맛을 점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들렀던 와인 가게는 8대 째 운영되고 있는 오래 된 곳이었는데, 지금까지 와인을 사간 손님들의 출신 국가를 표시해 놓은 세계 지도가 있었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왔는데, 한국인은 우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 와인가게의 첫 한국인 손님이 되었다.) 게다가 워크캠프를 마치고 돌아가는 참가자들에게 우리가 머물렀던 성에서 직접 만든 포도주를 한 병씩 선물로 주셨다! 이때쯤 되니 난 어느새 브루고뉴 와인의 팬이 되어있었다.

4. 호숫가에서의 한때
캠프가 점차 진행되면서 일이 손에 익은 참가자들의 분발 덕분인지, 아니면 뜨거운 태양 때문인지, 작업을 끝마치고 호숫가에 자주 가게 되었다. 애초에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았던 나는 햇빛을 쬐며 낮잠을 자고 친구들이 노는 걸 구경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여유롭고 즐거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한 번은 보트를 빌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호숫가의 끝까지 가봤던 적이 있는데 수풀 뒤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나무들과 그 사이에 걸려있던 하얀 구름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져 있었지만 그때만큼은 작업에 대한 고단함도 잊고, 같이 물장구도 치고 살을 맞대고 놀면서 참가자들 간의 우애가 더욱 깊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5. 매일 저녁을 성대하게
일과를 끝내고 다같이 준비하는 저녁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에 하나였다. 아무래도 일하는 것 보다는 함께 웃고 떠들며 식사 준비를 하는 게 더 재미있고, 더불어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요리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브루고뉴의 특산품인 와인과 치즈, 그리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그들의 요리는 굉장히 창의적이었다- 땅이 넓어서 그런가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구하거나 먹을 수 없는 재료를 이용한 요리들을 맛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사실 외식은 일절 없고 무조건 ‘우리가 먹을 음식은 우리가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캠프 친구들 때문에 가끔은 피곤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내오는 음식을 맛보고 나서야 프랑스인들이 왜 자신의 요리에 자부심을 갖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뒤돌아보면 워크캠프를 하는 동안 음식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내가 다른 캠프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까지 대접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으니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음식이 그리울까 싸 왔던 라면과 통조림부터 불고기까지 다양한 한국의 맛(?)을 보여줬는데, 까다로운 입맛의 프랑스 친구들을 사로잡은 건 의외로 간단한 레시피의 해물 파전이었다. 만드는 데 어렵지 않은 한국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다양한 해물을 넣은 파전을 떠올린 나와 또 다른 한국인 친구. 서툰 솜씨로 얇게 부쳐서 비오는 날 대접했더니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매우 평범한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맛있다면서 한 판을 다 비우고 만드는 법까지 묻는 프랑스 친구들을 보면서 굉장한 뿌듯함을 느꼈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캠프 마무리 때 동네 주민들과 함께하는 파티에서도 해물파전과 호박전을 만들었는데 그 때도 다들 좋아하셨다.

캠프를 마치면서
돌을 하나씩 쌓으면서 대체 이 고된 일은 언제쯤 끝날까… 했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시간은 역시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차곡차곡 제 모양을 갖춰가는 담을 보고 있노라면 그간의 고생이 다 잊혀졌었는데. 사실 마지막 며칠은 체력이 방전되는 바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고 아쉬운 맘도 들었다. 워크캠프 시작부터 끝까지 가장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가장 늦게 일어나던 한국인 참가자 두 명을 프랑스 친구들, 엄밀히 말하면 프랑스 언니 오빠들은 귀여워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줬다. 새벽까지 와인을 마시고 떠들다가도 아침이 되면 가장 먼저 일어나서 자신이 맡은 일을 하고, 다른 참가자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는 여유까지 갖춘 캠프의 리더 Pierr, 일 할 때는 과묵하고 진지하다가도 일이 끝나서 놀러만 나가면 딴 사람처럼 춤추고 노래하던 기술자 Aurelien, 항상 한국 참가자들을 챙겨주고 프랑스 문화에 대해 이것 저것 알려주던 큰언니 Berengere, 듬직하고 상냥한 둘째 언니 Christelle, 조금 일찍 캠프를 떠났지만 새침함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던 Marion,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많이 의지하고, 캠프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줬던 동갑내기 한국 친구 채은이까지! 내가 워크캠프를 하는 동안 얻었던 성취감만큼이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점이 훨씬 많았던 워크캠프.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기대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만 하면-사실 살다 보면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은데!- 재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이 워크캠프는 (느긋한 프랑스 사람들의 영향 때문일까) 내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즐겁고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줬다. 힘들면 힘든 대로 조금 쉬었다가 하더라도 여유롭게 즐기면서! 이런 식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 긍정적인 사고와 여유- 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저번 학기 힘들고 경직되어 있던 나의 마음을 풀어줬던 따사로운 프랑스에서의 나날들은 워크캠프 이후에 이어졌던 혼자만의 여행이나 교환학생 생활을 헤쳐 나갈 배짱도 선사해주었다. Bissy sur fley에서의 워크캠프는 비록 몸은 조금 힘들었어도 얻은 게 참 많은, 프랑스의 브루고뉴산 와인 같은 달콤쌉싸름한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