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기차 환승, 우여곡절 끝에 찾은 행복
Château de Miremont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가 참가했던 워크캠프를 떠올려보면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 같다. 처음 워크캠프개최지역까지 가는 데 기차만 최소3번의 환승을 해야하고, 역에서 우리가 보수할 성이 있는 곳까지는 차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거리였다. 호스트단체와 제대로 연락이 닿지않아, 이틀전에서야 픽업시간을 통보받았다. 파리를 떠나 LES EYZIES로 향하는 길에는 설렘과 걱정이 뒤엉켜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떤 친구들이 참가할 것인지, 다른 워크캠프참가자들의 후기들처럼 나도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상념에 빠졌었다. 완전 시골이라서 기차가 지하철 객차칸 하나만한 것을 타고 가던 중 문제가 생겨 선로위에 십몇분을 서있더니만 결국 환승시간에 늦었다. 미친듯이 짐을 메고 끌고 겨우 환승해서 LES EYZIES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미리 우릴 픽업해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필립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현지에서 성을 복원하고 관리하는 총관리자로 영어는 전혀할 줄 몰랐다. 필립아저씨는 당연히 내가 불어를 하리라고 생각했고,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않아 엄청나게 당황했다. 그래도 복원하기로 했던 성의 이름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2주동안 머무를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성에서 10분거리로 필립아저씨 내외가 10년 전 불모지였던 이곳에 와서 건축한 것이였다. 숙소가 텐트가 아닌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샤워실도 의외로 깨끗했다. 숙소에는 기존 세션에 참가했던 프랑스여학생 아메리와 이 곳에서 워크캠퍼들을 관리하며 성을 복원하는 견습생인 로하언니와 지베오빠, 필립아저씨의 부인인 크리스틴아줌마를 만났다. 뒤이어 다른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7년지기 친구라는 27살의 도시지하설계사 레미와 브누아, 파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건축학도인 21살의 풀린과 18살 레베카, 밤 늦게 도착한 목수인 26살 알렉. 늦은 오후 모든 워캠참가자들은 우리가 복원할 성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직접 성의 외곽지역과 복원장소들을 둘러보았다. 기존의 성은 대부분이 무너지고 땅 속에 대부분이 묻혀있어서 몰랐으나 이 성은 굉장히 큰 규모로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사용되었던 성이였었다. 그러나 시민혁명을 겪으며 심각하게 훼손되어 방치되었다.
2주동안 우리는 8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성의 일부분을 복원하게 되었다. 캠퍼들은 2조로 나뉘어 각각 다른 테스크를 수행했고 한 세션이 끝나면 서로 역할을 바꾸었다. 로하언니가 담당하는 성벽보수와 지베오빠가 담당하는 성을 보수하기 위해 돌들을 지지할 수 있는 골조제작 이렇게 2가지 세션이었다. 성벽보수세션에서는 성벽을 뚫고 나오거나 뒤덮은 나무뿌리와 덩굴들을 제거하고 부서진 회벽을 다시 발라 이전의 모습을 보수했고, 이미 무너진 부분을 새로 복원하기 위해 유적지에 묻히거나 쌓여있는 성벽의 잔재에서 적당한 벽돌을 찾아 성벽의 일부분이 될 수 있도록 정과 망치로 다듬는 일이었다. 성벽이 기울기나 주변의 돌들과의 균형을 고려하여 돌을 다듬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힘든 일이었다. 왜냐하면 현대기술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고대기술에 따라 복원을 했기때문이다. 이틀정도 정질을 계속하자 나중에는 물컵들 힘도 없어서 식사시간에 손을 덜덜 떨려 다른 캠퍼들과 푸념을 늘어놓으며 웃기도 했다. 현대기술없이 고성을 복원하는 과정은 매우 더디고 어려웠으나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첫번째 세션을 진행하면서 나는 전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보존하려는 프랑스인들의 겸손함을 배웠다. LES EYZIES성 복원은 예산이 넉넉치 않아 여러가지로 필요한 도구들이 부족했고 매우 낡았으나 그것에 대해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참가자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과제 수행에 매우 집중했고 매순간마다 그들은 자신이 다듬고 있는 돌의 아름다움이나 중세시대의 특이한 건축기술을 알아가는 것에 매우 흥미로워 했다. 물론 전문가인 필립아저씨는 불어로만 설명을 했으나 다른 캠퍼들이 영어로 통역을 해주거나 눈치껏 알아들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두번째 세션은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붕괴위험이 있는 내부를 지지할 골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나무 판자나 각목같은 걸로 천장을 지탱하는 데 가장 적합한 아치형골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2미터 사다리 위에 직접 올라가 직접 치수를 재고 알맞은 판자를 골라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각 부분을 조립했다. 그리고 각각 만들어진 커다란 6개의 아치를 10Cm 대못으로 서로 연결하여 구조를 더 튼튼하게 했다.
2주동안 워크캠프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우리는 돌아가며 식사와 설겆이를 담당했고 브레이크타임에는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낮잠을 자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전통놀이 가르쳐주어 함께 하기도 하고, 의뢰로 한국과 비슷한 종류의 게임이 많아 우리는 곧잘 따라했다. 한국게임중에 쌀보리랑 손바닥밀치기게임이 가장 단순하고 인기가 많았다. 필립아저씨아들인 쥴은 매일매일 쌀보리게임을 하자며 일하는 곳에 나타나기도 했고, 마을사람들과 바비큐파티를 한 날 마을분의 어린이들한테 인기폭팔이었다. 식사후 애기들이 잔뜩 몰려와서 놀아주는라 정신이 홀랑빠지기도 했다. 마을분들이 내가 아이들과 너무 잘 놀자 프랑스어를 당연히 하는줄아는 소소한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매우 흥미로워 했고 우리나라가 의외로 잘산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한 친구는 한국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외로 한류는 인기가 없었다. 그들이 가장 좋아했던건 친구와 나의 한글교실이었다. 간단한 한국말들을 배우길 원했고 어눌한 발음이지만 틈만나면 말을 붙여와 웃음을 자아냈다. 우리도 물론 어눌한 프랑스어로 그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처음 며칠동안은 나와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프랑스인이여서 그들의 일상생활패턴이 너무 어색했다. 식사순서라던가 술을 물처럼 항시 마시며 식사시간이 정말로 길어서 곤욕스러웠다. 그렇지만 금방 그러한 생활패턴에 익숙해졌다.
또 신기한 점은 문명과 기술로부터 단절된 2주간의 고성에서의 생활을 그들은 휴가처럼 여기며 자연을 즐겼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매일매일 똑같은 풍경에 지루할것 같았지만 주말마다 휴식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새로운 점을 배웠다. 예를 들어 휴일이라면 한국사람들을 오로지 휴식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지만, 프랑스인들은 재충전을 위해 강가에 가서 할일 없이 일광욕을 하면 낮잠을 잔다던가 카누를 빌려 7시간 정도 잔잔한 강을 노저으며 주변의 자연과 유적지를 탐험해본다던가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인들은 남에게 보이기위한 겉치레보다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 해보고 싶은 것에 강한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 도전해보는데 겁이 없었다. 그 것은 너무나 부러운 부분이었고 물질문화에 너무 익숙해졌던 지난 날의 내가 부끄러웠다. 27살 직장인들이 자신의 휴가를 이렇게 의미있게 보낸다는 것이 놀라웠다. 2
주동안 그들에게 배운 것은 인내와 여유 그리고 자신의 삶을 뜻깊게 만들기 위한 경험에 대한 집중이었다. 우리 워캠은 특이하게 테크놀로지와의 단절을 추구해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 2주동안의 즐거웠던 순간 순간들이 오직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해서 너무 아쉽다. 그리고 마지막날 성복원을 지원하는 지역사회의 멤버들과 고성앞마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그분들은 우리가 만든 한국음식을 굉장히 맛있게 먹어주었서 너무 기뻤다. 우리가 만든 음식이 제일 먼저 동이났고 다들 꼬레아푸드이야기에 여념이 없어서 으쓱했다. 또 몇몇 어르신은 동양인이 나와 친구에게 매우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앞선 참가자들과는 다르게 열악한 시설이나 테스크에 불평하지 않고 성실히 일해준 것에 대해 칭찬해줬다.
헤어지는 날 새벽 일찍 기차를 타야되서 작별인사는 전날밤 기념품을 주며 대신했고, 이른 새벽 우리를 역까지 배웅해준 로하언니와 지베오빠가 우리가 기차에 올라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기차에 올라타기 직전 언니와 오빠에게 안녕이라는 말을 건네자마자 친구와 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로하언니와 지베오빠도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오히려 웃는 얼굴로 끝까지 울음을 참으며 우는 우릴 달려주었다. 워크캠프기간동안 서로를 배려해서 한번도 큰 소리안나게 해준 착한 레베카,풀린,아메리,레미,알렉,브누아 모두 너무 그립고 나와 친구에게 언제나 웃음을 준 지베오빠와 착하고 예쁜 로하언니, 동양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크리스틴아줌마, 영어는 전혀 못 하지만 제일 내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매일매일 레고하자며 졸라대던 애교만점 뽀뽀쟁이 꼬맹이 쥴, 부끄러움을 타는 꼬마숙녀 그웬돌린이 너무너무 보고 십다. 마지막으로 서로 지구반대편에 떨어져있지만 함께 많은 기억을 공유한 프랑스인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을 수 있어서 이번 여름은 너무나 행복했었다.
숙소는 성에서 10분거리로 필립아저씨 내외가 10년 전 불모지였던 이곳에 와서 건축한 것이였다. 숙소가 텐트가 아닌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샤워실도 의외로 깨끗했다. 숙소에는 기존 세션에 참가했던 프랑스여학생 아메리와 이 곳에서 워크캠퍼들을 관리하며 성을 복원하는 견습생인 로하언니와 지베오빠, 필립아저씨의 부인인 크리스틴아줌마를 만났다. 뒤이어 다른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7년지기 친구라는 27살의 도시지하설계사 레미와 브누아, 파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건축학도인 21살의 풀린과 18살 레베카, 밤 늦게 도착한 목수인 26살 알렉. 늦은 오후 모든 워캠참가자들은 우리가 복원할 성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직접 성의 외곽지역과 복원장소들을 둘러보았다. 기존의 성은 대부분이 무너지고 땅 속에 대부분이 묻혀있어서 몰랐으나 이 성은 굉장히 큰 규모로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사용되었던 성이였었다. 그러나 시민혁명을 겪으며 심각하게 훼손되어 방치되었다.
2주동안 우리는 8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성의 일부분을 복원하게 되었다. 캠퍼들은 2조로 나뉘어 각각 다른 테스크를 수행했고 한 세션이 끝나면 서로 역할을 바꾸었다. 로하언니가 담당하는 성벽보수와 지베오빠가 담당하는 성을 보수하기 위해 돌들을 지지할 수 있는 골조제작 이렇게 2가지 세션이었다. 성벽보수세션에서는 성벽을 뚫고 나오거나 뒤덮은 나무뿌리와 덩굴들을 제거하고 부서진 회벽을 다시 발라 이전의 모습을 보수했고, 이미 무너진 부분을 새로 복원하기 위해 유적지에 묻히거나 쌓여있는 성벽의 잔재에서 적당한 벽돌을 찾아 성벽의 일부분이 될 수 있도록 정과 망치로 다듬는 일이었다. 성벽이 기울기나 주변의 돌들과의 균형을 고려하여 돌을 다듬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힘든 일이었다. 왜냐하면 현대기술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고대기술에 따라 복원을 했기때문이다. 이틀정도 정질을 계속하자 나중에는 물컵들 힘도 없어서 식사시간에 손을 덜덜 떨려 다른 캠퍼들과 푸념을 늘어놓으며 웃기도 했다. 현대기술없이 고성을 복원하는 과정은 매우 더디고 어려웠으나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첫번째 세션을 진행하면서 나는 전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보존하려는 프랑스인들의 겸손함을 배웠다. LES EYZIES성 복원은 예산이 넉넉치 않아 여러가지로 필요한 도구들이 부족했고 매우 낡았으나 그것에 대해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참가자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과제 수행에 매우 집중했고 매순간마다 그들은 자신이 다듬고 있는 돌의 아름다움이나 중세시대의 특이한 건축기술을 알아가는 것에 매우 흥미로워 했다. 물론 전문가인 필립아저씨는 불어로만 설명을 했으나 다른 캠퍼들이 영어로 통역을 해주거나 눈치껏 알아들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두번째 세션은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붕괴위험이 있는 내부를 지지할 골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나무 판자나 각목같은 걸로 천장을 지탱하는 데 가장 적합한 아치형골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2미터 사다리 위에 직접 올라가 직접 치수를 재고 알맞은 판자를 골라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각 부분을 조립했다. 그리고 각각 만들어진 커다란 6개의 아치를 10Cm 대못으로 서로 연결하여 구조를 더 튼튼하게 했다.
2주동안 워크캠프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우리는 돌아가며 식사와 설겆이를 담당했고 브레이크타임에는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낮잠을 자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전통놀이 가르쳐주어 함께 하기도 하고, 의뢰로 한국과 비슷한 종류의 게임이 많아 우리는 곧잘 따라했다. 한국게임중에 쌀보리랑 손바닥밀치기게임이 가장 단순하고 인기가 많았다. 필립아저씨아들인 쥴은 매일매일 쌀보리게임을 하자며 일하는 곳에 나타나기도 했고, 마을사람들과 바비큐파티를 한 날 마을분의 어린이들한테 인기폭팔이었다. 식사후 애기들이 잔뜩 몰려와서 놀아주는라 정신이 홀랑빠지기도 했다. 마을분들이 내가 아이들과 너무 잘 놀자 프랑스어를 당연히 하는줄아는 소소한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매우 흥미로워 했고 우리나라가 의외로 잘산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한 친구는 한국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외로 한류는 인기가 없었다. 그들이 가장 좋아했던건 친구와 나의 한글교실이었다. 간단한 한국말들을 배우길 원했고 어눌한 발음이지만 틈만나면 말을 붙여와 웃음을 자아냈다. 우리도 물론 어눌한 프랑스어로 그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처음 며칠동안은 나와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프랑스인이여서 그들의 일상생활패턴이 너무 어색했다. 식사순서라던가 술을 물처럼 항시 마시며 식사시간이 정말로 길어서 곤욕스러웠다. 그렇지만 금방 그러한 생활패턴에 익숙해졌다.
또 신기한 점은 문명과 기술로부터 단절된 2주간의 고성에서의 생활을 그들은 휴가처럼 여기며 자연을 즐겼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매일매일 똑같은 풍경에 지루할것 같았지만 주말마다 휴식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새로운 점을 배웠다. 예를 들어 휴일이라면 한국사람들을 오로지 휴식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지만, 프랑스인들은 재충전을 위해 강가에 가서 할일 없이 일광욕을 하면 낮잠을 잔다던가 카누를 빌려 7시간 정도 잔잔한 강을 노저으며 주변의 자연과 유적지를 탐험해본다던가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인들은 남에게 보이기위한 겉치레보다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 해보고 싶은 것에 강한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 도전해보는데 겁이 없었다. 그 것은 너무나 부러운 부분이었고 물질문화에 너무 익숙해졌던 지난 날의 내가 부끄러웠다. 27살 직장인들이 자신의 휴가를 이렇게 의미있게 보낸다는 것이 놀라웠다. 2
주동안 그들에게 배운 것은 인내와 여유 그리고 자신의 삶을 뜻깊게 만들기 위한 경험에 대한 집중이었다. 우리 워캠은 특이하게 테크놀로지와의 단절을 추구해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 2주동안의 즐거웠던 순간 순간들이 오직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해서 너무 아쉽다. 그리고 마지막날 성복원을 지원하는 지역사회의 멤버들과 고성앞마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그분들은 우리가 만든 한국음식을 굉장히 맛있게 먹어주었서 너무 기뻤다. 우리가 만든 음식이 제일 먼저 동이났고 다들 꼬레아푸드이야기에 여념이 없어서 으쓱했다. 또 몇몇 어르신은 동양인이 나와 친구에게 매우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앞선 참가자들과는 다르게 열악한 시설이나 테스크에 불평하지 않고 성실히 일해준 것에 대해 칭찬해줬다.
헤어지는 날 새벽 일찍 기차를 타야되서 작별인사는 전날밤 기념품을 주며 대신했고, 이른 새벽 우리를 역까지 배웅해준 로하언니와 지베오빠가 우리가 기차에 올라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기차에 올라타기 직전 언니와 오빠에게 안녕이라는 말을 건네자마자 친구와 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로하언니와 지베오빠도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오히려 웃는 얼굴로 끝까지 울음을 참으며 우는 우릴 달려주었다. 워크캠프기간동안 서로를 배려해서 한번도 큰 소리안나게 해준 착한 레베카,풀린,아메리,레미,알렉,브누아 모두 너무 그립고 나와 친구에게 언제나 웃음을 준 지베오빠와 착하고 예쁜 로하언니, 동양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크리스틴아줌마, 영어는 전혀 못 하지만 제일 내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매일매일 레고하자며 졸라대던 애교만점 뽀뽀쟁이 꼬맹이 쥴, 부끄러움을 타는 꼬마숙녀 그웬돌린이 너무너무 보고 십다. 마지막으로 서로 지구반대편에 떨어져있지만 함께 많은 기억을 공유한 프랑스인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을 수 있어서 이번 여름은 너무나 행복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