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도피가 아닌 성장의 시간
POMMIER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또 다른 시작,
1년의 네덜란드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갈 무렵쯤 여러가지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떨어져 네덜란드에서 너무나 평화롭고 안일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한국에 돌아간다는게 슬슬 걱정도 되었다. 남들 열심히 인턴하고, 공모전 준비하고 학교생활 하는 동안 나만 너무 놀면서 뒤쳐진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런 도피의 마음때문에 한국을 돌아간다는 사실이 반갑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3월엔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 날짜도 바꿔야 할 때였기 때문에 더욱 고민에 휩싸였다. 한국을 일찍 돌아가서 여름방학 인턴쉽이라도 구해볼까, 인턴쉽은 아니더라도 이것 저것 공모전이라도 하며 빡쎈 한국 생활에 적응을 해볼까, 아니면 최대한 있을 수 있는 만큼 유럽에 더 머물다 돌아갈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얻은 결과 난 학기가 끝나고 프랑스에서 '워크캠프'를 하고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워크캠프'는 유럽으로 떠날 때 부터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유럽에 있을 때 꼭 하고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유럽 지역에만 해도 워크캠프는 지역, 일의 종류에 따라 굉자히 다양한데 그 중에서 나는 내 일정에 맞는 것으로 프랑스 Lyon근처 Pommiers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Construction 워크캠프를 신청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던 방도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방도 비우고 한국으로 보낼 짐도 다 정리해 놓고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떠났어야 했다. 정말 그 동안의 모든 생활을 다 정리하고 유럽에서의 마지막 여정인 프랑스로 떠났다.
우리의 첫 만남
중간에 바뀐 워크캠프 일정을 늦게 통보받는 바람에 나는 다른 캠퍼들보다 하루 늦게서야 미팅포인트에 도착했다. 다행히 미팅포인트 지역에는 캠프리더와 마을주민분께서 픽업하러 나와주셨다. 함께 모임장소로 이동해 나머지 캠퍼들과 주민분들을 만났는데 아직은 다들 첫날이라 어색한 인사들을 나누었다. 우리 캠프의 캠프리더는 스페인 친구였고, 터키2명,러시아,슬로바키아,멕시코,프랑스,캐나다2명,나 포함 한국인 2명으로 구성되었다. 사실 처음엔 캠프리더 뿐만 아니라 모든 캠퍼들이 다 나이가 어려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하지만..외모상으로는 나보다 어리다는게 믿기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는 사실...^^;) 첫날부터 마을 주민들께서 작은 잔치를 열어 음식도 준비해 주시고 우리들을 환영해 주셨다. 캠프리더 카를로스는 스페인 친구였지만 프랑스어에도 능통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우리들의 통역을 늘 도맡았다. 카를로스 이외에도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고 다들 조금씩은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정말 나만 프랑스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3주 동안 마을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못해서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그나마 우리 캠퍼들끼리는 영어를 이용했기 때문에 나로써는 다행이었다.
우리는 그 마을에 있는 체육관에서 생활했는데 방도 3개, 부엌, 샤워실, 화장실, 운동장, 테니스장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은 장소였다. 특히나 이렇게 운동장과 테니스장이 갖추어져 있어서 자유시간에 동네 프랑스 친구들과 축구 경기도 하고 틈틈히 테니스도 칠 수 있는 좋은 여건이었다. 이렇게 이곳에서 우리의 3주 동안의 캠프가 시작되었다.
7시에 시작되는 하루 일과
우리의 작업은 월~금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매일 2명씩 쿠킹팀을 정해서 쿠킹팀은 숙소에 남아 그날의 아침, 점심, 저녁을 담당했다. 매일 7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세수도 못한 채 일터로 나가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다. 우리가 3주 동안 해야 할 일은 마을의 돌담을 짓는 일이었다. 처음 워크캠프를 신청할 때는 일과 설명에 하루 4시간씩 하는 일이라고 해서 '에이 별거아니겠지' 싶었는데 꽤나 고된 작업에 다들 지쳐가기도 했다. 처음에 돌담을 부수는 일부터 시작해서 돌을 옮기고 적당한 크기의 돌들을 골라 다시 돌담을 쌓는 작업을 해야했다. 우리 캠퍼들 뿐만 아니라 주민분들과도 함께 일했는데 이때도 난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 눈치껏 알아듣고 바디랭귀지를 한껏 사용했어야만 했다.
일주일쯤이 지나자 다들 얼굴은 까맣게 그을리고 아침에 일어나는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들 불평들 없이 일터에 나가면 열심히들 일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막내였던 러시아 친구는 처음부터 일터에서도 뺀질거리며 열심히 안하고 숙소 내에서도 설겆이며 청소도 잘 안하고 해서 나중엔 모든 이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나와 다른 한국 친구는 이런데서 한국인들 일도 안하고 뺀질거린다는 소리 들으면 안될꺼 같다면서 열심히 돌도 나르고 땀흘려 일하고 왔다. 워크캠프 떠나기 전에 읽은 후기에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친구들은 말은 잘 안하고 일은 열심히 해서 캠프에서 좋아한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어 난 캠프 생활 동안 뺀질 거리지는 않되 일도 하며, 사람들과 최대한 어울리자는 주의로 생활했던 것 같다.
드디어 완성!!!!
처음엔 금방 끝낼 것 같았던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지 않아 2주차쯤 지났을 때에는 조금씩 지겨워기도했다. 처음에 돌담을 부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한층 한층 새로 쌓을 때 마다 '와 이게 정말 우리가 쌓은게 맞나' 싶을 정도로 뿌듯해졌다. 그렇게 3주에 걸쳐 마치막 층까지 완성이 되어 이렇게 어여쁜 돌담을 완성하고 왔다! 맨 끝에는 우리 캠프 멤버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커다란 돌도 함께 세워놓았다. 무언가 3주 동안의 추억과 고생이 묻어난 이 자리에 우리의 이름을 남겨 놓고 온다는게 기분이 묘하니 자랑스럽고, 정말이지 '우리의 돌담' 이라는 생각이들었다. 프랑스 Pommiers라는 지역에 남겨 놓은 내 이름. 저 일터에서 3주 동안 돌담만 쌓은것이 아니라 캠퍼들과 마을 주민분들과 정도 쌓고, 너무나 좋은 추억들을 많이 쌓고온 것 같다. 우리 이름을 새겨놓고 온 만큼 마을 주민분들도 저곳을 지나치면서 늘 우리와 함께했던 2012년 여름을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과 함께 했던 2012년 여름, 나의 첫 워크캠프는 유럽에서 생활했던 1년 생활 동안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 될 것이다.
1년의 네덜란드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갈 무렵쯤 여러가지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떨어져 네덜란드에서 너무나 평화롭고 안일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한국에 돌아간다는게 슬슬 걱정도 되었다. 남들 열심히 인턴하고, 공모전 준비하고 학교생활 하는 동안 나만 너무 놀면서 뒤쳐진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런 도피의 마음때문에 한국을 돌아간다는 사실이 반갑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3월엔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 날짜도 바꿔야 할 때였기 때문에 더욱 고민에 휩싸였다. 한국을 일찍 돌아가서 여름방학 인턴쉽이라도 구해볼까, 인턴쉽은 아니더라도 이것 저것 공모전이라도 하며 빡쎈 한국 생활에 적응을 해볼까, 아니면 최대한 있을 수 있는 만큼 유럽에 더 머물다 돌아갈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얻은 결과 난 학기가 끝나고 프랑스에서 '워크캠프'를 하고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워크캠프'는 유럽으로 떠날 때 부터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유럽에 있을 때 꼭 하고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유럽 지역에만 해도 워크캠프는 지역, 일의 종류에 따라 굉자히 다양한데 그 중에서 나는 내 일정에 맞는 것으로 프랑스 Lyon근처 Pommiers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Construction 워크캠프를 신청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던 방도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방도 비우고 한국으로 보낼 짐도 다 정리해 놓고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떠났어야 했다. 정말 그 동안의 모든 생활을 다 정리하고 유럽에서의 마지막 여정인 프랑스로 떠났다.
우리의 첫 만남
중간에 바뀐 워크캠프 일정을 늦게 통보받는 바람에 나는 다른 캠퍼들보다 하루 늦게서야 미팅포인트에 도착했다. 다행히 미팅포인트 지역에는 캠프리더와 마을주민분께서 픽업하러 나와주셨다. 함께 모임장소로 이동해 나머지 캠퍼들과 주민분들을 만났는데 아직은 다들 첫날이라 어색한 인사들을 나누었다. 우리 캠프의 캠프리더는 스페인 친구였고, 터키2명,러시아,슬로바키아,멕시코,프랑스,캐나다2명,나 포함 한국인 2명으로 구성되었다. 사실 처음엔 캠프리더 뿐만 아니라 모든 캠퍼들이 다 나이가 어려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하지만..외모상으로는 나보다 어리다는게 믿기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는 사실...^^;) 첫날부터 마을 주민들께서 작은 잔치를 열어 음식도 준비해 주시고 우리들을 환영해 주셨다. 캠프리더 카를로스는 스페인 친구였지만 프랑스어에도 능통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우리들의 통역을 늘 도맡았다. 카를로스 이외에도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고 다들 조금씩은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정말 나만 프랑스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3주 동안 마을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못해서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그나마 우리 캠퍼들끼리는 영어를 이용했기 때문에 나로써는 다행이었다.
우리는 그 마을에 있는 체육관에서 생활했는데 방도 3개, 부엌, 샤워실, 화장실, 운동장, 테니스장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은 장소였다. 특히나 이렇게 운동장과 테니스장이 갖추어져 있어서 자유시간에 동네 프랑스 친구들과 축구 경기도 하고 틈틈히 테니스도 칠 수 있는 좋은 여건이었다. 이렇게 이곳에서 우리의 3주 동안의 캠프가 시작되었다.
7시에 시작되는 하루 일과
우리의 작업은 월~금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매일 2명씩 쿠킹팀을 정해서 쿠킹팀은 숙소에 남아 그날의 아침, 점심, 저녁을 담당했다. 매일 7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세수도 못한 채 일터로 나가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다. 우리가 3주 동안 해야 할 일은 마을의 돌담을 짓는 일이었다. 처음 워크캠프를 신청할 때는 일과 설명에 하루 4시간씩 하는 일이라고 해서 '에이 별거아니겠지' 싶었는데 꽤나 고된 작업에 다들 지쳐가기도 했다. 처음에 돌담을 부수는 일부터 시작해서 돌을 옮기고 적당한 크기의 돌들을 골라 다시 돌담을 쌓는 작업을 해야했다. 우리 캠퍼들 뿐만 아니라 주민분들과도 함께 일했는데 이때도 난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 눈치껏 알아듣고 바디랭귀지를 한껏 사용했어야만 했다.
일주일쯤이 지나자 다들 얼굴은 까맣게 그을리고 아침에 일어나는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들 불평들 없이 일터에 나가면 열심히들 일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막내였던 러시아 친구는 처음부터 일터에서도 뺀질거리며 열심히 안하고 숙소 내에서도 설겆이며 청소도 잘 안하고 해서 나중엔 모든 이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나와 다른 한국 친구는 이런데서 한국인들 일도 안하고 뺀질거린다는 소리 들으면 안될꺼 같다면서 열심히 돌도 나르고 땀흘려 일하고 왔다. 워크캠프 떠나기 전에 읽은 후기에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친구들은 말은 잘 안하고 일은 열심히 해서 캠프에서 좋아한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어 난 캠프 생활 동안 뺀질 거리지는 않되 일도 하며, 사람들과 최대한 어울리자는 주의로 생활했던 것 같다.
드디어 완성!!!!
처음엔 금방 끝낼 것 같았던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지 않아 2주차쯤 지났을 때에는 조금씩 지겨워기도했다. 처음에 돌담을 부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한층 한층 새로 쌓을 때 마다 '와 이게 정말 우리가 쌓은게 맞나' 싶을 정도로 뿌듯해졌다. 그렇게 3주에 걸쳐 마치막 층까지 완성이 되어 이렇게 어여쁜 돌담을 완성하고 왔다! 맨 끝에는 우리 캠프 멤버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커다란 돌도 함께 세워놓았다. 무언가 3주 동안의 추억과 고생이 묻어난 이 자리에 우리의 이름을 남겨 놓고 온다는게 기분이 묘하니 자랑스럽고, 정말이지 '우리의 돌담' 이라는 생각이들었다. 프랑스 Pommiers라는 지역에 남겨 놓은 내 이름. 저 일터에서 3주 동안 돌담만 쌓은것이 아니라 캠퍼들과 마을 주민분들과 정도 쌓고, 너무나 좋은 추억들을 많이 쌓고온 것 같다. 우리 이름을 새겨놓고 온 만큼 마을 주민분들도 저곳을 지나치면서 늘 우리와 함께했던 2012년 여름을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과 함께 했던 2012년 여름, 나의 첫 워크캠프는 유럽에서 생활했던 1년 생활 동안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