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리는 거문도에서 무엇을 했나

작성자 조창익
한국 IWO-72 · 교육/문화 2026. 07 - 2026. 08 대한민국 전라남도 여수시 거문도

거문도 워크캠프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릴스로부터 시작된 소풍]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릴스를 넘기다가 우연히 발견한 워크캠프 모집공고. 회사-학교-헬스장만을 오가는 반복된 일상에 지쳐있던 내게 <섬에서 보내는 10일>이라는 문구는 잠깐이나마 숨통을 틔워줄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합격 소식을 받은 뒤 OT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이 캠프를 그저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소한 일탈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넋 놓고 캠프 시작만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18명의 외국인 참가자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고 싶어 cooking team에 자원했고, 3번의 저녁 식사를 책임지게 되면서 메뉴를 고르고 틈틈이 연습했다. 고민 끝에 정한 메뉴는 안동찜닭, 교촌치킨 허니콤보, 참치김밥이었다. 경상북도 구미 출신인 나에게 안동찜닭은 경상북도를 대표하는 음식이었고 허니콤보는 교촌치킨 1호점이 있는 구미를 상징하는 메뉴였다. 그리고 참치김밥은 어릴 적 소풍날마다 엄마가 정성스레 말아주시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추억의 음식이었다. 이 세 메뉴를 통해 우리의 10일간 워크캠프 역시 하나의 소풍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그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직전 기수가 기상 악화로 입도하지 못해 주문해 둔 재료를 먼저 소진해야 했고 결국 메뉴 전체를 새로 짜야 했다. 공들인 준비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셈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0일 동안 크고 작은 변동이 계속돼 당황스러운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여행이란 낯선 것과 마주하는 즐거움이라 말했던 것처럼, 21명과 함께한 10일을 하나의 여행이라 생각하니 그 변화들마저 즐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국경 없는 화개장터가 되길 바라며]

21명이 모여 10일간 지내다 보니 소개하고 싶은 에피소드는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거문도 은빛바다축제 노래자랑에서 <화개장터>를 불렀던 순간이다.

이 무대에 서게 된 경위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입도 첫날 저녁, 아직 서로가 서먹했던 그때 마침 1층 공용공간에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그 어색함을 깨고 싶어 내가 먼저 <화개장터>를 부르자 처음엔 가사를 다 이해하지 못했을 외국인 참가자들도 단순하고 중독적인 멜로디 덕에 ‘라라라’ 허밍으로 어느새 떼창까지 함께했다. 분위기가 풀리자 너도나도 마이크를 잡으며 장장 2시간짜리 노래자랑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서먹함을 풀려던 마이크 하나가 결국 거문도 최대 행사인 은빛바다축제 무대까지 이어지게 된 셈이다.

<화개장터>를 선곡한 데에는 비단 이 이유때문만은 아니었다. 영남과 호남 간의 지역 갈등이 깊었던 시절에도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이 섬진강을 사이에 둔 장터에서 만큼은 영호남의 경계 없이 모두가 한데 모여 정을 나누던 오일장이었음을 노래한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인종, 종교, 세대, 성별, 이념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이어지고 있고 이로인한 전쟁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노래를 동안 작게는 거문도 지역주민들과 워크캠프 외국인 참가자들 사이에 하나의 화개장터를 만들고 싶었다. 국적도, 인종도, 종교도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노래 하나로 어우러져 잘 지낼 수 있다면, 그 마음이 조금씩 퍼져 언젠가는 전 세계 사람들 사이에도 화개장터 같은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소소하지만 진심 어린 염원을 담아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ps. 간주 때 <사랑해요 조창익, 우리 아이돌 조창익>을 연호해준 20명의 캠프 참가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한다. 고마워, 내 첫 번째 팬클럽 친구들아 :)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숫자로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

10일 동안 13개국에서 온 21명의 워크캠프 참가자들이 거문도에서 이룬 것들을 숫자로 정리하면 이렇다. 해양 쓰레기 14포대 수거, 업사이클링 산책로 표식 50개 설치, 업사이클링 행성 모형 22개 제작, 마을 안내표지판 5개 제작, 마을 건물 1채 벽화 작업, 글로벌 테이블에 지역 주민 14명 초대. 하지만 나는 이 정량적인 성과보다, 보다 정성적인 지표로 우리의 열흘을 설명하고 싶다.

내가 목이 쉬어서 축제 노래자랑에 문제가 생길까봐 생강꿀차를 타주신 서도 슈퍼 사장님.

4일간 점심을 챙겨주시다가 정이 들어 마지막 식사 때 사진을 찍으며 눈물을 훔치신 다도해식당 사장님.

한낮에 벽화 작업을 하다 땡볕 아래서 쉬고 있는 우리가 안쓰러워 본인의 집에 초대해 쉼터를 내어주신 동네 아저씨.

우리에게 뿔소라를 대접하고 싶어 이른 새벽부터 물질에 나서신 남강 레스토랑 사장님.

햇빛에 화상을 입은 우리에게 매번 바세린과 얼음팩을 챙겨주신 서도 보건진료소 간호사 선생님.

당뇨가 있으심에도 우리가 준비한 각국의 단 음식과 디저트를 드시다 끝내는 아쉬운 마음으로 거절하신 동네 할머니.

이처럼 10일 동안 거문도 지역주민들과 워크캠프 참가자들 사이에서 오간 교감은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어떤 정량지표보다도 분명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른바 ‘우리들만의 이야기’는 감히 글로 다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경험한 것이 궁금하다고? 그럼 다음 워크캠프에 직접 지원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