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펙 대신 추억, 프랑스 워크캠프
PUY L'EVEQU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안녕하세요. 작년에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이번에도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된 전유상입니다. 작년에 했었던 워크캠프에서 너무나 큰 감명과 다국적 구성원들간의 우정, 그리고 그 시간을 너무나 큰 추억으로 여기고 살아가던 중, 다시 이러한 기회를 찾게 되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사실, 4학년의 마지막 방학을 앞두고, 남들은 토익이나 오픽 같은 영어점수를 올리거나, 본인들이 목표로 하는 곳에 입사하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는 등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중에, 이렇게 방학 동안 이 시간을 비워도 되는가에 대한 두려움과 조바심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번 방학을 누구보다도 뜻 깊게 보냈다고 저는 자신할 수 있습니다. 작년 워크캠프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이번 기회에서도 다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녀온 곳은 프랑스의 Midi-Pyrénées 지방의 Puy-l`Évèque 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인구수가 3,000명 정도에 불과한 이 곳은 프랑스 내에서 포도주 생산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굽이치는 강을 끼고, 강가에 위치한 이 곳에서 3주간의 생황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새로운 곳을 찾으면 늘 그러하듯이, 기대감과 떨림, 그리고 흥분들이 내 몸을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모이기로 했던, 2012년 7월 15일, 15시 반쯤, Puy-l’Évèque에서 약 30km 떨어진 Cahors 기차역에 도착하였고, 17시 경 버스를 타고 18시 경에 우리가 약속했던 버스 정류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역시나 많은 친구들이 이 곳에서 3주 간의 생황을 하기 위해 서로서로 모여 있더군요. 다만 제가 한 가지 놀란 부분이 있었는데, 이쯤에서 저희 구성원의 국적 비율 및 성비를 밝히자면,
한국 : 남(본인) 1 / 여 1
프랑스 : 여 1
이탈리아 : 여 3
스페인 : 여 3
러시아 : 여 3
총계 : 12명
이러한 비율이 나오더군요.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는 제가 가장 많았지만, 무려 3주를 저 혼자 남자인 이 곳에서 지내야 하다니요. 그래서 작전을 세운 것이 <우리는 가족이고, 나는 너희들의 Big Brother니 편하게 대하도록 하렴.> 이었습니다. 이러한 작전은 3주 내내 유용하게 쓰였으며, 저는 모두들과의 충돌 하나 없이, 3주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과제였던 일 부분에서, 아무래도 돌 성벽을 다시 구축하는 것이다 보니, 이러한 성비 불균형은 확실히 불리함은 있었지만, 그것이 불편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노동 강도가 자체가 높은 일이긴 했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서 끝마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더욱 끈끈한 우정도 쌓였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 혼자 남자이면서 나이도 제일 많다 보니, 이 친구들을 뒤에서 챙겨주고 보살펴 준 점도 한 몫을 했겠지요. 이번에도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진정한 마음과 행동으로 다가설 때, 그것을 마다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언어적인 장벽에 부딫힌다 해도 말입니다.
언어에 대한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언어적 장벽은 저에게 불편함이 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하고 있고,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편하게 되는 정도이니 – 제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닙니다. 저는 Speaker보다는 Listener 에 속하더군요. – 언어적인 소통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프랑스어를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주기도 했었고, 다른 기회로는 한글을 알려줄 수도 있었으니까요. 이러한 경험들이 나중에 제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적에 소중한 경험과 추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생활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겠네요. 작년과 비교하자면 이곳은 5성급 호텔과 같았습니다. 작년에는 마을회관의 체육관에서 잠을 잔 것에 비해, 이곳은 침대가 구비된 방에서,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곳에서, 취사시설과 부엌이 구비된 곳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특히 침대 같은 경우는 2층 침대가 들어온 곳이었는데, 저는 스페인 친구 2명과 같이 방을 썼는데, 이 친구들과 특히 더욱 친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여동생이 없었는데, 이 친구들이 너무나 잘 해주어서 – 제가 다치면 제일 먼저 달려와주는 친구가 이 친구들이었거든요 – 헤어질 때는 울컥 눈물이 날 정도로 정이 깊게 들었으니까요.
3주간의 생활 동안, 정말 소중한 기억과 추억들이 많습니다. 제가 여행한 곳은 비록 프랑스 한 국가지만, 그 여행 동안 만난 친구들은 전 세계인 (미국, 캐나다, 영국, 멕시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아일랜드, 이탈리아, 독일, 루마니아, 터키, 네덜란드, 이집트, 케냐, 나이지리아, 중국, 일본, 인도, 아랍 에미레이트, 포르투갈 필리핀, 베트남 등) 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워크캠프를 통해서 저는 이러한 기회를 얻었고, 이는 남들이 대학생활의 마지막 방학을 공부에 파묻혀, 스펙을 올리는데 급급해 머리를 감싸 쥘 때에, 저는 마음을 열고 세계에 나아가 그들을 만나 소통하고 왔노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제 친구들 중에 한 사람은 볼 수 있는 것, 누군가는 내가 있는 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무대가 한국이 아닌 전 세계라는 것. 이게 제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요?
실제로 이번 년도 워크 캡프가 끝나고 작년에 살았던 LYON 에 갔었는데, 제가 프랑스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 작년에 일했던 워크 캠프의 마을 친구 중 한 명이 저에게 놀러 와서 같이 일주일을 지내자고 제안을 하였고, 그래서 만 일 년 만에 만나서 좋은 추억을 다시 쌓고 왔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추억, 그리고 나의 자산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Are You a Workcamper ?
사실, 4학년의 마지막 방학을 앞두고, 남들은 토익이나 오픽 같은 영어점수를 올리거나, 본인들이 목표로 하는 곳에 입사하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는 등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중에, 이렇게 방학 동안 이 시간을 비워도 되는가에 대한 두려움과 조바심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번 방학을 누구보다도 뜻 깊게 보냈다고 저는 자신할 수 있습니다. 작년 워크캠프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이번 기회에서도 다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녀온 곳은 프랑스의 Midi-Pyrénées 지방의 Puy-l`Évèque 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인구수가 3,000명 정도에 불과한 이 곳은 프랑스 내에서 포도주 생산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굽이치는 강을 끼고, 강가에 위치한 이 곳에서 3주간의 생황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새로운 곳을 찾으면 늘 그러하듯이, 기대감과 떨림, 그리고 흥분들이 내 몸을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모이기로 했던, 2012년 7월 15일, 15시 반쯤, Puy-l’Évèque에서 약 30km 떨어진 Cahors 기차역에 도착하였고, 17시 경 버스를 타고 18시 경에 우리가 약속했던 버스 정류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역시나 많은 친구들이 이 곳에서 3주 간의 생황을 하기 위해 서로서로 모여 있더군요. 다만 제가 한 가지 놀란 부분이 있었는데, 이쯤에서 저희 구성원의 국적 비율 및 성비를 밝히자면,
한국 : 남(본인) 1 / 여 1
프랑스 : 여 1
이탈리아 : 여 3
스페인 : 여 3
러시아 : 여 3
총계 : 12명
이러한 비율이 나오더군요.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는 제가 가장 많았지만, 무려 3주를 저 혼자 남자인 이 곳에서 지내야 하다니요. 그래서 작전을 세운 것이 <우리는 가족이고, 나는 너희들의 Big Brother니 편하게 대하도록 하렴.> 이었습니다. 이러한 작전은 3주 내내 유용하게 쓰였으며, 저는 모두들과의 충돌 하나 없이, 3주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과제였던 일 부분에서, 아무래도 돌 성벽을 다시 구축하는 것이다 보니, 이러한 성비 불균형은 확실히 불리함은 있었지만, 그것이 불편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노동 강도가 자체가 높은 일이긴 했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서 끝마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더욱 끈끈한 우정도 쌓였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 혼자 남자이면서 나이도 제일 많다 보니, 이 친구들을 뒤에서 챙겨주고 보살펴 준 점도 한 몫을 했겠지요. 이번에도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진정한 마음과 행동으로 다가설 때, 그것을 마다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언어적인 장벽에 부딫힌다 해도 말입니다.
언어에 대한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언어적 장벽은 저에게 불편함이 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하고 있고,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편하게 되는 정도이니 – 제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닙니다. 저는 Speaker보다는 Listener 에 속하더군요. – 언어적인 소통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프랑스어를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주기도 했었고, 다른 기회로는 한글을 알려줄 수도 있었으니까요. 이러한 경험들이 나중에 제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적에 소중한 경험과 추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생활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겠네요. 작년과 비교하자면 이곳은 5성급 호텔과 같았습니다. 작년에는 마을회관의 체육관에서 잠을 잔 것에 비해, 이곳은 침대가 구비된 방에서,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곳에서, 취사시설과 부엌이 구비된 곳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특히 침대 같은 경우는 2층 침대가 들어온 곳이었는데, 저는 스페인 친구 2명과 같이 방을 썼는데, 이 친구들과 특히 더욱 친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여동생이 없었는데, 이 친구들이 너무나 잘 해주어서 – 제가 다치면 제일 먼저 달려와주는 친구가 이 친구들이었거든요 – 헤어질 때는 울컥 눈물이 날 정도로 정이 깊게 들었으니까요.
3주간의 생활 동안, 정말 소중한 기억과 추억들이 많습니다. 제가 여행한 곳은 비록 프랑스 한 국가지만, 그 여행 동안 만난 친구들은 전 세계인 (미국, 캐나다, 영국, 멕시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아일랜드, 이탈리아, 독일, 루마니아, 터키, 네덜란드, 이집트, 케냐, 나이지리아, 중국, 일본, 인도, 아랍 에미레이트, 포르투갈 필리핀, 베트남 등) 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워크캠프를 통해서 저는 이러한 기회를 얻었고, 이는 남들이 대학생활의 마지막 방학을 공부에 파묻혀, 스펙을 올리는데 급급해 머리를 감싸 쥘 때에, 저는 마음을 열고 세계에 나아가 그들을 만나 소통하고 왔노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제 친구들 중에 한 사람은 볼 수 있는 것, 누군가는 내가 있는 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무대가 한국이 아닌 전 세계라는 것. 이게 제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요?
실제로 이번 년도 워크 캡프가 끝나고 작년에 살았던 LYON 에 갔었는데, 제가 프랑스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 작년에 일했던 워크 캠프의 마을 친구 중 한 명이 저에게 놀러 와서 같이 일주일을 지내자고 제안을 하였고, 그래서 만 일 년 만에 만나서 좋은 추억을 다시 쌓고 왔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추억, 그리고 나의 자산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Are You a Workcamp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