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망설임 끝에 찾은 안식

작성자 윤지영
아이슬란드 SEEDS 082 · ENVI/ CONS 2012. 08 Eld-hestar Hotel near Selfoss

Working & Horseback riding in the South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아이슬란드, 가야 하나?”
프랑스 워캠이 끝날 무렵, 거의 3일을 매일 다샤에게 물었다.
“거기도 엉망이면 어떡해”
“거긴 괜찮을꺼야”’
“가기 싫어…”
“가~”

마침내 프랑스에서, 그리고 프랑스 모기에서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에 파리공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그리고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하염없이 잠만 잤다. 모기 때문에 2주 동안 거의 잠도 못 잤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도착 시간은 거의 새벽 1시. 아이슬란드는 희한하게 도착과 출발 비행기가 모두 밤 12시부터 아침 7시 까지만 있다. 그리고 영어가 넘 잘 통한다.
공항 버스 안에서 같은 캠프에 참가하는 벨기에에서 온 사라를 만났다. 이번이 아이슬란드 워캠 2번째란다. 덕분에 게스트 하우스도 쉽게 찾았고, 거의 새벽 2시. 양치만 하고 슬리핑 백으로 기어 들어갔지만, 갑자기 추워진 탓에 2시간 만에 일어났다.
방을 나오니 누군가 들어온다. 인사를 하니 역시 같은 캠프 참가자 슬로베니아에서 온 이니스.
배가 고팠다. 이니스는 지금 잠들면 못 일어 날 듯 하다면서 잠을 자지 않겠단다.
“24시간 영업하는 슈퍼 근처에 있어?”
이니스를 따라 나섰다. 새벽에 물가도 모르고 배고픔과 목마름을 달랠 빵과 커피, 우유, 이것저것을 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편의점에서 거의 2만원을 썼다.
“나 짐 가지러 가야 돼.”
헐~. 난 이니스가 있어서 새벽에 길도 제대로 보지 않고 따라서 꽤 멀리까지 왔는데!!! 대충 방향을 알 것 같기도 하고 이니스도 부두 쪽으로 가면 된단다. 하. 하. 하;;;
이니스와 헤어지고 20분을 헤매다, 간신히 길 이름이 v 로 시작한다는 것과 숫자 101, 51 이 떠올랐다. 살았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뜨거운 샤워를 하고는 다시 밖으로 향했다. 나도 참…



평화로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쒸…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니 모든 참가자가 와 있었다. 라트비아에서 온 캠프 리더 라우마와 독일에서 온 로린은 영어를 아주 잘했다. 살았다! 이니스도 와 있었다. 길을 헤맸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근데 참가자가 다 여자이다. 아 놔…
7명 중 2명만 카탈로니아에서 온 남자애들. 의사 소통이 안되다…

미니버스를 타고 캠프지로 이동, 숙소가 호텔이닷! 5성급은 아니지만 우리 호텔에서 일한단다. 그리고 그 게스트 하우스에 머문단다. 식사도 호텔에서 나온다. 프랑스에서는 굶기만 했는데. 헐~ 참가자들의 국적이 다 달라서 공용어는 당연히 영어이다. 여기, 너무 마음에 든다!




일은 격일로 하루 종일 8시부터 5시까지 일하고 격일로 하루 종일 쉬기로 했다. 여기 천국이닷!

우리가 주로 한 일은 호텔 유리창 닦기, 호텔 주방 돕기, 마구간의 말 응 치우기, 잡초 뽑기, 나무로 된 시설물에 오일 칠하기였다. 그리 힘든 일은 아니지만 비라도 오면 날씨가 너무 추워져 힘들었고, 반나절 일하다 하루 종일 일하려니 버겁기도 했지만, 정해진 식사 시간에 성찬이 나오고, 근처에 대형 슈퍼 보너스도 있었다. 말똥 냄새… 가 거슬리긴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말을 엄청 좋아했다. 로린과 사라는 승마를 오래 했단다.




도착한 다음 날 하루 종일 일하고, 그 다음 날은 말 타러 가랜다.



Day Tour. 가격이 거의 15만원. 승마는 한국에서도 비싸다. 아이슬란드 말은 작아서 별도의 교육 없이 탈 수 있었다. 말 타고 주변 지역을 관광하는 것이다. 첫 날 6시간이 넘게 말을 탔다. 엉덩이가 다 까졌다. ㅜ.ㅠ 엉덩이가 아프다는 말에 애들은 근육통으로만 이해하고 내일이면 괜찮을 거란다. 만난 지 며칠 만에 엉덩이를 까서 보여줄 수도 없고. 애들은 내 말을 엄살로 여긴다. 난 거의 의자에 앉지도 못할 수준인데.
“나 피부가 다 벗겨져서 피는 아니지만 뭔가가 계속 흐르고 있어. 엄살 아냐!
I don’t want to go for another horseback riding, no, I can’t! 나 인제 말 안탈래, 아니 못 타.”
분위기가 싸 해진다.
“ㅋㅋㅋ 그래 꼭 아시아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나 아시안 트러블 메이커야.”
“아니야~”
“그렇게 아픈지 몰랐어.”

직업은 어떨 수 없나 보다. 여기 대화에서 내가 실수를 했다. 해석만 보자면 틀린 것이 없지만 이렇게 이야기 하면 분위기가 싸 해 질 수 밖에 없다.
I want to go, but maybe I can’t go for another horseback riding anymore.
이렇게 말해야 분위기를 잡아먹지 않는다.
아무튼 내가 먼저 아시아 사람들은 유럽에서 항상 트러블 메이커란 말에 다 같이 웃을 수 있었고, 며칠 뒤 다시 엉덩이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바르고 또 한번의 말타기 관광에 나섰다. 이번에는 호텔 손님 중 중국 여자애가 중도에 포기하고 차를 불러 숙소로 돌아갔다. 애들과 다시 한번 ‘거봐~ 아시아 사람들은 트러블 메이커야.’ 농담 하면서 웃었다.
“난 첫 날 한 두 시간짜린 줄 알았지! 무슨 하루 종일이야.”
“나도 평소에는 한 두 시간 탔지만 기회가 좋잖아. 난 괜찮던걸?”
“… 니네 등산가면 몇 시간이나 해?”
“day tour. 8시간 정도?”
“이~봐 이~봐. 우린 아침 일찍 올라가서 점심 때는 내려와 산 아래 식당에서 식사하고, 오후에는 쉬어.”
“그게 뭐야. 3~4시간?”
“그렇다니깐~! 우린 산행하면서 술도 마셔.”
“헐~ 산에서 무슨 술이야!”
“많이는 아니고 1병 정도? 막걸리라고 쌀로 만든 술인데 살짝 달고 맛있어.”
“헐~”
캠프 시작하면서 이미 ‘헐~’을 가르쳐 놓았더니 연신 ‘헐~’ 이다.
“재밌을 거 같다. 우리 코리안 스타일로 하이킹 가자.”





우연히 한 이야기에 재밌다며 애들은 마티니와 럼으로 칵테일을 만들어 당장 하이킹을 시작했다. 속도는내가 제일 빠르다. 나중에 캠프가 끝나고 미팅 포인트였던 레이캬비크 게스트 하우스에서 음주 하이킹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캠프 참가자 일본 아이가 한 수 거든다. “아, 나 TV 에서 봤어.” 애들이 다 쓰러졌다. ㅋㅋㅋ

International day, 서로 기본 인사 가르치기, 자기 나라 특징 이야기하기 등 프랑스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던 문화교류가 드디어 왔다. 프렌치 프라이의 원조는 벨기에, 라트비아와 슬로베니아는 1991년에 독립했고, 스페인은 3갈래로 나뉘어 져 있어 분위기 안 좋고, 산타 클로스와 앵그리 버드는 판란드에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0년 전 런던 올림픽은 한국이 처음으로 참가한 올림픽이야. 그 때 나라가 가난해서 국민들에게 성금을 거두어 참석했대. 그래도 돈이 모자라 선수들은 20여 일에 걸쳐서 배타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해서 런던에 도착했어. 60년이 지난 지금 너흰 삼성 핸드폰을 쓰고, 밖에는 한국 차들이 다녀. 내겐 의미가 참 커.”
“와~.”
“대~한민국 **~*** 따라 해”
“대~한민국 **~*** 이게 뭐야?”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을 응원할 때 이렇게 해. It means Korea in Korean.”
“그래서 너희가 올림픽에서 그렇게 메달을 많이 땄구나.”

한국 요리를 선보이는 날. 나는 비빔밥과 닭볶음탕, 찜닭을 했다. 모양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ㅎㅎㅎ
“원래 전통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여러 음식을 한 접시에 담지 않아. 노동 계층이 시간이 없어 이렇게 한 곳에 넣고 비벼 먹었었는데, 지금은 건강음식,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마이클 잭슨과 기네스 팰트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가 되었어.”
소스는 고추장과 간장 2가지를 준비해서 알아서 먹게 하였다. 비빔밥에도 열광을 했지만, 의외로 닭 볶음탕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카탈로니아의 로저는 연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굿, 굿~”을 외친다.
물론 아이들은 내가 고추장을 숟가락으로 퍼먹자 눈 알이 다 튀어 나왔다.

나는 영어권 현지 경험이 없음에도 영어를 잘하는 라우마와 단 9개월의 캐나다 학교 생활로 원어민처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로린이 궁금해서, 또 우리나라가 교육하면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핀란드 수비가 있어서 ‘너흰 영어를 어떻게 배웠니?’ 라는 주제로 설문 조사도 했다. 재밌는 건 MB 정부부터 시행된 영어를 영어로 배우기 수업은 모든 나라에서 이미 진행 중이었고. 원어민 교사가 아니라 현지 나라 교사가 했으며,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 발음이 이상하고 수업이 매끄럽지 못했다며 그 수업을 싫어했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와 학구열이 비슷했고, 라트비아는 정말 비결을 모르겠다. 다음에 꼭 가서 확인해 보리라 생각했다.



워캠을 준비하면서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저 아이들이 한국에 오고 싶도록 만들까’ 였다. 경제도 어려운데 한 명의 관광객이라도 더 꼬셔야 한다는 흑심으로. 그래서 머드 축제, 찜질방, 음식, 동대문 쇼핑 센터 사진을 가지고 가서 한국에 이마만큼의 놀거리가 풍부하다 자랑을 했고, 음주 등산과 한국 음식, V 자 그리며 사진 찍기, 방가방가, 헐~ 대~한민국 등으로 아이들을 완전 물들여 놓았다.
“그으래? 한국도 한번 가 봐야겠네. 근데 영어 통해?”

아이슬란드는 아이슬란드 언어를 가지고 있으나 길거리 할머니까지도 모두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이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그 나라 방문을 결심하기 편안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간혹 전국민이 영어를 잘 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데, 워캠 이전의 나도 영어는 필요한 사람만 하면 된다 생각했다. 물론,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슬란드는 2006년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경제 위기를 경험했고, 다른 유럽 국가들이 재정 위기에 처한 지금 관광산업으로 경제 위기에서 거의 회복하였다.
세계의 중심은 이제 아시아로 옮겨오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일본, 중국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가고 싶은 나라이나, 한국은 말도 안 통할 듯 하고, 중국과 일본과 무엇이 다르겠냐 여겨지기 쉽다. 정부에서 다양하게 관광산업도 개발하고 있지만, 아이슬란드에서 크게 느낀 것은 내가 생각 없이 한 행동과 말에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고 신기해 했다는 것이다. 즉 외국인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면서 본인들이 직접 신기하다고 느껴 발굴 되어지는 부분들이 많을 터인데, 이는 의사 소통이 가능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미수다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프랑스에서도 아이슬란드에서도 이전에 온 한국 사람들에 대해 물으면 그냥 조용히 있다 갔다고 했다. 우리 나라 대학생들에게 대화하려 할 것, 마찰이 생기면 참지 말고 이야기 할 것, 적극적으로 참가할 것, 특히 영어를 말할 때 급하게 말하려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벨기에에서 온 사라는 한창 빠르게 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대화를 끊고 ‘미안한데, 이해를 못했어, 다시 이야기 해 줘.’ 라고 수시로 요청했고, 아이들은 귀찮아도 흔쾌히 다시 설명해 주었다. 카탈로니아에서 온 환은 대부분의 한국사람보다도 훨씬 영어를 못하지만, 하고자 하는 말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았으며, ‘you~’ 하고 말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그 아이의 말을 들어 주었고, 대화하려 노력했다. 내가 영어를 가르친다 하면 하나같이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운동 선수가 맨날 코칭만 받는다고 훌륭한 선수가 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코칭이 아니라 연습이 필요하며, 여러분은 워캠 기간 동안 말과 행동으로 한국을 알릴 수 있고, 한국을 재미있고 가깝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많은 것을 느끼고 그 친구들과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