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곳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JUZIER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모든 대학생이 한다는 해외봉사. 내가 한 봉사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추적추적 장마가 시작하려 할 즈음 내 생에 첫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 홀로 몸을 맡겼다.
두근두근 첫 번째 입국심사가 Bonjour도 Hi도 아닌 안녕으로 시작 되면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을 할 수 있었다.
Juziers에 가기 위해 도착한 St.Lazare역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수많은 기차들이 건물 안에 위치해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와중에도 친절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을 보며 또다시 기쁨과 의아함을 느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차에 탑승하였다. 혹시라도 다른 방향의 기차를 타거나,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도 잠시 아름다운 창 밖 풍경에 빠져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Juziers에 도착하였다. 기차에서 내린 후 이동을 하려고 하는데 건너편에 남학생들이 있었는데 겉보기에 불량배처럼 생겨서 겁이나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들이 사라진 후 주위를 둘러보는데 마을 주민 중 한 분이 붙여놓으신 종이를 발견하였다. 그 종이에는 ‘환영합니다.’라고 자필로 써져 있었다. 이것을 선물로 받은 현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과 선물이 되었지만 받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선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역으로 도착할 수 있었고, 그 역 안에는 미국에서 온 Sean, 스페인에서 온 Ana가 있었는데 처음이라 떨렸는데 반갑게 맞아주고 편안하게 대해줘서 떨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러시아에서 온 Anton, Dima, Dasha가 도착하였고 나머지 친구들은 우리들의 숙소인 MPT에서 만날 수 있었다. MPT는 불어로 모두를 위한 집이라는 뜻이다.
먼저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에 대해 알아간 후 짝에 대한 정보를 모두에게 소개시키는 식으로 캠프 멤버들을 알아갔다. 한국에서 온 나, 그리고 민형 언니, 미국에서 온 Sean, 스페인에서 온 Ana, Javier(뒤늦게 도착한), 러시아에서 온 Anton, Dima, Dasha, 우크라이나에서 온 Maryna, Mila, 리투아니아에서 온 Gia, 타이완에서 온 Chrissy, 캠프리더 Renaud 이렇게 총 13명의 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캠프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정보와 모국 이야기, 학교 이야기, 참가목표 등을 이야기 하였고 일주일 동안 할 것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하였다. 그리고 각 나라의 기본적인 인사 법 등을 큰 종이에 적어 공유하였다. 그 후 마을을 구경하며 일 할 곳도 구경하고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캠프의 첫 날이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은 등산로에 계단을 만드는 일, 오래된 돌 벽의 시멘트를 부순 후 시멘트를 다시 채워 넣는 일, 담장 사이사이의 길에 있는 지저분한, 불필요한 나무, 가지 제거, 언덕 위의 나무 제거 등이었다. 이 일들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8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4시간씩 하게 되었다.
그 후 키즈 센터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형태로 캠프가 진행이 되었다. 점심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우리의 여가시간은 증가하였고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게임, 산책 등의 시간이 늘어났다. 보통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보거나 낮잠을 자거나, 이야기, 카드게임, 배드민턴 등을 하거나 저녁을 위해 장을 보러 가곤 하였다. 딱히 한국에서와 같이 컴퓨터를 한다거나 영화를 보거나 어디를 가지 않고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대화의 즐거움, 묵언의 편안함을 여기 와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또한 다른 나라의 음식을 맛본다는 것 자체도 좋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의 요리실력이 수준급이라 다양한 나라의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저녁 시간마다 함께하였던 주민청년들이 있었는데, 앞에서 언급하였던 불량배들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했듯이 겉모습과는 다르게 공부를 하기 위해 일을 하는 친구들이 태반이었다. 그들을 보며 너무 편안하게 공부하고 공부하기 싫어서 짜증내는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하다 보니 캠프를 13명이 아닌 마을 모두의 사람들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가 아침마다 일을 할 때 은퇴하신 할아버지들이 함께 해 주셨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정정하고 일을 너무 잘하셨다. 무엇보다 그들은 콧노래를 부르는 등 일을 너무 즐겁게 하였다. 그런 모습 때문에 우리 또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일이 끝난 오후 마을 주민 분들과 함께 근교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파티를 하기도 하고, 테니스를 치기도 하고, 저녁에 같이 자전거를 타는 등 모든 사람들이 캠프 맴버 이었다.
한번은 한 노부부에게 초대를 받기도 하였는데, 그들이 아무 의도 없이 베푸는 친절이 너무 고마웠다. 또한 영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잘 하셔서 불어를 모르는 나였지만 즐겁게 대화에 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봉사를 하러 간 우리에게 오히려 더 많은 정과 사랑을 받고 작은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주고 온 것보다 얻어 온 것이 더 많은 활동이었다. 해외 봉사는 끝이 났지만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는 해외 봉사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 이제는 받은 것들을 다시 나누어 줄 차례이다. 내가 받은 것들을 잊지 말고 항상 생각하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며 다음 해외 봉사 활동을 기약하고 있다.
추적추적 장마가 시작하려 할 즈음 내 생에 첫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 홀로 몸을 맡겼다.
두근두근 첫 번째 입국심사가 Bonjour도 Hi도 아닌 안녕으로 시작 되면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을 할 수 있었다.
Juziers에 가기 위해 도착한 St.Lazare역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수많은 기차들이 건물 안에 위치해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와중에도 친절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을 보며 또다시 기쁨과 의아함을 느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차에 탑승하였다. 혹시라도 다른 방향의 기차를 타거나,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도 잠시 아름다운 창 밖 풍경에 빠져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Juziers에 도착하였다. 기차에서 내린 후 이동을 하려고 하는데 건너편에 남학생들이 있었는데 겉보기에 불량배처럼 생겨서 겁이나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들이 사라진 후 주위를 둘러보는데 마을 주민 중 한 분이 붙여놓으신 종이를 발견하였다. 그 종이에는 ‘환영합니다.’라고 자필로 써져 있었다. 이것을 선물로 받은 현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과 선물이 되었지만 받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선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역으로 도착할 수 있었고, 그 역 안에는 미국에서 온 Sean, 스페인에서 온 Ana가 있었는데 처음이라 떨렸는데 반갑게 맞아주고 편안하게 대해줘서 떨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러시아에서 온 Anton, Dima, Dasha가 도착하였고 나머지 친구들은 우리들의 숙소인 MPT에서 만날 수 있었다. MPT는 불어로 모두를 위한 집이라는 뜻이다.
먼저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에 대해 알아간 후 짝에 대한 정보를 모두에게 소개시키는 식으로 캠프 멤버들을 알아갔다. 한국에서 온 나, 그리고 민형 언니, 미국에서 온 Sean, 스페인에서 온 Ana, Javier(뒤늦게 도착한), 러시아에서 온 Anton, Dima, Dasha, 우크라이나에서 온 Maryna, Mila, 리투아니아에서 온 Gia, 타이완에서 온 Chrissy, 캠프리더 Renaud 이렇게 총 13명의 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캠프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정보와 모국 이야기, 학교 이야기, 참가목표 등을 이야기 하였고 일주일 동안 할 것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하였다. 그리고 각 나라의 기본적인 인사 법 등을 큰 종이에 적어 공유하였다. 그 후 마을을 구경하며 일 할 곳도 구경하고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캠프의 첫 날이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은 등산로에 계단을 만드는 일, 오래된 돌 벽의 시멘트를 부순 후 시멘트를 다시 채워 넣는 일, 담장 사이사이의 길에 있는 지저분한, 불필요한 나무, 가지 제거, 언덕 위의 나무 제거 등이었다. 이 일들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8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4시간씩 하게 되었다.
그 후 키즈 센터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형태로 캠프가 진행이 되었다. 점심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우리의 여가시간은 증가하였고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게임, 산책 등의 시간이 늘어났다. 보통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보거나 낮잠을 자거나, 이야기, 카드게임, 배드민턴 등을 하거나 저녁을 위해 장을 보러 가곤 하였다. 딱히 한국에서와 같이 컴퓨터를 한다거나 영화를 보거나 어디를 가지 않고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대화의 즐거움, 묵언의 편안함을 여기 와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또한 다른 나라의 음식을 맛본다는 것 자체도 좋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의 요리실력이 수준급이라 다양한 나라의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저녁 시간마다 함께하였던 주민청년들이 있었는데, 앞에서 언급하였던 불량배들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했듯이 겉모습과는 다르게 공부를 하기 위해 일을 하는 친구들이 태반이었다. 그들을 보며 너무 편안하게 공부하고 공부하기 싫어서 짜증내는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하다 보니 캠프를 13명이 아닌 마을 모두의 사람들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가 아침마다 일을 할 때 은퇴하신 할아버지들이 함께 해 주셨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정정하고 일을 너무 잘하셨다. 무엇보다 그들은 콧노래를 부르는 등 일을 너무 즐겁게 하였다. 그런 모습 때문에 우리 또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일이 끝난 오후 마을 주민 분들과 함께 근교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파티를 하기도 하고, 테니스를 치기도 하고, 저녁에 같이 자전거를 타는 등 모든 사람들이 캠프 맴버 이었다.
한번은 한 노부부에게 초대를 받기도 하였는데, 그들이 아무 의도 없이 베푸는 친절이 너무 고마웠다. 또한 영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잘 하셔서 불어를 모르는 나였지만 즐겁게 대화에 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봉사를 하러 간 우리에게 오히려 더 많은 정과 사랑을 받고 작은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주고 온 것보다 얻어 온 것이 더 많은 활동이었다. 해외 봉사는 끝이 났지만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는 해외 봉사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 이제는 받은 것들을 다시 나누어 줄 차례이다. 내가 받은 것들을 잊지 말고 항상 생각하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며 다음 해외 봉사 활동을 기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