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무 살, 뜻밖의 워크캠프 합격 뜻밖의 워크캠프, 스무
MYSELF IN AR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살의 여름>
학기 중에 이번 여름 방학을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래는 학교 내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했는데, 아쉽게도 참가를 못하게 되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 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국제 교류 프로그램에 관한 메일이 자주 왔다. 전에는 나이 조건을 충족 시키지 못해서 참가하지 못했던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마침 내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찾는 시기가 한국 워크 캠프 지원 시기와 겹치게 되었다. 내가 만약 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면 나는 이 훌륭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 어떤 것에 참여할지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하고자 하는 것과 관심이 있는 분야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주저하지 않고 설치예술 작가들을 돕는 형식의 IWO-73 MYSELF IN ART에 지원하였고, 운 좋게 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워크캠프에 대한 두려움 중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래서 워크 캠프에 참가하기 전에 영어 수업도 듣고 나름의 준비를 조금했다.
워크 캠프에 참여하게 된 첫 날, 처음 겪는 외국인 친구들과의 교류가 아직은 낯설고 어렵기도 해서 말도 많이 하지 않고 본의 아니게 묵묵히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어떤 친구와 외국어 의사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가 여긴 누구도 영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은 없다고 그냥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 이후로 나도 용기를 조금씩 가지고 외국인 친구들과 의사소통 하기를 시도했다. 캠프 첫 날과 둘째 날은 캠퍼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에는 정말 재능이 많은 친구들이 끼를 뽐내기도 하고 우리 한국인 캠퍼들도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서 참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막상 일을 하게 될 때 우리 캠퍼들은 2팀으로 나눠져야 했다. 한 팀은 본래 캠프의 목적에 맞게 오픈 스튜디오를 준비하고 나머지 한 팀은 풍도에 가서 지역적인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좀더 큰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내가 처음 이 캠프를 고르게 된 본래의 목적에 맞춰서 센터에 남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 곳에서 작가님들을 돕고, 큐레이터들이 어떤 식으로 작가들과 의사소통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만난 지 몇 일만에 다시 헤어져서 각자의 임무를 다하게 되었다. 센터에 남아 있게 된 캠퍼들에게는 두 가지 일이 주어졌다. 하나는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것 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센터 주변에 있는 환경을 독창적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나는 3명의 외국인 캠퍼들과 두 번째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주어진 환경은 정말 한마디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다. 주제를 선정하는 일부터 재료를 사는 일, 물론 작업을 하는 것까지 모두가 우리의 손에서 이루어 졌다. 주제는 ‘KEEP SMILING’ 으로 잡았다. 적당한 주제를 찾다가 웃는 얼굴을 한 벤치를 보고 결정한 것이었다. 더운 날 두 명은 의자를 청소하고 나와 다른 친구는 페인트를 사러 시내까지 멀리 가야 했다. 정말 힘든 여정이었지만, 힘들다 보니 이 일을 멋지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오기가 생겼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가끔은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양보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자세로 우리는 성공적으로 벤치를 완성하였고, 지나가는 모든 작가님들이 우리의 작품을 좋아해 주셔서 정말 뿌듯하고 감사했다.
두 번째 우리의 임무는 오픈 스튜디오를 준비하는 작가님들을 보조하는 일이었다. 작가라는 직업을 항상 동경해왔던 나로써는 이 일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큰 영광이었고,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정도였다. 처음 만난 작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님인 주재환 작가님을 돕는 일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님을 직접 뵌다니, 처음에는 긴장을 무지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주재환 작가님은 정말 다정하시고 친근하신 분이었다. 우리에게 직접 커피도 타주시고 장래희망에 대해서 상담까지 해주셨다. 외국인 친구들도 주재환 작가님을 아주 좋아했다. 다음으로는 이대일 작가님을 잠시 돕는 일을 했다. 이대일 작가님은 뮤직 퍼포먼스를 하시는 분이었다. 작가님을 한 분씩 만나게 되면서 점점 작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전에는 작가라고 하면 신경질 적이면서 예민한 사람을 떠올렸는데, 막상 작가분들을 만나 뵈니, 누구보다도 따뜻하시고 친절하신 분들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돕게 된 분은 박은영 작가님이었다. 박은영 선생님과는 몇 일 동안 함께 작업했는데, 작품을 설치하는데 작가님과 함께 의사소통을 하면서 작업했다. 박은영 작가님과의 작업은 정말 내가 캠프오기 전에 기대했던 일과 일치했다. 작품이 설치가 다 되었을 땐 내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시실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스스로 너무나도 뿌듯했으며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신 작가님께 감사했다.
이렇게 캠프에서의 주요 일정을 모두 마치고 되돌아 보았을 때, 나는 처음 지원할 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하였고,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픈 스튜디오를 돕는 일도 매우 뿌듯하였지만, 외국인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도 정말 큰 교훈을 얻게 하였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사고 방식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보면서 이때까지 내 모습을 되돌아 보고 반성하게 되었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내 일상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이번 워크캠프는 스무 살이 처음 맞이하게 된 여름 방학을 그 어떤 여름보다 꽉 차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학기 중에 이번 여름 방학을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래는 학교 내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했는데, 아쉽게도 참가를 못하게 되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 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국제 교류 프로그램에 관한 메일이 자주 왔다. 전에는 나이 조건을 충족 시키지 못해서 참가하지 못했던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마침 내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찾는 시기가 한국 워크 캠프 지원 시기와 겹치게 되었다. 내가 만약 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면 나는 이 훌륭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 어떤 것에 참여할지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하고자 하는 것과 관심이 있는 분야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주저하지 않고 설치예술 작가들을 돕는 형식의 IWO-73 MYSELF IN ART에 지원하였고, 운 좋게 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워크캠프에 대한 두려움 중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래서 워크 캠프에 참가하기 전에 영어 수업도 듣고 나름의 준비를 조금했다.
워크 캠프에 참여하게 된 첫 날, 처음 겪는 외국인 친구들과의 교류가 아직은 낯설고 어렵기도 해서 말도 많이 하지 않고 본의 아니게 묵묵히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어떤 친구와 외국어 의사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가 여긴 누구도 영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은 없다고 그냥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 이후로 나도 용기를 조금씩 가지고 외국인 친구들과 의사소통 하기를 시도했다. 캠프 첫 날과 둘째 날은 캠퍼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에는 정말 재능이 많은 친구들이 끼를 뽐내기도 하고 우리 한국인 캠퍼들도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서 참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막상 일을 하게 될 때 우리 캠퍼들은 2팀으로 나눠져야 했다. 한 팀은 본래 캠프의 목적에 맞게 오픈 스튜디오를 준비하고 나머지 한 팀은 풍도에 가서 지역적인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좀더 큰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내가 처음 이 캠프를 고르게 된 본래의 목적에 맞춰서 센터에 남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 곳에서 작가님들을 돕고, 큐레이터들이 어떤 식으로 작가들과 의사소통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만난 지 몇 일만에 다시 헤어져서 각자의 임무를 다하게 되었다. 센터에 남아 있게 된 캠퍼들에게는 두 가지 일이 주어졌다. 하나는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것 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센터 주변에 있는 환경을 독창적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나는 3명의 외국인 캠퍼들과 두 번째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주어진 환경은 정말 한마디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다. 주제를 선정하는 일부터 재료를 사는 일, 물론 작업을 하는 것까지 모두가 우리의 손에서 이루어 졌다. 주제는 ‘KEEP SMILING’ 으로 잡았다. 적당한 주제를 찾다가 웃는 얼굴을 한 벤치를 보고 결정한 것이었다. 더운 날 두 명은 의자를 청소하고 나와 다른 친구는 페인트를 사러 시내까지 멀리 가야 했다. 정말 힘든 여정이었지만, 힘들다 보니 이 일을 멋지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오기가 생겼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가끔은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양보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자세로 우리는 성공적으로 벤치를 완성하였고, 지나가는 모든 작가님들이 우리의 작품을 좋아해 주셔서 정말 뿌듯하고 감사했다.
두 번째 우리의 임무는 오픈 스튜디오를 준비하는 작가님들을 보조하는 일이었다. 작가라는 직업을 항상 동경해왔던 나로써는 이 일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큰 영광이었고,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정도였다. 처음 만난 작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님인 주재환 작가님을 돕는 일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님을 직접 뵌다니, 처음에는 긴장을 무지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주재환 작가님은 정말 다정하시고 친근하신 분이었다. 우리에게 직접 커피도 타주시고 장래희망에 대해서 상담까지 해주셨다. 외국인 친구들도 주재환 작가님을 아주 좋아했다. 다음으로는 이대일 작가님을 잠시 돕는 일을 했다. 이대일 작가님은 뮤직 퍼포먼스를 하시는 분이었다. 작가님을 한 분씩 만나게 되면서 점점 작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전에는 작가라고 하면 신경질 적이면서 예민한 사람을 떠올렸는데, 막상 작가분들을 만나 뵈니, 누구보다도 따뜻하시고 친절하신 분들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돕게 된 분은 박은영 작가님이었다. 박은영 선생님과는 몇 일 동안 함께 작업했는데, 작품을 설치하는데 작가님과 함께 의사소통을 하면서 작업했다. 박은영 작가님과의 작업은 정말 내가 캠프오기 전에 기대했던 일과 일치했다. 작품이 설치가 다 되었을 땐 내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시실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스스로 너무나도 뿌듯했으며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신 작가님께 감사했다.
이렇게 캠프에서의 주요 일정을 모두 마치고 되돌아 보았을 때, 나는 처음 지원할 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하였고,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픈 스튜디오를 돕는 일도 매우 뿌듯하였지만, 외국인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도 정말 큰 교훈을 얻게 하였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사고 방식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보면서 이때까지 내 모습을 되돌아 보고 반성하게 되었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내 일상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이번 워크캠프는 스무 살이 처음 맞이하게 된 여름 방학을 그 어떤 여름보다 꽉 차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