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몽모린, 설렘과 막막함 사이
MONTMORI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시작할 때 많이 설레였었다. 아무래도 내 인생 첫 해외진출(?)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하는 봉사활동, 그리고 새로운 만남 때문이다. 물론 여행이라면 국내에서도 많이 한 편이다. 혼자서 국내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닌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타지인 데다가 내게 주어진건 딸랑 인포싯 한장뿐. 그리고 거기에 나온 정보는 클레르-몽페랑에서 모인다는 말 뿐 다른 말은 없었다. 고작해야 관광정보지에 나올법한 그곳 마을에 대한 설명과 준비물 챙겨오라는 정도였다. 그래서 사실 설레임보단 막막함이 더 했다고 하는게 맞겠다. 게다가 나의 게으름 덕분에(좋게 말하면 느긋함) 혼자 여행할 계획도, 그곳에 갈 계획도 모두 불과 출발 몇일전에 준비했다. 오히려 옆에 있는 가족들이 더 설레여서 프랑스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볼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출국!! 과연 어떤 곳일까.
드골공항에 내리고 호텔에 갈 때 까진 실망이 컸다. 내가 워낙 혼자 잘다니기도 했지만 그다지 이국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냥 나랑 피부색 다른 사람이 좀 많네 정도. 게다가 교통도 편해서 이건뭐 여행하는 건지 아님 내가 살던곳에 온 건지 착각이 들정도 였다. 하지만 그 실망은 기쁨으로 바뀌고..어쨌든 파리에서의 1주일간의 여행에 대해서는 일단 생략하겠다. 기대이상으로 재미있었다는 정도로 말하겠다.
아쉬운 파리를 뒤로 한채 정말 나의 진짜 목적, 내가 프랑스에 온 진짜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움직였다. 영어도 잘 못하지만 불어는 아예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였기에 괜히 길을 잃을까, 제시간에 몽모린에 도착하지 못해서 나혼자 국제 미아가 될까봐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파리에 기차역이 많아서 안그래도 헷갈렸는데 엉뚱한 곳에 내려서 30분이나 걸어서 내가 가야 하는 역으로 갔다. 다행이 기차시간은 안늦었다. 내가 만날 사람들의 국적을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 유추해 볼수 있던건 한국인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참가자들을 알 방법은 없지만 사전에 캠프리더가 나에게 보낸 e-mail에 단체로 보낸 목록 중 ‘***@naver.com’ 을 봐서 한국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naver가 한국인만 쓴다는 추측이 맞다면 분명 한국인이 있을 것이였다. 처음 지원할 때 부터 ‘no korean’이라고 까지 써놨었는데 한국인이 들어있어 재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날 워크캠프 참가 날인 이 날 만큼은 한국인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제발 여자이길 하는 마음도 있었다^^;;;
Paris- barcy 역을 출발해서 목적지인 clermont-ferrand으로 출발! 그날은 유난히 날씨도 맑았었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상당했기에 내가 캠프참가자들을 제일 먼저 발견하길 희망했었다. 약속시간보다 무려 4시간이나 먼저 도착한 나는 여유롭게 기다렸고 내 앞을 알짱거리는 사람을 보면 그리고 역에 나처럼 길게 머무는 사람들을 보면 혹시 나랑 같은 캠프사람인가 싶었다. 하지만 첫걸음을 떼기가 힘든것처럼 쉽게 다가가 이야기는 하지 못해 그냥 시간이 되면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이였다.
약속시간이 되었고 역안을 걸어다니다 보니 동양인 하나가 서있었다. 그것도 남자. 내키진 않지만 가서 물어봤다. 어설픈 영어로. 근데 왠걸 그사람의 발음은 거의 중국?일본인 발음이였다. 좌절하긴 뭐하지만 혹시나 해서 한국어로 물어봤다. 크크..한국인이였다. 나이도 물어보고 하니 동생이였고 동생역시 성격이 쾌활한 것 같아 보여 우리 둘이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찾아가기 시작했고 예쁜 러시안*-_-*도 나와 같은 캠프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기다리는데 너무 어색했다. 빨리 출발이나 했음 좋겠는데 가장 중요한 캠프리더가 약속시간에 나오지 않았다. 나름 본건 있어서 내가 종이를 꺼내 들어 I want to go montmorin! 이란 팻말을 들고 찾으러 돌아다니자 제안했다. 그러자 이런 나의 행동이 그 친구들에겐 정말 재밌어 보였는지 함께 웃으며 같이 역안을 샅샅히 뒤졌고 그에 따라 어색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드디어 캠프리더를 찾아 우리의 목적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 모두 어느정도 어색함이 사라져 서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가는길이 멀었지만 어느새 우리의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상당한 시골마을 이였지만 마을사람들의 배려덕분에 학교를 우리 숙소로 사용할 수 있었고 심지어 매트릭스도 있어 그 어떤 곳보다 아늑해고 좋았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음식도 선물로 남겨놔 배고픔에 지쳐 들어온 우리는 밥부터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저녁 메뉴는 파스타! 여자애들이 만든다는데 우리야 뭐 아무 거리낌 없었다. 무조건 오케이였다.
우린 식사 준비를 도왔고 다같이 앉아 첫 시식을 시작했다. 근데 뭔 파스타가 정말 맛이.. 아니 그냥 파스타를 익혀 꺼내 왔다. 맛은 당연히 없다. 나름 토마토 소스를 만들었는데 이건 그냥 죽이였다. 하지만 난 이게 유럽식 파스타구나 생각하고 그냥 아무 말없이 소금을 쳐서 먹었다. 아무리 어색함이 사라졌다지만 서로가 어설픈 영어로 겨우겨우 의사소통 하는지라 저녁메뉴로 나온 이 파스타가 진짜 파스타인지, 아님 얘네가 음식솜씨가 없는건지 물어보기 미안했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글을 쓰지만 그땐 나름 진지했었고 아주 조용하고 맛없는 저녁이였다. 하지만 이 우스꽝스런 이 나날이 워크캠프하는 3주간 내내 지속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우리의 임무는 재래식오븐을 만드는 일이였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였고 마을에 사는 은퇴한 건축가출신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고 가면 그이후는 우리들만의 자유시간이였다. 심지어 아침에 4시간 잠깐 일하는 건데 그지역 마을 사람들은 우릴 정말 진심으로 반겨주었고 항상 아우디를 타고다니는 할머니와 그분의 친구가 브런치를 챙겨왔었다. 우린 항상 와인과 함께한 맛있는 브런치를 맛보고 싶어 오히려 빨리 일에 나가고 싶어할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막스 할아버지(건축가할아버지)는 그 마을을 예술적인 마을로 재건할 욕심이 있다는 것과 그리고 미셸(브런치 할머니)은 부자에다가 근처에 제일큰 도시 클레르몽페랑 근처에 살고 있고 우리를 아무 대가 없이 서포터 해주시는 분이였다. 그 외에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가족처럼 우릴 맞이해주고 반겨 주어서 우리가 아름다운 몽모린에 녹아 들었던 것 같다.
항상 하루하루가 축제같았지만 한주 한주가 지나갈 때 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감에 아쉬움만 남았다. 마을 꼬마친구들과도 친해지고 말 한마디도 못했던 프랑스어를 조금씩 조금씩 배워서 마을사람들과 얘기할때 쓰니 마을 사람들도 즐거워하며 더욱 가까워졌고 친구가 되었었다. 그렇게 마을의 한 일원이 되었는데 어느샌가 워크캠프가 끝났다. 정말 모두가 우릴그리워 했고 나또한 그들을 그리워 한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일하러 가는 첫날 막스할아버지 차를 다고 가는 그때의 냄새. 그냄새는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의 냄새와 같았고 마을 축제에 가서 마카레나를 추며 함께 웃고 떠들었던 그날. 그곳의 공기, 냄새, 온도 그 모든 것이 지금도 그립다. 마지막날 친구들과 얘기 했었다. 미래에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다시 몽몽모린 방문할 때 내 자식에게 이곳에서 보낸 추억을 이야기 할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것을.
내인생 첫 해외 여행이자 첫 봉사활동이였던 워크캠프. 워크캠프는 내게 많은 걸 남겨주었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고향 그리고 잊지못할 추억을.
워크캠프가 단순히 일을 하러 간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다지 재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가서 문화를 교류하며 즐긴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먼저 다가간다면 자신 스스로에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묵은 사고방식과 필요없는 관습들을 모두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워크캠프,? 내겐 워크캠프는 새로운 단어가 밖혀있다. Camp work. 캠핑하면서 일하는 것. 그니까 미친듯이 캠핑 한다는 것이다!!
드골공항에 내리고 호텔에 갈 때 까진 실망이 컸다. 내가 워낙 혼자 잘다니기도 했지만 그다지 이국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냥 나랑 피부색 다른 사람이 좀 많네 정도. 게다가 교통도 편해서 이건뭐 여행하는 건지 아님 내가 살던곳에 온 건지 착각이 들정도 였다. 하지만 그 실망은 기쁨으로 바뀌고..어쨌든 파리에서의 1주일간의 여행에 대해서는 일단 생략하겠다. 기대이상으로 재미있었다는 정도로 말하겠다.
아쉬운 파리를 뒤로 한채 정말 나의 진짜 목적, 내가 프랑스에 온 진짜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움직였다. 영어도 잘 못하지만 불어는 아예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였기에 괜히 길을 잃을까, 제시간에 몽모린에 도착하지 못해서 나혼자 국제 미아가 될까봐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파리에 기차역이 많아서 안그래도 헷갈렸는데 엉뚱한 곳에 내려서 30분이나 걸어서 내가 가야 하는 역으로 갔다. 다행이 기차시간은 안늦었다. 내가 만날 사람들의 국적을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 유추해 볼수 있던건 한국인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참가자들을 알 방법은 없지만 사전에 캠프리더가 나에게 보낸 e-mail에 단체로 보낸 목록 중 ‘***@naver.com’ 을 봐서 한국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naver가 한국인만 쓴다는 추측이 맞다면 분명 한국인이 있을 것이였다. 처음 지원할 때 부터 ‘no korean’이라고 까지 써놨었는데 한국인이 들어있어 재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날 워크캠프 참가 날인 이 날 만큼은 한국인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제발 여자이길 하는 마음도 있었다^^;;;
Paris- barcy 역을 출발해서 목적지인 clermont-ferrand으로 출발! 그날은 유난히 날씨도 맑았었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상당했기에 내가 캠프참가자들을 제일 먼저 발견하길 희망했었다. 약속시간보다 무려 4시간이나 먼저 도착한 나는 여유롭게 기다렸고 내 앞을 알짱거리는 사람을 보면 그리고 역에 나처럼 길게 머무는 사람들을 보면 혹시 나랑 같은 캠프사람인가 싶었다. 하지만 첫걸음을 떼기가 힘든것처럼 쉽게 다가가 이야기는 하지 못해 그냥 시간이 되면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이였다.
약속시간이 되었고 역안을 걸어다니다 보니 동양인 하나가 서있었다. 그것도 남자. 내키진 않지만 가서 물어봤다. 어설픈 영어로. 근데 왠걸 그사람의 발음은 거의 중국?일본인 발음이였다. 좌절하긴 뭐하지만 혹시나 해서 한국어로 물어봤다. 크크..한국인이였다. 나이도 물어보고 하니 동생이였고 동생역시 성격이 쾌활한 것 같아 보여 우리 둘이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찾아가기 시작했고 예쁜 러시안*-_-*도 나와 같은 캠프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기다리는데 너무 어색했다. 빨리 출발이나 했음 좋겠는데 가장 중요한 캠프리더가 약속시간에 나오지 않았다. 나름 본건 있어서 내가 종이를 꺼내 들어 I want to go montmorin! 이란 팻말을 들고 찾으러 돌아다니자 제안했다. 그러자 이런 나의 행동이 그 친구들에겐 정말 재밌어 보였는지 함께 웃으며 같이 역안을 샅샅히 뒤졌고 그에 따라 어색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드디어 캠프리더를 찾아 우리의 목적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 모두 어느정도 어색함이 사라져 서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가는길이 멀었지만 어느새 우리의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상당한 시골마을 이였지만 마을사람들의 배려덕분에 학교를 우리 숙소로 사용할 수 있었고 심지어 매트릭스도 있어 그 어떤 곳보다 아늑해고 좋았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음식도 선물로 남겨놔 배고픔에 지쳐 들어온 우리는 밥부터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저녁 메뉴는 파스타! 여자애들이 만든다는데 우리야 뭐 아무 거리낌 없었다. 무조건 오케이였다.
우린 식사 준비를 도왔고 다같이 앉아 첫 시식을 시작했다. 근데 뭔 파스타가 정말 맛이.. 아니 그냥 파스타를 익혀 꺼내 왔다. 맛은 당연히 없다. 나름 토마토 소스를 만들었는데 이건 그냥 죽이였다. 하지만 난 이게 유럽식 파스타구나 생각하고 그냥 아무 말없이 소금을 쳐서 먹었다. 아무리 어색함이 사라졌다지만 서로가 어설픈 영어로 겨우겨우 의사소통 하는지라 저녁메뉴로 나온 이 파스타가 진짜 파스타인지, 아님 얘네가 음식솜씨가 없는건지 물어보기 미안했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글을 쓰지만 그땐 나름 진지했었고 아주 조용하고 맛없는 저녁이였다. 하지만 이 우스꽝스런 이 나날이 워크캠프하는 3주간 내내 지속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우리의 임무는 재래식오븐을 만드는 일이였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였고 마을에 사는 은퇴한 건축가출신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고 가면 그이후는 우리들만의 자유시간이였다. 심지어 아침에 4시간 잠깐 일하는 건데 그지역 마을 사람들은 우릴 정말 진심으로 반겨주었고 항상 아우디를 타고다니는 할머니와 그분의 친구가 브런치를 챙겨왔었다. 우린 항상 와인과 함께한 맛있는 브런치를 맛보고 싶어 오히려 빨리 일에 나가고 싶어할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막스 할아버지(건축가할아버지)는 그 마을을 예술적인 마을로 재건할 욕심이 있다는 것과 그리고 미셸(브런치 할머니)은 부자에다가 근처에 제일큰 도시 클레르몽페랑 근처에 살고 있고 우리를 아무 대가 없이 서포터 해주시는 분이였다. 그 외에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가족처럼 우릴 맞이해주고 반겨 주어서 우리가 아름다운 몽모린에 녹아 들었던 것 같다.
항상 하루하루가 축제같았지만 한주 한주가 지나갈 때 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감에 아쉬움만 남았다. 마을 꼬마친구들과도 친해지고 말 한마디도 못했던 프랑스어를 조금씩 조금씩 배워서 마을사람들과 얘기할때 쓰니 마을 사람들도 즐거워하며 더욱 가까워졌고 친구가 되었었다. 그렇게 마을의 한 일원이 되었는데 어느샌가 워크캠프가 끝났다. 정말 모두가 우릴그리워 했고 나또한 그들을 그리워 한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일하러 가는 첫날 막스할아버지 차를 다고 가는 그때의 냄새. 그냄새는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의 냄새와 같았고 마을 축제에 가서 마카레나를 추며 함께 웃고 떠들었던 그날. 그곳의 공기, 냄새, 온도 그 모든 것이 지금도 그립다. 마지막날 친구들과 얘기 했었다. 미래에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다시 몽몽모린 방문할 때 내 자식에게 이곳에서 보낸 추억을 이야기 할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것을.
내인생 첫 해외 여행이자 첫 봉사활동이였던 워크캠프. 워크캠프는 내게 많은 걸 남겨주었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고향 그리고 잊지못할 추억을.
워크캠프가 단순히 일을 하러 간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다지 재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가서 문화를 교류하며 즐긴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먼저 다가간다면 자신 스스로에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묵은 사고방식과 필요없는 관습들을 모두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워크캠프,? 내겐 워크캠프는 새로운 단어가 밖혀있다. Camp work. 캠핑하면서 일하는 것. 그니까 미친듯이 캠핑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