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낯선 곳에서 시작된 우정
CHALVIGNAC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그냥 해외에 한번쯤 나가 보고 싶었다. 그러다 학교 프로그램 중에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고, 대학파견으로 이번 워크캠프에 친구와 둘이 참가하게 되었다. 우리 둘은 워크캠프하기 일주일전에 런던여행을 했었기 때문에 런던에서 워크캠프인 프랑스로 이동해야 했다. 더구나 마을로 향하는 버스가 하루에 한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버스를 타기 위해서 하루 전에 버스 타는 곳인 클레르몽페랑에 도착해야 했다. 하루 전에 도착한 우리는 역 앞에 후미진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워크캠프가 시작하는 날 아침 혹시라도 버스를 놓칠까 부랴부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버스정류장 한켠에 무거운 짐가방을 내려놓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과연 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캠퍼 일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러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안되는 영어로 몇 마디를 주고 받았는데 스페인여자 2명과 타이완남자 1명이 우리와 같은 캠퍼들 이었다. 버스에서 어색하고 영어도 서툴러서 몇 마디 말은 못하고 서먹서먹하게 모리악으로 향했다. 목적지인 모리악에 내리니 캠프의 리더가 기다리고 있었고 리더는 마을 젊은이 1명과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에서는 몰랐는데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캠퍼가 1명 더 있었다. 러시아남자 1명 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리악에서 준비된 차를 타고 CHALVIGNAC으로 향했다. 차 안은 처음엔 활기찬 듯 보였지만, 역시 서먹함을 감출 순 없었다. 우리의 숙소는 마을의 학교였고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히 짐을 내려놓고 주방에 식탁에 앉아 앞으로 우리가 할 일과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였다.
버스에서 만났던 스페인 여자2명중 1명은 우리와 동갑인 마리나 였고, 의대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머지 1명은 캠프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던 라우라 였다. 타이완남자의 이름은 샹 이었고, 디자인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나이는 나보다 많았다. 우리를 마중 나왔던 리더는 프랑스 사람으로 법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며, 지금 워크캠프기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고 이름은 폴린 이었다. 같이 마중 나왔던 마을의 젊은이의 이름은 프레도로 마을 시장의 비서로 캠퍼는 아니었지만 3주 내내 우리랑 같이 일하고 놀고 우리를 위해 운전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러시아남자의 이름은 클림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전형적인 러시아 사람이었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마쳤고, 오늘 차를 놓쳐서 아직 도착하지 못한 캠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기다리면서 친해져 보려 보드게임을 했었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보드게임이 재미없어서 그랬는지 어색함을 푸는데 큰 도움을 주진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을 먹고 폴린과 프레도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캠퍼들을 데리러 갔고, 우리는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워크캠프의 첫날은 지나갔다. 다음날 우리는 나중에 합류한 캠퍼들을 만났고 그중에는 한국사람이 1명 더 있었다. 이름은 김형진으로 언니였다. 형진언니는 영어도 잘하고 워크캠프 경험도 많아서 워크캠프 기간 동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러시아 여자 아나스타샤도 있었고 터키남자인 세림과 아큰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11명의 캠퍼들이 다 모였고 분위기도 처음보단 좋아졌다. 우린 이날 특별한 일은 안하고 앞으로 우리가 일할 일터 방문과 학교 운동장에 야외 샤워장을 만들었다. 나중에 이 샤워장보다 실내 샤워장을 많이 사용 하긴 했지만 말이다. 캠프기간 동안 식사는 하루에 두명씩 쿠킹팀을 정해서 그날 하루 식사를 책임지는 걸로 하였다. 일은 아침 7시45분에 숙소에서 나와 8시부터 12시까지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는 걸로 정했다. 그리고 이날은 캠퍼중 세림의 생일이어서 우리는 케이크와 풍선을 준비했고,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며 세림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셋째 날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할 일은 CHALVIGNAC이라는 마을의 전통적인 오븐의 보수공사를 하는 일이었다. 우선 우리는 장비를 손에 쥐고 돌과 돌 사이에 시멘트를 파내는 일을 하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흐르고 나는 어떤 것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서 딱히 하는 일 없이 캠퍼들과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약간 실망을 하기도하고 시간이 빨리 안 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하루는 일을 끝나고 오후에 피크닉을 갔다. 피크닉장소에는 마을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마을의 잔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고 우리끼리 들판에 나와서 게임을 시작했다.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들처럼 들판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 이날을 계기로 캠퍼들끼리 많이 가까워졌고 서로 장난도 치고 어색함도 사라졌다. 이날부터 캠프가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흐르고 드디어 첫 번째 주말이 찾아왔다. 주말에 프랑스혁명 기념일이 끼어있어서 마을에서는 축제가 있었다. 우리는 축제에 초대받아서 참석하였는데 축제에는 마을사람 모두가 옛날 중세시대 옷을 입고 프랑스혁명을 기념하고 있었다. 우리는 축제에서 마을사람들이 준비한 음식도 먹고 퍼포먼스도 보면서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은 어드벤쳐를 하러 근처 산으로 갔다. 가서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린 줄에 안전장치를 걸고 암벽등반 비슷한 것을 했다. 난이도별로 있어서 처음엔 재밌었는데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점점 힘들어지더니 결국 팔에 멍까지 들었다. 첫 번째주 주말은 활동적인 주말로 지나갔다. 두 번째 주의 일은 첫 번째 주에 파낸 시멘트를 대신해서 새로운 시멘트를 만들고 그 시멘트를 다시 빈곳에 바르는 일을 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초대해준 바비큐파티도 가고 강으로 수영도 하러 가고 강에서 다이빙도 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아큰이 클림에게 러시아 나쁜 말을 배우고 있었다. 그때 내가 아큰 앞자리에 있었는데, 아큰이 나에게 장난을 친다고 그 말을 나에게 계속했다. 나는 불쾌했지만 처음에는 장난이니까 신경 안 쓰려고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장난에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아큰에게 화를 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아큰이 따라와서 사과를 했지만 난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큰과 서먹한 오후가 지나고 나름 서먹함이 풀리고 있을 때 클림이 한국을 비하하는 말에 나와 친구 형진언니는 발끈했지만 나와 친구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아무 말 못하고 있었는데 형진언니가 한마디 함으로써 우리의 말싸움은 시작되었고 싸움 중에 아까 낮에 있었던 나와 아큰의 다툼얘기도 나왔다. 거기서 나는 영어를 못하는게 한으로 남았다. 그렇게 우리의 싸움은 끝났고 그 뒤로 서먹한 나날을 보내고 주말이 다가왔다. 토요일엔 벼룩시장에 갔다가 스테파니 아저씨집 수영장에서 수영도하고 저녁을 먹고 밤에 디스코택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 마침 디스코택에서 버블파티가 있는 날이라 아주 옷까지 다 젖어가면서 정말 신나게 놀았다. 저번에 싸워서 서먹했던 사람들과 서로 장난치면서 싸웠던 감정이 수그러들었다. 일요일 날에는 늦게까지 자다가 카약을 하러 갔는데 캠퍼들 끼리 의견충돌이 있어서 결국 카약은 하지 않고 분위기만 이상해졌었지만 대화를 통해서 화해했다. 그렇게 주말이 가고 마지막 주에는 오븐 주위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오븐 안에도 정리하는 일을 하였다. 또 인터내셔널 데이 준비와 마지막 날 파티 준비를 하면서 정신 없이 보냈다. 처음엔 그냥 무작정 해외에 나가보고 싶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신청했던 워크캠프가 저에게 정말 잊지 못 할 추억을 남겨주었다. 우리 워크캠프는 캠프기간 동안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도 굉장히 많았고 캠퍼들 이랑 장난도 많이 치고 다툼도 있었고 그만큼 정도 많이 쌓였다. 그래서 캠퍼들과 마을사람들과 헤어지는 날 정말 많이 섭섭하고 허전했다. 그래도 다행히 대부분의 캠퍼들이 우연히 파리여행을 같이 하게 되어서 덜 서운했지만 캠프기간 동안 너무나도 잘해주었던 마을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면 찾아 뵐 수라도 있지만 다른 나라여서 이번에 헤어지면 영영 헤어지는 것 같아서 눈물이 찡했다. 특히 마지막 날 버스정류장으로 제일 친했던 마을사람들이 배웅 나았는데 그때 정말 발이 떨어지지 않고 헤어지기 싫었다. 눈 밑에 눈물도 살짝 고였었다. 시간이 지나도 마을사람들은 절대 놋 잊을 것 같다. 나는 워크캠프가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여러 나라 문화도 체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대학생이면 누구나 꿈꾸는 배낭여행보다 워크캠프도 같이하거나 워크캠프를 경험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으로 훨씬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에겐 그 정도로 후회 없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만났던 스페인 여자2명중 1명은 우리와 동갑인 마리나 였고, 의대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머지 1명은 캠프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던 라우라 였다. 타이완남자의 이름은 샹 이었고, 디자인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나이는 나보다 많았다. 우리를 마중 나왔던 리더는 프랑스 사람으로 법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며, 지금 워크캠프기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고 이름은 폴린 이었다. 같이 마중 나왔던 마을의 젊은이의 이름은 프레도로 마을 시장의 비서로 캠퍼는 아니었지만 3주 내내 우리랑 같이 일하고 놀고 우리를 위해 운전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러시아남자의 이름은 클림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전형적인 러시아 사람이었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마쳤고, 오늘 차를 놓쳐서 아직 도착하지 못한 캠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기다리면서 친해져 보려 보드게임을 했었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보드게임이 재미없어서 그랬는지 어색함을 푸는데 큰 도움을 주진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을 먹고 폴린과 프레도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캠퍼들을 데리러 갔고, 우리는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워크캠프의 첫날은 지나갔다. 다음날 우리는 나중에 합류한 캠퍼들을 만났고 그중에는 한국사람이 1명 더 있었다. 이름은 김형진으로 언니였다. 형진언니는 영어도 잘하고 워크캠프 경험도 많아서 워크캠프 기간 동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러시아 여자 아나스타샤도 있었고 터키남자인 세림과 아큰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11명의 캠퍼들이 다 모였고 분위기도 처음보단 좋아졌다. 우린 이날 특별한 일은 안하고 앞으로 우리가 일할 일터 방문과 학교 운동장에 야외 샤워장을 만들었다. 나중에 이 샤워장보다 실내 샤워장을 많이 사용 하긴 했지만 말이다. 캠프기간 동안 식사는 하루에 두명씩 쿠킹팀을 정해서 그날 하루 식사를 책임지는 걸로 하였다. 일은 아침 7시45분에 숙소에서 나와 8시부터 12시까지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는 걸로 정했다. 그리고 이날은 캠퍼중 세림의 생일이어서 우리는 케이크와 풍선을 준비했고,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며 세림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셋째 날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할 일은 CHALVIGNAC이라는 마을의 전통적인 오븐의 보수공사를 하는 일이었다. 우선 우리는 장비를 손에 쥐고 돌과 돌 사이에 시멘트를 파내는 일을 하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흐르고 나는 어떤 것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서 딱히 하는 일 없이 캠퍼들과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약간 실망을 하기도하고 시간이 빨리 안 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하루는 일을 끝나고 오후에 피크닉을 갔다. 피크닉장소에는 마을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마을의 잔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고 우리끼리 들판에 나와서 게임을 시작했다.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들처럼 들판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 이날을 계기로 캠퍼들끼리 많이 가까워졌고 서로 장난도 치고 어색함도 사라졌다. 이날부터 캠프가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흐르고 드디어 첫 번째 주말이 찾아왔다. 주말에 프랑스혁명 기념일이 끼어있어서 마을에서는 축제가 있었다. 우리는 축제에 초대받아서 참석하였는데 축제에는 마을사람 모두가 옛날 중세시대 옷을 입고 프랑스혁명을 기념하고 있었다. 우리는 축제에서 마을사람들이 준비한 음식도 먹고 퍼포먼스도 보면서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은 어드벤쳐를 하러 근처 산으로 갔다. 가서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린 줄에 안전장치를 걸고 암벽등반 비슷한 것을 했다. 난이도별로 있어서 처음엔 재밌었는데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점점 힘들어지더니 결국 팔에 멍까지 들었다. 첫 번째주 주말은 활동적인 주말로 지나갔다. 두 번째 주의 일은 첫 번째 주에 파낸 시멘트를 대신해서 새로운 시멘트를 만들고 그 시멘트를 다시 빈곳에 바르는 일을 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초대해준 바비큐파티도 가고 강으로 수영도 하러 가고 강에서 다이빙도 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아큰이 클림에게 러시아 나쁜 말을 배우고 있었다. 그때 내가 아큰 앞자리에 있었는데, 아큰이 나에게 장난을 친다고 그 말을 나에게 계속했다. 나는 불쾌했지만 처음에는 장난이니까 신경 안 쓰려고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장난에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아큰에게 화를 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아큰이 따라와서 사과를 했지만 난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큰과 서먹한 오후가 지나고 나름 서먹함이 풀리고 있을 때 클림이 한국을 비하하는 말에 나와 친구 형진언니는 발끈했지만 나와 친구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아무 말 못하고 있었는데 형진언니가 한마디 함으로써 우리의 말싸움은 시작되었고 싸움 중에 아까 낮에 있었던 나와 아큰의 다툼얘기도 나왔다. 거기서 나는 영어를 못하는게 한으로 남았다. 그렇게 우리의 싸움은 끝났고 그 뒤로 서먹한 나날을 보내고 주말이 다가왔다. 토요일엔 벼룩시장에 갔다가 스테파니 아저씨집 수영장에서 수영도하고 저녁을 먹고 밤에 디스코택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 마침 디스코택에서 버블파티가 있는 날이라 아주 옷까지 다 젖어가면서 정말 신나게 놀았다. 저번에 싸워서 서먹했던 사람들과 서로 장난치면서 싸웠던 감정이 수그러들었다. 일요일 날에는 늦게까지 자다가 카약을 하러 갔는데 캠퍼들 끼리 의견충돌이 있어서 결국 카약은 하지 않고 분위기만 이상해졌었지만 대화를 통해서 화해했다. 그렇게 주말이 가고 마지막 주에는 오븐 주위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오븐 안에도 정리하는 일을 하였다. 또 인터내셔널 데이 준비와 마지막 날 파티 준비를 하면서 정신 없이 보냈다. 처음엔 그냥 무작정 해외에 나가보고 싶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신청했던 워크캠프가 저에게 정말 잊지 못 할 추억을 남겨주었다. 우리 워크캠프는 캠프기간 동안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도 굉장히 많았고 캠퍼들 이랑 장난도 많이 치고 다툼도 있었고 그만큼 정도 많이 쌓였다. 그래서 캠퍼들과 마을사람들과 헤어지는 날 정말 많이 섭섭하고 허전했다. 그래도 다행히 대부분의 캠퍼들이 우연히 파리여행을 같이 하게 되어서 덜 서운했지만 캠프기간 동안 너무나도 잘해주었던 마을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면 찾아 뵐 수라도 있지만 다른 나라여서 이번에 헤어지면 영영 헤어지는 것 같아서 눈물이 찡했다. 특히 마지막 날 버스정류장으로 제일 친했던 마을사람들이 배웅 나았는데 그때 정말 발이 떨어지지 않고 헤어지기 싫었다. 눈 밑에 눈물도 살짝 고였었다. 시간이 지나도 마을사람들은 절대 놋 잊을 것 같다. 나는 워크캠프가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여러 나라 문화도 체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대학생이면 누구나 꿈꾸는 배낭여행보다 워크캠프도 같이하거나 워크캠프를 경험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으로 훨씬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에겐 그 정도로 후회 없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