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몽골, 그리움으로 남은 나의 여름
Orphanage farm-3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작년에 핀란드로 워크캠프를 갔다 온 이후, 행복했던 기억을 안고 다시 시작된 바쁜 일상 속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났다. 작년 핀란드에서의 기억과 추억은 나로 하여금 1년 동안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었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는 어쩌면 20대 시절 마지막 워크캠프이자 해외여행이 될 수 있는 해였기 때문에, 이번 몽골 워크캠프를 선택하게 되었다. 워크캠프를 갔다가 한국에 오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일이 어제 끝나는 바람에 지금 후기를 쓰고 있는 것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 두 달 동안 워크캠프에서 있었던 일들을 나름 요약하는 시간이 되었다.
핀란드 워크캠프를 다녀온 이후 대자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어서 그 이후로도 어디에서 대자연을 또 볼 수 있을까… 하며 생각하던 중 친한 친구가 몽골을 참 좋아해서 그 곳에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몽골’을 떠올렸을 때는 정말 발달이 안되어 있는 곳이라 생각이 먼저 드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생각보다 더 발달이 안된 곳이었다.
먼저, 몽골의 칭기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였는데, 같이 도착한 워크캠프 참가자들과 함께 현지 봉사자 바타르씨의 차를 타고 칭기스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다. 그 다음날, 비양골 호텔 앞에서 다른 워크캠프 참가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갑자기 눈이 파란 서양에서 온 워크캠프 참가자들을 보니 약간 긴장이 되었다. 과연 이 사람들과 영어라는 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되었다. 울란바타르 시내에서 1시간 정도 이동하여 도착한 캠프 사이트에는 이틀 전에 미리 도착해 있었던 다른 워크캠퍼들과 스무 명 정도의 고아원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은 오전에 이 전 워크캠퍼들(MCE07)이 떠난 날이었고, 그 곳에는 다른 봉사활동 단체에서 온 팀도 있었는데, 그 팀은 이미 한 달 정도 고아원 아이들과 지낸 상태여서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숙소는 벽돌로 지은 집과 게르 하우스 두 채, 총 3채가 있었는데, 나는 벽돌로 지은 집에 머물게 되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참가자들이 총 32명이어서 상당히 놀랐었다. 가기 전에 워크캠프 기구를 통해 신청 할 때에는 20명이라고 써있어서, 함께 참가했던 친구와 전통 오침안정법으로 공책을 딱 20권을 만들어 갔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누구에게 주어야 하나 고민과 함께, 저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언제 다 외우며, 다 이야기 해볼 수 있을까 생각되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시작된 농장일에서는 그저 앉아서 잡초를 뽑으면 되는 일이라서,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친해질 기회는 염려한 것 보다 많아서 좋았다.
다음날부터 아이들과 함께 농장일을 했는데, 당근 외의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당근이 죽는 건 상관없이 당근밭에서 뛰어다니며 놀기 바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어도 아이들이 영어를 전혀 못해서 영어로는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이런 봉사자들과 친해지는 법을 아는 듯이 봉사자들에게 장난도 잘 쳐 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그 날, 환영하는 파티가 열렸는데, 아이들이 우리 나라 가수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익숙한 우리나라 팝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얼마나 연습을 하였는지 아이들의 춤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그 다음날은 Sight-seeing day였는데, 걸어서 1시간 정도 늪지를 지나서 물이 샘솟는 곳으로 갔다가 오는 것이었다.
물이 샘솟는 곳으로 갔을 때는, 개구쟁이 아이들이 그 차디찬 물을 물통에 담아서 사람들 몸에 붓는 등 장난을 심하게 치기도 했었다. 나도 당했었는데, 아이들의 에너지와 장난기가 좀 버거울 만큼 아이들이 개구쟁이였다. 그리고, 워크캠퍼들과는 오전 일을 하고 나서 점심식사 후, 2시간 정도의 쉬는 시간 동안 게임을 하고, 나는 아이들과 캠퍼들의 손등에 캐리커쳐를 그려주면서 친해졌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정말 똑같다면서 좋아해주던 친구들의 얼굴이 생생하다. 영어를 못해도 다 친해지는 방법은 있긴 한 것 같다.
우리가 워크캠프 참가한 날이 운 좋게 나담축제가 열리는 날이라서, 또 파티를 했는데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차들을 가지고 와서 헤드라이트로 무대를 만들어주고, 음악을 크게 틀고 댄스파티를 열었다. 또 그 다음날은 한 달 정도 머물렀던 중국인 봉사자들이 떠나는 날이어서 환송 파티를 했다. 워크캠프 중간에 휴일을 이용해서 리틀고비에 3박 4일 다녀왔는데, 그 곳은 정말 황홀할 정도로 멋있는 곳이었고, 워크캠퍼들과도 정말 많이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저번 워크캠프에 비하면 솔직히 ‘정말 많이 노는’ 워크캠프였다. 그렇게 파티도 하고 놀러 갔다가 오는 것은 좋았지만, 워크캠프 참가자들 중에서 봉사활동이라는 것에 의의에 크게 둔 참가자는 약간 마음을 불편해 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날 전날, 나는 마음이 갔던 워크캠퍼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져온 엽서에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고, 한국에, 혹은 그 나라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만나자고…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너무나 많은 추억을 안겨준 워크캠퍼들과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핀란드 워크캠프를 다녀온 이후 대자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어서 그 이후로도 어디에서 대자연을 또 볼 수 있을까… 하며 생각하던 중 친한 친구가 몽골을 참 좋아해서 그 곳에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몽골’을 떠올렸을 때는 정말 발달이 안되어 있는 곳이라 생각이 먼저 드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생각보다 더 발달이 안된 곳이었다.
먼저, 몽골의 칭기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였는데, 같이 도착한 워크캠프 참가자들과 함께 현지 봉사자 바타르씨의 차를 타고 칭기스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다. 그 다음날, 비양골 호텔 앞에서 다른 워크캠프 참가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갑자기 눈이 파란 서양에서 온 워크캠프 참가자들을 보니 약간 긴장이 되었다. 과연 이 사람들과 영어라는 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되었다. 울란바타르 시내에서 1시간 정도 이동하여 도착한 캠프 사이트에는 이틀 전에 미리 도착해 있었던 다른 워크캠퍼들과 스무 명 정도의 고아원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은 오전에 이 전 워크캠퍼들(MCE07)이 떠난 날이었고, 그 곳에는 다른 봉사활동 단체에서 온 팀도 있었는데, 그 팀은 이미 한 달 정도 고아원 아이들과 지낸 상태여서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숙소는 벽돌로 지은 집과 게르 하우스 두 채, 총 3채가 있었는데, 나는 벽돌로 지은 집에 머물게 되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참가자들이 총 32명이어서 상당히 놀랐었다. 가기 전에 워크캠프 기구를 통해 신청 할 때에는 20명이라고 써있어서, 함께 참가했던 친구와 전통 오침안정법으로 공책을 딱 20권을 만들어 갔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누구에게 주어야 하나 고민과 함께, 저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언제 다 외우며, 다 이야기 해볼 수 있을까 생각되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시작된 농장일에서는 그저 앉아서 잡초를 뽑으면 되는 일이라서,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친해질 기회는 염려한 것 보다 많아서 좋았다.
다음날부터 아이들과 함께 농장일을 했는데, 당근 외의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당근이 죽는 건 상관없이 당근밭에서 뛰어다니며 놀기 바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어도 아이들이 영어를 전혀 못해서 영어로는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이런 봉사자들과 친해지는 법을 아는 듯이 봉사자들에게 장난도 잘 쳐 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그 날, 환영하는 파티가 열렸는데, 아이들이 우리 나라 가수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익숙한 우리나라 팝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얼마나 연습을 하였는지 아이들의 춤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그 다음날은 Sight-seeing day였는데, 걸어서 1시간 정도 늪지를 지나서 물이 샘솟는 곳으로 갔다가 오는 것이었다.
물이 샘솟는 곳으로 갔을 때는, 개구쟁이 아이들이 그 차디찬 물을 물통에 담아서 사람들 몸에 붓는 등 장난을 심하게 치기도 했었다. 나도 당했었는데, 아이들의 에너지와 장난기가 좀 버거울 만큼 아이들이 개구쟁이였다. 그리고, 워크캠퍼들과는 오전 일을 하고 나서 점심식사 후, 2시간 정도의 쉬는 시간 동안 게임을 하고, 나는 아이들과 캠퍼들의 손등에 캐리커쳐를 그려주면서 친해졌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정말 똑같다면서 좋아해주던 친구들의 얼굴이 생생하다. 영어를 못해도 다 친해지는 방법은 있긴 한 것 같다.
우리가 워크캠프 참가한 날이 운 좋게 나담축제가 열리는 날이라서, 또 파티를 했는데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차들을 가지고 와서 헤드라이트로 무대를 만들어주고, 음악을 크게 틀고 댄스파티를 열었다. 또 그 다음날은 한 달 정도 머물렀던 중국인 봉사자들이 떠나는 날이어서 환송 파티를 했다. 워크캠프 중간에 휴일을 이용해서 리틀고비에 3박 4일 다녀왔는데, 그 곳은 정말 황홀할 정도로 멋있는 곳이었고, 워크캠퍼들과도 정말 많이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저번 워크캠프에 비하면 솔직히 ‘정말 많이 노는’ 워크캠프였다. 그렇게 파티도 하고 놀러 갔다가 오는 것은 좋았지만, 워크캠프 참가자들 중에서 봉사활동이라는 것에 의의에 크게 둔 참가자는 약간 마음을 불편해 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날 전날, 나는 마음이 갔던 워크캠퍼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져온 엽서에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고, 한국에, 혹은 그 나라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만나자고…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너무나 많은 추억을 안겨준 워크캠퍼들과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