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에스토니아, 늦게 도착한 만큼 더 특별하게
ERVITA MANOR 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7월 3일 핀란드 헬싱키 반타공항에 도착. 원래 워크캠프 일정은 7월 2일부터 시작이지만 날짜를 혼동해서 비행기 표를 잘못 구입한 탓에 하루 늦게 도착했다. 핀란드에서 에스토니아 까지 가는 시간도 있어서 막상 워크캠프 장소에는 이틀이나 지난 7월 4일날 도착했다. 이틀이나 지나서 간다는 사실이 날 더 걱정 되게 했다. 그곳에서 먼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 좋게 보면 어쩌나, 나만 친해지지 못하면 어쩌나 등등 여러 가지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7월 4일 아침 9시쯤 워크캠프장소 Ervita 에 도착을 했다. 숙소 호스트 아저씨가 차로 픽업하러 나왔고 약 5분간 그 차를 타고 캠프장소로 이동했다.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저씨는 시속 120km로 쌩쌩 달렸다. 주위에는 넓은 초원과 중간중간 보이는 가축들과 집들뿐, 고층 건물들은 찾아볼 수가 없어서 신기했다. 캠프장소에 도착하자 난 무척이나 놀랐다. 그곳에는 나와 같이 간 친구 말고도 한국인언니가 두 명 이나 더 있었다. 무척이나 반가웠고 또 그 동안 짊어지고 있던 걱정거리들이 한 순간에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한국인 언니들 말고도 프랑스 여자아이,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온 남자아이가 한 명씩 있었다.
일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척이나 힘들었다. 한국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막노동을 타지에서 경험을 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붉은 벽돌과 시멘트 대신 돌과 흙을 사용했고 포크레인과 다른 중장비대신 사람의 힘과 도르래 역할을 하는 기계가 전부였다. 첫날과 이튿날은 온몸에 파스를 붙여야 할 정도로 몸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나도 이 생활에 적응을 한 것일까 흙을 푸고 돌을 나르고 나무 판자를 옮기는 것이 첫날만큼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건초 나르는 작업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나는 벌레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데 도구로 건초를 한번 집을 때마다 파리들이 나에게 꼬였는데 난 울고 싶었다. 그리고 그 건초를 가지고 양우리에 넣었는데 그 냄새는 상상을 초월했다. 너무 힘이 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평불만 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는 유럽아이들을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힘들었지만 음식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에스토니아의 주식은 감자라고 한다. 난 처음에 감자를 먹는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매번 으깬 감자를 먹으니 이틀이 지나자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인 언니들이 있었기에 같이 밥도 해먹고 라면도 해먹으며 겨우겨우 버텼다. 이것도 나름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워크캠프에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유럽인들과 우리 한국인들의 생활패턴이 달라서 교류를 많이 하지 못한 것 이었다. 유럽아이들은 바깥에서 맥주를 마시며 얘기 하는 것을 좋아했고 추위와 모기를 무서워하는 우리들은 주로 침대에서 수다를 떨었다. 아무래도 한국인 네 명 이 모이니 한국말로 수다 떠는게 좋았다. 물론 유럽아이들과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그룹으로 나뉜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타지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니 참 반가웠고 새로운 좋은 인연을 만난 것 같아 감사했다.
보호자 없이 스스로 해외로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이 나에게 이런 기회를 선물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스스로 길을 찾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하고 또 프로그램이 끝난 후 같이 여행을 하고 … 두려움이 항상 동행했지만 또 그러기에 한 단계 더 성숙하고 정신적으로 강해진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20살 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분명 힘든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에 비할 수 없는 추억들과 인연들을 만났기에 워크캠프를 간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일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척이나 힘들었다. 한국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막노동을 타지에서 경험을 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붉은 벽돌과 시멘트 대신 돌과 흙을 사용했고 포크레인과 다른 중장비대신 사람의 힘과 도르래 역할을 하는 기계가 전부였다. 첫날과 이튿날은 온몸에 파스를 붙여야 할 정도로 몸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나도 이 생활에 적응을 한 것일까 흙을 푸고 돌을 나르고 나무 판자를 옮기는 것이 첫날만큼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건초 나르는 작업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나는 벌레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데 도구로 건초를 한번 집을 때마다 파리들이 나에게 꼬였는데 난 울고 싶었다. 그리고 그 건초를 가지고 양우리에 넣었는데 그 냄새는 상상을 초월했다. 너무 힘이 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평불만 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는 유럽아이들을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힘들었지만 음식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에스토니아의 주식은 감자라고 한다. 난 처음에 감자를 먹는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매번 으깬 감자를 먹으니 이틀이 지나자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인 언니들이 있었기에 같이 밥도 해먹고 라면도 해먹으며 겨우겨우 버텼다. 이것도 나름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워크캠프에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유럽인들과 우리 한국인들의 생활패턴이 달라서 교류를 많이 하지 못한 것 이었다. 유럽아이들은 바깥에서 맥주를 마시며 얘기 하는 것을 좋아했고 추위와 모기를 무서워하는 우리들은 주로 침대에서 수다를 떨었다. 아무래도 한국인 네 명 이 모이니 한국말로 수다 떠는게 좋았다. 물론 유럽아이들과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그룹으로 나뉜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타지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니 참 반가웠고 새로운 좋은 인연을 만난 것 같아 감사했다.
보호자 없이 스스로 해외로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이 나에게 이런 기회를 선물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스스로 길을 찾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하고 또 프로그램이 끝난 후 같이 여행을 하고 … 두려움이 항상 동행했지만 또 그러기에 한 단계 더 성숙하고 정신적으로 강해진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20살 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분명 힘든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에 비할 수 없는 추억들과 인연들을 만났기에 워크캠프를 간 보람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