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이탈리아, 두려움 반 설렘 반
Modica-Ispic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가 워크캠프 합격 소식을 들은 것은 6월 초쯤이었다. 워크캠프 시작일의 1달 전 즈음에 알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는 대략적인 참가지가 한참 전에 나오는지라 그때 예매하면 저렴하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1달 남긴 즈음에 예매하느라 많은 항공료가 요구되었다. 다행히도 지인의 도움으로 그나마 싼 가격으로 예매를 할 수 있었다.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해외여행의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그때부터 미친듯이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네이버카페인 ‘유랑’, 그리고 워크캠프 카페인 ‘워크캠프 100배즐기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혼자 여행한다는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100배즐기기’에 참가자 찾기란이 있길래 혹시나 해서 같은 워크캠프 참가자인 현철이형이 있었다. 현철이형과 그때부터 연락을 하고 이탈리아 남부 도시인 카타니아에서 만나기로 했다.(현철이 형은 로마에 착륙하여 내려온다 하였고, 나는 참가지역인 모디카 근처의 공항인 카타니아에서 착륙하였다.) 부모님,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항공만 이용해보고 해외로 가는 항공은 한번도 타보지 못했지만 뭐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 독일 뮌헨공항에서 경유하여 이탈리아의 카타니아 공항에 착륙하니 밤 10시였다. 예약했던 호스텔에 찾아가야 하는데 많이 헤맸다. 또한 유로2012의 이탈리아와 독일의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승리 직후에 도착했기 떄문에 도시의 분위기는 엄청 뜨거웠었다. 빵빵거리는 소리, 함성소리에 흥분한 시민들….나는 되게 긴장했었다. 하지만 찍어왔던 약도로 어렵게 찾아갈 수 있었다. 호스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나는 잠에 빠졌다. 일어나서는 카타니아의 관광지를 돌아보았다. 점심은 근처 가게에서 빵과 음료수를 사먹고 (아침은 호스텔에서) 저녁엔 기차를 타고 오는 현철이형을 만났다. 타지에서 고국의 사람을 보니 되게 반가웠다. 현철이형과 같은 호스텔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캠프지역인 모디카로 떠났다. 모디카로 가기 위해선 버스를 타고가야 했다. 약 2시간 반이 걸려서 도착하니 캠프리더인 이바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바노와 같이 다른 캠프 참가자를 기다리고 몇 명이 오자 그의 밴으로 출발했다. 가는 내내 나는 매우 조용했었다. 다른 해외 참가자들은 웃고 떠들고 했지만 나는 도저히 대화에 수월히 참가할 수 없었다. 귀로는 어떤 말인지 다 알아들을 수 있지만 입에서 말이 맴돌고 나가지 않는 듯이 힘들었다. 그러나 소개는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한국인 2명, 프랑스인 3명, 벨기에인 1명, 독일인 2명, 러시아인 2명, 벨라루스인 한명, 이탈리아인 5명이 봉사자 들이었는데, 놀랐던건 프랑스인인 조셉이 62살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11번째 워크캠프라고 했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modica 내의 cava I’s pica였다. 이 지역은 고대에 사람이 살았던 토굴로 유명했는데 우리 봉사의 목적은 유적지 청소와 통행에 불편한 나무와 돌을 치우는 것 이었다. 우리가 지내는 곳은 유적지 근처의 펜트하우스 였는데, 시골이라 걱정했던 화장실과 샤워실은 현대식으로 구비되있어 안심되었다. 자는 건 개인 당 하나씩 간이침대가 주어졌다. 나랑 현철이형은 그럭저럭 불편하지 않았지만, 몇몇 다른 참가자들은 불편해하였다. 첫날밤엔 이웃사람들과 같이 숙소에 모여 인사를 주고받았다. 또 캠프관계자인 조르죠와 루도비카의 향후 계획과 하루일과를 들었다. 다음날은 숙소 근처의 유적지를 구경하러 갔다. 그곳엔 무덤과 주거지가 있었는데, 수천년이 된 지금도 보존이 잘 되있었다. 밤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결승전을 보러 도시의 피자레스토랑에 갔다. 그날은 이탈리아가 스페인에게 4:0으로 무참하게 깨졌다. 다음날엔 모디카의 시청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시장과 인사를 하고 방송국 사람들이 인터뷰를 하러왔다. 우리는 아마 지역방송에 출연했었던 듯 하다. 끝나고 도시 근처의 카페에서 와이파이를 즐기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 다음날 부턴 본격적인 일의 시작이었다. 유적지 근처의 가시덤불과 나무들을 자르고, 통행에 방해되는 돌을 치웠다. 심지어는 유적지 안에 소와 말이 싸놓은 대변을 치우기도 했다. 그러나 평일이라도 일을 매일 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봉사했던 기간은 한창 더울때의 날씨였다. 캠프기간 내내 비가 오지않는 극도의 건조한 날씨였고, 햇빛 아래의 기온이 섭씨 48도였던 적도 있었다. 이런날엔 일을 못하고 그늘아래에 꼼짝 없이 있어야 했다. 어쨋거나 아침 8시부터 12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그 이후엔 해변에 가서 해수욕을 즐기거나 시칠리아의(모디카는 시칠리아에 속해있다.) 관광지를 구경했다. 주말에도 관광을 다니거나 마트에 들려 물건을 샀다. 제일 좋았던 것은 해변에 가서 놀았던 거다. 바닷가의 모래는 무척 부드러워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됬었고, 바닷물은 안이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되게 적었다. 우리는 해수욕을 즐긴후에 물통을 세워 축구를 했는데, 그때부터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그 이후로 말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먹는 것은 캠프 관계자인 루도비카가 요리를 해주었다. 거의 파스타와 샐러드, 떄때로는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하루 이틀은 괜찮았지만 계속 먹다보니 고역이었다. 가져온 고추장에 비벼먹기도 했다. 가끔씩 외식을 하기도 했는데, 물가가 비싸서 한기에 8유로(약 12000원) 정도는 기본이었다. 이게 계속되면 캠프후의 여행이 힘들어지는지라 나중에는 내가 의견을 내세워서 말리기도 했었다. 아침,점심,저녁은 루도비카가 준비해주지만 그릇과 포크, 나이프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당연히 봉사자들의 몫이었다. 이것말고도 화장실청소, 집 내부 청소등 다양한 일과를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서 종이에 써놓아서 벽에 붙여놓았다.( 이 계획표를 내가 가지고 왔다!) 그런데 러시아 참가자 두명은 매우 게을렀다. 오늘은 너무 심하게 일해서 힘들다는 둥, 머리가 아프다는 둥 갖은 핑계를 대서 같은 참가자들을 화나게 했다. 나는 내 몫도 열심히 하고 다른 참가자들을 돕기도 했다.
웃긴 일도 많았다. 어느 날밤엔 이바노가 코고는 것인지 모를정도로 엄청 큰소리로 코를 골았다. 잠에서 깬 봉사자들은 이마에 BOSS라고 써놓고 코고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서 아침에 본인에게 보여줬다. 이바노는 무척 부끄러워했다. 하하. 또 벨기에인인 맥심이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지 않은 상태로 대변을 보다가 러시아인인 이라가 실수로 확 열어버렸다. 현장을 보진 못했지만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맥심에게 참가자들은 ‘Please, lock the door’ 이라고 했고, 맥심은 다른 참가자들에게 ‘Please, knock the door’ 이라고 응수했다. 정말 배꼽잡고 웃었다.
한국을 알린다는 사명감에 여러가지 활동도 했다. 현철이형은 공기놀이 돌을 가져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해 보였다. 흥미가 생긴 사람들은 하는 방법을 배운 후 즐겼다. 정말 인기가 좋았는지 나중에는 이 돌을 어디서 사야하는지 루이지가 물어보았다. 현철이형은 후에 작별인사를 할 때 선물로 주었다.
나는 소녀시대와 빅뱅의 브로마이드를 가져왔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떠나기 전에 기념품가게 사장님이 유럽인이 정말 좋아한다고 하길래 몇장 챙겼지만 아무도 몰라서 허탈해했다. 한류 열풍이 유럽을 강타했다 하지만 아닌가보다. 그래서 브로마이드를 나보다 어린 프란체스코와 엘레나에게 주니 좋아했다. 정말 인기가 좋았던 것은 한국요리를 할 때 였다. 캠프가 끝나기 며칠 전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음식을 나눠 먹는 계획이 있었는데, 나와 현철이 형이 요리를 할 때였다. 우린 불고기와 호떡, 김, 쌀밥, 고추장과 후식으로 쌀과자를 준비했다. 모두가 맛있다며 몇번씩 반복해서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한그릇 먹을때도 남기던 러시아 여자참가자 이라와 엘레나도 두 그릇씩 먹었다. 매우 성공적이라 나는 먹지않아도 배불렀다. 다른 참가자들도 자국의 먹거리를 준비했다. 프랑스인인 조나단은 자기 고향의 와인을 준비했고, 벨기에인인 맥심은 자기나라의 맥주가 최고라며 직접 가져온 맥주를 따라주었다. 모두 맛있었다.
환경에 관한 캠프라 여러가지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틀을 걸쳐 환경 다큐멘타리를 보고 토론을 했는데 서로 진지해지며 의견을 말했다. 나도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전날에 가방을 싸놓고 다른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브로마이드 말고도 한국의 전통문양이 들어간 책갈피와 한복을 입은 동물인형을 준비했는데, 책갈피는 남성 참가자에게 주고 인형은 여성 참가자에게 주었다. 되게 고마워했었다. 떠날 시간이 되자 모두 포옹을 하고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만나자는 말을 했다. 정말 떠나기 싫었다. 너무 정들어서 예전과는 다르게 어색하지도 않고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었다. 서로의 페이스북 아이디를 나누고 각자 갈 길을 갔다. 7월 14일, 워크캠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나와 형은 나폴리로 떠나 이틀을 묵으며 관광지를 돌아다녔고 다음 이틀 동안 로마에 묵으면서 또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고 각자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워크캠프는 정말 잊지 못할,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하고 갚진 기억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고 싶다.
그때 그 사람들, 그 음식들, 그 향기들, 그 광경들…. 아름답던 그 날들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먹는 것은 캠프 관계자인 루도비카가 요리를 해주었다. 거의 파스타와 샐러드, 떄때로는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하루 이틀은 괜찮았지만 계속 먹다보니 고역이었다. 가져온 고추장에 비벼먹기도 했다. 가끔씩 외식을 하기도 했는데, 물가가 비싸서 한기에 8유로(약 12000원) 정도는 기본이었다. 이게 계속되면 캠프후의 여행이 힘들어지는지라 나중에는 내가 의견을 내세워서 말리기도 했었다. 아침,점심,저녁은 루도비카가 준비해주지만 그릇과 포크, 나이프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당연히 봉사자들의 몫이었다. 이것말고도 화장실청소, 집 내부 청소등 다양한 일과를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서 종이에 써놓아서 벽에 붙여놓았다.( 이 계획표를 내가 가지고 왔다!) 그런데 러시아 참가자 두명은 매우 게을렀다. 오늘은 너무 심하게 일해서 힘들다는 둥, 머리가 아프다는 둥 갖은 핑계를 대서 같은 참가자들을 화나게 했다. 나는 내 몫도 열심히 하고 다른 참가자들을 돕기도 했다.
웃긴 일도 많았다. 어느 날밤엔 이바노가 코고는 것인지 모를정도로 엄청 큰소리로 코를 골았다. 잠에서 깬 봉사자들은 이마에 BOSS라고 써놓고 코고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서 아침에 본인에게 보여줬다. 이바노는 무척 부끄러워했다. 하하. 또 벨기에인인 맥심이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지 않은 상태로 대변을 보다가 러시아인인 이라가 실수로 확 열어버렸다. 현장을 보진 못했지만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맥심에게 참가자들은 ‘Please, lock the door’ 이라고 했고, 맥심은 다른 참가자들에게 ‘Please, knock the door’ 이라고 응수했다. 정말 배꼽잡고 웃었다.
한국을 알린다는 사명감에 여러가지 활동도 했다. 현철이형은 공기놀이 돌을 가져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해 보였다. 흥미가 생긴 사람들은 하는 방법을 배운 후 즐겼다. 정말 인기가 좋았는지 나중에는 이 돌을 어디서 사야하는지 루이지가 물어보았다. 현철이형은 후에 작별인사를 할 때 선물로 주었다.
나는 소녀시대와 빅뱅의 브로마이드를 가져왔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떠나기 전에 기념품가게 사장님이 유럽인이 정말 좋아한다고 하길래 몇장 챙겼지만 아무도 몰라서 허탈해했다. 한류 열풍이 유럽을 강타했다 하지만 아닌가보다. 그래서 브로마이드를 나보다 어린 프란체스코와 엘레나에게 주니 좋아했다. 정말 인기가 좋았던 것은 한국요리를 할 때 였다. 캠프가 끝나기 며칠 전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음식을 나눠 먹는 계획이 있었는데, 나와 현철이 형이 요리를 할 때였다. 우린 불고기와 호떡, 김, 쌀밥, 고추장과 후식으로 쌀과자를 준비했다. 모두가 맛있다며 몇번씩 반복해서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한그릇 먹을때도 남기던 러시아 여자참가자 이라와 엘레나도 두 그릇씩 먹었다. 매우 성공적이라 나는 먹지않아도 배불렀다. 다른 참가자들도 자국의 먹거리를 준비했다. 프랑스인인 조나단은 자기 고향의 와인을 준비했고, 벨기에인인 맥심은 자기나라의 맥주가 최고라며 직접 가져온 맥주를 따라주었다. 모두 맛있었다.
환경에 관한 캠프라 여러가지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틀을 걸쳐 환경 다큐멘타리를 보고 토론을 했는데 서로 진지해지며 의견을 말했다. 나도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전날에 가방을 싸놓고 다른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브로마이드 말고도 한국의 전통문양이 들어간 책갈피와 한복을 입은 동물인형을 준비했는데, 책갈피는 남성 참가자에게 주고 인형은 여성 참가자에게 주었다. 되게 고마워했었다. 떠날 시간이 되자 모두 포옹을 하고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만나자는 말을 했다. 정말 떠나기 싫었다. 너무 정들어서 예전과는 다르게 어색하지도 않고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었다. 서로의 페이스북 아이디를 나누고 각자 갈 길을 갔다. 7월 14일, 워크캠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나와 형은 나폴리로 떠나 이틀을 묵으며 관광지를 돌아다녔고 다음 이틀 동안 로마에 묵으면서 또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고 각자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워크캠프는 정말 잊지 못할,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하고 갚진 기억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고 싶다.
그때 그 사람들, 그 음식들, 그 향기들, 그 광경들…. 아름답던 그 날들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