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미나마타, 용기로 시작된 특별한 만남
Minamata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이번 미나마타 워크캠프에 가기 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월달 대만 여행에서 발등이 골절되어 반 깁스를 하고 있었고 또한 친구나 가족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닌 나 혼자 떠나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많았다. 그래서 사실 워크캠프를 떠나야 하는 당일까지도 비행기표는 예약해놨음에도 불구하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짐을 싸면서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왕 참가비도 다 냈고 의사선생님 또한 무리는 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도전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집을 혼자 나섰다.
인천에서 가고시마행 비행기를 타고 내려 2시간의 긴 버스여행을 끝난 후에나 미나마타라는 곳에서 내릴 수 있었다. 떠나기 전 인터넷에 미나마타를 쳐봐도 정보의 대부분은 미나마타병의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나마타라는 곳에 대한 정보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행히 공항에서 미나마타까지 같이 버스를 탄 한국인 워크캠퍼가 있어서 우리는 같이 내리게 되었고 우리를 마중온 이탈리아 중장기 봉사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와 도쿄에서 유학중인 한국인 캠퍼와 그리고 밤 늦게 도착한 또 다른 이탈리아 캠퍼는 캠프 시작 하루 전에 도착하게 되었다. 때마침 그날 진짜 어마 어마 한 강풍과 비가 내려 과연 워크캠프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하게 하였다.
다행히 다음 날 날씨는 괜찮아 졌고 우리는 우리가 2주동안 지낼 마을회관으로 짐을 옮겨 도착하게 될 다른 캠퍼들을 기다렸다. 몇 십 분이 지나자 일본 친구들, 프랑스 친구가 도착하여 대부분의 워크캠퍼들이 도착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 굉장히 어색했다. 서로 같이 모여 앉아있었지만 눈이 마주치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조차 웃기다. 다행히 일본인 친구가 일본의 장난감과 색종이를 가져와서 그걸로 우리는 조금씩 친해질 수 있었다. 그 날 밤 우리가 있는 마을회관에서는 우리를 환영해주는 환영회가 있었다. 갑자기 주민들이 하나씩 무언가를 가지고 오셨는데 그것을 바로 환영회를 위한 음식이었다. 그 음식들아 하나씩 모이자 진수성찬이 되고 그렇게 우리의 환영회가 시작되었다. 나와 이탈리아친구는 아저씨들 사이에 둘만 앉아있게 되었는데 나의 하찮은 일본어 실력으로 아저씨들이 이탈리아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을 영어로 다시 말해주고 또 그 친구가 답한 것을 일본어로 말해주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서 3일정도간은 미나마타병에 대해서 배우고 환경에 대해서 배우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선 미나마타병에 대해서 배우고 또한 미나마타 병 박물관에 가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여서 미나마타병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각 나라의 참가자들의 자신의 나라의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고 특히 일본 후쿠시마에 사시는 NPO분이 오셔서 후쿠시마의 상황과 또한 원자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나는 일본사람들은 원자력에 대해서 그리고 후쿠시마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일본을 떠나기 전 요즘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산 야채를 먹자는 캠페인이 열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쿠시마에서 온 NPO분은 나의 그런 생각을 깨버리셨다. 그분도 요즘 어느 한 쪽에서는 후쿠시마 야차를 먹자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그게 과연 잘하는 행동인지 그리고 방사능의 수치에 대해서도 안전에 대해서도 누구도 알 수 없는데 혹시나 그런 것들로 인해 임산부나 어린아이들의 피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또한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3일동안의 워크샵이 끝나고 우리는 미나마타시장의 직인이 찍힌 카드를 받았다. 그것은 미나마타 홍보대사로 입명한다는 것으로 미나마타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내 친구나 가족에게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미나타나주민들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더 안타까워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타마타에 많은 주민들도 수은에 인해서 많은 생명이 희생을 당했듯이 후쿠시마도 원자력 때문에 먼 훗날 갑자기 예고 없이 많은 사람이 희생을 치룰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워크샵의 다음 날 부 터는 우리가 하게 될 일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두 가지로 하나는 대나무 문을 만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나무 숯을 만드는 것이다. 대나무 숯은 나중에 미나마타 바다에 넣어놔 바닷물을 정화하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대나무 숯을 만드는 법은 처음에는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니 노동의 연속이고 뜨거운 불 앞에서 있어서 힘들었다. 우리는 하루에 2개의 팀으로 나누어 일을 하였고 워크캠프가 끝나갈 쯤에는 양파 수확 철이어서 양파 팀도 나누어 3개팀으로 일을 하였다.
또한 하루는 미나마타에서 주체한 국제 페스티벌에도 참가하여 각자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고 홈스테이도 하였다.
일을 하는 일정에는 항상 우리는 8시쯤에 일어나 9시까지 밥을 먹고 일을 하러 나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10시쯤에 일을 시작하여 12시부터 한 시간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5시까지 일을 하였다. 일을 연속으로 했던 날에는 이런 스케쥴이 조금은 지겨웠지만 친구들과 함께해서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즐거웠던 워크캠프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처음 환영파티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우리를 위해서 음식을 해주셨기 때문에 송별회에서는 우리가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음식리더를 그리고 러시아 친구가 지역 분들께 보여드릴 장기자랑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음식은 각 나라의 음식 2가지 정도씩을 만들기로 하였다. 한국팀은 불고기, 김치볶음밥, 계란 말이, 김치부침개를 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스파게티 프랑스는 키쉬 등을 준비하였다. 장기자랑은 프랑스 친구는 샹송을 한국팀은 올챙이 송을 불렀고 일본 팀은 구마모토캐릭터인 쿠마몬의 캐릭터 송을 춤추며 노래하였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러시아 친구와 한국 친구와 왈츠였다. 마을회관 안이 좁아 그 둘은 밖에서 차의 전등을 비추며 춤을 췄는데 아주 근사하였다. 많은 분들이 와서 즐거워해주셔서 더 좋았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공교롭게도 한 명씩 떠나게 되었다. 나는 한 명 한 명이 떠날 때마다 그날 새벽에 일어나서 쓴 편지를 주었다. 마지막 포옹을 할 때 정말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섭섭했다. 그리고 나도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남아있는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차에 타는데 코가 찌릿했다. 울고 싶었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하며 눈물을 참았다.
처음 참가하기 전 잡다한 걱정들은 정말 쓸모 없는 걱정들이었다. 2주동안 정말 오랜만에 한없이 배가 아플 정도로 많이 웃었던 것 같다. 항상 우리들끼리 모여있으면 웃음이 나고 별거 아닌 거에도 서로 놀리며 웃었다. 그리고 서로 싸움이나 질투 없이 이렇게 잘 끝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2주동안 같이 산다는 것이 경험하기 전에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아주 좋은 경험이었고 또한 사람과 친해지고 같이 사는 법에 대해서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미나마타에서 워크캠프를 하게 되어서 잘 짜인 프로그램에서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2주를 보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워크샵도 하고 축제에도 참여하고 일도 하고 홈스테이도 했기 때문에 2주가 더 빨리 가버린 것 같다.
2주동안의 나의 행복했던 기억을 절대 잊고 싶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알게 된 인연들과도 그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한 나의 이러한 경험들의 내가 추구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천에서 가고시마행 비행기를 타고 내려 2시간의 긴 버스여행을 끝난 후에나 미나마타라는 곳에서 내릴 수 있었다. 떠나기 전 인터넷에 미나마타를 쳐봐도 정보의 대부분은 미나마타병의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나마타라는 곳에 대한 정보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행히 공항에서 미나마타까지 같이 버스를 탄 한국인 워크캠퍼가 있어서 우리는 같이 내리게 되었고 우리를 마중온 이탈리아 중장기 봉사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와 도쿄에서 유학중인 한국인 캠퍼와 그리고 밤 늦게 도착한 또 다른 이탈리아 캠퍼는 캠프 시작 하루 전에 도착하게 되었다. 때마침 그날 진짜 어마 어마 한 강풍과 비가 내려 과연 워크캠프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하게 하였다.
다행히 다음 날 날씨는 괜찮아 졌고 우리는 우리가 2주동안 지낼 마을회관으로 짐을 옮겨 도착하게 될 다른 캠퍼들을 기다렸다. 몇 십 분이 지나자 일본 친구들, 프랑스 친구가 도착하여 대부분의 워크캠퍼들이 도착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 굉장히 어색했다. 서로 같이 모여 앉아있었지만 눈이 마주치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조차 웃기다. 다행히 일본인 친구가 일본의 장난감과 색종이를 가져와서 그걸로 우리는 조금씩 친해질 수 있었다. 그 날 밤 우리가 있는 마을회관에서는 우리를 환영해주는 환영회가 있었다. 갑자기 주민들이 하나씩 무언가를 가지고 오셨는데 그것을 바로 환영회를 위한 음식이었다. 그 음식들아 하나씩 모이자 진수성찬이 되고 그렇게 우리의 환영회가 시작되었다. 나와 이탈리아친구는 아저씨들 사이에 둘만 앉아있게 되었는데 나의 하찮은 일본어 실력으로 아저씨들이 이탈리아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을 영어로 다시 말해주고 또 그 친구가 답한 것을 일본어로 말해주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서 3일정도간은 미나마타병에 대해서 배우고 환경에 대해서 배우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선 미나마타병에 대해서 배우고 또한 미나마타 병 박물관에 가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여서 미나마타병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각 나라의 참가자들의 자신의 나라의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고 특히 일본 후쿠시마에 사시는 NPO분이 오셔서 후쿠시마의 상황과 또한 원자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나는 일본사람들은 원자력에 대해서 그리고 후쿠시마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일본을 떠나기 전 요즘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산 야채를 먹자는 캠페인이 열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쿠시마에서 온 NPO분은 나의 그런 생각을 깨버리셨다. 그분도 요즘 어느 한 쪽에서는 후쿠시마 야차를 먹자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그게 과연 잘하는 행동인지 그리고 방사능의 수치에 대해서도 안전에 대해서도 누구도 알 수 없는데 혹시나 그런 것들로 인해 임산부나 어린아이들의 피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또한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3일동안의 워크샵이 끝나고 우리는 미나마타시장의 직인이 찍힌 카드를 받았다. 그것은 미나마타 홍보대사로 입명한다는 것으로 미나마타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내 친구나 가족에게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미나타나주민들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더 안타까워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타마타에 많은 주민들도 수은에 인해서 많은 생명이 희생을 당했듯이 후쿠시마도 원자력 때문에 먼 훗날 갑자기 예고 없이 많은 사람이 희생을 치룰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워크샵의 다음 날 부 터는 우리가 하게 될 일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두 가지로 하나는 대나무 문을 만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나무 숯을 만드는 것이다. 대나무 숯은 나중에 미나마타 바다에 넣어놔 바닷물을 정화하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대나무 숯을 만드는 법은 처음에는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니 노동의 연속이고 뜨거운 불 앞에서 있어서 힘들었다. 우리는 하루에 2개의 팀으로 나누어 일을 하였고 워크캠프가 끝나갈 쯤에는 양파 수확 철이어서 양파 팀도 나누어 3개팀으로 일을 하였다.
또한 하루는 미나마타에서 주체한 국제 페스티벌에도 참가하여 각자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고 홈스테이도 하였다.
일을 하는 일정에는 항상 우리는 8시쯤에 일어나 9시까지 밥을 먹고 일을 하러 나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10시쯤에 일을 시작하여 12시부터 한 시간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5시까지 일을 하였다. 일을 연속으로 했던 날에는 이런 스케쥴이 조금은 지겨웠지만 친구들과 함께해서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즐거웠던 워크캠프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처음 환영파티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우리를 위해서 음식을 해주셨기 때문에 송별회에서는 우리가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음식리더를 그리고 러시아 친구가 지역 분들께 보여드릴 장기자랑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음식은 각 나라의 음식 2가지 정도씩을 만들기로 하였다. 한국팀은 불고기, 김치볶음밥, 계란 말이, 김치부침개를 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스파게티 프랑스는 키쉬 등을 준비하였다. 장기자랑은 프랑스 친구는 샹송을 한국팀은 올챙이 송을 불렀고 일본 팀은 구마모토캐릭터인 쿠마몬의 캐릭터 송을 춤추며 노래하였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러시아 친구와 한국 친구와 왈츠였다. 마을회관 안이 좁아 그 둘은 밖에서 차의 전등을 비추며 춤을 췄는데 아주 근사하였다. 많은 분들이 와서 즐거워해주셔서 더 좋았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공교롭게도 한 명씩 떠나게 되었다. 나는 한 명 한 명이 떠날 때마다 그날 새벽에 일어나서 쓴 편지를 주었다. 마지막 포옹을 할 때 정말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섭섭했다. 그리고 나도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남아있는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차에 타는데 코가 찌릿했다. 울고 싶었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하며 눈물을 참았다.
처음 참가하기 전 잡다한 걱정들은 정말 쓸모 없는 걱정들이었다. 2주동안 정말 오랜만에 한없이 배가 아플 정도로 많이 웃었던 것 같다. 항상 우리들끼리 모여있으면 웃음이 나고 별거 아닌 거에도 서로 놀리며 웃었다. 그리고 서로 싸움이나 질투 없이 이렇게 잘 끝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2주동안 같이 산다는 것이 경험하기 전에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아주 좋은 경험이었고 또한 사람과 친해지고 같이 사는 법에 대해서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미나마타에서 워크캠프를 하게 되어서 잘 짜인 프로그램에서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2주를 보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워크샵도 하고 축제에도 참여하고 일도 하고 홈스테이도 했기 때문에 2주가 더 빨리 가버린 것 같다.
2주동안의 나의 행복했던 기억을 절대 잊고 싶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알게 된 인연들과도 그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한 나의 이러한 경험들의 내가 추구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