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펙을 넘어선 이탈리아의 선물
Ceregnano, Polesin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생 문화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화는 바로 ‘스펙’문화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된 동기도 바로 다름아닌 스펙때문이다. 내 나이는 현재 23살. 1년 뒤에 졸업을 앞두고 있고, 취업을 위해 소위 말하는 스펙을 무시할 수 없는 나이이다.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하고 강력한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휴학을 했고 이것저것 스펙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알아보다가 아주 우연히 알게된 국제워크캠프. 나는 출발하기도 전부터 단지 워크캠프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수료증만을 빨리 얻고 싶었다. 혼자 가는 여행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 참가자는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는 이 워크캠프가 나에게 스펙 그 이상의 어마어마한 것을 안겨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이탈리아 워크캠프에 지원했다. 이탈리아는 내가 가보고 싶었던 나라이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이탈리아가 끌렸다. 그래서 참가하게 되었고 ‘Legambiente(레감비엔떼)’라는 봉사활동 단체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레감비엔떼는 이탈리아에서 굉장히 활발한 봉사활동 조직이었다. 초록색 백조를 마크로 삼는 레감비엔떼. 초록색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깨끗한 환경을 뜻했다. 백조가 참 인상깊었는데, 백조를 마크로 삼은 이유는 백조는 평소에는 평화롭고 조용하지만 화가 나면 무섭게 돌변하기 때문에, 레감비엔떼 마크를 백조로 정했다고 했다. 마치 자연도 평소엔 평화롭고 조용하다가 인간들이 많이 훼손하면 할수록 지진이나 태풍, 쓰나미,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를 무섭게 일으키는 것 처럼 말이다. 레감비엔떼는 Lama 역을 이번 워크캠프 지역으로 정했는데, 내가 그 워크캠프 지역에 가게 된 것이다. Lama역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깡촌이었다. Lama역으로 가기 위해선 Rovigo역에서 한번 더 기차를 타고 Lama역으로 가야 했다. Lama행 기차의 외관이 그 곳이 정말 시골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정말 작고 오래되어 보였던 Lama행 기차.
불안함과 떨림으로 가득했던 워크캠프 첫째 날. 참가자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워크캠프가 끝나기는 할까?’라는 의구심과,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 그것도 외국인과의 첫 마주함을 앞두고 우리는 미팅포인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바로 내가 앞으로 2-3주 동안 몸담아야 할 워크캠프에 일본인 참가자 2명이 있는 것이었다. 일본인… 한국과 일본과의 문제는 다른 외국인들은 그 정서를 이해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언급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걱정부터 앞섰다. 특히 독도문제나 위안부문제 등등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화두에 오를까 항상 조마조마 했다. 그리고 이건 나의 문제인데, 솔직히 말해서 3-4일간은 일본인에게 경계심을 가졌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아! 언제 빨리 끝나지?’, ‘아.. 빨리 벗어나고 싶다.’ 라는 생각을 주로 했다. 하지만 나중엔 곧 잘 친해지고 같이 사진도 찍을만큼 가까워졌으니, 일본인 참가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Leg38 코드에 참가한 참가자 수는 나 포함 7명이었다. 2명은 터키에서 온 쟌과 투트코, 2명은 일본에서 온 슈스케와 미츠히로, 1명은 벨기에에서 온 스텔라, 1명은 프랑스에서 온 안, 나머지 한명은 한국에서 온 나. 맨 처음에는 엄청난 소외감이 밀려왔다. 터키사람들은 터키어로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고, 벨기에에서 온 스텔라와 프랑스에서 온 안은 서로 프랑스어로 얘기할 수 있었고, 슈스케와 미츠히로는 일본어로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나만 한국어로 이야기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소외감 드는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게다가 나는 영어도 유창하게 잘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맨 처음에는 물어보는 질문에만 대답하고, 정말 필요한 질문만 하는 식으로 대화했었다. 하지만 내가 경계하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내 워크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일본인에게 경계심을 가졌던 게 미안해질 정도로 일본인 남자아이 두 명도 친절하고 재밌는 아이들이었다. 터키에서 온 쟌과 투트코도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금방 친해졌다. 특히 내가 한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감탄을 연발했고, 한국인 정말 귀엽다면서 내 외모에도 정말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특히 투트코와는 함께 요리도 하고, 생각도 비슷해서 서로서로 얘기도 많이 했고, 일할 때도 서로서로 도와가며 함께했다. 그리고 벨기에에서 온 스텔라. 사실 스텔라의 영어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어서 투트코만큼 얘기를 많이 나누진 못했다. 영국식 영어와 프랑스어 발음이 섞여서 영어에 비음도 많고 또 스텔라가 너무 빨리 말해서 다시 물어보는 일이 꽤 많았다. 항상 일도 솔선수범 열심히 하고, 여장부처럼 활발한 스텔라. 스텔라는 처음 미팅포인트에서 만났을 때 나에게 참 용감한 아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이탈리아까지 오기도 멀고, 친구 없이 혼자서 워크캠프에 참가한 것 자체가 정말 용감하다고 나를 많이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 처음에 내가 한국인이라 하니까 ‘안녕하세요’, ‘고마워’라고 한국어로 말했던 언니! 안은 제주도에 워크캠프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나와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같이 가쉽을 떨었던 안! 그래서 그런지 더 친해졌다. 내기를 하기도 하고, 내가 내기에서 져서 선물로 안의 얼굴을 그린 캐릭터와 편지, 그리고 마스크 팩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서 남다른 우정을 과시했던 안과 나. 정말 친 언니같기도 했고,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나한테 말도 많이 걸어서 말동무도 되어주고, 함께 요리도 하고, 일 하기 힘들 땐 서로 꾀도 부리고.. 아무튼 안 덕분에 정말 외국인 친구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캠프리더! 마리아와 누노. 마리아는 말 그대로 여성파워였다. 항상 리더쉽 있었고, 마리아도 나에게 진짜 용감하고 강한 아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안과 동갑이었던 마리아. 내가 한참 동생이기도 했고, 또 동생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몰라도 뒤에서 잘 챙겨주었다. 그리고 누노. 잘생긴 포르투갈 청년. 워크캠프에서 굳은 일은 대부분 누노가 도맡아했다. 특히 힘쓰는 일이나 큰 나무를 베는 일, 도끼질은 누노 담당이었다. 진짜 일하는 모습이 너무 멋잇었던 누노.
우리의 워크캠프는 이렇게 9명의 사람들로 꾸려졌다. 우리의 일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Lama역 근처를 깨끗하게 만들고, 훼손된 역을 재생시키는 일이었다. 우리는 흙으로 뒤덮였던 역을 삽질도하고, 빗질도 하고 깨끗하게 만든 후에 그 위에 레감비엔떼 텐트를 설치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 텐트가 나에게는 큰 소속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이탈리아에 와서, 레감비엔떼라는 단체와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 라는 일종의 소속감 말이다. 그리고 그 텐트 뒤 들판을 가꾸는 것이 우리의 주된 일이었다. 여기저기 산만하게 뻗어있는 나무들, 그리고 널려있는 병, 캔, 담배꽁초, 각종 쓰레기들, 손질되지 않은 채 오래 방치된 잔디들. 우리는 이것들을 가지런히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주로 큰 나무들을 제거하고 가지치기를 하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모두들 일할 때 만큼은 열중해서 일에 집중하였다. 작은 숲이다 보니 일하면서 쟌과 투트코는 벌에 쏘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낫질을 하다가 잘못해서 내 허벅지를 살짝 찍기도 했고, 일하는 도중에도 스텔라와 나는 모기에 무척이나 고생했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Lama 역은 깨끗해졌고, 사람 손길이 닿은 흔적을 보였다.
오전에 일이 끝나면 오후에는 낮잠을 자거나, 근교에 놀러를 가거나, 근처 바다에 가기도 했다. 한국에서 자주 가보지 못한 바다를 이탈리아에서 무려 세 번씩이나 갔다. 뿐만 아니라 가까운 소도시의 축제도 구경했고, 그렇게 유명한 젤라또도 많이 먹었다. 스텔라가 제안한 Times up 이란 게임도 하고, 카드게임도 하고 여러가지 활동들을 통해 우리 캠퍼들간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것도 무려 2-3주 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더욱 그러했으리라. 워크캠프에 있는 동안 시간이 무척이나 빨리 갔다. 처음엔 그렇게 가지 않았던 시간이, 워크캠프 중반쯤엔 쏜쌀같이 지나갔다. 그래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마지막 날도 참으로 빨리 찾아왔다. 우리는 모든 것에 Last를 붙여가면서 장난도 쳤다. Last dinner, Last photo, Last shower, Last Lama 라며 모두가 아쉬워했다.
워크캠프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너무나 많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워크캠프를 통해서 내가 스스로 발전한 것을 많이 느꼈다.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외국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것 같다. 그리고 영어. 한국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려 10년이 넘도록 영어 공부를 죽어라 하면서 실제로 외국인들과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지 못한다. 영어를 쓰고 읽은 것만 잘한다. 나도 그러했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 영어교육의 맹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억지로 꾸역꾸역 영어를 단지 스펙이나 필요에 의해서 공부를 하지만, 글로벌 시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필요가 아닌 필수라는 것을 크게 느꼈다.
정말이지 워크캠프에 참가했던 내가 대견스러웠다. 한국인도 나 혼자밖에 없어서 영어로만 대화해야 했고, 외국인들과 2-3주 동안 부대끼면서 지냈던 것이 ‘어떻게 내가 그렇게 했지?’ 싶을 정도로 내가 자랑스럽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항상 꿈에 그리던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고 정말 그 어떤 순간과도 겹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단지 ‘스펙’ 그 이상을 넘어서 나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던 Lama 워크캠프…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Grazie! Lama! (Grazie 는 이탈리아어로 고맙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탈리아 워크캠프에 지원했다. 이탈리아는 내가 가보고 싶었던 나라이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이탈리아가 끌렸다. 그래서 참가하게 되었고 ‘Legambiente(레감비엔떼)’라는 봉사활동 단체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레감비엔떼는 이탈리아에서 굉장히 활발한 봉사활동 조직이었다. 초록색 백조를 마크로 삼는 레감비엔떼. 초록색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깨끗한 환경을 뜻했다. 백조가 참 인상깊었는데, 백조를 마크로 삼은 이유는 백조는 평소에는 평화롭고 조용하지만 화가 나면 무섭게 돌변하기 때문에, 레감비엔떼 마크를 백조로 정했다고 했다. 마치 자연도 평소엔 평화롭고 조용하다가 인간들이 많이 훼손하면 할수록 지진이나 태풍, 쓰나미,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를 무섭게 일으키는 것 처럼 말이다. 레감비엔떼는 Lama 역을 이번 워크캠프 지역으로 정했는데, 내가 그 워크캠프 지역에 가게 된 것이다. Lama역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깡촌이었다. Lama역으로 가기 위해선 Rovigo역에서 한번 더 기차를 타고 Lama역으로 가야 했다. Lama행 기차의 외관이 그 곳이 정말 시골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정말 작고 오래되어 보였던 Lama행 기차.
불안함과 떨림으로 가득했던 워크캠프 첫째 날. 참가자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워크캠프가 끝나기는 할까?’라는 의구심과,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 그것도 외국인과의 첫 마주함을 앞두고 우리는 미팅포인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바로 내가 앞으로 2-3주 동안 몸담아야 할 워크캠프에 일본인 참가자 2명이 있는 것이었다. 일본인… 한국과 일본과의 문제는 다른 외국인들은 그 정서를 이해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언급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걱정부터 앞섰다. 특히 독도문제나 위안부문제 등등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화두에 오를까 항상 조마조마 했다. 그리고 이건 나의 문제인데, 솔직히 말해서 3-4일간은 일본인에게 경계심을 가졌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아! 언제 빨리 끝나지?’, ‘아.. 빨리 벗어나고 싶다.’ 라는 생각을 주로 했다. 하지만 나중엔 곧 잘 친해지고 같이 사진도 찍을만큼 가까워졌으니, 일본인 참가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Leg38 코드에 참가한 참가자 수는 나 포함 7명이었다. 2명은 터키에서 온 쟌과 투트코, 2명은 일본에서 온 슈스케와 미츠히로, 1명은 벨기에에서 온 스텔라, 1명은 프랑스에서 온 안, 나머지 한명은 한국에서 온 나. 맨 처음에는 엄청난 소외감이 밀려왔다. 터키사람들은 터키어로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고, 벨기에에서 온 스텔라와 프랑스에서 온 안은 서로 프랑스어로 얘기할 수 있었고, 슈스케와 미츠히로는 일본어로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나만 한국어로 이야기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소외감 드는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게다가 나는 영어도 유창하게 잘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맨 처음에는 물어보는 질문에만 대답하고, 정말 필요한 질문만 하는 식으로 대화했었다. 하지만 내가 경계하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내 워크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일본인에게 경계심을 가졌던 게 미안해질 정도로 일본인 남자아이 두 명도 친절하고 재밌는 아이들이었다. 터키에서 온 쟌과 투트코도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금방 친해졌다. 특히 내가 한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감탄을 연발했고, 한국인 정말 귀엽다면서 내 외모에도 정말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특히 투트코와는 함께 요리도 하고, 생각도 비슷해서 서로서로 얘기도 많이 했고, 일할 때도 서로서로 도와가며 함께했다. 그리고 벨기에에서 온 스텔라. 사실 스텔라의 영어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어서 투트코만큼 얘기를 많이 나누진 못했다. 영국식 영어와 프랑스어 발음이 섞여서 영어에 비음도 많고 또 스텔라가 너무 빨리 말해서 다시 물어보는 일이 꽤 많았다. 항상 일도 솔선수범 열심히 하고, 여장부처럼 활발한 스텔라. 스텔라는 처음 미팅포인트에서 만났을 때 나에게 참 용감한 아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이탈리아까지 오기도 멀고, 친구 없이 혼자서 워크캠프에 참가한 것 자체가 정말 용감하다고 나를 많이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 처음에 내가 한국인이라 하니까 ‘안녕하세요’, ‘고마워’라고 한국어로 말했던 언니! 안은 제주도에 워크캠프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나와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같이 가쉽을 떨었던 안! 그래서 그런지 더 친해졌다. 내기를 하기도 하고, 내가 내기에서 져서 선물로 안의 얼굴을 그린 캐릭터와 편지, 그리고 마스크 팩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서 남다른 우정을 과시했던 안과 나. 정말 친 언니같기도 했고,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나한테 말도 많이 걸어서 말동무도 되어주고, 함께 요리도 하고, 일 하기 힘들 땐 서로 꾀도 부리고.. 아무튼 안 덕분에 정말 외국인 친구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캠프리더! 마리아와 누노. 마리아는 말 그대로 여성파워였다. 항상 리더쉽 있었고, 마리아도 나에게 진짜 용감하고 강한 아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안과 동갑이었던 마리아. 내가 한참 동생이기도 했고, 또 동생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몰라도 뒤에서 잘 챙겨주었다. 그리고 누노. 잘생긴 포르투갈 청년. 워크캠프에서 굳은 일은 대부분 누노가 도맡아했다. 특히 힘쓰는 일이나 큰 나무를 베는 일, 도끼질은 누노 담당이었다. 진짜 일하는 모습이 너무 멋잇었던 누노.
우리의 워크캠프는 이렇게 9명의 사람들로 꾸려졌다. 우리의 일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Lama역 근처를 깨끗하게 만들고, 훼손된 역을 재생시키는 일이었다. 우리는 흙으로 뒤덮였던 역을 삽질도하고, 빗질도 하고 깨끗하게 만든 후에 그 위에 레감비엔떼 텐트를 설치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 텐트가 나에게는 큰 소속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이탈리아에 와서, 레감비엔떼라는 단체와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 라는 일종의 소속감 말이다. 그리고 그 텐트 뒤 들판을 가꾸는 것이 우리의 주된 일이었다. 여기저기 산만하게 뻗어있는 나무들, 그리고 널려있는 병, 캔, 담배꽁초, 각종 쓰레기들, 손질되지 않은 채 오래 방치된 잔디들. 우리는 이것들을 가지런히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주로 큰 나무들을 제거하고 가지치기를 하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모두들 일할 때 만큼은 열중해서 일에 집중하였다. 작은 숲이다 보니 일하면서 쟌과 투트코는 벌에 쏘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낫질을 하다가 잘못해서 내 허벅지를 살짝 찍기도 했고, 일하는 도중에도 스텔라와 나는 모기에 무척이나 고생했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Lama 역은 깨끗해졌고, 사람 손길이 닿은 흔적을 보였다.
오전에 일이 끝나면 오후에는 낮잠을 자거나, 근교에 놀러를 가거나, 근처 바다에 가기도 했다. 한국에서 자주 가보지 못한 바다를 이탈리아에서 무려 세 번씩이나 갔다. 뿐만 아니라 가까운 소도시의 축제도 구경했고, 그렇게 유명한 젤라또도 많이 먹었다. 스텔라가 제안한 Times up 이란 게임도 하고, 카드게임도 하고 여러가지 활동들을 통해 우리 캠퍼들간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것도 무려 2-3주 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더욱 그러했으리라. 워크캠프에 있는 동안 시간이 무척이나 빨리 갔다. 처음엔 그렇게 가지 않았던 시간이, 워크캠프 중반쯤엔 쏜쌀같이 지나갔다. 그래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마지막 날도 참으로 빨리 찾아왔다. 우리는 모든 것에 Last를 붙여가면서 장난도 쳤다. Last dinner, Last photo, Last shower, Last Lama 라며 모두가 아쉬워했다.
워크캠프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너무나 많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워크캠프를 통해서 내가 스스로 발전한 것을 많이 느꼈다.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외국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것 같다. 그리고 영어. 한국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려 10년이 넘도록 영어 공부를 죽어라 하면서 실제로 외국인들과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지 못한다. 영어를 쓰고 읽은 것만 잘한다. 나도 그러했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 영어교육의 맹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억지로 꾸역꾸역 영어를 단지 스펙이나 필요에 의해서 공부를 하지만, 글로벌 시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필요가 아닌 필수라는 것을 크게 느꼈다.
정말이지 워크캠프에 참가했던 내가 대견스러웠다. 한국인도 나 혼자밖에 없어서 영어로만 대화해야 했고, 외국인들과 2-3주 동안 부대끼면서 지냈던 것이 ‘어떻게 내가 그렇게 했지?’ 싶을 정도로 내가 자랑스럽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항상 꿈에 그리던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고 정말 그 어떤 순간과도 겹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단지 ‘스펙’ 그 이상을 넘어서 나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던 Lama 워크캠프…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Grazie! Lama! (Grazie 는 이탈리아어로 고맙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