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낯선 마을에서 시작된 우정

작성자 이보람
이탈리아 Leg44 · ENVI 2012. 07 Pigna

Imperi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2월부터 시작되었던 5개월간의 네덜란드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또 다른 경험을 하고자 워크캠프에 지원했고, 참가가 확정되어 기쁜 마음으로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워크캠프 시작 하루 전, Genova에서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국인 언니를 미리 만나고, 그 다음날 함께 기차를 타고 미팅포인트인 Ventimiglia로 향하는 약 세시간 동안, 앞으로 2주간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 갖가지 기대로 부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역에 도착한 후, 20여분의 기다림 끝에, 우리의 리더인 이탈리아 소녀 Erica가 나타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드디어 워크캠프가 시작되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속속들이 친구들이 역으로 도착해 처음이라 어색하기 그지 없는 멋쩍은 자기소개를 하고 다 함께 앞으로 2주간 생활할 Pigna라는 작은 마을로 향했다. 구불구불 좁은 길을 따라 차로 한참을 올라간 끝에야 도착한 숙소는, 처음엔 ‘이게 뭐지’할 정도로 허름하기 그지 없었다. 인터넷도 안되고, 샤워실도 한 개 밖에 없는 이 열악한 숙소에서 2주간 어떻게 지내야 하나 막막했지만 그 걱정은 하루 만에 깨끗이 사라졌다.
첫 날은 가볍게 앞으로 해야 할 봉사활동, 주의사항 등을 설명 듣고, 앞으로의 식사당번을 배정한 후, 마을에 있는 계곡으로 가서 물놀이를 했다. 물이 어찌나 맑던지,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푸르른 색깔을 띤 계곡을 눈앞에 두고 시원한 그늘에 앉아있으니, 신선 놀음이 따로 없었다. 모두 13명이었던 우리 캠프 멤버들은 한국, 체코, 이탈리아, 프랑스, 우크라이나, 러시아, 스페인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들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워크캠프에 여러 번 참여해본 친구도 있었고, 18살 어린 친구도 있었고, 커플들도 있었고, 영어에 무척 서투른 친구도 있었다. 교환학생을 하면서 유럽 각국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만, 이 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첫 날에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언어적인 어려움이었다. 유럽 친구들은 언어가 비슷한 이웃 국가들의 말도 곧 잘 구사할 줄 알기 때문에, 굳이 영어가 아니어도 서로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영어가 서투른 몇몇 친구들은 주로 스페인어로 대화를 많이 했는데,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는 그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첫 날을 마무리하고, 둘째 날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마을 도로에 있는 울타리 보수 작업 이었는데, 워낙 여름에 기온이 높은 이탈리아이기 때문에 더위에 지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6시간의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모두들 어제 놀 때와는 전혀 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작업에 임해, 무척 신기했다. 작업 후에는 식사당번이 차려준 점심을 맛있게 먹고,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워낙 작은 마을이고, 산속에 있다 보니 마을 자체가 너무 아기자기 하고 예뻐서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구경하다 힘들면 곳곳에 있는 시원한 계곡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MP3에 담아온 노래들을 들으며 햇빛도 쬐고 행복한 오후를 보냈다. 이렇게 작업 후에는 항상 친구들과 다같이 항상 여가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훨씬 더 빨리 돈독하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일할 때는 확실하게 열심히 일 하고, 놀 때는 또 화끈하게 노는 유럽 친구들은 역시 멋졌다. 이제는 점점 영어가 서투른 친구들도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줄어들기 시작해, 친해지는 속도에도 가속이 붙었다.
주말에는 다같이 버스를 타고 좀 멀리 있는 Ventimiglia의 해변도 가고, 유명한 식물원으로 관광을 가기도 했다. 특히 이번 워크캠프는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이 가장 좋았던 점이었는데, 이번이 Pigna의 첫 워크캠프이다 보니 마을사람들이 더욱더 우리들을 신기해하고 관심을 가져 주었다. 항상 친절하게 수고가 많다고 말도 걸어주고, 직접 집으로 초대해서 Pigna의 전통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보여주며 조리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또 시내에 있는 Bar에가면 마을사람들이 많이 와있는데, 그 곳에서 같이 이탈리아 전통 춤도 추고 밴드의 공연도 함께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참가자들끼리의 교류와 친목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관광지가 아닌 순수 local 지역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한다는 것이 워크캠프의 진정한 장점이자 의의가 아닐까 싶다. International dinner때도 많은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서로의 음식을 나누고, 놀이를 공유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와 한국인언니도 불고기와 카레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렇게 2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다양한 활동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꿈 같은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이별하는 날이 다가왔을 때, 그 아쉬움과 서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헤어지기 전 날, 친구들에게 줄 선물과 편지를 준비하고 전해주면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5개월간 함께했던 친구들보다도 2주간 함께했던 이 친구들과 더 많은 정이 들어버린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정말 이렇게 아쉬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허름하고 불편한 이 시골마을을 떠나기가 싫어 울먹거리는 내 모습에 나 조차도 놀랐다. Ventimiglia 시내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서로의 기차시간에 맞춰 헤어질 때, 결국 스페인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고, 이제 정말 헤어지는 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기차에 올라 Ventimiglia를 떠나면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질 않았다. 그 동안의 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가면서 결국 나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2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괜시리 마음이 먹먹해진다. 아직까지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간간히 안부를 묻는 친구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다. 내년에 Pigna에서 다시 꼭 만나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생애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준 친구들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한 여름 밤의 꿈만 같았던 그 시간을 정리하려 한다. 맑다 못해 정말 투명했던 계곡, 높고 푸르렀던 산,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쏟아질 듯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다시 보기 힘든 자연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여름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