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기대와 달랐던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Raufarhofn near to the arctic circ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솔직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공간은 좋았지만 구성원과 프로그램이 아쉬웠던 워크캠프’라고 축약 시켜 말하겠다.
일단은 ‘아이슬란드’라는 장소에서 크나큰 흥미를 끌었던 워크캠프였다. 혼자서 여행 하려 해도 쉽지 않은 곳, 그러기에 가지게 될 특별한 경험들에 기대는 점점 커져갔다. 영국에서부터의 4시간여의 비행 그 뒤에 나타난 아이슬란드는 나의 기대를 완전히 뛰어넘었다. 상상력으로는 이뤄내지 못할 공간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화 속 스크린을 통해서는 보지 못 할 자연의 웅장함은 눈앞에서 부서져 내려오는 폭포와 지하로부터 터져 나오는 온천까지 눈으로만 느껴질 감동이 눈의 그 흰자위로 고스란히 새겨지는 듯 했다. 백야라는 특이한 경험은 (물론 그곳에서 지낼 때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지만) 기이함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느낌을 자아낼 수 있었다. 또한, 하늘에서 무엇이 그리 화가 나있던지, 우리를 습격하던 새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밀려오는 색다른 공포를 가져다 주었고 그 공포는 마치 어린 날, 저녁 길에 학교 앞 동상을 보며 무서워했던 그러한 공포와 같아서 시간이 지나니 무서움에 떨던 내 자신이 아이 같아져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공간은 압도적이었다고 말하겠다.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공간을 보고서 느꼈던 감동은 수세기에 걸쳐서 쌓아온 대리석의 고풍스러움도 있었지만 서도 나의 눈을 잡아두었던 그 잊지 못할 광경은 ‘조화’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감탄이었다. 자연과 인간의 건축이 만들어낸 조화에 나는 발이 묶였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무언가 달랐다. 자연, 그 자체만이 낼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자연스러움과 웅장함, 그것은 인간과의 조화도 아니고 조금 더 거칠고도 강력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공간속에서 아쉽게도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보다는 누구와 있는가를 더욱더 중요시한다. 하지만 내 자신에게 미안하게도 그리고 혹여 불편함을 느꼈을 다른 참가자들이 공감할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있었다. 우선 첫 째 언어의 문제였다. 이 주제를 꺼내기 전에 한가지 먼저 말하고 싶은 점은 이 문제는 언어의 문제이지 영어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참가자들간에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모두 영어에 발군이었고 혹여 영어에 주춤한 사람도 오감을 통하여 상대방과 친해져 갔다. 허나 문제는 하나의 국적이 많아지면서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아시아인들은 외국인을 보았을 때 동일한 아시아 인들 보다는 그 외국의 사람들을 먼저 챙기기 나름이고 그렇게 배워왔다.(그렇다고 외국인들이 아시아인을 열등시 본다는 논제로 말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혹여 모국어가 같더라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려 한다. 그 자리에 있는 단 한명의 외국인을 위해서. 하지만 상황을 바꿔 놓았을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영어뿐이 몰랐던 내게 자신의 모국어로 얘기하던 그들 사이에 끼어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는 나 뿐만이 아니라 여러 참가자 들도 느꼈을 법한 이야기고 자연스레 모임은 서서히 붕괴될 가능 성이 크다. 더군다나 팀의 리더 또한 영어가 아닌 모국어를 써서 그들만의 그룹을 구성한다면 이는 더 이상 개선하기가 힘들어 보이지 않겠는가?
두 번째 문제점은 첫 번째 문제점과 연관되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은 인포싯에 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워크캠프에 왔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봉사활동을 했다. 물론 그 봉사활동이 의미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또한 그 봉사활동의 결정이 다수의 국적의 사람들 만을 통해 이뤄졌을 경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논란이 많아질 것이다.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해질 수 있는 경험이 그렇지 못했을 때는 아쉬움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좋은 공간에서 특별한 경험이었으나 약간은 빛을 바랜 그런 아쉬움이 남았던 경험이다.
일단은 ‘아이슬란드’라는 장소에서 크나큰 흥미를 끌었던 워크캠프였다. 혼자서 여행 하려 해도 쉽지 않은 곳, 그러기에 가지게 될 특별한 경험들에 기대는 점점 커져갔다. 영국에서부터의 4시간여의 비행 그 뒤에 나타난 아이슬란드는 나의 기대를 완전히 뛰어넘었다. 상상력으로는 이뤄내지 못할 공간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화 속 스크린을 통해서는 보지 못 할 자연의 웅장함은 눈앞에서 부서져 내려오는 폭포와 지하로부터 터져 나오는 온천까지 눈으로만 느껴질 감동이 눈의 그 흰자위로 고스란히 새겨지는 듯 했다. 백야라는 특이한 경험은 (물론 그곳에서 지낼 때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지만) 기이함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느낌을 자아낼 수 있었다. 또한, 하늘에서 무엇이 그리 화가 나있던지, 우리를 습격하던 새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밀려오는 색다른 공포를 가져다 주었고 그 공포는 마치 어린 날, 저녁 길에 학교 앞 동상을 보며 무서워했던 그러한 공포와 같아서 시간이 지나니 무서움에 떨던 내 자신이 아이 같아져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공간은 압도적이었다고 말하겠다.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공간을 보고서 느꼈던 감동은 수세기에 걸쳐서 쌓아온 대리석의 고풍스러움도 있었지만 서도 나의 눈을 잡아두었던 그 잊지 못할 광경은 ‘조화’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감탄이었다. 자연과 인간의 건축이 만들어낸 조화에 나는 발이 묶였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무언가 달랐다. 자연, 그 자체만이 낼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자연스러움과 웅장함, 그것은 인간과의 조화도 아니고 조금 더 거칠고도 강력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공간속에서 아쉽게도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보다는 누구와 있는가를 더욱더 중요시한다. 하지만 내 자신에게 미안하게도 그리고 혹여 불편함을 느꼈을 다른 참가자들이 공감할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있었다. 우선 첫 째 언어의 문제였다. 이 주제를 꺼내기 전에 한가지 먼저 말하고 싶은 점은 이 문제는 언어의 문제이지 영어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참가자들간에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모두 영어에 발군이었고 혹여 영어에 주춤한 사람도 오감을 통하여 상대방과 친해져 갔다. 허나 문제는 하나의 국적이 많아지면서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아시아인들은 외국인을 보았을 때 동일한 아시아 인들 보다는 그 외국의 사람들을 먼저 챙기기 나름이고 그렇게 배워왔다.(그렇다고 외국인들이 아시아인을 열등시 본다는 논제로 말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혹여 모국어가 같더라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려 한다. 그 자리에 있는 단 한명의 외국인을 위해서. 하지만 상황을 바꿔 놓았을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영어뿐이 몰랐던 내게 자신의 모국어로 얘기하던 그들 사이에 끼어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는 나 뿐만이 아니라 여러 참가자 들도 느꼈을 법한 이야기고 자연스레 모임은 서서히 붕괴될 가능 성이 크다. 더군다나 팀의 리더 또한 영어가 아닌 모국어를 써서 그들만의 그룹을 구성한다면 이는 더 이상 개선하기가 힘들어 보이지 않겠는가?
두 번째 문제점은 첫 번째 문제점과 연관되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은 인포싯에 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워크캠프에 왔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봉사활동을 했다. 물론 그 봉사활동이 의미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또한 그 봉사활동의 결정이 다수의 국적의 사람들 만을 통해 이뤄졌을 경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논란이 많아질 것이다.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해질 수 있는 경험이 그렇지 못했을 때는 아쉬움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좋은 공간에서 특별한 경험이었으나 약간은 빛을 바랜 그런 아쉬움이 남았던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