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위스 시골에서 만난 뜻밖의 고생과 행복
BEACH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스위스 캠프는 스위스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되고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구석구석 잘 관광할 수 있었던 최고의 기회였다. 찍는 곳 마다 엽서 같은 스위스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골이어도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였고 실제로 사람들도 평화롭고 단정했다.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도 영어를 잘 하시는 편인 선진국다운 나라여서 여행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캠프의 첫 시작은 사실 좋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고생한 탓에 괜히 캠프에 온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Cudrefin이라는 시골 마을에 있는 우리 캠프 지역이 자원봉사자들의 미팅포인트였는데 역이나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직접 그 건물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일요일에 몇 없는 교통에 시골에서, 구석까지 버스가 가지 않는 상황에, 미팅 포인트에 찾아가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결국 택시를 부르는 대형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는데 (물론 친절을 베푸려던 마트의 아주머니 때문이기는 하지만…) 시골 인심이란 없는 택시 기사분은 엄청난 액수의 바가지를 씌우셨다. 다행히 그보다는 훨씬 적은 양의 택시비를 지출하고 사태는 대충 무마되었지만 캠프에 대한 첫 인상이 완전히 망쳐진 상황이었다. 다음에 다른 캠프에 가는 사람들은 평일이 아닌 일요일에 미팅 포인트에 가는 것이 힘든 일이고 미팅 포인트가 역이나 버스정류장이 아닌 건물이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또한 시간에 맞추면 좋지만 부득이하게 못 맞추어도 패닉하지 않고 캠프장에게 연락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BEACH CAMP가 주제였던 내 캠프는 언어 캠프를 참가하기 위해 모인 청소년들을 위해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는 일을 하는 봉사캠프였다. 처음에 지원하기 전에는 ‘내가 요리를 잘 못하기 때문에 가서 고생하고 방해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이 너무나 간단해서 요리를 못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항상 계시는 요리사의 지시대로 샐러드를 씻거나 토마토를 썰거나 마무리로 설거지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손재주가 좋은 아시아 사람들은 오히려 칭찬을 받는 실정이었다. 일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자면 식사 시간 전 준비를 1시간 반정도 + 식사 후 정리를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하는 게 끝이다. 식사 준비보다 식사 정리가 더 힘들다. 이렇게 한 식사를 위해 서너 시간정도 봉사시간이 걸리는데 보통 하루에 한번만 식사 준비를 하면 됨으로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각 식사 준비 팀이 약 3명씩 3개 정도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의 식사 당번을 나누고 나면 결국 하루에 한번 꼴로 식사 준비를 하면 되었다. 따라서 만약 하루 중 당번이 아침 식사만 있는 경우에는 나머지 하루 종일 시간이 있었다. 보통 이 자유시간 동안 자원봉사자들끼리 캠프지역과 10분 거리에 있는 호수에 수영을 하러 가거나 가까운 시내에 관광을 갔다. BEACH CAMP답게 캠프지역 근처의 호수는 거의 매일 갔다. 하루종일 선탠하고 비치발리볼하고 놀던 그 아름다운 호수가 정말 그립다. 아무래도 지형상 우리나라에는 있을 수 없는 넓고 맑은 호수이다.
워크캠프에서 가장 그리울 것 같은 것은 역시 함께한 사람들이다. 2주간 거의 24시간을 함께하면서 우리는 작고 소소한 농담에서부터 사람이 말하는 건지 와인이 말하는 건지 취해서 하는 말도 안 되는 허튼소리, 가족과 미래에 대한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대화했다. 특히 아름다운 스위스의 별밤 아래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웃고 떠들고 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워크 캠프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깊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사귈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물론 봉사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오해나 이기적인 몇몇 사람들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재미있었던 추억의 일부가 되었고 2주 후면 언제 볼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다들 서로서로 아껴주고 잘 대했던 것 같다. 우리는 캠프가 끝난지 거의 두 달이 되는 지금도 페이스 북과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고 있고 자꾸 서로 자기네 나라로 오라고 초대하는 중이다.
앞서 워크캠프를 다녀온 사람들의 보고서를 보면 빠지지 않는 것이 워크캠프 봉사자들에 대한 코멘트인 것 같다. 한명 한명 추억하는 겸해서 나도 써보기로 했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스페인남자 나쵸! 항상 솔선수범하고 일도 잘하고 모두가 의지하고 믿고.. 역시 봉사를 많이 한 테가 났다. 특유의 유머 덕분에 정말정말 즐겁게 봉사를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푼수 언니 버지니아! 내가 장난삼아 ‘우울할 때 들으면 더 우울한 노래’를 틀어줬더니 너무너무 좋아하며 이게 한류냐고 묻던… 정말 순수하고 착한 언니였다. 언젠가 베네치아에서 꼭 만나고 싶은 언니다.
대만에서 온 작고 귀엽고 천사 같은 챠위! 너무 천사같아서 다른 이기적인 봉사자들 때문에 마음 고생도 심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고 서로 연락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체코에서 온 바라! 운동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고 학위도 따고 있고 성격도 털털해서 정말 멋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든 친구다. 어떻게 삶을 즐겨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던 멋있는 친구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블라다! 정말이지.. 러시아 계열 봉사자들은 너무 일을 안 하는 것 같다. 게으름으로 다른 봉사자들에게 눈총을 받고 심지어는 캠프리더와 사귀게 되어 더 욕을 먹었지만 그래도 한국은 음식도 맛있고 노래도 좋고 사람도 베스트라며 나름 우리 한국봉사자들을 따르던 친구다.
스위스 현지 자원봉사자였던 연차! 국적은 스위스이지만 부모님은 터키인인 연차는 터키 특유의 미를 가지고 있는 예쁜 봉사자였다. 비록 너무 강한 성격 때문에 버릇 없이 굴거나 한국인 봉사자 오빠를 괴롭히는 주 원인이 되긴 했지만 나중에는 보고싶다고 눈물도 흘리는 어리고 순수한 친구였다.
또 다른 스위스 봉사자이자 나의 베프가 된 러라! 전형적인 스위스 여학생으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러라는 똑부러진 성격 약간은 시니컬한 유머로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 한국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언제든 스위스의 자기집으로 피난을 오라고 자주자주 연락하는 러라는 내가 스위스 워크캠프를 그리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국인 봉사자인 민우오빠가 있었다. 한창 국제 봉사자들에게 연고전을 설명하고 연대가 왜 더 훌륭한지를 세뇌시키고 있을 무렵 고대출신으로 나타나서 굉장히 당황스럽게 했던 오빠다.ㅋㅋㅋ 영어 때문에 의사소통에 조금 어려움을 느껴서 몸고생, 마음 고생 좀 했지만 그래도 솔선수범 너무나 열심히 봉사하고 같은 한국인으로써 정신적 지주가 되어서 참 고마운 오빠였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따로 만나고 연락도 하니 워크캠프의 인연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참 깊은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내가 워크캠프를 그리워하는 가장 큰 이유다.
봉사 자체에서의 보람도 정말 컸지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배운 것이 가장 많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것을 위해서라도 나중에 또 워크캠프를 참여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는 바이다.
하지만 캠프의 첫 시작은 사실 좋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고생한 탓에 괜히 캠프에 온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Cudrefin이라는 시골 마을에 있는 우리 캠프 지역이 자원봉사자들의 미팅포인트였는데 역이나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직접 그 건물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일요일에 몇 없는 교통에 시골에서, 구석까지 버스가 가지 않는 상황에, 미팅 포인트에 찾아가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결국 택시를 부르는 대형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는데 (물론 친절을 베푸려던 마트의 아주머니 때문이기는 하지만…) 시골 인심이란 없는 택시 기사분은 엄청난 액수의 바가지를 씌우셨다. 다행히 그보다는 훨씬 적은 양의 택시비를 지출하고 사태는 대충 무마되었지만 캠프에 대한 첫 인상이 완전히 망쳐진 상황이었다. 다음에 다른 캠프에 가는 사람들은 평일이 아닌 일요일에 미팅 포인트에 가는 것이 힘든 일이고 미팅 포인트가 역이나 버스정류장이 아닌 건물이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또한 시간에 맞추면 좋지만 부득이하게 못 맞추어도 패닉하지 않고 캠프장에게 연락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BEACH CAMP가 주제였던 내 캠프는 언어 캠프를 참가하기 위해 모인 청소년들을 위해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는 일을 하는 봉사캠프였다. 처음에 지원하기 전에는 ‘내가 요리를 잘 못하기 때문에 가서 고생하고 방해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이 너무나 간단해서 요리를 못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항상 계시는 요리사의 지시대로 샐러드를 씻거나 토마토를 썰거나 마무리로 설거지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손재주가 좋은 아시아 사람들은 오히려 칭찬을 받는 실정이었다. 일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자면 식사 시간 전 준비를 1시간 반정도 + 식사 후 정리를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하는 게 끝이다. 식사 준비보다 식사 정리가 더 힘들다. 이렇게 한 식사를 위해 서너 시간정도 봉사시간이 걸리는데 보통 하루에 한번만 식사 준비를 하면 됨으로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각 식사 준비 팀이 약 3명씩 3개 정도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의 식사 당번을 나누고 나면 결국 하루에 한번 꼴로 식사 준비를 하면 되었다. 따라서 만약 하루 중 당번이 아침 식사만 있는 경우에는 나머지 하루 종일 시간이 있었다. 보통 이 자유시간 동안 자원봉사자들끼리 캠프지역과 10분 거리에 있는 호수에 수영을 하러 가거나 가까운 시내에 관광을 갔다. BEACH CAMP답게 캠프지역 근처의 호수는 거의 매일 갔다. 하루종일 선탠하고 비치발리볼하고 놀던 그 아름다운 호수가 정말 그립다. 아무래도 지형상 우리나라에는 있을 수 없는 넓고 맑은 호수이다.
워크캠프에서 가장 그리울 것 같은 것은 역시 함께한 사람들이다. 2주간 거의 24시간을 함께하면서 우리는 작고 소소한 농담에서부터 사람이 말하는 건지 와인이 말하는 건지 취해서 하는 말도 안 되는 허튼소리, 가족과 미래에 대한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대화했다. 특히 아름다운 스위스의 별밤 아래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웃고 떠들고 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워크 캠프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깊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사귈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물론 봉사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오해나 이기적인 몇몇 사람들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재미있었던 추억의 일부가 되었고 2주 후면 언제 볼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다들 서로서로 아껴주고 잘 대했던 것 같다. 우리는 캠프가 끝난지 거의 두 달이 되는 지금도 페이스 북과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고 있고 자꾸 서로 자기네 나라로 오라고 초대하는 중이다.
앞서 워크캠프를 다녀온 사람들의 보고서를 보면 빠지지 않는 것이 워크캠프 봉사자들에 대한 코멘트인 것 같다. 한명 한명 추억하는 겸해서 나도 써보기로 했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스페인남자 나쵸! 항상 솔선수범하고 일도 잘하고 모두가 의지하고 믿고.. 역시 봉사를 많이 한 테가 났다. 특유의 유머 덕분에 정말정말 즐겁게 봉사를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푼수 언니 버지니아! 내가 장난삼아 ‘우울할 때 들으면 더 우울한 노래’를 틀어줬더니 너무너무 좋아하며 이게 한류냐고 묻던… 정말 순수하고 착한 언니였다. 언젠가 베네치아에서 꼭 만나고 싶은 언니다.
대만에서 온 작고 귀엽고 천사 같은 챠위! 너무 천사같아서 다른 이기적인 봉사자들 때문에 마음 고생도 심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고 서로 연락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체코에서 온 바라! 운동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고 학위도 따고 있고 성격도 털털해서 정말 멋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든 친구다. 어떻게 삶을 즐겨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던 멋있는 친구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블라다! 정말이지.. 러시아 계열 봉사자들은 너무 일을 안 하는 것 같다. 게으름으로 다른 봉사자들에게 눈총을 받고 심지어는 캠프리더와 사귀게 되어 더 욕을 먹었지만 그래도 한국은 음식도 맛있고 노래도 좋고 사람도 베스트라며 나름 우리 한국봉사자들을 따르던 친구다.
스위스 현지 자원봉사자였던 연차! 국적은 스위스이지만 부모님은 터키인인 연차는 터키 특유의 미를 가지고 있는 예쁜 봉사자였다. 비록 너무 강한 성격 때문에 버릇 없이 굴거나 한국인 봉사자 오빠를 괴롭히는 주 원인이 되긴 했지만 나중에는 보고싶다고 눈물도 흘리는 어리고 순수한 친구였다.
또 다른 스위스 봉사자이자 나의 베프가 된 러라! 전형적인 스위스 여학생으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러라는 똑부러진 성격 약간은 시니컬한 유머로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 한국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언제든 스위스의 자기집으로 피난을 오라고 자주자주 연락하는 러라는 내가 스위스 워크캠프를 그리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국인 봉사자인 민우오빠가 있었다. 한창 국제 봉사자들에게 연고전을 설명하고 연대가 왜 더 훌륭한지를 세뇌시키고 있을 무렵 고대출신으로 나타나서 굉장히 당황스럽게 했던 오빠다.ㅋㅋㅋ 영어 때문에 의사소통에 조금 어려움을 느껴서 몸고생, 마음 고생 좀 했지만 그래도 솔선수범 너무나 열심히 봉사하고 같은 한국인으로써 정신적 지주가 되어서 참 고마운 오빠였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따로 만나고 연락도 하니 워크캠프의 인연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참 깊은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내가 워크캠프를 그리워하는 가장 큰 이유다.
봉사 자체에서의 보람도 정말 컸지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배운 것이 가장 많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것을 위해서라도 나중에 또 워크캠프를 참여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