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일단 저지르니 열린 새로운 세상
Agape 3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일단 저지르면 된다.
워크캠프라는 활동이 있다는 것을 들은 건 작년 여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왔었다. 해외를 갈 만큼 집안사정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꼭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간절함도 없어서 그저 우리는 해외에 언제 나가보냐고 푸념이나 하면서 맥주나 홀짝거렸다. 그러다 한 친구가 지인 중 워크캠프에 다녀온 사람이 있다고, 마침 그 사람이 이 근처에 있다고 워크캠프 얘기나 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뭔지는 몰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조금 뒤, 친구의 지인 분이 오셨다. 솔직히 워크캠프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셨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해외에 나갔다가 봉사 조금 하고 오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것이 있구나 하고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리고 반 년이 지났을까,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다시 워크캠프 이야기를 했었고, 나는 다음날 숙취로 얼큰해진 머리와, 막혀버린 코를 붙잡고 포털 사이트에 워크캠프를 검색했다.
워크캠프를 주최하는 다양한 사이트가 있었고, 딱히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몰라도 전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참가비가 적지는 않지만 유럽에서 그 비용으로 3주 동안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용 언어가 영어라는 말에 잠시 고민했지만, 내 생각에 전세계의 사람들이니까 굳이 영어실력이 유창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안되면 몸짓이라도 하겠지 생각했다.
나같이 소심한 사람일수록, 고민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지 않다. 인터넷 번역기와 친구의 도움을 빌려 간신히 워크캠프 지원동기를 영어로 써서 신청했다. 일단 저지르면 취소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내 나이에 못할 게 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덜컥, 합격해 버렸다.
아가페에서
생각해 보면 아가페는 일종의 수련원이었다. 아가페는 식사와 각종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본관, 본관 위층의 숙소, 본관과 연결되어 있는 제 1숙소, 제 2숙소,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묵는 제 3숙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느 협회나 단체에서 아가페로 합숙훈련(?)을 오면, 자원봉사자들은 요리를 도와주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그들이 캠프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아가페에서의 활동은 크게 청소, 요리, 설거지, 보수, 아기보기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 중 아기를 보는 것은 이태리어가 가능한 사람에 한해서였고, 일주일마다 돌아가면서 역할을 바꾸면서 봉사활동을 하는 듯 보였다.
나는 주로 청소를 했다. 오전에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오후에는 침대 시트를 교환하거나, 침대 시트를 널거나, 바닥을 쓸고 닦는 등 청소의 범위는 다양했다. 청소 자체는 힘들지 않았으나, 부족한 영어실력 탓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어 불편할 때도 있었다. 변기를 닦을 때 쓰는 스펀지와 샤워실 및 세면대를 닦을 때 쓰는 스펀지의 색깔이 구분되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닦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전 내내 화장실과 씨름을 하고, 쉬는 시간에 먹는 커피는 화장실 청소를 한 옷차림과는 어울리지 않게 운치가 있었다. 뒤돌아보면, 살면서 여유가 없던 내게 여유를 가르쳐 준 때가 그 때였던 것 같다.
청소가 슬슬 지겨워질 때쯤 요리를 했다. 평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던 터라 요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파스타 양념을 볶고, 라자냐나 피자를 만드는 등 일을 하면서 다른 문화의 요리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아가페를 떠나며
시간은 나와는 상관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아우르며 흘러갔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흘렀는데, 워크캠프를 하면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감사해야 할 일도.
내가 아는 세상에서 나오는 일이란 누군가는 상당히 큰 마음을 먹고 당차게 시도하는 일이고, 나에게는 그저 단순한 박치기였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많은 것을 느꼈다. 단순히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건만이 아니라, 그들, 그 곳, 그 일로 인해 내 자신이 어제보다 오늘 한 층 더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 작은 하나라도 배우고, 하루가 끝난 뒤 글을 쓰며 복습했다. 예습할 수 없는 인생공부는, 다르게 보면 쉽게 배우지 못할 경험이란 과목을 나는 그곳에서 예습했는지도 모른다.
문득, ‘네 알아서 해라.’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단 한 순간도 스스로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십대의 나에게, 갑작스럽게 넓어진 세상은 처음 어린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의 그것처럼 황량했고 드넓어, 나는 나와 같은 또래들과 방황했고, 길을 잃어 당황했다.
그리고 수많은 갈림길과 인연이란 신호등을 만나 지금에 다다랐고, 모든 결정은 누가 대신 해주지 않은 나 자신의 결과이다.
앞으로 어떤 선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선택이 설렌다. 그 결말이 어찌되든, 나는 정말 실패하더라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
워크캠프를 통해서 나는 또 한 번 성장해간다.
워크캠프라는 활동이 있다는 것을 들은 건 작년 여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왔었다. 해외를 갈 만큼 집안사정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꼭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간절함도 없어서 그저 우리는 해외에 언제 나가보냐고 푸념이나 하면서 맥주나 홀짝거렸다. 그러다 한 친구가 지인 중 워크캠프에 다녀온 사람이 있다고, 마침 그 사람이 이 근처에 있다고 워크캠프 얘기나 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뭔지는 몰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조금 뒤, 친구의 지인 분이 오셨다. 솔직히 워크캠프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셨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해외에 나갔다가 봉사 조금 하고 오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것이 있구나 하고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리고 반 년이 지났을까,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다시 워크캠프 이야기를 했었고, 나는 다음날 숙취로 얼큰해진 머리와, 막혀버린 코를 붙잡고 포털 사이트에 워크캠프를 검색했다.
워크캠프를 주최하는 다양한 사이트가 있었고, 딱히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몰라도 전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참가비가 적지는 않지만 유럽에서 그 비용으로 3주 동안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용 언어가 영어라는 말에 잠시 고민했지만, 내 생각에 전세계의 사람들이니까 굳이 영어실력이 유창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안되면 몸짓이라도 하겠지 생각했다.
나같이 소심한 사람일수록, 고민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지 않다. 인터넷 번역기와 친구의 도움을 빌려 간신히 워크캠프 지원동기를 영어로 써서 신청했다. 일단 저지르면 취소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내 나이에 못할 게 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덜컥, 합격해 버렸다.
아가페에서
생각해 보면 아가페는 일종의 수련원이었다. 아가페는 식사와 각종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본관, 본관 위층의 숙소, 본관과 연결되어 있는 제 1숙소, 제 2숙소,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묵는 제 3숙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느 협회나 단체에서 아가페로 합숙훈련(?)을 오면, 자원봉사자들은 요리를 도와주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그들이 캠프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아가페에서의 활동은 크게 청소, 요리, 설거지, 보수, 아기보기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 중 아기를 보는 것은 이태리어가 가능한 사람에 한해서였고, 일주일마다 돌아가면서 역할을 바꾸면서 봉사활동을 하는 듯 보였다.
나는 주로 청소를 했다. 오전에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오후에는 침대 시트를 교환하거나, 침대 시트를 널거나, 바닥을 쓸고 닦는 등 청소의 범위는 다양했다. 청소 자체는 힘들지 않았으나, 부족한 영어실력 탓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어 불편할 때도 있었다. 변기를 닦을 때 쓰는 스펀지와 샤워실 및 세면대를 닦을 때 쓰는 스펀지의 색깔이 구분되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닦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전 내내 화장실과 씨름을 하고, 쉬는 시간에 먹는 커피는 화장실 청소를 한 옷차림과는 어울리지 않게 운치가 있었다. 뒤돌아보면, 살면서 여유가 없던 내게 여유를 가르쳐 준 때가 그 때였던 것 같다.
청소가 슬슬 지겨워질 때쯤 요리를 했다. 평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던 터라 요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파스타 양념을 볶고, 라자냐나 피자를 만드는 등 일을 하면서 다른 문화의 요리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아가페를 떠나며
시간은 나와는 상관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아우르며 흘러갔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흘렀는데, 워크캠프를 하면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감사해야 할 일도.
내가 아는 세상에서 나오는 일이란 누군가는 상당히 큰 마음을 먹고 당차게 시도하는 일이고, 나에게는 그저 단순한 박치기였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많은 것을 느꼈다. 단순히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건만이 아니라, 그들, 그 곳, 그 일로 인해 내 자신이 어제보다 오늘 한 층 더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 작은 하나라도 배우고, 하루가 끝난 뒤 글을 쓰며 복습했다. 예습할 수 없는 인생공부는, 다르게 보면 쉽게 배우지 못할 경험이란 과목을 나는 그곳에서 예습했는지도 모른다.
문득, ‘네 알아서 해라.’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단 한 순간도 스스로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십대의 나에게, 갑작스럽게 넓어진 세상은 처음 어린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의 그것처럼 황량했고 드넓어, 나는 나와 같은 또래들과 방황했고, 길을 잃어 당황했다.
그리고 수많은 갈림길과 인연이란 신호등을 만나 지금에 다다랐고, 모든 결정은 누가 대신 해주지 않은 나 자신의 결과이다.
앞으로 어떤 선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선택이 설렌다. 그 결말이 어찌되든, 나는 정말 실패하더라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
워크캠프를 통해서 나는 또 한 번 성장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