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쌀국수 전도사의 베트남 봉사 일기

작성자 최미영
베트남 SJV1220 · KID/RENO 2012. 07 베트남 하노이

Give a hand to street children with Youth Cent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봉사활동을 항상 도전하고싶어했지만 어렵게만 느껴져 미뤄왔는데, 올해는 꼭 실천하자며 봉사활동을 알아보던 중에 국제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다. 다른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들과는 다르게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모여 봉사를 한다는 점과 항공권도 직접 끊을 수도 있어 봉사활동 후에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여행과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제격인 봉사활동이었다. 1지망으로 썼던 몽골이 떨어지고 2지망이었던 베트남에 붙었다. 드넓은 초원을 상상하며 몽골에 지원했지만 베트남에 지원했던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별다른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쌀국수와 월남쌈을 너무 좋아해서 일주일에 최소 1~2번은 베트남음식점에 가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쌀국수 전도사로 통하는 나는 내가 전생에 베트남 여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 베트남에 붙은 것은 정말 내가 베트남과 뭔가 각별한 것이 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계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기 전, 봉사활동과 봉사를 통해 성숙될 내 모습, 베트남에서 만나게 될 친구들, 문화체험등을 매일 밤 상상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베트남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쌀국수와 영화 ’풀 메탈 자켓’으로 본 베트남 전쟁밖에 없기에 베트남에 대한 책을 밤낮으로 읽곤 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국날, 밤 10시 정도에 도착해, 워크캠프에 같이 참가하는 한국인과 만나 같이 호스텔에 가서 하룻밤을 묶고 다음날 아침, 워크캠프 첫 날, 택시를 타고 오피스로 이동했다. 나는 택시 안에서 바라본 풍경들과 그때 느낀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매우 생동감 넘치고 빠르게 지나가는 베트남의 아침에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나는 베트남의 집들이 너무 좋았는데, 우리나라의 3층짜리 빌라 정도 되는 높이지만 폭은 매우 좁고 옆 집들과 촘촘히 붙어있었고 또 매우 베트남스러운 문양들로 꾸며져있었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집들과 광경에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오피스에 도착해, 나는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을 기다렸다. 봉사활동 시작 몇 주 전, 함께 일을 하게 될 친구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베트남 사람 2명, 한국인 2명, 그리스인 1명, 프랑스인 1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웬 걸? 그리스와 프랑스 사람 중 한 명은 봉사활동을 취소했고, 한 명은 공항에서 여권을 잊어버려 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워크캠프는 베트남 2명 한국인 2명으로 총 4명이었다. 물론 SJ오피스에서 다른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피스내에는 다른 프로젝트 리더들과 참가자들이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4명의 팀원들과 함께 워크캠프가 시작되었다. 독일에서 온 장기지원자, 레미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뒤 점심을 먹었다. SJ오피스는 하노이 시내와 조금 떨어져있는 시장통에 있다. 그래서 오피스에서 조금만 나오면 음식점이 즐비해있고 시장이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첫 점심은 “분 짜”라고 갈비와 동그랑땡 같은 게 들어있는 soup에 쌀국수와 야채를 넣어먹는 음식이었다. 한국에서는 소고기 국물이 있는 쌀국수 “퍼” 만 먹어봤는데 정말 너무 맛있었다. 베트남 길거리의 음식점들은 보통 위생상태가 좋진 않은 편이지만 먹고 한번도 탈 난 적이 없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일하게 될 youth center에 갔다. Youth center는 Fisher vilage (강가에 집을 지어 사는 곳)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가르치고 같이 놀아주고 점심을 제공했다. 그리고 1층에는 카페가 있는데 수익금은 youth center를 위한 것이고, 2층 아이들 놀이방에는 charity shop도 운영한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는데, 한 여자아이가 눈치를 보더니 손을 잡고 놀아달라고 한다. 여자아이 3명이 있었는데 한 여자아이와 내가 노는 걸 보더니 셋 다 나와 놀고 싶은 눈치였다. 내 무릎에 올라타 안기기도 하고 사인펜으로 매니큐어를 칠해주고 시계도 그려줬다. Youth center에서의 첫 날은 그렇게 힘들 것 같지 않아보였다. 특히 여자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줘서 다행이었다.
이틀째날, youth center에 갔을 때 나는 첫 날의 내 예상이 오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은 날 때리고 괴롭히고 뛰어다니고 싸우고 소리를 지르고 통제 불가능이었다. 첫 두시간은 우리가 준비한 액티비티를 하고 점심 먹고 한시간에서 두시간 정도 공부를 가르치는데, 점심식사 후 공부시간엔 정말 통제 불가능이다. 하지만 장기지원자 마냐가 카리스마있게 잘 이끌어주고 우리 팀원들도 노력을 많이 해서 날이 갈수록 점점 상태가 좋아졌지만만 정말 이틀째 날은 그냥 HOPELESS였다. 내가 온 것을 후회했다. 아이들이 좋아서 지원했지만, 내가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오랫동안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줄 사람이었다. 일단 나는 아이들 마음에 비집고 들어가 친구가 되는 것이 막막했고 친구가 되어갈 때쯤, 2주가 되면 떠날 것이란 생각에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정말 위한다면, 차라리 아이들의 집을 지어주는 봉사를 했어야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2주동안이라도 그들에게 내 사랑을 듬뿍 전하고 싶었다.
하루하루 아이들과 많이 가까워져갔다. 일이 끝나면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었다. 아이들은 굉장히 불우한 환경탓에 청결해보이지도 않았고 부모님들에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 같아보였으며 아이들중 길거리에서 물건을 내다 팔거나 하는 아이들이 있어 약삭빠르고 반항적이었이어보였다. 지원자들이 “안돼”라고 말하면 더 반항했다. 나는 왜인지 반항하는 아이들에게 더 관심이 갔다. 그래서 심하게 반항하고 소리를 지르고 싸우는 아이들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무조건 “안돼”라고 말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다 들어줬다. 하지만 공정하지 못한 것엔 공정하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어야했다. 그리고 들어주어야했다. 아이들을 지켜보면, 아이들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같이 놀고싶어요” “장난치고 싶어요” “내 말을 들어주세요” “나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 나는 최대한 많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관심을 표현했다. “보고싶었어” “이리와” “오늘 너 멋지다 예쁘다” “안아줘” “너도 같이 놀자” 이 한마디들이 그들의 하루와 youth center의 하루를 바꾸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보여주는 행복한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나의 하루와 나를 바꾸는 것 또한 느꼈다.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고 항상 뾰루퉁하던 한 아이는 어느 날부턴가 아침부터 나를 찾아와 내 무릎에 앉아 나와 같이 게임을 하고 항상 나를 찾았다. 그 아이 이름은 ‘민’인데, 민과 빙고를 했다. 민과 내가 같이 빙고를 해서 이겼고 민이 사탕을 두개 받았다. 사탕을 보면 욕심이 났을텐데도 내게 하나를 줬다. 그리고 어느날은 내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와있는데, 욕심이 나면 훔칠 수도 있는데 내 주머니에 돈을 꼬깃 꼬깃 다시 집어넣어주었다. 평소 반항만 하던 아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 말을 듣고 이해하고 나에게 인정받고 싶어했다. 내게 받은 빨간 동그라미 하나가 그 아이를 “야호!” 하며 크게 웃게 했다. 어느 날은 매우 약해 따돌림을 받는 아이가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베트남 팀원이 나와 아이 사이에서 통역을 해줬는데, 이야기하는 내내 아이가 내가 자기 이야기를 듣고 지루해할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의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계셔거 지금은 사촌의 집에서 같이 산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는 자기가 지금 사는 집에 나를 데려가고싶다고했다. 나는 그 아이의 집으로 따라가는 동안 ‘왜일까? 나한테 왜 자기 집을 보여주고싶은걸까’ 계속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쉿-”하더니 집에 들어간다. 누군가 부엌옆에서 자고 있었는데 뒷꿈치를 들고 몰래 걸어들어가 뭘 뒤적거리더니 내게 과일 하나를 들고 왔다. 나는 돌아와서 울고말았다. 마음이 너무 예쁜 아이들이었다. 일이 끝나고 오피스에 돌아가면 아이들 생각이 그치질 않았다. 아이들이 내게 준 예쁜 마음에 웃음이 나고 울음이 나기도 하고 항상 그들 생각뿐이었다.
일이 끝나면 항상 녹초가 되었지만 매일 SJ사람들과 하노이 시내 구경도 하고 음식과 디저트를 맛보러 다녔다. 어느 날은 Speed dating이라는 행사에 참여해 (여러 명이 제한 시간내에 돌아가면서 데이트하는 것) 베트남 사람들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스피드 데이팅 끝나고는 몇몇 사람들과 같이 저녁도 먹고 바에 가서 맥주도 한잔씩 했다. 첫 주말에는 하롱베이라는 명승지에도 여행을 갔었다. 둘째주에는 새로운 프로젝트 사람들이 왔었는데, 미국, 스페인, 프랑스, 한국인 다 합쳐서 여자 10명이었다. 그래서 둘쨋주에는 오피스가 북적거리고 활기를 되찾았다. 특히 나는 평소 스페인 사람들과 친분이 깊어, 스페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마카리나를 추고 스페인어를 배우며 부쩍 친해졌다. 어느 날은 다같이 각국 요리를 하며 파티하는 Interculture night이라는 시간도 가졌다. 나는 지원자들중에서도 특히 언어배우기에 열정이 가득해서 베트남어를 많이 배웠는데, 그 때문인지 나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일단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을 엄청 좋아한다. 한류열풍이 장난이 아니다. 깜짝 놀랐다. 어딜 가도 한국노래가 나오고 배우들 사진을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다. 나도 얼굴이 하얀 편이라 그런지 지나갈 때마다 날 다 쳐다보고 어떤 사람들은 대놓고 “한꿔~ 한꿔~ (korean korean)”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서양인보다 한국인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버스기사 아저씨, 버스에서 자주 보는 아주머니, 카페 아르바이트생등등 베트남 사람들과 교류할 일들이 많았다. 특히 SJ오피스가 있는 빌딩에서 이웃집 총각들과 security guard와 친해져서 나와 몇 베트남 친구들은 밤마다 같이 mia da (사탕수수 음료수)를 마시며 친목을 도모했다. 이렇게 봉사활동과 다이내믹한 액티비티로 내 2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하지만 나의 2주 봉사활동 생활을 조금 어렵게 한 것이 있다면 나와 같이 참가했던 한국인 이었다. 첫 날, 오리엔테이션으로 독일인 지원자가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데 의자에 엉덩이를 쭉 뺴고 앉아 혀로 똑똑똑 소리를 계속 시끄럽게 내고, 첫 날 음식점에 갔을때는 음식에 손도 거의 대지 않았고, 첫 날 이후에는 거의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말을 할 때 매우 건방지고 매너없이 말을 하고, 베트남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낄 만큼 한국과 베트남을 비교하는 말을 많이 했다. 베트남 사람들의 영어발음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지만 모두 다들 소통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항상 얼굴을 찡그리며 “What????”이라고 하거나, 무시하거나, 한국말로 말을 했다. 우리가 다같이 묶는 숙소 컨디션에 대해 아무도 하지 않는 불평까지 했다. 다른 지원자들이 “그가 왜 이 워크캠프에 지원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내게 말을 할 정도였다. 그는 전혀 어떤 것에도 배우고 경험해보려는 열의가 없어보였고 한국인으로서 내가 너무 창피했다. 그와 소통하고 생활하는 것이 가장 내겐 어려운 일이었다.
2주라는 시간동안의 일들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일, 기분 나쁜 일, 슬픈 일 모두가 내 마음속에 깊이 깊이 자리잡아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느낀 것들, SJ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어려웠던 일들, 행복했던 일들. 모든 것들이 정말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남겼다. 내가 그들에게 남긴 것보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안고 왔다. Youth center 아이들과 베트남에서 만난 사람들, 베트남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