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통장 해지하고 떠난 독일 워크캠프
Teterow I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예금 해지]
학교 홈페이지에서 보고, 주변 지인들의 소개로 1학년 때부터 워크캠프를 알고 있었다. 나는 워크캠프가 끝나면 유럽여행을 같이 하려는 이유로 비용을 모으기 위해 3학년에 가게 되었다. 1년 동안 예금해 두었던 통장을 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해지 하던 날이 떠오른다. 장학금으로 모아 온 돈이라 해지하는 것이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더 큰 경험을 위해 해지하였다. 아쉬움 반, 설렘 반.
[두려움 반, 설렘 반]
혼자 여행한 거라곤 1학기 개강 전, 2박 3일로 다녀온 전라도 여행이 다였다. 더군다나 이번엔 해외라니! 언어의 장벽은 어찌할 것인가! 게다가 나는 길치에 겁도 많은 성격이라 설렘도 컸지만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나라를 느끼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했다.
[모든 게 새로운 준비과정]
해외 경험이 없어서 하나부터 열 까지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비행기표를 끊는 건 왜 이렇게 헷갈리는 지, 독일에서의 교통편을 알아보는 데 얼마나 헷갈리던지. 여행 책자를 빌려서 차근차근히 읽어보고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워크캠프]
캠프가 시작 되기 이틀 전에 독일에 도착했다. 프랑크프루트에서 2박을 하고 캠프지로 향했다. 기차로 7시간 반에 걸쳐서 걸려서 갔다. 미팅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역 앞에서 캐리어를 의자삼아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가 워낙 작아서인지 역은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랜드마크로만 쓰이고 있었지, 화장실도 없고 쉴 곳이 야외의 의자뿐이었다. 기다리다 보니 NIG사무실 아저씨가 자동차를 끌고 오셨다. 인사하고 악수를 하고 캠프 참가자임을 확인하고 다른 참가자들 몇 명이 모여서 캠프지로 향했다. 캠프의 숙소는 반도 위의 방갈로였다. 위생 상태는 0점이었다. 같이 간 한국인 동생과 부엌을 둘러보았는데, 쥐똥도 있었고 식료품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틀 전까지 여기서 다른 캠프생들이 머물렀던 곳이었단 것이다.
침실과 부엌을 청소했다. 인사는 밝게 나누었지만, 너무 서먹서먹하고 한 마디 하면 끊기고 한 마디 하면 끊겨서 뭔가 다른 것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서로 가지고 온 카드로 게임을 하고 즉석에서 윷을 만들어 윷놀이도 했다. 나의 서투른 영어구사력과 게임방법이 복잡한 윷놀이가 그들의 환심을 사지는 못했다.
다른 나라 친구들의 나라 음식을 식사로 먹고 다음 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통나무를 나르고 주변 숲의 환경정화를 시작했다. 왜 통나무를 옮겨야 하냐는 나의 질문에 리더아저씨는 이렇게 해야 로맨틱해진다고 하신다. 왠지 웃지 못할 대답이었다. 처음에 캠프에 오기 전에 한국인이 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캠프에 오고 나니 그 생각이 잘못되었었다. 초반부에는 다들 각자의 나라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캠프에 있던 한국인 동생이 많은 의지가 되었다. 동생이 없었으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처음에 와서 느껴서 다른 것에서는 별반 다른 문화차이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벨라루스 아이들이 굉장히 직설적이고 자신들의 불만을 그대로 가감없이 얘기하는 모습에서 놀랐다. 우리나라와 달리 나이에 대해서 민감하지도 않고 적던 많던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정말 편했었다.
4일 정도 그곳에 머물다가 우리 캠프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캠프와 합치게 되었다. 그래서 거의 이십 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한 곳에서 생활하고 봉사활동도 같이 하게 되었다. 두 캠프가 합쳐지면서 원래 돌아가고 있던 규칙들이 서로 안 맞기 시작하면서 캠프에 있던 사람들끼리 마찰도 생겼었다. 몇 개 국가의 일을 하고 쉬는 것이 명확한 것과 아예 끝내놓고 하자는 몇 개 국가의 서로 다른 방식이 부딪혔던 것이다. 속 안에 담아두지 않고 서로 드러내서 이야기하며 잘 해결하는 방향으로 흘렀던 것 같다. 초반에는 이것이 마찰이 생길지라도 고질적으로 두고 속에 담아 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펍에 가서 맥주도 마시고 봉사활동을 하는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가서 성도 보고 쇼핑도 하고 다양한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과 같이 수영도 하러 갔지만, 그 때의 독일 날씨는 가을 날씨여서 물도 차가웠다. 가져간 수영복은 입기는커녕 발만 폴짝폴짝 담그고 나왔다. 다들 수영실력도 대단하고 차가운 물에도 풍덩 몸을 던졌다.
그렇게 2주는 금방 지나갔다. 개인적인 스케줄로 캠프가 끝나기 전에 미리 떠나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는 다른 캠프로 캠프를 바꾸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마지막에 거주하던 로스톡이란 도시에선 워크캠프 사무실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고 프로그램 관계자 아저씨 집에 초대받아 닭고기 스튜와 화이트 와인도 마실 수 있었다.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나에게 잊지 못할 대학시절의 추억이 될 것 같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보고, 주변 지인들의 소개로 1학년 때부터 워크캠프를 알고 있었다. 나는 워크캠프가 끝나면 유럽여행을 같이 하려는 이유로 비용을 모으기 위해 3학년에 가게 되었다. 1년 동안 예금해 두었던 통장을 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해지 하던 날이 떠오른다. 장학금으로 모아 온 돈이라 해지하는 것이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더 큰 경험을 위해 해지하였다. 아쉬움 반, 설렘 반.
[두려움 반, 설렘 반]
혼자 여행한 거라곤 1학기 개강 전, 2박 3일로 다녀온 전라도 여행이 다였다. 더군다나 이번엔 해외라니! 언어의 장벽은 어찌할 것인가! 게다가 나는 길치에 겁도 많은 성격이라 설렘도 컸지만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나라를 느끼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했다.
[모든 게 새로운 준비과정]
해외 경험이 없어서 하나부터 열 까지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비행기표를 끊는 건 왜 이렇게 헷갈리는 지, 독일에서의 교통편을 알아보는 데 얼마나 헷갈리던지. 여행 책자를 빌려서 차근차근히 읽어보고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워크캠프]
캠프가 시작 되기 이틀 전에 독일에 도착했다. 프랑크프루트에서 2박을 하고 캠프지로 향했다. 기차로 7시간 반에 걸쳐서 걸려서 갔다. 미팅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역 앞에서 캐리어를 의자삼아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가 워낙 작아서인지 역은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랜드마크로만 쓰이고 있었지, 화장실도 없고 쉴 곳이 야외의 의자뿐이었다. 기다리다 보니 NIG사무실 아저씨가 자동차를 끌고 오셨다. 인사하고 악수를 하고 캠프 참가자임을 확인하고 다른 참가자들 몇 명이 모여서 캠프지로 향했다. 캠프의 숙소는 반도 위의 방갈로였다. 위생 상태는 0점이었다. 같이 간 한국인 동생과 부엌을 둘러보았는데, 쥐똥도 있었고 식료품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틀 전까지 여기서 다른 캠프생들이 머물렀던 곳이었단 것이다.
침실과 부엌을 청소했다. 인사는 밝게 나누었지만, 너무 서먹서먹하고 한 마디 하면 끊기고 한 마디 하면 끊겨서 뭔가 다른 것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서로 가지고 온 카드로 게임을 하고 즉석에서 윷을 만들어 윷놀이도 했다. 나의 서투른 영어구사력과 게임방법이 복잡한 윷놀이가 그들의 환심을 사지는 못했다.
다른 나라 친구들의 나라 음식을 식사로 먹고 다음 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통나무를 나르고 주변 숲의 환경정화를 시작했다. 왜 통나무를 옮겨야 하냐는 나의 질문에 리더아저씨는 이렇게 해야 로맨틱해진다고 하신다. 왠지 웃지 못할 대답이었다. 처음에 캠프에 오기 전에 한국인이 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캠프에 오고 나니 그 생각이 잘못되었었다. 초반부에는 다들 각자의 나라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캠프에 있던 한국인 동생이 많은 의지가 되었다. 동생이 없었으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처음에 와서 느껴서 다른 것에서는 별반 다른 문화차이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벨라루스 아이들이 굉장히 직설적이고 자신들의 불만을 그대로 가감없이 얘기하는 모습에서 놀랐다. 우리나라와 달리 나이에 대해서 민감하지도 않고 적던 많던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정말 편했었다.
4일 정도 그곳에 머물다가 우리 캠프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캠프와 합치게 되었다. 그래서 거의 이십 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한 곳에서 생활하고 봉사활동도 같이 하게 되었다. 두 캠프가 합쳐지면서 원래 돌아가고 있던 규칙들이 서로 안 맞기 시작하면서 캠프에 있던 사람들끼리 마찰도 생겼었다. 몇 개 국가의 일을 하고 쉬는 것이 명확한 것과 아예 끝내놓고 하자는 몇 개 국가의 서로 다른 방식이 부딪혔던 것이다. 속 안에 담아두지 않고 서로 드러내서 이야기하며 잘 해결하는 방향으로 흘렀던 것 같다. 초반에는 이것이 마찰이 생길지라도 고질적으로 두고 속에 담아 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펍에 가서 맥주도 마시고 봉사활동을 하는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가서 성도 보고 쇼핑도 하고 다양한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과 같이 수영도 하러 갔지만, 그 때의 독일 날씨는 가을 날씨여서 물도 차가웠다. 가져간 수영복은 입기는커녕 발만 폴짝폴짝 담그고 나왔다. 다들 수영실력도 대단하고 차가운 물에도 풍덩 몸을 던졌다.
그렇게 2주는 금방 지나갔다. 개인적인 스케줄로 캠프가 끝나기 전에 미리 떠나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는 다른 캠프로 캠프를 바꾸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마지막에 거주하던 로스톡이란 도시에선 워크캠프 사무실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고 프로그램 관계자 아저씨 집에 초대받아 닭고기 스튜와 화이트 와인도 마실 수 있었다.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나에게 잊지 못할 대학시절의 추억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