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마늘 냄새가 불러온 엄마의 기억

작성자 이정협
태국 TH 3-12 · CONS/ EDU 2012. 02 AKHA

AKH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저는 이 워크캠프가 저를 한번 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워크캠프가 외국에 처음 나가 보는 것이였습니다. 모든것이 새롭고 그저 좋기만 했던거 같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바이바이 라고 말해 주던 태국 남자아이, 우리를 안내 해주던 잘생긴 버스 도우미 남자기사, 잘생긴 알렉스, 쿨남 줄리앙, 예쁜 가영이, 개념없는 존보이, 부산동생 영석이 등등 모든 사람들이 다 고마웠습니다.
라면을 끓여 먹다 산불이 나서 올라가서 끄고 다시 먹기도 했고, 하루 노동이 끝이 나면 강가에 나가서 맥주 한잔씩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한국에와서 이렇게 익숙하게 집안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그때의 기분은 아직 남아 있는거 같습니다.
어느날 아침 당번으로 음식을 할 때 우연히 맡게된 마늘냄새가 왜 엄마를 떠올리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 때 제눈에 흐를려고 했던건 눈물일까요?
학교에 아이들을 가리치러 갔을때는 아 이건 정말 나하고는 안맞구나 그런것도 많이 느꼈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가리쳐 줄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아이들을 이름을 한글로 쓰는법을 가리쳐 주었답니다.
학교에 갔을 때 보았던 2~3살 짜리 아기는 정말 제마음에 꼭 들었답니다. 그 아기는 누나등에 업혀서 학교에 같이 왔었는데요. 어떤 아이가 그 아기에게 침을 뺏고 가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났지만 그 아이도 초등학생이였기에 NO 라는 짧은 영어로 안된다고 하였지만 그아이는 천사미소를 보이며 도망을 갔습니다. 침을 맞은 아기는 태연하게 침을 닦으면 자기 할일을 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많많은 것 느낀 것 같습니다. 나는 편하게 대구에서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저 아기는 이런 상황에서도 울지 않고 꿋꿋하게 남자답구나. 나도 돌아가서는 정말 열심히 해야 겠다.
무언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정말 그런 기분이 그 장면을 보고 느껴 졌습니다. 좋았습니다.
날씨는 덥고 시멘트를 비비는 일이 힘들어져서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 영석이라는 부산 사는 아이가 캠프테 2일동안 들렸습니다. 그때 영석이는 저에게 많은 힘이 되었고 아 이것이 워크캠프의 취지 이구나를 느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하고 서로 돕고 즐겁게 지내는 것 바로 이것이였습니다.
아카의 드넓은 산맥을 볼때는 이야 남자는 이런 것을 가슴에 담고 가야 한다며 좋아 했습니다. 하지만 그뒤 미끄러운 산을 내려오며 3번이나 넘어 질때는 이건좀 힘들구나 했다가도 또 목욕탕에서 그 묵은때를 씻을때는 이 상쾌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흑먼지들을 덮어 썻었구나 라며 뒤늦게 느끼기도 했지요.
캠프가 끝나고 한 1주간의 여행은 저에게 이때 까지 살면서 보지 못한 진풍경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눈안에 다 담을수도 없을 만큼 드 넗은 유적지들, 높은탑들, 수많은 관광객들, 외국인 거리 카오산, 유재석이 사먹던 아이스크림 등등 여러가지를 보며 제 인생에 한 추억을 만든 것 같습니다.
우리를 도와 줬던 눈이라는 가이드도 23살이였지만 돈을 벌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돌아 올때는 작은 선물을 사서 가족에게 선물 했더니 아주 좋아 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특히 우리 어머니는 아들이 사준 싸구려 가방도 좋다며 웃으며 매우 만족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똥가방을 사달라며 진심으로 호소 하셨습니다.
이 아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방에서 이렇게 글을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되새겨 보니 정말 좋습니다. 힘든것도 있었지만 그냥 좋게 기억될 추억입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저처럼 영어를 잘못하고 공부도 잘 못하더라도 할려는 의지만 있다면 지원을 해주어서 워크캠프를 보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공부 잘하고 우수한 인재를 더 넓은 세상에 보내주는 것은 매우 좋은일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만년 꼴등 학생도 이런 좋은 경험을 통해 좀더 멋진 사람이 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