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태국, 땀방울로 이룬 행복

작성자 신가영
태국 TH 3-12 · CONS/ EDU 2012. 02 태국 Akha

AKH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이번 워크캠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새롭고 낯선 곳에 간다는 설렘과 긴장감을 가지고 들뜬 마음으로 방학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출발당일, 미팅포인트까지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방콕 북부버스터미널(모칫역)에서 치앙라이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2시간이라 긴 이동시간과 환승을 통한 오랜 비행시간 탓에 피곤하긴 했지만 긴장감 탓인지 들뜬 마음 탓인지 그때는 그렇게까지 힘든 줄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전 10시, 미팅포인트에서 다른 봉사자들을 만나고 또 캠프리더를 만나 캠프까지 이동했습니다. 미팅포인트에서부터 캠프까지의 거리도 1시간 정도가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첫날을 자기소개와 주변 탐색으로 보내고 둘째 날부터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봉사는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더 어려웠습니다. 큰 바가지에 시멘트가루를 붓고 모래 12박스와 자갈 14박스 그리고 물을 넣고 섞어 콘크리트를 만드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2명이서 이 작업을 하였는데 여간 힘든게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만든 콘크리트 이용해 벽도 세우고 column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한날은 강가에 평소와 다른 일을 하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 들뜬 맘에 다른 봉사자들과 차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일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벽을 만들 때 쓰일 둥글고 평평한 돌을 구하는 것이었는데 돌을 구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 보다 어려웠고 무거웠습니다. 많은 봉사자들이 일렬로 서서 주운 돌을 옆 사람에게 넘겨 트럭까지 옮기려고 했으나 어떤 것은 제가 들 수 조차 없었습니다. 저 혼자 여자였던 터라 최선을 다했지만 큰 도움을 줄 수 없어 괜히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습니다. 일이 정말 힘들었는데 첫째 주에 함께 했던 봉사자들이 다 착하고 좋아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힘들었던 점은 음식이었습니다. 삼시 세끼를 매일 계란만 같은 요리로 줬기 때문에 금요일쯤에는 물려서 거의 먹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2주차 때 더 많은 봉사자들이 오고 나서 요리사를 구하였고 그때부터 음식이 확연히 달라져 다시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주간의 봉사기간 동안 한번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8~9살의 아이들에게 영어 알파벳과 단어를 가르쳐주었고 다행히 아이들이 이미 한국문화를 많이 접한 터라 특히 우리 한국인 봉사자들을 잘 따라주었습니다. 그때 반크에서 받은 한국 홍보 책자들과 지도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고 또 한국으로 여행 오고 싶어하는 봉사자들에게도 그것들을 나눠주어 한국을 좀 더 알릴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오후에는 축구와 같은 게임을 하여 아이들과의 사이가 좀 더 돈독해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날마다 아이들이 봉사캠프를 찾아와 우리 봉사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많은 한글을 가르쳐 달라는 등의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고 이주 차 때는 다른 봉사자들이 더 오게 되어 서로 소개하고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갔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각자 나라의 전통요리를 선보이는 것이었는데 저는 한국인친구들과 돼지갈비를 하였고 홀랜드 친구들은 팬케익과 사과와 계피가루를 섞어 찐 요리, 프랑스 친구는 염소고기를 스테이크처럼 구워 고기 육수로 소스를 만든 요리, 또 벨기에 친구들은 토스트와 감자튀김을 선보였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우리가 만든 한국 음식을 극찬 하였고 또 제일 인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영국인 친구는 다른 나라 음식은 손도 대지 않고 한국 음식만 두 그릇이나 먹으며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한번은 아카 부족 결혼식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카 부족의 전통 혼례 방식을 보았고 실제로 옆에서 돼지의 배를 가르는 모습도 보는 등의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돼지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낼 때 제 표정이 일그러져서 프랑스 친구들이 웃으며 사진 찍어줬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식이 끝나고는 아카부족과 함께 저녁식사도 하였습니다. 그 때 그들도 우리와 같이 연장자가 먼저 밥을 먹은 뒤 그 다음 순서로 차례대로 먹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주 동안의 봉사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생전 처음으로 과로로 병원에 가서 팔에 링거바늘을 꽂았습니다. 그만큼 봉사를 하는 동안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정말 인간적이고 착했던 프랑스와 미국인 친구 덕분에 같이 힘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문화가, 사고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또 느껴보는 등 다양한 환경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적응력을 기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 다시 겪어보지 못할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어 좋았고 뿌듯함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