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로라 성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작성자 양재호
독일 OH-W04 · RENO/ENVI 2012. 06 - 2012. 07 Lohra castle

Lohra Cast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동기와 참가과정@

작년 교내 게시판에서 우연히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고, 치밀한 준비 끝에 대학파견으로 프랑스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가게 되었던 유럽이자 혼자서의 여정. 3주간의 길고도 짧은 활동과 2주간의 배낭여행.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순간들이었고, 첫 경험이라서 그런지 정말 많이 아쉬웠고 개인적으로 부족한 점도 많다고 생각했다.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내 머릿속에 되뇌던 건, ‘어떻게든 다시 한번 더 외국으로 나오자’ ‘다음 기회는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실수들로부터 더 좋은 경험과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기다렸던 기회. 남들과는 조금 달랐던 이슬람 권인 터키로의 교환학생. 정말 많은 계획을 세우고 터키로 갔었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고 내가 얻어갈 건 최대한 얻어 갈수 있게 미리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물론 그 중 하나가 나의 두 번째 워크캠프였다. 4월초쯤에 신청했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든든했었고 의욕이 넘쳤었다. 하지만 교환학생기간이 끝날 무렵 아마 6월 중순쯤, 솔직히 모든 게 너무 귀찮았었다. 한국 음식도 그리웠고 물론 가족들과 친구들도 그리웠었다. 그냥 한국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걸 다 미리 예약해 놓았기에 변경도, 취소도 당연히 안 되는 상황이었고 오직 할 수 있었던 건 ‘Just do it’이였다. 몇 일간의 독일 여행을 끝내고 마침내 참가하게 된 나의 길고 긴 여정의 끝 독일에서의 워크캠프. 첫날부터 피곤함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비싸디 비싼 빨간소 드링크 하나를 마시고 출발하였다. 이번 워크캠프는 작년 워캠과 달리 미팅 포인트라던 지 시간이 기재되어있지 않았다. 그냥 메일로 열차 도착 시간을 알려달라기에 과연 데리러 올까라는 불안감과 함께 열차시간을 메일로 보냈다. 하지만 열차에서 내리자 말자 리더인 샤샤가 악수를 청했다. 얼떨결에 악수를 하고 마찬가지로 역에서 만난 러시아인 케이트 그리고 프랑스인 프랑슈아와 함께 차를 타고 캠프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도착하게 된 Lohra castle! 사실 케슬이라기 보단 작은 village같은 느낌이었다. 산꼭대기에 위치해 매우 습했고, 숙소에는 자연산 바퀴벌레들이 아주 많았다. 처음엔 벌레들을 보고 룸메이트가 된 프랑슈아와 같이 기겁을 하기도 하였지만 며칠이 지나곤 무심히 손으로 툭툭 털어내는 스킬까지 생기게 되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말자 짐을 풀고 식사를 하였다. 사실 깜짝 놀랬다. 인포짓에 2팀이서 함께 일한다는 글을 읽었지만, 사실상 팀이라는 구분이 없었고 20명이 넘는 맴버가 다 같은 날에 시작하고 끝이 나는 것이었다.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2주라는 시간이 그 인원과 깊게 친해지는 게 힘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한편으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고 왔고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를 하려고 왔기 때문에 기회라고 여기며 긍정하기로 하였다. 사실 밥을 먹고 이름을 외우는 게임을 했었는데 정말 고통스러웠다. 하필이면 제일 끝에 앉아있었는데 26명이나 되는 이름을 다 외우기엔 내 머리가 도와주지 않았다. 짧은 게임과 자기소개를 마치고 잠을 자기 위해 장작을 때웠다. 사실 시골에 있는 고향집에서도 가끔 나무 장작을 이용하여 불을 지폈지만, 도끼를 이용해 장작을 패는 건 정말 오랜만이어서 재미있었다.


@캠프에서의 일 그리고 일상@

그렇게 독일 워크캠프가 시작되었다. Lohra castle에서 하는 일은 아주 다양했다. 잔디 깎기, 지붕수리, 벽면도배, 시멘트 그리고 삽질 삽질 삽질 삽질. 일의 강도는 작년에 비해서 아주 힘들었던 것 같다. 2주 동안에 잃어버렸던 근육이 되살아나기도 했었다. 사실 나의 경우는 Kate라는 러시아 친구와 둘이서만 계속 작업했다. 의도적이었던 건 아니고 때마침 단기간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4명이서 2주 동안 그 프로젝트를 전담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의 파트너는 케이트였다. 프로젝트라고 크게 거창한 것이 아닌 한 기계를 가지고 성에 새로 깔린 나무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약간의 전문성과 집중력 그리고 책임감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처음에 케이트와 일을 같이 하게 되어서,, 흠 사실 같이 하게 되었다기보다 서로가 원했다. 왜냐하면 성격이 되게 잘 맞았었기 때문이다. 케이트는 러시아인이지만 일본어를 전공하는 학생이었고 자연스럽게 한국에 아주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항상 내 영어이름이 아닌 한국이름과 오빠라고 불러주었다. 그렇게 같이 시작하게 된 작업. 일은 그다지 힘든 것이 아니었지만, 사소한 실수가 사고를 부를 수 있는 그리고 나무바닥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매사에 신중하고 집중을 요구하였다. 케이트란 친구는 내가 여태껏 겪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책임감이 강한 친구였다. 놀 땐 친근한 미소와 함께 한없이 다정한 아이였지만 일을 할 땐 악마 그 자체였다. 단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고 조금이라고 내가 방심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째 보면 나와 성격은 아주 달랐지만 가치관은 아주 비슷했기에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보완하면 일을 서로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일은 두 팀이 서로 돌아가면서 1시간 30분씩 일하고 쉬고 그런 식으로 반복하여 돌아갔다. 나 같은 경우엔 2주 동안 최대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고 다른 맴버들을 도와주기 위해 쉬는 시간엔 다른 파트 쪽에 가서 일을 도와주었다. 사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식사를 맘껏 할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작년 워크캠프 땐 정말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리더에게 건의도 여러 번 해보고 그래도 배가 너무 고파 3주 동안 6키로가 넘게 빠졌었다. 하지만 이번 캠프는 정말 음식은 무한정 먹을 수가 있었다. 거기가 벨라루스에서 온 친구들은 직업이 요리사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정말 음식을 잘 만들었다. 그 친구들이 식사 당번일 땐 일하는 내내 큰 기대심을 부풀게 하였다. 하지만 내가 식사당번일 때는 지옥이 다름이 없었다. 리더까지 합해서 도합 약 30인분의 음식준비 그리고 끝이 안 보이는 설거지. 아침 브런치 점심 저녁 이렇게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였는데 정말 앉을 시간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요리를 못하다 보니 설거지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였는데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표현이 딱 그때 쓰여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점심때 먹은걸 설거지하고 막 끝내면 저녁 먹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서둘러 저녁준비를 하여야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자유 시간을 가졌다. 작년 워크캠프땐 근교로 자주 놀러 다니고 마을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 매일마다 공연이 있었던 반면에 여기 산꼭대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게임과 맥주 마시기 밖에 없었다. 가끔씩 날씨가 좋을 땐 자전거를 타고 피크닉도 하곤 했었다. 그나마 2주 동안 2명의 맴버 얀과 줄리안의 생일이 있어서 지루할 만하면 파티를 가졌었다. 그래 봤자 평소와 달랐던 점은 춤과 보드카였을 뿐 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그렇듯이 사소한데 큰 의미를 두고 감사해할 줄 알았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가장 많이 배운 것 중 하나이다. 그렇게 주말을 맞이하고 1박으로 근교지역을 여행하였다. 이것 역시 작년관 좀 달랐던 것 같다. 작년에는 일터자체가 관광지여서 굳이 다른 지역을 갈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둘째 주를 맞이 하고 프로젝트가 완성 되갈 무렵 우리가 헤어질 시간도 어느새 다가오고 있었다. 2주는 정말 짧은 시간이다 정말 친해지려고 하는 그 활활 타오르는 그 시점에서 작별을 고한다는 것이 정말 쉬운 것이 아니었다. 어느덧 30살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지만 아직까지 이런 감정을 조절하는 건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금요일 날 가까스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우리의 마지막을 우크라이나산 보드카와 함께 시원섭섭한 2주를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날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랄까? 마침 내 룸메이트 프랑슈아와 내 파트너 케이트가 모두 나와 같이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기차에서의 5시간 동안 우리는 2주 동안 보낸 로라 케슬에서 보낸 시간과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마침내 공항에서 작별을 할 때 나는 결국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작년에도 무지 슬펐었지만 울진 않았는데 이번엔 너무 짧아서 더욱 더 아쉬웠던 것 같다.


@priceless experience@

나의 두 번째 워크캠프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워크캠프. 작년에 했었던 워크캠프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었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고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가 있었다. 운이 좋게도 2주 동안의 프로젝트를 맞이하여 맡은 임무에 책임감을 다해서 일을 할 수가 있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내 영원한 파트너 케이트 그리고 여러 동료들과의 일하는 과정에서의 갈등과 경험들을 통해 한국에 돌아왔을 때 조직이란 틀 속에서 내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많은 것을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었던 내 친구이자 파트너인 케이트와 서로 나누었던 진솔한 얘기들, 그리고 내가 그로부터 얻었던 모든 것들을 내가 미래에 무엇을 하던지 그 새로운 조직 속에서도 나만의 것으로 재 해석해서 미래에 함께 나아가고 싶다. 그만큼 단지 2주였지만, 나의 27년 인생을 돌아보고 미래에 향한 발걸음에 재정립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케이트와 프랑슈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썼었지만 나머지 친구들에게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들이었다. 너무너무 고맙고 보고 싶은 우리친구들 벌써부터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