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타이완 핑시, 천등 아래 피어난 우정

작성자 김춘이
대만 VYA/12-10 · CULT/FEST 2012. 08 Tiwan

Come to Pingxi, Pray for Good Fortun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8월 11일, 국군간호사관학교 발전기금의 수혜를 받아 나를 포함한 5명의 국간사 2학년 생도들은 인천에서 타이페이행 비행기를 타고 대만으로 갔다. 대만에서 열리는 국제 워크캠프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8월 11일 토요일에 도착을 하고 다음날 일요일 타이페이에서 핑시로 가는 기차를 탔다.
핑시는 타이완의 수도 타이페이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예전에는 석탄 산업으로 흥했으나 요즘은 석탄업을 하지 않아 예전보다는 한산하다. 그래서 대만 정부는 핑시를 관광도시처럼 꾸며 놓았다. 대보름날에 하는 천등축제가 그 예이다. 천등은 옛날 외부의 침입이 잦았었을 때 마을사람들이 산으로 도망쳐 있을 때 적이 후퇴하거나 없어지면 천등을 띄워서 생존 신고를 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는데 요즘은 이 마을의 없어서는 안 될 효자상품이 되었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작은 천등을 사 가고 하루에도 몇백개 씩의 대형 천등이 구름이 피어난 하늘로 날아간다.
우리는 핑시의 벽화 그리기 작업을 주로 했다. 높이는 성인 남자의 키가 훌쩍 넘고 길이는 75M의 벽화를 아마추어가 2주만에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디어와 스케치도 우리가 해야 하고 색깔까지 우리가 입혀야 했다. 핑시는 관광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벽화를 볼것이기 때문에 부담감도 상당했다. 하지만 우리는 워크캠프 리더의 조언과 현지인 화가분의 조언, 그리고 그림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박예지 생도의 전반적인 아이디어 구상과 스케치 덕분에 2주 안에 훌륭한 벽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벽화가 완성되고 난 다음에는 현지인들과 매체에 워크샵을 개최해 우리의 벽화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핑시의 문화를 체험해 보는 경험도 워크캠프를 통해 가질 수 있었다. 핑시의 문화인 천등 날리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우리 손으로 직접 천등을 만들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모든 친구들의 소원을 적어 불을 붙이고 하늘로 띄웠다. 대만, 대만 중에서도 핑시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또 노인 봉사도 했다. 하나는 노인 이해하기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가 직접 80대 노인의 몸이 되어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80대의 노인으로 변하기 위해 내 손에는 장갑 2개씩을 끼고 팔꿈치에는 잘 움직이지 못하게 보호대를 하고 허리와 무릎을 연결시켜서 허리가 펴지지 않게 했다. 그리고 노란색 안경을 껴서 노인들이 잘 안 보이는 것까지 재현해 보았다. 물론 귀에는 귀마개를 해서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고 말이다. 나는 훈련을 많이 받으니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모든 의상을 착용하자마자 땀이 주르륵 났다. 불편한 손으로 와이셔츠 단추를 잠그고, 젓가락질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의 체험으로 노인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노인을 간호할 때에 ‘조금 더 섬세하고 세밀하게 간호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워크캠프를 통해 얻게 된 것은 너무나 많다. 그 중 정말 좋았던 것은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워크캠프를 통해서 생도생활 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생도가 아닌 사람들과의 교류를 원 없이 했다. 하지만 힘든 점도 많았다. 일본인 3명, 폴란드인 1명, 현지 대만인 10명과 한국인 우리 생도들 5명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만국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외국인과 대화를 해 본 기억이라고는 우리 학교의 원어민 강사밖에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우물쭈물 했지만 진심은 언어의 장벽을 뚫었다. 오히려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한마디를 할 때에도 진심을 담아 말하니 더 친밀해졌다. 친밀해 지니 자신감도 붙어 영어를 자신감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더욱 더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워크캠프를 통해 해외 친구를 사귀는 법을 알게 되어 너무 기쁘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얻었다. 사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스케치도 못하고 색칠도 잘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장점을 알지만 단점도 잘 알았기에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웬만하면 시도조차 하지 않고 넘어가 버렸었다. 하지만 이번 워크캠프의 주된 작업인 벽화그리기를 통해 나는 참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벽화 구성과 스케치, 색칠에 대한 감이 하나도 오지 않아 앞이 컴컴했었다. 재능도 없는 내가 와서 괜히 워크캠프에 차질을 줄까, 재능이 있는 생도가 여기 와서 도움을 줘야 되는데 내가 와서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 하지만 이 생각은 후에 없어졌다. 나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생각했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내가 최대한 쏟을 수 있는 정성을 담아 스케치를 했다. 그 과정과 결과는 너무나 좋았다. 우선 나는 ‘할 수 없을거야’ 라는 생각을 잠시 버리고 내가 해야 할 일에 매진하니 스케치도 잘 되고 걱정도 없어졌다. 그림도 잘 그려지고 집중도 너무 잘됬다. 못하는 것은 ‘못할 것이다’ 라고 선을 그어버리는 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생도대에 복귀해서도 내가 깨달은 마음자세인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이 선을 긋는 것이다. 일단 곰곰이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할 궁리만 모색한다면 안 되는 것은 없다.’를 마음에 새기고 모든 생도생활에 임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 워크캠프를 통해 같이 갔던 동기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해외에 나갈 때 혹시 우리 생도들끼리 의견이 맞지 않는다거나 해외로 나가기 때문에 풀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걱정을 했었다. 아니면 지나치게 우리끼리 똘똘 뭉쳐 있어 워크캠프에 녹아 들어갈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 동기들은 안으로는 동기들을 서로 잘 챙겼고 외국 친구들과도 아주 잘 지냈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가르쳐 주고 K-POP을 가르쳐 주는 등 먼저 손을 내밀었고 현지 주민들에게도 마치 한국의 할머니에게 하듯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대했다. 워크캠프 리더인 웬디도 한국친구들이 워크캠프를 하기 전에도 알고 있었던 사이라 융합되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아닌 것 같고 한국인이 제일 잘한다는 말을 나에게 했을때 나는 매우 기뻤다. 땡볕에서 벽화를 그리는 데에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외국인 친구의 벽화 작업을 도와주는 모습, 쓰레기 분리수거를 솔선수범해서 버리는 모습, 모든 음식 맛있게 잘 먹고 설거지도 잘 하고 청소도 잘 하는 모습들, 이런 생도다운 모습들이 이미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 기분이 좋았다.
이제 워크캠프가 끝났고 나는 한국에 왔다. 하지만 나는 지난 2주간의 워크캠프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워크캠프에서 만난 해외의 좋은 친구들, 대만 핑시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환대해 주신 마을 주민들, 우리가 작업을 하고 있을 동안 우리의 원활한 워크캠프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워크캠프 리더, 그리고 핑시의 예쁜 하늘과 하루에 몇 개가 하늘로 날아가는지 모르지만 매번 볼 때마다 장관이었던 핑시의 천등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들. 지난 2주간의 모든 기억들은 나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이 되었고 그때 얻은 밝은 기운을 바탕으로 생도생활을 더욱 알차게 해 나갈 자신이 생겼다. 이런 기회를 주신 분들과 학교에 너무나 감사하고 국군간호사관학교 후배들이 워크캠프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전한 휴식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