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핑시에서 만난 세상, 마음으로 통하다

작성자 박예지
대만 VYA/12-10 · CULT/FEST 2012. 08 핑시 PINGXI

Come to Pingxi, Pray for Good Fortun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학교의 발전기금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뽑혀 대만에서 열리는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닌 동시에 공금으로 가는 봉사활동인 만큼 신중하게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동기들과 나는 저개발 국가에서 참가비만 있으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회성 보여주기 식의 봉사가 아닌 서로 소통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는데 그렇게 선택한 것이 국제워크캠프였다. 국제워크캠프는 세계에서 모인 청년들이 함께 생활하며 환경, 개발, 평화, 건축,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자원봉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기구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70개국에서 연중 개최되고 있으며 활동 기간도 2-3주로 휴가기간에 운용하기 적절했다. 또한 일방적인 봉사가 아닌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타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이러한 상호교류를 통해 참가자 개인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워크캠프만의 매력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8월 12일부터 26일까지 대만의 작은 탄광촌인 ‘핑시’에서 진행되는 워크캠프를 신청했다.

워크캠프는 12일 17시 집결지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11일에 비행기를 타서 타이페이에서 하루 머물렀다. 해외에 동기들끼리만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뉴스와 인터넷에서 대만사람들은 92년 단교로 인한‘혐한 감정이 심하다.’라고 들어왔기 때문에 조금 떨리기도 했지만 실제로 만난 대만사람들은 외국인들 특히 한국인들에게 따뜻했다. 대만의 첫인상은 여유로운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미소였고 도착한 역에서 우리가 길을 헤매자 최근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신 아저씨로부터 결정됐다. 괜시리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니까 얼마나 뿌듯하던지... 이 뿌듯함은 계속 이어졌는데 저녁을 먹은 후 잠깐 들린 시먼(西問)에서였다. 시내 가게마다 들리는 한국 노래들! 정말 특정한 가게만 한국 손님을 끌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거리거리 모든 가게들이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틀었다. 게다가 눈에 띄는 길목에만 있는 파란색의 삼성매장, 스킨푸드, 에뛰드 등의 우리나라 화장품 매장, 세븐 일레븐의 비빔밥 도시락, 종종 눈에 보이는 한글간판이 걸린 가게... 대만 청년문화의 중심지이며 서울의 명동과 비슷한 시먼에서 우리나라 문화 컨텐츠의 힘에 새삼스레 감동받았다.
12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워크캠프 일정이 진행되었는데 워크캠프가 진행되는 곳인 핑시는 지금은 폐광된 과거 탄광촌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떠나 노인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현재는 석탄을 운반하던 기차를 관광객을 나르는 기차로 바꾸고 철도 주변으로 관광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벌여 젊은이들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고 도시에 활기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나라 태백 같은 도시였다. 2주 동안 함께한 워크캠프 멤버들은 한국인인 우리 5명, 폴란드에서 온 나탈리, 일본에서 온 친구들 3명, 나머지 14명의 대만친구들이었는데 나이 계산하는 법이 태어날 때부터 1살인 우리나라와는 틀려서 처음에는 당황 했다.처음 서로를 소개 할 때 나이를 물어보는데 일본, 폴란드, 대만친구들 중 20살이 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의문은‘몇 년도에 태어났어?’,‘나는 원숭이띠인데 너는 무슨 띠야?’하는 질문을 통해 곧 해소됐다. 우리는 웃으면서 대만에 오면 나이가 어려져서 좋다며 즐거워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재밌다. 또 하나 나이에 대한 에피소드는 사용하는 년도에 대한 것인데 얼굴은 어려보이는 친구가 주민증에 79년이라고 써 있어서 너는 1979년생이냐고 깜짝 놀라서 물어보았더니 이것은 1979년생이라는 뜻이 아니라 중화민국이 건국 된지 79년째에 태어난 것을 뜻한다고 웃으며 해명하던 것이 기억난다.
서로 영어가 국어가 아닌 외국인인지라 영어를 사용하는데 서툴렀지만 스마트폰과 전자사전 등을 이용하여 한마디라도 더 해보려고 노력하는 의사소통 과정이 재미있었으며 간체를 쓰는 중국과는 달리 번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글씨만으로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어 뭐든지 배워놓는 것이 참 좋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페이스북등의 소셜 네트워크 발달로 손쉽게 친구를 맺고 연락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친구!’이런 느낌이었다 할까? 또 이런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한글의 우수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전자사전을 통해 대화하면서 대만친구들이 키보드로 한자를 입력하려는 것이 정말 답답하게 느껴졌고 우리가 한글 키보드로 비교적 빠르게 타자를 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며 서툰 영어로 표음문자인 한글을 자랑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대화내용은 취미가 뭔지, 전공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한국 연예인, 드라마에 대한 간단한 내용부터 한국의 성형수술이나 국제결혼, 북한에 대한 시사적인 내용까지 다양했다. 특히 북한에 관심이 많은 것이 신기했는데 그 이유는 가난한 북한의 실상과 인권탄압, 탈북자에 대한 내용의 뉴스가 국제적으로 이미 상당하게 다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맡은 이번 워크캠프 프로젝트는 가로 27m, 세로 14m의 벽에 벽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원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평소에 벽화 그리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했던 나에게는 신나는 작업이었다. 핑시에서 유명한 하늘로 날리는 천등, 대나무, 기차, 꽃, 강물과 물고기들, 가게들을 스케치하여 도안을 만들고 벽에 그렸다. 더운 햇볕 밑에서 삿갓을 쓰고 옷소매를 잘라 만든 팔 토시를 하고 종일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페인트칠을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벽화가 완성 되가는 모습이 나를 하루하루 뿌듯하고 보람 있게 만들었다. 또한 핑시의 할아버지, 할머님들도 벽화를 보며 칭찬해주시고 피드백 해주셨으며 우리가 일하고 있는 회관에 와서 점심 짓는 것을 도와주시기도 하셨다. 벽화 그리는 것으로 인해 외국인 친구들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교류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2주 동안 매일 본 소시지 가게, 빙수가게, 쌀집, 기념품가게, 슈퍼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벽화를 그릴 때마다 쪼르르 달려 나와서 쳐다보는 아이들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라포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내가 처음에 할 줄 아는 말은 我爱你(사랑해!), 你好(안녕!), 谢谢(고마워!) 세 개 뿐이었는데 나를 땡글땡글 눈으로 쳐다보는 대만 어린애들과 한마디라도 하고 싶은 마음, 항상 따뜻하게 지켜봐주고 있는 할머니들한테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은 그 마음 하나가 2주 새에 晚安(잘자), 漂亮(예뻐), 早上(좋은 아침), 老师(선생님), 大家(여러분), 小妹(아가씨), 车站(기차역), 阿妈(할머니), 阿公(할아버지), 再见(다시 만나), 哥哥(형), 弟弟(동생), 师父(스님)등과 같은 많은 조각 말들을 배우게 했다. 마음이 닿아 서로 대화하고 싶은 느낌이 무엇인지 이곳에서 배우게 된 것 같다.
우리는 하루 종일 벽화를 그리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캠프파이어와 함께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동기들과 함께 춤이나 노래를 준비하는 과정, 폴란드, 일본친구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는 것 모두 즐겁고 신났다. 특히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핑시의 할머니,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우연히 거리를 지나가는 도미니카의 관광객, 우리나라의 관광객 또한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참 좋았다. 대한민국, 그것도 대전에서만 21년을 살았던 나에게 워크캠프를 통해 대만에서 도미니카에 일본에 폴란드에 사는 친구들과 다 같이 손잡고 웃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또한 80세 노인을 체험하는 장비를 장착하고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글씨를 읽고 셔츠를 입는 등의 활동을 통해 후기를 작성하고 80살이 된 나에게 편지를 써보며 노인공경과 존중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으며 마을에 혼자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방문해 생신을 축하드리기도 했다. 또한 오후 시간 동안 핑시 가게들, 핑시의 명물인 천등가게와 소시지 가게, 엽서를 팔고 있는 갤러리에서 잠시나마 점원 체험을 해보기도 했다.
한편 우리는 평소에 팀을 나누어 식사와 설거지, 청소를 우리끼리 했는데 평소에는 대만의 음식을 만들었다. 대만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만들면서 대만에 채식주의자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는데 14명의 대만친구들 중에 6명이 채식주의자였다. 우리나라같이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여기는 대신 조리과정, 식사과정까지 서로 존중하며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 느낀 점이 많았다. 또한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만드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미리 준비해간 불고기 소스와 봉지김치, 참치캔, 신라면들이 참 유용했고 조금은 탔지만 다들 한국음식, 김치가 맛있다고 말해주어 기뻤다. 둘째 주에는 우리가 가져간 튜브형 고추장을 서로 축내기도 했다.
2주간의 워크캠프 기간 동안 프리데이는 19일 일요일과 20일 월요일, 23일 목요일 총 3일 주어졌는데 19-20일에는‘치링’이라고 불리는 대만친구가 관광일정을 짜주어 집에 가는 대만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함께 했다. 덕분에 우리끼리라면 도저히 이틀 만에 갈 수 없었던 일정을 소화해낼 수 있었는데 영화‘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인 단수이, 복닥거리는 스린 야시장, 방대한 양의 유물이 전시되어있는 고궁박물관, 101빌딩, 안개 낀 바다가 보이는 지우펀 등 가 보고 싶었던 곳 모두에 가볼 수 있었다. 세 번째 프리데이는 예상보다 빠른 작업진행과 태풍으로 인한 비 때문에 작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상황이 맞아떨어져 기대하지 않은 선물처럼 목요일에 떨어졌는데 이날은 마음 맞는 대만 친구 2명과 함께 가까운 지우펀에 다시 방문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어느새 시간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벽화는 완성되었고 25일에는 지역의 라디오와 신문이 찾아와 벽화완성을 기념하고 그동안 도와주신 할머니, 할아버님, 그동안 묵었던 숙소였던 절 스님들을 초청해 작은 행사를 했다. 26일 새벽에 우리는 첫차로 떠나야했기 때문에 밤에 잠들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메일을 교환하고 26일이 생일인 일본인 친구 마리나의 생일을 축하했다. 새벽에 깨지 않게 하려고 조심조심해가며 가방을 챙기려고 노력했는데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 역까지 울면서 마중 나와 준 친구들의 얼굴이 바로 엊그제 같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2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그리고 짧은 시간에 다양한 친구들을 만든 보람 있는 워크캠프였다. 힘들게 일하고도 지칠 줄 모르고 잠자리에서 도란도란 서툰 영어로 얘기를 나누던 기억, 스님들께서 챙겨주시던 아침밥, 핑시의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 벽화 그리는 벽 바로 앞 미용실 할머니와 쌍둥이 손자들, 천등 가게의 양양 형제.. 깨알 같은 기억들 하나하나 쌓여 평생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과 준비하는 기간에 힘써주신 훈육관님, 훈육장교님, 워크캠프 기간 중에 어렵게 시간을 내어 방문해주신 무관님과 사모님, 巖脚驛 天寧寺의 스님들, 함께해준 동기들과 친구들, 平溪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