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핑시에서 만난 특별한 여름, 2주
Come to Pingxi, Pray for Good Fortun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방학이 찾아왔다. 그것은 드디어 대만으로 2주의 워크캠프를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말했다. 워크캠프까지 남은 일주일은 바쁜 학기로 미처 하지 못한 떠날 준비를 하느라 몹시 바빴다. 우리가 갈 나라인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기본적인 중국어 회화도 익히고 우리나라의 벽화 사례도 찾아보았다. 사람들의 말처럼 대만은 우리가 봉사활동을 할 만한 나라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워크샵에서도 말했듯 어디서든 배울 자세만 되어있고 도울 마음만 있다면 분명 얻는 것이 클 것이라고 했다. 다만 내가 걱정되는 것은 외국 친구들과 문화의 충돌, 의사소통의 문제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대만의 첫 인상은 나의 기대에 못 미쳤다. 경제력이 거의 비슷하다고 들었지만 기초적인 시설 인프라나 도시의 구조 등은 아직 우리나라보다 덜 발달된 듯 했다. 첫 날은 수도 타이페이를 돌아다니며 대만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보고 미팅 포인트인 핑시로 갔다. 분명 우리가 처음 받은 정보로는 한국인 5명과 대만인 2명이었지만 실제로 가보니 일본인 3명, 폴란드인 1명, 대만인 다수가 더 있었다. 그렇게 풍성해진 구성원과 대만의 문화와 핑시에 대해 소개하는 첫 날 지역주민의 환영파티를 시작으로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다. 처음 이틀은 핑시와 그 근방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아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야 이 지역의 문화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우리가 이해한 점을 벽화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핑시와 그 주변 지역은 탄광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지금의 아름다운 기차 또한 대만이 일본 식민지였던 시절 광부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었지만 해방 후 청원하여 일반 주민들과 관광객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핑시의 대표적인 물건인 천등에 대해서도 소개받았다. 이러한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셋째 날부턴 지역의 화가 선생님의 조언을 얻어 스케치 및 벽화 구성 등 본격적인 벽화 작업에 들어갔다. 친절한 마을 주민, 유명한 가게, 천등, 알록달록한 기차 등 각자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종이 위에 먼저 그리고 재배치하여 벽화 위에 옮기는 순으로 했다. 약 75m의 긴 벽에 우리의 그림이 하나하나 그려지고 마을사람들이 기뻐할 때마다 우리의 행복도 커져갔다. 이윽고 벽화가 완성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나와서 구경하고 함께 기뻐했다.
사실 이번 워크캠프는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이지만 오히려 우리가 더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첫 번째는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변화이다. 외국인 친구들과 2주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내며 내가 느낀 것은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태어난 나라가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조차 다른 사람일지라도 막상 지내보니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그 동안 나라별로 민족색을 따지려 들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 편견을 넘어서고 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진심으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역사의 이해다. 우리나라, 일본, 대만은 서로 얽힌 역사가 있다. 서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되며 쌓여있던 응어리도 조금씩 풀게 되었다. 하지만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독도 문제와 같은 경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대화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서로 양보해 줄 수 있는 사안도 아니었기에 안타깝고 답답했다. 결국 이것은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아마 다시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짧다면 짧은 2주였지만 정말 많이 정이 들었다. 마지막 송별 파티에는 전부 눈물을 흘리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특히 우리가 가는 날 아침, 매우 이른 시간임에도 일어나서 배웅해주고 울면서 기차역까지 달려와 배웅해 줄 땐 정말 떠나기 싫을 정도였다. 그리고 항상 우리에게 지나가면 따스히 인사해주시고 먹을 것이라도 하나씩 꼭 쥐어주시던 핑시 주민들의 정은 잊지 못할 사랑이다. 아마 내가 대만을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대만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 일 것이다.
베풀러 간다는 마음으로 갔지만 오히려 더 큰 베품을 받고 돌아왔다. 언젠가 내가 받은 이 따스한 정을 다시 베풀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이번 워크캠프의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사실 대만의 첫 인상은 나의 기대에 못 미쳤다. 경제력이 거의 비슷하다고 들었지만 기초적인 시설 인프라나 도시의 구조 등은 아직 우리나라보다 덜 발달된 듯 했다. 첫 날은 수도 타이페이를 돌아다니며 대만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보고 미팅 포인트인 핑시로 갔다. 분명 우리가 처음 받은 정보로는 한국인 5명과 대만인 2명이었지만 실제로 가보니 일본인 3명, 폴란드인 1명, 대만인 다수가 더 있었다. 그렇게 풍성해진 구성원과 대만의 문화와 핑시에 대해 소개하는 첫 날 지역주민의 환영파티를 시작으로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다. 처음 이틀은 핑시와 그 근방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아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야 이 지역의 문화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우리가 이해한 점을 벽화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핑시와 그 주변 지역은 탄광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지금의 아름다운 기차 또한 대만이 일본 식민지였던 시절 광부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었지만 해방 후 청원하여 일반 주민들과 관광객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핑시의 대표적인 물건인 천등에 대해서도 소개받았다. 이러한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셋째 날부턴 지역의 화가 선생님의 조언을 얻어 스케치 및 벽화 구성 등 본격적인 벽화 작업에 들어갔다. 친절한 마을 주민, 유명한 가게, 천등, 알록달록한 기차 등 각자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종이 위에 먼저 그리고 재배치하여 벽화 위에 옮기는 순으로 했다. 약 75m의 긴 벽에 우리의 그림이 하나하나 그려지고 마을사람들이 기뻐할 때마다 우리의 행복도 커져갔다. 이윽고 벽화가 완성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나와서 구경하고 함께 기뻐했다.
사실 이번 워크캠프는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이지만 오히려 우리가 더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첫 번째는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변화이다. 외국인 친구들과 2주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내며 내가 느낀 것은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태어난 나라가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조차 다른 사람일지라도 막상 지내보니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그 동안 나라별로 민족색을 따지려 들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 편견을 넘어서고 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진심으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역사의 이해다. 우리나라, 일본, 대만은 서로 얽힌 역사가 있다. 서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되며 쌓여있던 응어리도 조금씩 풀게 되었다. 하지만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독도 문제와 같은 경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대화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서로 양보해 줄 수 있는 사안도 아니었기에 안타깝고 답답했다. 결국 이것은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아마 다시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짧다면 짧은 2주였지만 정말 많이 정이 들었다. 마지막 송별 파티에는 전부 눈물을 흘리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특히 우리가 가는 날 아침, 매우 이른 시간임에도 일어나서 배웅해주고 울면서 기차역까지 달려와 배웅해 줄 땐 정말 떠나기 싫을 정도였다. 그리고 항상 우리에게 지나가면 따스히 인사해주시고 먹을 것이라도 하나씩 꼭 쥐어주시던 핑시 주민들의 정은 잊지 못할 사랑이다. 아마 내가 대만을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대만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 일 것이다.
베풀러 간다는 마음으로 갔지만 오히려 더 큰 베품을 받고 돌아왔다. 언젠가 내가 받은 이 따스한 정을 다시 베풀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이번 워크캠프의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