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유럽여행, 워크캠프로 완성하다

작성자 하수정
독일 OH-W17 · ENVI/RENO 2012. 08 Mecklenburg West Pomerania

Klein Dammerow Manor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바쁜 학기 중에 갑작스레 이번 여름 계획된 유럽여행으로 이를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미국에서 만난 친구의 제안이 맨 처음 워크캠프와의 인연이었다.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이미 나는 내 자신이 문화교류에 대해 얼마나 큰 흥미를 느끼는 지, 얼마나 크게 갈망하는 지 깨달은 바 있었던 터라 나에겐 이보다 더 기쁜 뉴스는 없었다. 이미 졸업하기 전에 마지막 여행으로 유럽여행을 마음먹은 상태에서 여행 중 워크캠프라는 봉사활동까지 가미된다면 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대학생활 최고의 마지막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참가를 마음먹자마자 가장 문제가 됐던 점은 나의 의욕과 내가 실상 이용할 수 있는 한정된 시간 사이의 배분이었다. 시간이 너무 없어 그 많은 워크캠프들 중 원하는 워크캠프를 찾기 위해 틈틈이 나는 토막시간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고, 힘들었지만 결국 발견하고 성공했다. 2번의 시도 끝에 3번째 성공한 케이스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워크캠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워크캠프 전, 후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매력적이었다. 워크캠프를 시작하기 한 달 전부터 나는 친구와 함께, 몇몇 도시는 나 홀로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나에게 워크캠프를 제안해 준 친구는 스페인에서 워크캠프를, 나는 독일에서 워크캠프를 하게 되었다. 친구가 먼저 워크캠프를 끝내고 나를 만나게 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친구로부터 워크캠프에 대해 실질적인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기대를 품고 계획했던 워크캠프 전 여행을 마치고, 함부르크에서 Meyenbrug로 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차에서 큰 짐 가방을 끌고 다니는 예쁜 여학생이 내가 갈아타는 역마다 같이 내리고 기다리고 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워크캠프 장소가 함부르크와 베를린 사이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을 먼저 여행하고 올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저 친구가 나와 함께 봉사활동을 한다면, 나처럼 함부르크에서 여행을 하다가 워크캠프로 들어가는 것 같아서 신기했고 또 그만큼 처음 말 걸기가 힘들었다. 결국, 그 친구는 바르셀로나에서 온 같은 워크캠프를 신청한 학생이 맞았고, 기차역에서 처음 그렇게 만나 우리는 워크캠프 내내 단짝으로 붙어 다녔다. 워크캠프 지역이 한적한 시골이라 그런지 작은 기차로 갈아탔을 때는 한 명의 이탈리아 남학생과 한 명의 타이완 여학생도 만나게 되었다. 기차역에서 내린 후 우린 다시 차를 타고 워크캠프 장소로 이동했고, 우리를 시작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첫 날은 서로 어색하고 서먹하게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함께 일하고, 함께 웃고, 함께 음식을 만들며 우린 점점 친해지고 있었다. 특히, 유럽친구들은 영어뿐만이 아니라 주변 국가 말들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신기했다. 언어를 하나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그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유럽의 지역적 특성도 좋게 작용하겠지만, 어떠한 점이 그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는지 유럽국가들의 교육이나 역사에 관해서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캠프에서의 일상은 내 짧은 인생에 있어 정말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나는 한 번도 육체적인 노동을 하며 하루 온종일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고, 그랬기에 둘째 날은 근육통으로 고생을 해야 했다. 우리는 아침 8시 반부터 30분의 커피휴식과 1시간의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오후 4시까지 일을 했다. 그 넓은 광야의 잔디를 깎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많은 벌레들과 벌들을 본 것, 큰 숲을 자전거로 왕복한 것, 울타리를 만들고 페인트 칠을 한 것,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세상에는 많은 활동들이 있지만 나는 내 삶의 굴레 속에 빠져 같은 행동들만을 반복하며 살아온 것이 아닌가라는 후회도 들었다. 이 활동들은 물론 힘들었지만, 나에게 있어 소중하고 값진 경험들이 되었다.
한편, 음식을 만드는 부엌 팀은 하루하루 팀 별로 바뀌었다. 나는 이 캠프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타이완 여학생과 함께 팀이 되어 아시아 음식들을 선보이게 되었다. 우리는 점심엔 볶음밥을, 저녁엔 한국카레와 감자조림 등을 만들게 되었다. 우리 팀에는 1명의 채식주의자(생선은 식사가능) 캠프리더와 1명의 유제품을 못 먹는 남자아저씨가 있었다. 그렇기에 매번 부엌 팀들은 그들을 위해서 따로 작은 분량의 요리를 더 만들어야 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채식주의자도 별로 없고, 유제품(우유, 치즈, 버터 등)을 못 먹는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 물론 어느 정도 해당사람들은 있겠지만, 외국처럼 많은 사람들이 해당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과 24시간 동거동락하며 같이 지내보니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들을 하나 둘 이해할 수 있었고, 그 또한 나에겐 새로움이었다.
우리는 깊게 대화했고 교류했다. 많은 캠프 멤버들이 각자의 삶에 대한 비전과 인생에서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뚜렷했고, ‘모두가 가야 하는 길’이라는 정해진 하나의 루트 안에서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국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회의감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에 대한 많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실상 나는 자연보호, 환경보호라는 많은 문구들을 봐오면서 커왔지만, 이에 대해 내 본연의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나 동경 같은 감정은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맞는 행동이다.’라는 사람들이 말하는 피상적인 이유들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있어 몇몇 캠프사람들은 내가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다른 방법으로 사고를 하는 신기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실상 도시에 살아가고 있지만, 도시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많았다. 자연스러움과 자연이 주는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도 새로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 준 사람들이었다.
캠프의 리더는 멕시코에서 온 알레한드라와 러시아에서 온 아나가 있었는데, 그들은 둘 다 독일어에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느 정도 독학한 다음 이리로 무작정 와서 캠프리더가 되었다. 그들은 여기서 캠프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현지인들과 캠프리더를 지휘하는 총괄리더(독일인)들과 소통하는 데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프랑스어에 관심이 많이 있던 터라, 내년에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워크캠프를 참가해서 거기에서 더욱 깊은 교류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 이 워크캠프 후 얻은 정확한 결론은 이 경험이 쉽사리 얻을 수 없었던 값진 경험이었다는 것과, 내 사고의 폭을 넓혀준 경험이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내년에도 다시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캠프를 2개 정도 더 지원해 볼 것이라는 점이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이 봉사활동은 육체적 피로보다도 나에게 더욱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2주 동안 정말 행복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