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독일, 마음의 크기를 넓히다
Deetz (Magdebur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혼자 떠나는 첫 외국여행을 워크캠프와 함께하게 되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 관심과 흥미가 많아 독일에서 개최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찾던 중 선택하게 된 것이 ‘Magdeburg’ 에서의 캠프였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서부터 베를린까지 ICE를 타고, 또 바로 REGIONAL을 타고 미팅포인트인 Magdeburg에 발을 내딛기까지의 여정..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찾아갔나 싶을 정도이다. 역에서 처음으로 캠프리더와 만나고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의 감정을 안고 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워크캠프에서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는 일상생활처럼 오고 갔던 ‘역-숙소’의 길이었는데, 처음엔 그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아직도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숙소에는 러시아 남자아이 한 명이 먼저 와 있었다. 그리고 점점 한 명씩, 한 명씩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날은 이름과 국적 그리고 나이 등등 각자 소개하고 얼굴을 익히느라 바빴다. 모두가 ‘3주 동안의 여정을 함께 할 친구들’ 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서인지, 서로 금방 친해졌고 더욱 깊이 마음을 열고 교감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밥도 잘 안 해 먹는 나였는데 이 곳에서는 모든 걸 자급자족 해야 했다. 워크캠프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점이었다. 자급자족의 환경에 놓이니 나도 모르게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습관이 길러졌기 때문이다. 캠프 생활 3주 동안 하루에 2명씩 짝을 이루어 그 날은 일 대신 끼니와 청소를 담당하였다. 가사를 담당하는 날에는 모든 친구들의 굶주린 배를 내가 책임져야 했기에 더욱 분주해지곤 했다. 총 8국가에서의 친구들이 모였기에 입맛도 다 다르고 취향도 달라서 어떤 요리를 해야 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짜빠게티’ 이다. ‘과연 이것이 입에 맞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복불복 식으로 식탁에 내놓았는데, 처음 음식을 보고는 다들 얼어붙은 상태였다. ‘warm’ 같다느니, 징그럽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번만 맛을 보라고 설득시켜 한 입씩 먹은 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이 보일 정도로 순식간에 동이 나서 정작 나는 입도 못 댔었다. 다른 아이들이 해 준 요리 중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스파게티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실제로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별로였다는 것이다. ‘정통 파스타 맛은 이런 것 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맛이었다.
제대로 work를 하기 시작한 건 도착 후 3일쯤 뒤부터였다. 생전 처음 해보는 밭일 이었지만 친구들과 얘기도 나누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일’이 아닌 ‘즐거운 경험’의 시간이었다. 다만 한 낮에는 한국보다 더욱 뜨거운 햇빛을 견뎌내는 게 조금 힘들었다. 처음에는 내리쬐는 햇빛에 무작정 노출되어 있었지만 몇 일 뒤부터는 노하우가 생겨 팔 토시, 모자, 선글라스 등등 필사적으로 햇빛을 막고 일에 임할 수 있었다. 매일같이 밭에 나가 잡초들을 제거하고, 농작물에 물도 주고 하다 보니 식물들이 자라나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자연의 신비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일이 없는 날에는 모두 함께 주변 지역으로 여행을 갔다. 집 같이 생활하던 마을숙소에서 벗어나 도시로 나가니 감회도 새로웠고 다 함께 다녔기에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지친 몸을 기차에 싣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항상 ‘누가 먼저 샤워할 것인지’에 대해 열띤 경쟁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3주 간을 아침에 일어나 다 같이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농장에 가서 낮 동안 일하고, 오후에 들어와 서로 자신의 mp3에 있는 음악을 공유하며 교감하고.. 눈 뜰 때부터 잠에 들기 전까지 항상 13명 모두가 함께였던 시간들에 익숙해지고 정으로 물들던 무렵, 작별의 순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캠프에 온 첫 날은 어색한 마음에 ‘이렇게 3주를 어떻게 버티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끝자락에 와 보니 그 3주가 너무나도 짧고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그간의 추억과 생활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면서 모두들 눈물이 맺힌 채로 꼬옥 부둥켜 안으며 정을 나눴다. 다행스럽게도 문명이 발달하여 비교적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많기에, 우리는 다시 모일 날을 기약하며 한 명씩 한 명씩 숙소를 떠났다.
그 어느 여행보다도 이 3주 간의 워크캠프는,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마음이 너무나도 달랐던 시간이었다. 한국을 떠날 때는 혼자의 몸으로 비행기에 올랐지만 독일에서 다시 한국에 올 때에는 나를 포함한 13명의 가슴을 껴안은 채 풍요로운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과 그로 인한 가치를 깨닫게 해 준 너무나도 값진 시간이었다. 워크캠프를 선택하기까지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선택에 단 1%의 후회도 없다. 워크캠프는 이제 내게,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큰 마음의 확장’ 이라는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서부터 베를린까지 ICE를 타고, 또 바로 REGIONAL을 타고 미팅포인트인 Magdeburg에 발을 내딛기까지의 여정..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찾아갔나 싶을 정도이다. 역에서 처음으로 캠프리더와 만나고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의 감정을 안고 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워크캠프에서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는 일상생활처럼 오고 갔던 ‘역-숙소’의 길이었는데, 처음엔 그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아직도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숙소에는 러시아 남자아이 한 명이 먼저 와 있었다. 그리고 점점 한 명씩, 한 명씩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날은 이름과 국적 그리고 나이 등등 각자 소개하고 얼굴을 익히느라 바빴다. 모두가 ‘3주 동안의 여정을 함께 할 친구들’ 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서인지, 서로 금방 친해졌고 더욱 깊이 마음을 열고 교감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밥도 잘 안 해 먹는 나였는데 이 곳에서는 모든 걸 자급자족 해야 했다. 워크캠프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점이었다. 자급자족의 환경에 놓이니 나도 모르게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습관이 길러졌기 때문이다. 캠프 생활 3주 동안 하루에 2명씩 짝을 이루어 그 날은 일 대신 끼니와 청소를 담당하였다. 가사를 담당하는 날에는 모든 친구들의 굶주린 배를 내가 책임져야 했기에 더욱 분주해지곤 했다. 총 8국가에서의 친구들이 모였기에 입맛도 다 다르고 취향도 달라서 어떤 요리를 해야 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짜빠게티’ 이다. ‘과연 이것이 입에 맞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복불복 식으로 식탁에 내놓았는데, 처음 음식을 보고는 다들 얼어붙은 상태였다. ‘warm’ 같다느니, 징그럽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번만 맛을 보라고 설득시켜 한 입씩 먹은 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이 보일 정도로 순식간에 동이 나서 정작 나는 입도 못 댔었다. 다른 아이들이 해 준 요리 중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스파게티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실제로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별로였다는 것이다. ‘정통 파스타 맛은 이런 것 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맛이었다.
제대로 work를 하기 시작한 건 도착 후 3일쯤 뒤부터였다. 생전 처음 해보는 밭일 이었지만 친구들과 얘기도 나누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일’이 아닌 ‘즐거운 경험’의 시간이었다. 다만 한 낮에는 한국보다 더욱 뜨거운 햇빛을 견뎌내는 게 조금 힘들었다. 처음에는 내리쬐는 햇빛에 무작정 노출되어 있었지만 몇 일 뒤부터는 노하우가 생겨 팔 토시, 모자, 선글라스 등등 필사적으로 햇빛을 막고 일에 임할 수 있었다. 매일같이 밭에 나가 잡초들을 제거하고, 농작물에 물도 주고 하다 보니 식물들이 자라나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자연의 신비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일이 없는 날에는 모두 함께 주변 지역으로 여행을 갔다. 집 같이 생활하던 마을숙소에서 벗어나 도시로 나가니 감회도 새로웠고 다 함께 다녔기에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지친 몸을 기차에 싣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항상 ‘누가 먼저 샤워할 것인지’에 대해 열띤 경쟁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3주 간을 아침에 일어나 다 같이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농장에 가서 낮 동안 일하고, 오후에 들어와 서로 자신의 mp3에 있는 음악을 공유하며 교감하고.. 눈 뜰 때부터 잠에 들기 전까지 항상 13명 모두가 함께였던 시간들에 익숙해지고 정으로 물들던 무렵, 작별의 순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캠프에 온 첫 날은 어색한 마음에 ‘이렇게 3주를 어떻게 버티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끝자락에 와 보니 그 3주가 너무나도 짧고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그간의 추억과 생활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면서 모두들 눈물이 맺힌 채로 꼬옥 부둥켜 안으며 정을 나눴다. 다행스럽게도 문명이 발달하여 비교적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많기에, 우리는 다시 모일 날을 기약하며 한 명씩 한 명씩 숙소를 떠났다.
그 어느 여행보다도 이 3주 간의 워크캠프는,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마음이 너무나도 달랐던 시간이었다. 한국을 떠날 때는 혼자의 몸으로 비행기에 올랐지만 독일에서 다시 한국에 올 때에는 나를 포함한 13명의 가슴을 껴안은 채 풍요로운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과 그로 인한 가치를 깨닫게 해 준 너무나도 값진 시간이었다. 워크캠프를 선택하기까지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선택에 단 1%의 후회도 없다. 워크캠프는 이제 내게,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큰 마음의 확장’ 이라는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