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족자카르타, 꿈을 향한 첫걸음 인도네시아에서 찾은 여름

작성자 장다솜
인도네시아 DJ-WHV · HERI 2012. 07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라오산 템플

Prambanan WHV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는 고등학교 때 지리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이후로 죽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대학생의 방학 생활에 여유가 많지 않아서 지금까지의 세 번의 방학을 보냈지만 워크캠프에 신청하지 못했다. 영어공부도 해야 하고, 남들이 소위 “스펙”이라고 부르는 것도 해야 할 것 같아 국회에서 인턴까지 하고 나니 학교 공부와 바쁜 방학에 지쳐 있던 차, 국제워크캠프기구 홈페이지에서 유네스코 해외 유산 봉사단을 모집하는 걸 알게 되었고, 이번 여름 방학은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나름 재충전과 휴식의 시간을 갖고자 지원하게 되었다. 또, 유네스코와 같은 문화와 관련된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것이 본인의 꿈이기도 해서 일석이조일거라 생각했다. 사실 지원할 때 인도네시아를 택하게 된 건 다른 나라에 있는 불교 사원을 가 보지도 않았는데 거기서 문화재 보존 활동 등을 하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재충전과 휴식도 하고 싶었기에 너무 먼 남미나 아프리카, 유럽은 너무 부담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워크캠프를 위한 워크샵 때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남미나 아프리카 등지를 택한 것을 보고 그 사람들의 용기를 본받아야겠다고, 다음 번에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뿐만 아니라, 워크캠프를 다녀온 사람들이 비록 이 주간의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자신의 변화된 모습 등을 말해줄 때 이번 여름 방학 때 워크캠프를 가기로 한 건 정말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팀원들을 만났지만 학기가 끝나고 약 일 주일 있다 바로 시작하는 워크캠프 스케줄 상 만나서 토의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워크샵이 끝나고 바로 대부분의 팀원들은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하지만 본인은 개인사정 상 다른 비행기를 예약했고, 그래서 워크캠프의 시작과 끝을 홀로 마무리해야만 했다. 돌아올 때는 혼자서 정리할 시간도 있었고 본인이 한국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좋았지만, 다른 팀원들보다 제일 먼저 자카르타에 도착해 혼자 호텔에 도착할 때는 왠지 모르게 서러웠다. 오히려 이 기억 덕분에 워크캠프 기간 동안 별 다른 불평 불만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혹시 혼자 갈 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갈 까 고민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같이 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또한, 혼자 워크캠프를 시작해서 깨달은 가장 큰 것은 한국에 있을 때 자신을 챙겨주는 누군가가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고향을 떠나 홀로 상경해서 대학을 다니는 것도, 고등학교 졸업 후에 앞만 보고 달려온 나의 모든 성과물들은 본인 홀로 고생하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가족과 친한 친구들을 떠나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도 않은 인도네시아에 오니 늘 누군가가 곁에서 응원해주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만했던 나에게 있어 워크캠프가 가르쳐 준 최고의 성과다.
자카르타에서 합류한 두 명의 팀원들과 시간을 보낸 후 워크캠프 장소인 족자카르타로 가서 나머지 팀원들과 합류했다. 족자카르타에서 팀원들과 함께 시내를 구경하고, 교통수단까지 우리가 다 마련해서 미팅포인트에 가고, 그리고 워크캠프 장소에 갔다. 사실 인포시트를 늦게 받아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 지도 잘 몰랐지만 워크샵 때 들은 정보에 기초해서 챙겨간 선물 등이 전부 다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캠프 리더가 워크캠프 시작 2~3주 전쯤에 자신이 캠프 리더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급하게 인포시트를 작성해서 보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는 제목이 워크캠프이듯이 ‘워크’가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알고 보니 ‘드라마 퍼포먼스’라고 해서 우리의 연극과 공연 등과 아이들의 그림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가장 큰 업무였다. 또한 시골마을이다 보니 일정이 세분화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식사 시간에 맞춰서 대략적으로 짜여 있었고, 자유 시간도 많았지만 시골 마을이다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오히려 워크캠프가 아니라 한국에서의 일상에 대한 ‘힐링캠프’ 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비록 몇몇 팀원이 배탈이 나서 고생하기도 했지만, 본인은 음식도 입에 잘 맞아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오빠들이 먹는 양을 먹기도 했었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이다. 인도네시아 친구들 네 명과, 한국에서 생각보다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2주간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친해지게 된 많은 사람들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종종 일 처리—예를 들어서 우리가 한국 전통 음식 요리를 해야 할 때 등—에서는 대놓고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좋은 말로 타일러주고 나 자신이 먼저 잘못한 것을 깨닫게 한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별 일 아닌 라오산 템플의 이끼를 닦아내는 일이 사람들의 별 불만 없이 잘 이루어 진 것도 이런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해도, 같이 있는 게 즐거웠고 저절로 보람도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또, 연극을 할 때 팀장님이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신다면서 여장을 한 것, 함께 보르부드르 사원을 간 것, 날마다 함께 동네 아이들과 놀아줬던 것 이런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의미 있는 워크캠프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한국에서라면 꿈도 못 꿀 율동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또 그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한국말로 된 노래를 부르면서 율동을 할 때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었다. 14명의 사람들이 단 한번의 분란도 없이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잘 지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워크캠프를 통틀어서도 흔치 않은 일이 아닐까 한다. 그 정도로 팀 분위기가 좋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사실 그 동안 나 자신은 항상 옳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그 부작용으로 인해서 본인의 말과 행동이 정말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설득력이 엄청 떨어지고 고지식하다는 평을 몇 번 받아 왔었다. 그러나 그러한 내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학교 공부에, 학과공부 외의 활동에 앞만 보고 달려온 본인이었다. 이번 워크캠프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나를 제외한 13명을 사람들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보고는 싶지만 아쉬움은 남지 않는 2주간 집안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과도 놀고, 우리 팀과도 지금까지의 인간관계와는 달리 원만하게 잘 지냈던 것 같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만약 유럽이나 남미에 갔었다면 그 곳에 매료되어 왔을 것이지만, 인도네시아였기에 그 장소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우리 팀 사람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 않나 싶다. 마지막 날 우리 때문에 좀 바뀌었던 집안 구조를 원상태로 돌려놓고 난 뒤 우리를 다시 공항으로 데려다 줄 차가 왔을 때 여섯 살, 일곱 살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씬따, 아멜, 우리가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했을 15살 소녀 아이유, 눈뜨면 같이 있던 옆집소년 디마스를 비롯해 많은 아이들과 또 집안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배웅을 해 줄 때 워크캠프를 시작하면서 내가 기대했던 “정말 내가 이 곳에 살았었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고 난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가 역시 지구상에 집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긴 했지만, 이것 또한 이번 워크캠프가 일상에 지친 나에게 준 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