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포르투갈, 두려움 반 설렘 반 첫 유럽 혼자 떠난 포르
“NA ROTA DOS PASTOR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지금까지 무언가를 하기 전에 이렇게 설레었던 것도 걱정했던 것도 처음이었다.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그저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갔던 일본과 작년에 학교에서 단체로 떠났던 백두산 탐방이라는 그룹으로 결성된 여행만을 해봤던 나였기에, 홀로 2주 동안 머나먼 유럽 땅으로 간다는 것 자체에 두려움이 앞설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가서는 모든 의사소통이 영어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낯선 환경에서 턱없이 부족한 나의 영어실력으로 인해 오히려 가서 말문만 더 막히는 것은 아닐는지 우려되기도 했다. 이처럼 날 안절부절못하게 한 워크캠프의 시작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며 내 가슴을 더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워크캠프 당일, 동기와 함께하는 활동이라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고 미팅포인트로 향했다. 미팅포인트인 버스 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 앞쪽 좌석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서로가 인사를 나누는 광경을 목격했다. 가끔씩 힐끗 우릴 쳐다보는 행동에, 사실 우리도 저들이 워크캠프의 일원이라는 것쯤은 눈치챘으나,한국인 정서상 선뜻 먼저 나서서 인사하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저 묵묵하게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여러 국가의 친구들이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타이밍을 여러 번 놓쳤기에 외롭게 앉아서 픽업을 기다렸다. 뒤늦게 도착한 워크캠프 해당국인 포르투갈의 리더를 포함한 3명의 친구들이 이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상황을 깨줄 수 있었고, 그제야 우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숙소 환경에 놀랐다. 일단 샤워실과 화장실이 딸려있는 도미토리 식의 숙소에 마을에 하나뿐인 레스토랑에 바까지 모든 걸 갖추고 있어서 정말 기대할만한 워크캠프였다. 뿐만 아니라, 빵빵한 와이파이는 한국에 있는 가족 및 친구들과 연락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허기진 배를 간단하게 맛있는 빵과 주스로 채우고 회의실에 가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통해 정식으로 모두가 인사를 나누었고 그렇게 워크캠프가 시작됐다. 주로 우리가 했던 활동은, 인근에 있는 산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여 좀 더 수월하게 산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는 일, 테트리스 게임처럼 적당한 크기의 돌을 짜맞추어 염소치기 아저씨가 염소를 이끌고 산에 올랐을 때 쉴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주는 일, 숙소 바로 옆에 쳐있는 큰 천막 안에서 마을 축제가 예정된 날짜에 맞춰 무사히 개최될 수 있도록 시설을 구비하는 일 등의 봉사활동이었다. 또한, 일과 후 또는 주말을 통한 여가활동 시간에는 교외에 있는 문화적 관광지를 견학하는 일, 유명한 해변의 휴양지로 떠나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만끽했던 일, 자전거를 타고 산과 마을 주변을 헤집고 다녔던 일, 마을의 전통 춤을 배웠던 일, 암벽 래펠 등의 활동으로 친목을 다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축구광인 나에게는, 숙소 로비에 있는 삼성브랜드의 TV를 통해 유럽 전 리그의 축구를 실시간 중계로 시청할 수 있던 것과 나를 위해 축구공을 구해다 준 포르투갈 친구로 인해 워크캠프 멤버 여럿이서 시간 날 때마다 공을 차고 놀았던 것은 또 다른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워크캠프 워크샵을 통해 워크캠프 멤버가 직접 요리를 해서 끼니를 챙긴다는 사실에 요리라고는 오직 라면끓이는 법만 할 줄 아는 내겐 이게 가장 큰 문제였는데, 레스토랑이 구비된 숙소였기에 아침,점심,저녁이 포르투갈 식으로 풍성하게 나와서 매번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워크캠프 초반에는 낯선 환경과 의사소통의 문제로 인해 언제쯤 이 기간이 끝날까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면, 중후반부터는 이제 몇 일만 있으면 이 친구들과 영영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져갔다. 흔히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이 친구들과의 2주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점점 워크캠프 종료일이 가까워지면서 진작부터 활동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부터 시작해서 더 많은 대화를 통해 더 소중한 추억거리들을 남기지 못한 것에 자책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포르투갈에서의 2주는 내 머리와 가슴 속에 깊게 각인되었고, 모든 여행을 끝낸 8월 말의 지금도 아직도 그들 모두가 보고싶다. 물론, 페이스북을 통해 참여했던 모두의 안부를 주고받고는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온라인일 뿐이다. 기회만 된다면 한국으로 모두를 초대해 한국에서의 국제워크캠프활동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이건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나에게 워크캠프활동의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면, 흔쾌히 망설임없이 선택할 것이다.